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33
33화. 저령 회동 (2)
태건은 저령강 하구 마을을 하구평이라 이름 했다. 이 마을뿐만이 아니라 저령강 하구 일대가 드넓은 평야 지대이기 때문에 ‘평’자를 붙인 것이다.
하구평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귀부를 제안한 태건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지난 가을 팔지령 전투 이후, 이들은 조선군이 언제 보복 공격을 가해 올지 몰라 두려움에 떨어야했다. 심지어 공포감에 잠식되어 이미 마을을 떠난 주민도 있었다. 이미 많은 장정이 지난 전투에서 전사하거나 포로가 되었기에, 맞서 싸우는 건 고려조차 못 했다.
태건은 지휘부 회의에서 제1대대장 송찬황에게 지시했다.
“기병 중대를 붙여 줄 테니 1대대와 기병들을 이끌고 저령강을 건너 30리가량 나아간 다음, 하루 이틀 야영하다 돌아오게.”
“예? 그냥 돌아오라고요?”
송찬황은 의외의 지시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무력시위인 셈이지.”
이하륜이 웃으며 대신 설명해 주었다.
“아, 그럼 콜칸 북쪽을 흔들어 볼 심산입니까?”
“뭐, 그렇지.”
태건은 씨익 웃더니 작전 지도에서 한 지점을 짚어 주었다.
“여기 해안가 토성 말일세.”
“염주성이군요.”
염주성은 발해 지명으로 추정되는데, 성이 축조된 시기는 고구려 안장태왕 때라고 한다. 미래 러시아의 크라스키노 지역에 해당되는 곳이다.
“먼저 여길 들른 다음, 이 강을 따라 북상해서 연추라는 곳까지 다녀오게.”
태건이 연추라 이름 붙인 곳은 미래 러시아의 추카노보란 마을로, 구한말 연해주 독립운동 기지가 자리한 곳이다. 태건은 미래의 일이지만 그 뜻을 기리고 싶어 연추라 이름하고 지도에 기입해 두었다.
“예, 장군.”
송찬황은 곧바로 군례를 올리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는 부하들을 데리고 하구평 마을로 들어가 강을 건널 배를 수배하기 시작했다.
태건은 2대대장 정강빈에게도 비슷한 지시를 내렸다. 저령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눈에 보이는 모든 콜칸인 마을에 들러 항복을 권유하라고 했다. 아울러 응하지 않으면 거침없이 공격하란 명령도 덧붙였다.
정강빈이 별동군 제2대대와 1개 기병 중대를 인솔해 나아가자, 태건은 이하륜과 함께 하구평 지역 전체를 둘러보기로 했다. 태건은 먼저 관청이 들어설 만한 부지를 물색했다.
“저쪽이 좋을 것 같군.”
태건이 가리킨 곳은 강 하구에서 서북쪽으로 2.5㎞ 거리에 있는, 야춘산 산자락에 해당되는 언덕 지형이었다.
“그게 좋겠네요. 여긴 온통 저지대라.”
“그러니 조선인 농민이 정착하기 더욱 좋지. 벼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까.”
“여긴 지력도 남달라서 소출이 꽤 나올 겁니다. 지금껏 농사를 지은 적이 없는 데다 하천 충적지라.”
여진인들은 벼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에 하천을 낀 저습지 대부분이 자연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곳 하구평과 같은 어촌을 겸하는 마을을 제외하고, 여진인 주민은 대개 밭농사나 수렵이 가능한 산골, 혹은 산기슭 지형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므로 태건은 벼농사가 가능한 지역에 조선인 이주민을 우선 유치할 계획이었다. 그러면 자연스레 영역 문제로 원주민들과 이주 조선인 간에 마찰이 빚어지는 일도 방지할 수 있게 된다.
* * *
무이보 앞 나루터.
허균과 그가 포섭해 온 함경도 출신 선비 손중일은 나란히 책상에 앉아 이주민 등록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허균은 열 명 가까이 되는 무리가 책상 앞에 우르르 몰려오자,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가주로 보이는 자에게 물었다.
“이들이 다 한 가족일 리는 없을 테고. 어떻게 되지요?”
“앞에 선 일곱은 제 직계 가족이고, 뒤의 셋은 우리 가문의 노비올시다.”
“노비?”
허균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들을 일별해 보았다. 확실히 앞에 있는 자들과 뒤에 선 자들의 차림새가 뚜렷하게 달라 보였다.
“출신지는?”
“단천이올시다. 넓은 땅을 준다는 조정의 공표를 믿고 나선 것이오.”
허균은 이 가족이 어떤 사연을 품고 있는지 능히 이해했다.
지난겨울, 태건은 조정에 이주민을 모집하기 위한 상소를 올린 적이 있었다. 강외 지역으로 이주할 조선인과 번호를 모집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고, 이주민을 위한 특전도 제시했다.
5년간 수확물의 오 할을 조세 형태로 경흥부에 납부하면, 5년 후 소유권을 인정해 주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아울러 제공될 토지의 면적과 토질은 함경도의 척박하고 비좁은 농토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태건의 이런 제안은 조정에 의해 그대로 수용되었다. 함경도 육진의 인구를 늘리려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던 참이라, 새로 얻은 영토의 사정은 더욱 절실했다. 조선인이 살아야 진정한 조선의 영토가 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함경도 전체가 들썩거렸다. 일반 백성들도 두만강 건너편에 너른 옥토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나은 삶을 위해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 겨울이 끝나가자 이렇게 이주민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야인들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태건에 대한 믿음도 이주민을 모으는데 한몫했다.
허균이 보기에 눈앞에 있는 자들은 몰락 양반가 사람일 가능성이 컸다. 출셋길이 막힌 함경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강외로 이주하면 넓은 토지를 준다는 조정의 발표를 믿고 가산을 정리해 이곳으로 온 것이라 짐작했다.
허균은 이들에게 문서를 하나 만들어 주며 얘기했다.
“행선지는 남콜칸 수빈동이니 그리 아시오. 아울러 나중에 호패로 바꿀 것이니 이 문서를 절대로 분실하지 마시오.”
가주는 연신 굽실거리며 고마움을 표했다.
“예. 고맙소이다.”
허균은 노비 순서가 오자 이름을 물었다.
“꺾쇠입니다.”
사내종은 성씨가 없는 노비였다.
“단천 출신이라 했지?”
“그렇사옵니다.”
“그럼, 성을 단천의 단자를 쓰고, 이름을 건수라 하지. 단건수. 어떤가?”
“예?”
허균은 대답도 듣지 않고 서류에 새로운 이름을 기입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가주가 물었다.
“왜 노비한테 성씨를 부여합니까?”
“건너가면 알게 될 일이오. 두만강을 건너면 모든 게 바뀔 테니 그리 아시오.”
허균은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짓더니 다음 노비를 지목했다.
“자네는?”
“돌쇠입니다.”
돌쇠는 너무나 흔한 노비 이름이었다.
“그럼 단석산이라 할까? 어떤가, 맘에 드나?”
허균이 웃으며 돌쇠에게 물었다.
* * *
태건이 중군을 이끌고 저령에 오르자, 앞서 나갔던 정강빈이 태건을 맞아 주었다.
“콜칸 마을 모두가 귀부하기로 약조했습니다. 마을을 지킬 전사들도 없고, 조선군의 보복 공격을 두려워했던 터라, 흔쾌히 우리 요구에 응했습니다.”
“잘 됐군.”
“드디어 팔지령에 이어 또다시 요충지를 얻었네요.”
이하륜이 크게 기뻐했다. 저령을 점령했으므로 이제 남콜칸과 훈춘 평원을 연결하는 통로를 손에 넣은 셈이었다.
“이곳에 목책이라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강빈이 물었다.
“그래야지. 여긴 교통의 요지이니까, 평소에도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네. 아울러 저령과 하구평을 꾸준히 오가며 순찰해야 할 것 같군. 당분간 별동군 2대대가 맡아 주게. 훗날 수성군이 배치될 때까지.”
“예. 그리하겠습니다.”
“피오성에 사람을 보냈나?”
“예, 명령에 따라 저령에 오르자마자 보냈습니다.”
저령에서 피오성까지, 또 저령에서 팔지령보까지 거리는 각기 약 20㎞로, 서로 거리가 비슷했다. 이런 점만 보아도 저령은 전략적으로 매우 절묘한 위치에 있었다.
“아, 사람들이 올라옵니다.”
훈춘 평원 쪽을 살피던 군관이 지휘 막사로 들어와 피오성 사람들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저령으로 올라온 이는 피오성주 첨터허를 비롯, 그 주변에 거주하는 여러 와르카 마을의 추장과 촌장들이었다.
첨터허는 태건을 보자마자 저령의 점령을 축하해 주었다.
“허허! 드디어 교역로가 깨끗하게 열렸군요.”
첨터허와 태건이 대화하는 모습을, 다른 와르카 촌장들이 미소를 띤 채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도 조선 국경 밖에 새로 터를 잡은 조선군의 존재가 무척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과 교역하며 얻게 되는 이득뿐만이 아니라, 친분을 쌓아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태건과 경흥부의 군에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태건의 초대에 응해 이렇게 많은 지도자가 몰려온 것이다.
이제 태건과 첨터허, 촌장들이 막사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회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 훈춘의 와르카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안은 바로 안전 보장입니다. 귀 조선이 콜칸을 제어해 준 덕분에 우린 남둘루 부족만 경계하면 되나, 문제는 이들의 영역이 자꾸 넓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서쪽의 가야하 하류와 상훈춘까지 남하한 상태라······.”
태건은 이미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촌장들은 태건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기뻐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첨터허는 여전히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문제는 태 부사님이 임기를 마치고 떠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점입니다.”
태건은 첨터허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첨터허의 눈빛 속에서 자기의 생각을 읽고 있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첨터허는 태건의 속내를 떠보기 위해 이런 말을 던진 것이다.
“임기는 아직 많이 남아 있고, 난 여길 떠날 생각이 없어요. 또 날 떠날 수 없게 할 불가항력의 일도 일어날 테고.”
태건이 단호하게 얘기하자 첨터허는 수긍하는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다른 와르카 지도자들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건이 첨터허에게 물었다.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피오성에서 얼마나 많은 장정을 동원할 수 있지요?”
“피오성은 오백 정도 가능합니다. 다른 곳까지 합치면 천 명 정도?”
“장정이 천이라······.”
태건은 훈춘 평원의 와르카인들이 버틸 수 있는 이유가 주변의 남둘루 부족과 비슷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모두가 기병이오?”
“아닙니다. 기병은 삼백 정도입니다.”
“그럼, 적어도 서북쪽 가야하 방면 정도는 방어할 수 있겠군요.”
”예? 서북쪽이라뇨? 직접적인 위협은 동북쪽인데······.”
“거긴 우리 조선군에게 맡기시지요. 그들이 와르카 부족을 도발한다면 바로 응징하겠습니다.”
“토, 토벌을?”
태건이 강하게 나가자 모든 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 일이 일어나면 여러분도 저와 약속을 하나 해 주셔야 합니다.”
“약속이라면······.”
“앞으로 훈춘 평원에서 조선인과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지요. 물론 여러분의 재산을 침해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흠.”
첨터허는 태건의 눈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사실 훈춘평원이 이들 와르카 인의 터전이긴 하나, 이 드넓은 평원을 모두 점유하고 사는 것은 아니었다. 와르카인의 인구가 워낙 적다 보니, 오히려 비어 있는 편에 가까웠다. 그런 면에서 평원 전체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건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태건은 지도를 중앙 탁자 위에 올려놓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두만강, 이곳이 바로 피오성입니다.”
첨터허는 지도에 집중했다. 그가 지금까지 보았던 지도에 비해 너무나 자세히 그려져 있어 몇몇 기호에 익숙해지자 훈춘 평야 지리가 일목요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조선인 이주민들이 들어오면 강변 저지대를 개간할 생각입니다. 조선인 이주민들 거주지는 여러분이 사는 곳을 피해 건설될 예정이고.”
태건은 자신의 계획을 차분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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