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330
330화
무너지는 조선
지난했던 여름과 가을이 지나고, 결국 겨울이 찾아왔다. 발해군의 남하도 공주의 윗고을, 즉 충청도 서북부와 북부에 자리한 예산과 홍주(미래의 홍성), 온양, 천안, 청주에서 멈췄다. 그로 인해 조선 국왕은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조선 국왕이 머물게 되자, 공주의 충청 감영은 이제 행궁이 되었다. 국왕은 내관들과 함께 행궁 뜰을 거닐었다. 속이 너무 답답하다 보니, 춥더라도 산책하는 게 나았다. 그래서 국왕은 틈나는 대로 밖에 나오곤 했다.
국왕은 창덕궁에 비해 좁아터진 감영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렸다. 이제 국왕이 아니라 지방의 관찰사가 된 기분이었다.
“전하! 공기가 찹니다. 이제 안으로 드시지요.”
상선이 들어가자고 재촉했다.
“아니다. 조금만 더 있다가 들어가자.”
국왕은 걸음을 멈추고 서쪽에 자리한 봉황산으로 눈길을 주었다. 나무의 이파리가 벌써 다 떨어져 봉황산은 벌거숭이가 되어 있었다.
확실히 공주는 천혜의 요새였다. 계룡산을 비롯한 험한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 데다, 충청 감영 동쪽에 공산성도 있어, 여차하면 산성으로 대피할 수도 있었다.
“전하! 신료들이 들었습니다.”
상선이 그의 상념을 깼다.
국왕은 고개를 돌려 정문 쪽을 바라보았다. 관복을 입은 신하들이 줄줄이 들어오고 있었다. 굳이 상선이 고하지 않아도 누가 들고나는지 한눈에 다 볼 수 있었다.
국왕이 관청에 들자 곧바로 이이첨이 어젯밤까지 들어온 소식을 정리해 고하기 시작했다.
“전하! 충청도와 가까운 경상우도의 몇몇 고을 수령과 접촉해 보았으나, 들끓는 민심을 가라앉히느라 관병을 보내기 곤란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 처지라 의병의 초모는 더욱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국왕은 손을 들어 이이첨의 발언을 제지했다.
“됐소. 경상도는 이미 끝난 것 같으니 굳이 사람을 보낼 필요가 없을 듯하다.”
“전하…….”
이이첨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발해군 동향은 어떤가? 지금 그게 더 중요하다. 이 추운 겨울에 의병을 모으기란 쉽지 않을 터.”
이제 국왕과 신하들은 더 이상 ‘후발해’라 칭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겨울 추위 때문인지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그리하여 호남의 경우 고창과 장성에서 북진을 멈췄고, 동부는 음, 그게…….”
이이첨이 보고를 멈추자 국왕이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혼돈 그 자체입니다. 발해군이 들어간 고을은 모두 발해를 따르나, 아직 그렇지 않은 곳은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선전관의 추상같은 호통을 받고도 근처에 와 있는 발해군이 무섭다며 부름에 응하지 않고 있나이다.”
한마디로 무정부 상태란 뜻이었다. 조선의 신하인 지방관조차 미적거릴 정도였고, 또 그들의 영이 고을에 제대로 미치지도 못한다는 말이었다.
국왕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이이첨은 급히 말을 덧붙였다.
“하오나 부여와 익산, 전주 등 충청 남부와 호남 북부 고을들은 여전히 연락이 잘되고 있고 군량도 일부 보내 주고 있습니다.”
“그럼 결국 충청도의 절반과 전라도의 절반만이 과인을 따른다는 말 아닌가?”
“아, 아직까지, 현 상황은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겨울이라…….”
늘 당당했던 이이첨도 꽤 의기소침한 성격으로 변했다. 그래서 국왕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않으려 몹시 조심했다.
“허허! 그럼 난 관찰사로구나.”
“전하!”
“전하, 어찌…….”
국왕의 처연한 표정을 보고 신하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위로하려 했으나 국왕은 또다시 손을 들어 제지했다.
“군량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탈영병의 수는 여전하오?”
“아뢰기 송구하오나 나아지지 않았나이다.”
이제 국왕군은 5천밖에 남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지고 군량이 떨어져 가자, 진지를 벗어나는 병사들이 꾸준히 나왔기 때문이다. 주변 고을에서 군량이 오고 있으나 그 양이 적다 보니, 다들 겨울이나 제대로 날 수 있을지 걱정하던 차였다.
“오천에서 더 줄면 어떻게 되나?”
“망극하나이다, 전하.”
신하들이 소리치며 머리를 조아렸다. 신하들의 숫자도 전에 비해 2할밖에 남지 않았다. 대다수가 역모 무리에 가담한 데다, 시세가 몹시 불리해지자 이탈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후금의 노추도 결국 발해의 태건에게 무릎을 꿇었다던데.”
얼마 전에 들어온 소식이었다. 발해 내부에선 진즉에 퍼진 소식이나 국왕의 귀에 들어오는데, 꽤 많은 시차가 있었다.
“더구나 명은 발해군에 패해 요동 땅을 모두 잃었다고도 하고.”
넋두리나 다름이 없는 말투였다.
“도움을 요청할 나라가 단 한 곳도 안 남았구려.”
“송구하나이다, 전하.”
정인홍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발해가 차지한 곳은 어떻소?”
“예?”
국왕의 뜬금없는 질문에 정인홍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기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물었소.”
“아, 예. 전하.”
기자헌이 나섰다.
“그간 알던 바와 다르지 않습니다. 고을마다 수백 명의 병력이 들어가 치안을 유지하고 있고, 그 발해군의 수장이 고을 수령을 대신해 군정을 실시한답니다.”
“그래, 군정. 발해는 늘 그랬다고 했지. 지방관이 정식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군이 통치한다고. 군은 보통 가혹하지 않나? 개중에 부패한 자도 있을 테고. 그러면 민심이 흉흉해질 텐데?”
“그렇지 않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발해군의 군율은 무섭기 그지없어서 오히려 중앙에서 임명된 지방관보다 더 깨끗하게 일을 처리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발해는 참으로 놀라운 면이 많군.”
“더 놀라운 점은 보통 중대장 혹은 대대장이란 자들이 군정 책임자가 된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조선에서 어느 정도 직위요?”
“중대장은 정위라는 계급인데, 조선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6품관으로 현감이나 종사관, 참군과 비슷합니다. 대대장의 계급은 부령이고, 4품관에 해당하는 만호와 같습니다.”
“그런데 뭐가 놀랍지?”
“중대장과 대대장의 수가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그렇겠지. 발해군의 수가 30만을 넘는다고 했으니.”
국왕의 입에서 30만이란 숫자가 나오자 신하들은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마디로 감히 상대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그런 발해를 상대로 싸우자고 했던 역적 놈들이 결국 이 나라를 망친 게야.”
“망극합니다! 전하!”
정인홍이 울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 역시 국왕과 마찬가지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계속하라.”
“예, 전하. 군정을 펼치는 발해군이 가장 먼저 벌이는 일은 노비를 방면하는 일입니다. 향반 가문을 돌며 샅샅이 실태를 조사해서 노비를 풀어주고 있습니다. 이제 노비 문서를 찾아 태우지도 않는답니다. 효력이 없다고 이미 선언했기에 그걸 들고 흔들어 봐야 오히려 비웃음만 살 뿐이랍니다.”
“그다음은?”
“식량도 같이 푼다고 들었습니다. 고을마다 배를 곯는 이가 많으니, 이들부터 살리고 봐야 한다며…….”
식량을 푼다는 대목에서 기자헌은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군량마저 부족한 처지에 놓인 조선과 너무나 비교가 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 타지로 이주할 희망자를 모집한다는 전언도 있었습니다. 이번에 요동의 비옥한 땅을 얻게 되어, 그곳에 정착할 이를 모집 중입니다. 물론 조건은 전과 같습니다. 5년 동안, 소출의 5할을 세금으로 내면 땅의 소유자로 인정해 준다는 점이.”
“땅이 넓어서 좋군. 한양은 어떤가?”
“다른 곳과 다르지 않습니다.”
“상인과 공인이 많은 곳이니, 발해군을 꽤 반겼을 것 같군. 안 그렇소?”
기자헌은 고개만 숙일 뿐, 대답할 수가 없었다. 국왕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성부 주민들은 그 어느 지역보다 더 열렬히 발해군을 환영했고, 발해군에 협조적이었다는 사실을 기자헌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제 우린 뭘 해야 하오?”
국왕의 물음에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 * *
태건이 미소를 머금은 채 물었다.
“어떤 점이 달라졌지요?”
“사거리가 다소 길어졌고 무게가 다소 가벼워졌습니다.”
병기도감 이장곤 청장이 대답했다.
그가 가져온 건 화승총 신제품이었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오. 사실 우리 발해에선 조금씩 사장되고 있는 건데 더 많이 생산해 달라고 해서.”
“당연히 무기 장인이 할 일입니다. 또 오랜만에 화승총을 손보니 재미도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초기에 만든 제품이 영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앞으로 많이 생산하게 된 거, 마음에 걸리는 부분을 개량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강하고 질긴 강철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는데 굳이 옛 방식 그대로 만들 필요가 없으니까요.”
태건은 이장곤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발해라고 해서 화승총을 쓰지 않는 건 아니었다. 신형 소총이 전군에 보급될 때까지 일부는 화승총을 쓸 수밖에 없었다. 또 경관은 모두 화승총을 사용하게 되어 있었다. 아울러 이제 어느 마을이건 군을 다녀온 이가 단 몇 명이라도 있다 보니, 맹수가 출몰하는 지역이라면 마을 단위로 화승총을 몇 정이라도 보급해 주고 있었다.
태건이 병기도감에 화승총을 대량으로 생산하라고 주문한 건 당연히 후금 때문이었다.
“화포도 조금 개량했는데, 완성되면 훗날 보여 드리겠습니다.”
“예, 꼭 가서 보겠소.”
“저, 그런데 병기장인 제가 호기심을 가져서는 안 될 사안이긴 하나 외국에 이런 무기를 팔아도 괜찮은지 기하께 여쭙고 싶었습니다. 병기장 모두가 궁금해하는지라.”
“병기장들은 당연히 걱정되겠지요. 그러나 군 인사들은 아무도 걱정하지 않소.”
이장곤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하륜이 대신해 설명해 주었다.
“이번 전쟁에서 마음껏 신무기를 활용하지 않았습니까? 써 보고 깨달은 거지요. 우리가 가진 무기 정도면 어떤 적도 두렵지 않다고 느꼈답니다. 큰 쇠구슬이나 텅텅 날려 대는 구형 화포며, 화승을 호호 불어 가며 쏘는, 그것도 비 오면 사용할 수도 없는 화승총은 무기도 아니라고 말이죠.”
“오! 이제 이해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도 그럴 거라고 느꼈으니까요.”
“그러니 우리 신무기 기술만 유출되지 않으면 됩니다.”
“음, 알겠습니다.”
“우리 총을 저들이 입수한다고 해도 과연 만들 수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이하륜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이장곤도 따라 웃었다.
“하긴 그렇네요. 무연 화약과 기폭제를 만들지 못한다면 그냥 쇳덩이에 불과하지요.”
“흑색 화약 생산량도 많이 늘려야 하는데 괜찮소?”
태건이 물었다.
“전보다 더 수월해졌습니다. 초석이 많이 들어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간 유럽 상인에게 수입해서 썼던 초석도 이제 고운제도 ― 대동제도의 새 이름 ― 에서 채굴되고 있었다.
“다행이오.”
“어휴! 예전에 염초 만들 때를 생각하면 정말 너무 좋아졌지요.”
“그렇긴 하네요. 어쨌든 아주 비싸게 팔 수출품이 또 생겨난 셈이네요. 크크!”
이하륜이 익살맞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이제 후금이 화약 무기에 맛을 들이면 아주 나라의 기둥뿌리를 뽑아 팔아서라도 사려 들겠지요?”
“예? 하하하! 그렇겠네요. 그럼 명나라가 그만큼 고달프게 되고.”
이장곤도 환하게 웃으며 화답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