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337
337화
조선의 귀부 (2)
제2함대 21전대의 기함 북청함과 아오지급 함선 풍산함은 짝을 이뤄 피야카 해협의 중심부로 진입했다. 해협 중심부는 바로 서편에 나니곶이 있는 구간을 말하는데, 해협의 폭이 가장 좁은 곳이었다.
“여기도 참 오랜만이군.”
선미루 지휘석에 서 있는 제2함대 사령관 고경봉이 나니곶을 보며 말했다.
“어휴! 그간 오죽 바빴습니까?”
함결이 볼멘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 2함대가 조금 그렇지?”
고경봉은 전대장의 심정을 헤아려 주었다.
서해 북부와 발해만 해상에서 활약하는 제1함대와 남해부를 담당하는 제3함대에 비해 제2함대 사람들은 전공을 세울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편안하게 초계 임무만 수행하는 것도 아니었다. 끊임없이 이주민을 북해부와 홍제부로 수송해야 했다. 특히 홍제부로 이주하길 희망하는 이가 급증했는데, 상대적으로 남쪽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따뜻한 지방에 사는 일본인에 비해 북방의 추위를 잘 견디는 한민족은 북해도와 혼슈 북부 정도의 기후에 적응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그 덕분에 홍제부는 어느덧 어엿한 발해 영토가 되었다.
여기에 사하란섬의 서부 해안 거점 두 곳이 새로 지정되는 바람에, 작년부터 그곳에서 근무할 해병대 병력을 운송하는 임무까지 더해져 더욱 바쁘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현재 사하란에서 구축 중인 두 거점은 작년에 점 찍어둔 장진이란 곳과 그 북쪽에 자리한 마이진이란 곳이었다. 미래 러시아의 홀름스크란 곳으로, 수산자원이 풍족하기로 유명하고 품질 좋은 석탄도 매장되어 있어 꽤 번화한 곳이었다. 마이진은 현지 아이누어 지명인 마이카에서 앞의 두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었다. 물론 이곳 바다 역시 겨울에도 얼음이 얼지 않는, 즉 부동항을 건설해 활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나니곶에서 한참을 북상하자 마침내 1차 목적지인 흑룡강 하구가 나왔다.
북청함과 풍산함은 거대한 흑룡강 하구로 진입한 다음, 계속해서 흑룡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흑룡강 하구의 폭이 워낙 넓다 보니, 강 하류가 아닌 만에 가까운 구간이었다.
“태포에 도착했군.”
태포는 미래 러시아의 니콜라옙스크나아무레란 곳이었다. 이곳엔 육군 제2사단 소속 병력이 교역소를 지키며 근무하고 있었다.
북청함과 풍산함이 도착하자 이곳에 주둔 중인 중대 병력은 펄쩍펄쩍 뛰며 반가워했다. 이 배들이 보급품과 편지는 물론이고, 신병을 태워 왔기 때문이다. 물론 보충되는 신병 수만큼 제대 병사가 나오기 마련이라, 이들은 이 선박들에 승선해 귀환할 예정이었다.
“엄청나게 좋아하는군.”
“저라도 그렇겠어요. 이 오지에서 뭘 하겠어요?”
“왜 할 게 얼마나 많은데? 틈나는 대로 사냥하고 낚시하고. 저번에 제대 병사들하고 면담하면서 들은 얘기야.”
“겨울에는요?”
“음, 그게 좀 그렇긴 하지. 후후! 다들 감방살이하는 것 같다고 그러더라고. 겨울에 보급대를 보내지 않으려 되도록 보급품을 비축해 두다 보니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야 한다더라. 아, 그래도 피야카 사람들이 가끔 찾아준 덕분에 덜 심심했다는 얘기도 있더라고.”
피야카(니브흐) 족은 흑룡강 하류와 사할란 북부 지방에 주로 거주하는 민족이었다.
“저도 그 얘길 들었습니다. 사이가 아주 좋은 모양이던데요?”
“그렇다더라고. 겨울에도 찾아와 사냥한 고기와 우리 군량을 교환하는 식으로 거래하고 간다더군. 물론 상선이 드나들기 시작하면 교역소로 모피를 들고 오지만.”
함결은 점차 가까워지는 태포항의 모습을 일별한 뒤 고개를 들어 항구의 북쪽 산지로 시선을 옮겼다.
“그나저나 다음 항해가 기대됩니다. 그땐 처음 가 보는 곳으로 가는 거 아닙니까?”
“그러게.”
이들의 다음 항해 목적지는 바로 발해가 새로 설정한 국경 중, 동북쪽 끝에 자리한 우다강 하구 지역이었다. 솔론산지와 오호츠크해가 만나는 곳으로 미래 러시아의 ‘추미칸’이란 곳이었다. 21전대 함선들은 보름 뒤 육군 병력을 태우고 추미칸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육군 병력은 그곳에서 국경 거점으로 삼을 만한 곳을 물색하고 주둔지를 건설하는 등의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었다.
* * *
다음 날, 조선 사신단은 건흥궁에 들어 태건과 만나 예를 표한 뒤, 궁을 나와 정부종합청사 의정부청으로 향했다.
정인홍은 청사 현관에 마중 나와 있는 이하륜을 보고 밝게 미소를 지었다.
“어젯밤 술이 과하진 않으시었소?”
“괜찮습니다. 궁 구경은 좀 하고 오셨어요?”
“아니오. 기하 알현만 하고 바로 나왔소. 사실 둘러보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지만, 이곳 봉황광장이 더 궁금해서요.”
“하하! 그럼 실컷 둘러보세요.”
조선 사신단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거대한 정부종합청사 건물도, 넓은 광장도 아니고 시계탑이었다. 이들은 한참이나 시계탑을 구경하며 작동 원리에 대해 들었다. 또한 산책하듯 천천히 걸어 광장을 한 바퀴 돌아보기도 했다.
“자, 이제 들어가서 회담하시지요.”
이하륜은 이들을 의정부 회의실로 안내했다.
짧은 환담이 오간 뒤 회담이 시작되자 분위기가 돌변했다. 이하륜은 매우 냉정한 태도를 보였고, 조선 사신들은 울상이 되었다.
“조선이 발해의 속령이 될 테니, 충청도 남부와 전라도 북부만이라도 조선령으로 인정해 주시면 안 되겠소?”
기자헌이 간곡히 부탁했다.
일단 조선이 발해에 귀부한다는 건 회담의 전제 조건에 해당하는 조항이었다. 거기서 조선 측은 현재 조선 조정이 점유하고 있는 지역을 영역으로 인정받길 원했다.
“그럼, 거긴 발해의 통치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란 뜻인가요?”
“그, 그렇습니다.”
“그럼 그게 무슨 귀부입니까?”
“귀국의 허락이 없으면 타국과 교류할 수 없으니 귀부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겨우 그 정도 영토를 유지하면서 타국과 교류할 수나 있습니까? 외교권 운운 자체가 의미 없는 일, 그걸 마치 선물을 주듯 내민다고 제가 받을 것 같습니까? 또한 사대사상에 물든 이들이 득실거리는데, 명과 내통해서 무슨 일을 꾸밀지 모르는데 독립국처럼 대우해 달라고요?”
“그러니까 귀국의 허락을 득한 다음에…….”
“세월이 지나면 생각이 바뀌게 마련이지요.”
이하륜의 표정은 더욱 굳어 갔다. 아울러 발언의 강도도 더욱 강해졌다.
“그런 제안이라면 그냥 현상 유지하자는 건데, 그렇다면 굳이 이런 회담을 열 필요가 없소. 굳이 군사를 움직일 필요도 없이 지켜보기만 해도 고사할 조선 아닙니까? 또 그곳 백성 모두가 발해의 일원이 되길 바랄 터이니, 곧 백성들이 들고일어나겠군요.”
“이이이…….”
이이첨이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이하륜의 발언이 폐부를 찔렀기 때문이다.
“그럼 정녕 조선을 유지할 방도는 없는 것이오? 종묘사직을 지키지 못한다면 과연 주상께서 이 회담 결과를 받아들이겠습니까?”
기자헌이 다시 애원하듯 말했다.
“그냥 미련을 버리시지요. 아시다시피 발해는 사유재산을 존중하는 나라입니다. 심지어 향반들이 부당한 방법으로 취득한 토지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북방에 더 넓고 좋은 땅이 있으니 피해자들에게 그 땅을 제공하면 되니까요. 게다가 우리의 인구 분산 정책과 부합하는 면도 있고요.”
“그 말뜻은…….”
“조선 신료들의 재산을 몰수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조선 왕실이 보유한 토지와 내수사의 재물 모두 조선 왕가에 귀속될 겁니다.”
공주 행재소에 남아 있는 조선 신하들이 들으면 쾌재를 부르며 좋아할 말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명맥이 끊어지고 끝내 망국의 길로 간다는 사실만큼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의정대신. 대감의 말대로 발해의 영토는 무한할 정도로 넓지 않소? 그러니 조그만 땅이라도 보전해 줘 조선의 명맥을 잇게 배려해 주시오.”
보고만 있던 정인홍도 한마디 했다.
이하륜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더니, 준비한 협상안을 내놓았다.
“종묘사직을 보존하고 싶다고? 그게 중요하단 거지요?”
“당연히 그렇지요.”
“그러면 유일한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한양 도성 안쪽만 발해의 속국으로서 조선국 자치령으로 인정하겠습니다. 물론 왕위 세습을 보장하며, 관리 임명권 역시 조선 왕실에 줄 수도 있습니다.”
이하륜이 다소 후퇴하는 안을 내놓자 사신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서 더 얻어 내고자 다시 인정에 호소했다.
“의정대신도 도성 안이 얼마나 좁은지 알지 않소? 아무리 속령이라도 그 정도 갖고 조선 국왕의 자치령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관행대로 성저 10리까지 인정해 주시지요.”
성저 10리란 한양 도성을 빙 둘러 4km 내에 들어가는 지역을 말하는데, 도성 내와 이 띠 모양의 땅을 합쳐 한성부라 했다. 즉 기존 한성부 관내를 조선의 자치령으로 삼겠다는 뜻이었다.
“이 문제는 기하의 윤허를 얻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좌의정 대감의 뜻을 기하께 올리고 답을 받아 오겠습니다.”
“오, 고맙습니다.”
“그러나 조선은 결코 독립국이 될 수 없다는 점. 즉 외교권도 없고, 발해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자치령 바깥에 산재한 조선 왕실과 관리들의 재산과 관련해 그 소유권은 인정이 되나, 세금만큼은 발해에 내야 한다는 점도 숙지하시지요. 그런 제한을 걸지 않으면 그곳에 있는 토지도 조선의 자치령에 속하게 되는 셈이니까요.”
발해 헌법 이야기가 나오자 대신들의 표정이 몹시 어두워졌다. 그렇다고 반대하고 나설 수도 없었다. 이제 조선은 명백히 발해의 자치령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 * *
이하륜은 밤늦은 시각에 회담 결과를 들고 태건 부부를 찾아갔다.
이하륜의 설명을 들은 태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담 잘했네.”
“괜찮겠어요? 성저10리까지 인정해 줘도?”
“상관없지 뭐. 황후 생각은 어때?”
“저도 같아요. 아무리 왕위가 계승된다고 하나, 자치령이니 상관없지 않나요? 더구나 제국을 표방하는 발해잖아요. 앞으로 속국이나 자치령이 더 늘어날 수도 있으니, 조선 왕실의 명맥 정도는 잇게 해 줘도 괜찮지 않을까요?”
“맞아. 애초에 이런 구상을 한 게, 한양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함이었으니까. 재정도 지원해 줘 경복궁과 같은 궁궐도 보수하게 하고, 여러 의례와 고유 문화도 보존해 나가게 말이야. 난 한양이란 도시 전체가 박물관처럼 고스란히 미래에 전해졌으면 좋겠어. 물론 개발도 최소화하고. 그러자고 조선 왕실을 유지하자는 의견을 낸 거니까.”
이런 구상은 사실 이들 세 사람이 처음부터 합의한 것이었다.
“형님. 그 대신 이에 수반되는 의례만큼은 확실히 집행해야 하는 거 알죠?”
이하륜이 강한 말투로 태건에게 말했다.
“당연히 그래야지.”
이들이 말한 의례란 조선 국왕이 태건에게 직접 찾아와 귀부 의사를 밝히고, 자치령의 왕으로서 종주국의 태왕에게 그에 맞는 예를 표하는 것이다. 이미 발해도 제국을 표방한 나라답게 왕의 작위를 부여하고 있었다. 먼저 아우 태원이 경친왕이 되었고, 이하륜 역시 경혜왕이란 작위를 받을 예정이었다.
“그리고 한양 방문을 한참 뒤로 미뤄요. 아시겠죠?”
이하륜이 또 다른 주문을 넣었다.
“그래, 알았다.”
“오빠, 그건 반드시 지켜야 해요. 한양뿐만이 아니라 한반도 남쪽은 치안이 안정될 때까지 가지 마세요.”
홍은 역시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조선 남부의 치안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적뿐만이 아니라, 조선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과 사대주의로 똘똘 뭉친 양반 가문 사람들이 일을 벌일 수도 있었다.
이렇게 태건이 협상 결과를 수락함으로 인해 조선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이제 독립국 조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작은 자치령 형태만 남게 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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