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34
34화. 훈춘부락 원정 (1)
선조 26년, 서기 1592년 임진년 음력 4월 초.
올해 이른 봄부터 시작된 태건의 과감한 행보는 결국 부작용을 낳기에 이르렀다. 물론 첫 시전평 전투 당시와 마찬가지로 뒤탈이 날 걸 각오하고 벌인 일이었다. 더구나 북병사 자리에 오천태가 앉아 있는 한, 일을 벌이지 않아도 문제가 발생하리라 예상했기 때문에 태건은 더욱 과감히 움직였다.
“전하! 노비의 면천은 오로지 왕명에 따르게 되어 있으나, 경흥부사 태건은 강외 영토에서 제멋대로 노비에게 성과 이름을 지어 주는가 하면, 면천으로 의심되는 행위를 했나이다. 이러한 안하무인 격의 방자한 행동이 처음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러한 기군망상에 해당하는 죄는 역모에 준해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니 삭탈관직하고 도성으로 불러들여 엄히 문초하소서. 그리고······.”
오천태가 올린 장계로 인해 조정이 또다시 태건 문제로 들끓었다. 서인에 속하는 병조판서 김남응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편전에 울려 퍼졌다. 그는 거침없이 태건을 탄핵하고 있었다.
“전하! 북병사 오천태는 경흥부사 태건에 대해 사감이 강한 자이옵니다. 그러니······.”
남인의 일원인 예조판서 권극지가 끼어들자 왕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김남응의 발언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더 들어 보자는 의사의 표시였다.
“그뿐만이 아니옵니다. 태건은 제멋대로 군사를 이끌고 강외 강역을 벗어나 골간올적합을 위협해 분란을 자초하는가 하면, 저령을 점령하고 경원부의 대안 지역인 훈춘 고현성에 세거하는 책목덕흑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등, 도무지 그 의도를 분간키 어려운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자를 추포해 와 검은 속내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극형에 처해야 합니다.”
김남응의 태건 탄핵 발언은 국왕을 흥분시켰다. 국왕이 가장 싫어하는 혐의만 골라 씌웠기 때문이다. 국왕의 태도에서 매우 위험한 기운이 감지되자, 그간 우의정에서 좌의정으로 승진한 류성룡이 직접 나섰다.
“전하! 태건의 노비 관련 건은 북병사 오천태의 일방적인 주장일 수 있으니, 반드시 사람을 보내 진상을 조사하고, 이에 따라 공정히 처결해야 할 것이옵니다. 신 또한 이 일에 대해 알아본 바, 경흥부사 태건이 사비를 들여 이주민의 노비를 산 다음, 노동력이 필요한 관영 공방에 배치했다 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비들의 이름이 너무 해괴하여 임시로 이름을 붙여 주었다고 합니다.”
“억지 주장입니다. 이름이 해괴해 임시로 이름을 붙이다니, 이런 주장이야말로 해괴한 변명이지 않습니까?”
이번엔 김남응이 끼어들었다. 그러자 왕은 이번엔 김남응을 제지했다.
“노비의 소유권이 바뀌었다면 이름이야 주인 맘대로 바꿀 수 있지 않습니까?”
류성룡은 김남응의 발언을 바로 반박한 뒤 다시 말을 이어 갔다.
“과감한 군사 행동 역시 지난 팔지령 전투 때 희생이 컸던 점을 참작해서 보다 공격적으로 방어 전략을 구사한 것이라 들었습니다. 아울러 팔지령에 국경 요새가 들어섬에 따라, 훈춘벌의 번호 세력과 저령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게 된 바, 관리 차원에서 그들과 교류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주상 전하의 어명으로 강외 강역에 대한 방어를 북병영이 아닌, 경흥부에 일임한 바 있으니, 태건의 군사행동 또한 이 어명과 부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어찌 일방적으로 검은 속내가 있다고 속단하겠나이까? 부디 통촉하옵소서, 전하.”
국왕은 류성룡의 간언을 듣고 조금은 노기를 가라앉혔다. 그 역시 오천태가 중간에 장난을 쳤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었다.
실제로 오천태가 경흥부와 남콜칸 곳곳에 첩자를 보내 태건의 약점을 캐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국왕 역시 이를 인지했지만, 암묵적으로 용인해 왔다. 그러던 와중에 오천태는 수빈동으로 건너간 몰락 양반의 노비에 대한 사례를 접하자, 이를 약간의 사실과 섞어 각색하고 증폭시켜 고자질한 것이다. 노비까지 보유한 양반가가 통째로 강외 지역으로 이주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허균과 태건은 새로운 정치체제의 기틀을 짜면서 강외 영토에서 노예 혹은 노비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기로 다짐한 바 있다. 그래서 노비와 주인이 같이 이주할 경우, 노비를 사서라도 면천시킬 작정이었다. 노비 문서 자체를 장예원이란 국가 기관이 관리하고, 면천 역시 국왕의 재가가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조선의 그늘 하에 있는 한 노비의 면천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므로 가장 이상적인 방식은 노비 스스로 탈출, 두만강을 건너는 것이었다.
“좌의정의 말도 일리 있다. 하지만 지난번에 이미 무단으로 군을 움직인 전력이 있어 자중해야 하거늘 또다시 소란을 일으켰으니, 태건에게 허물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사헌부 행대를 파견해 허물의 유무를 감찰하겠노라.”
행대는 지방관을 감찰하는 일을 맡는 어사였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국왕은 이렇게 처결하고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처럼 태건은 어전회의에서 자주 언급될 정도로 그 존재감이 빠르게 커졌다. 그러나 그에 비례해 언제든 붙잡아 처형할 수 있을 정도로 엄중한 혐의들이 씌워지고 있었다. 그 혐의가 모함이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자신이 처형한 이들 중에 억울하게 죽은 이가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국왕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오천태뿐만이 아니라 이제 서인 전체가 그의 정적이 되었기 때문에 태건은 이제 언제든 숙청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한시름 놓게 된 것이다.
* * *
이제 이곳 북쪽 변방에도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 들판에 부드러운 훈풍이 불었고, 산자락이 활짝 피어난 봄꽃으로 울긋불긋 물들었다.
일하기 좋은 계절이라, 사람들은 하루가 짧다 하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남콜칸 땅에 자리를 잡은 이주민들은 그간 관이 임시로 마련해 준 공동 숙소에서 생활하며 보금자리가 될 집을 짓거나 농토를 개간하고 있었다. 이주민들은 새로운 이웃과 금세 친해졌고, 고향에서 그랬던 것처럼 공동 노동을 통해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다.
관리들은 배산임수 지형을 골라 마을 부지를 정해 두고 집터까지 구획해 놓았다. 마을 터를 둘러본 이주민들은 공평하게 추첨을 통해 마음에 드는 집터를 골랐다. 운이 좋은 이는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았지만, 운이 없는 가구는 외곽에 있는 대지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또 악양진 관청 측은 가구 별로 같은 면적의 농토를 배분해 주었다. 대가족의 경우에도 반드시 세대를 나누게 한 후, 규정된 농토를 배정했다. 아울러 태건의 지시에 따라 옥수수 종자와 감자를 배급하고 재배법도 가르쳐 주었다.
올 한 해, 농토를 개간하느라 소출이 적을 게 분명했기에 자투리땅에 심어 조금이라도 식량을 확보해주려는 배려였다. 관은 추수기에 감자를 전량 다른 곡식으로 바꿔 줄 예정이었다. 종자로 쓸 감자의 양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태건과 그의 부하들은 남콜칸의 수빈강 유역을 따라 형성되기 시작한 조선인 마을을 천천히 둘러보며 별동군이 집결해 있는 팔지령으로 향했다.
결국 피오성주 첨터허가 예견했던 일이 벌어졌다. 훈춘부락의 남둘루 인들이 저령 부근에 있는 와르카 마을 사람을 공격해 십여 명을 살해하고, 삼십 명 가량을 납치해 돌아간 일이 일어난 것이다. 워지 부족이 사람을 납치하는 이유는 노예로 삼기 위함이다. 날이 풀려 농부들이 농토로 나오기 시작하자 바로 약탈을 시작한 것이다.
첨터허의 연락을 받은 태건은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즉시 군사를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별동군을 팔지령으로 집결하게 한 다음, 순차적으로 저령을 향해 병력을 출발시켰다.
태건이 이끄는 조선군은 마침내 저령을 넘어, 훈춘 평원의 평지성 중 하나인 석두성 ― 후세에 붙은 이름은 석두하자성인데 태건이 석두성으로 개명 ― 부근에 이르렀다.
석두성 역시 고구려 시기에 축조된 성이다. 현재 소규모의 와르카인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번에 봉변을 당한 마을이 바로 이곳이었다. 성의 의지해 살아가고 있어 마을 전체가 위험에 처하는 경우는 없으나 들판에 나가 일하는 이들이 간혹 변을 당하곤 했다.
“이제 말을 잘 타네?”
태건은 여동생 태미가 말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태미는 무관 옷을 입었는데, 탄탄한 체구 덕에 맵시 있고, 잘 어울려 보였다.
태미는 지난겨울, 결국 무장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이 생각을 홍은에게 먼저 토로했는데, 홍은은 ‘걱정할 게 뭐 있냐’며 바로 태건에게 얘기하라고 조언했다. 그런데 정말 홍은의 예상대로 태건은 그저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그러든지’라고 반응해, 긴장했던 자신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태미가 그런 결심을 한 이유는 수군에 남다른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조선장들이 들어온 이래, 태미는 틈만 나면 조산만 선소로 나갔다. 거기서 판옥선 만드는 장면을 지켜보고, 조선장에게 이것저것 물어가며 배에 대한 지식을 쌓고 있었다. 특히 태건이 가져온 소위 남만선과 왜의 주인선에 유난히 집착했다. 태건으로부터 조선통신사 얘길 듣고는 바다 건너 세계에 호기심이 동한 탓이다.
무장이 되기로 결심했기에 태미는 경험을 쌓기 위해 이번 원정부터 태건을 따라다니기로 했다.
“겨우 기마 솜씨로 놀라요? 다들 빨리 배운다고 칭찬해 주던데, 오라버니만 몰랐구나.”
태미는 나들이 나온 것처럼 기분이 들떠 있었다. 비록 실전에 나서지 않고 참관하는 데 그칠 테지만 첫 출전이라 큰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오라버니도 기분이 좋은가 봐?”
“내 얼굴에 그렇게 써 있나?”
“그럼요. 저령에 오르자마자 얼굴이 밝아지더라고. 그렇게 기대되세요?”
“훈춘평이야말로 우리에게 기틀이 되어줄 땅이니까.”
태건은 훈춘 평원을 ‘훈춘평’으로 줄여 부르기 시작했다.
“정말 그렇게 보여요. 저령에서 내려다보니 왜 오라버니가 그렇게 여기는지 알겠더라.”
태건과 이하륜이 큰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반드시 우선해서 확보해야 할 땅으로 꼽은 곳이 바로 훈춘평이었다. 드넓은 농토가 펼쳐져 있어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다는 점이 첫 번째로 꼽는 장점이었다. 또 비록 갈탄이긴 하나, 엄청난 석탄 매장량을 자랑한다는 점도 훈춘의 장점 중 하나였다.
아울러 태건은 여러 곳에 금광이 널려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훈춘강과 그 지류들은 사금의 보고이고, 주변 산자락에 금광상이 다수 분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농업 생산력과 금의 산출량이 궤도에 오르기만 하면, 재정을 풍족하게 확보할 수 있는 곳이었다.
“형님. 첨터허 성주가 나오네요.”
이하륜이 성문 쪽을 가리키며 알려 주었다. 첨터허 역시 이번 원정에 참여하고자, 일부 병력을 이끌고 석두성으로 들어와 태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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