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342
342화
북방 개척 (2)
명국 산동성의 등주 수성.
벌써 몇 년째, 이 해안요새는 발해군의 주둔지가 되었다. 물론 발해 해군의 무시무시한 공격에 성은 무너진 지 오래였다. 그러나 이곳을 지키는 해병대 병력은 굳이 등주 수성을 고치지 않고, 성벽이 무너져 내린 구간만 목책으로 간단히 보강한 채 태평스레 지내고 있었다.
등주 주둔군은 고작 1개 연대. 해병대 제5사단 산하 18연대 병력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명군은 감히 발해 진지로 접근하지 못했다. 바로 등주 수성 폐허 위에 올라가 있는 화포 때문이었다. 등주 수성이 함포 사격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걸 목격한 명군은 감히 발해군에 대항할 시도조차 못했다.
해병대 제5사단장 김태덕은 오늘도 망루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반복되는 일과 중의 하나였다. 진지 자체가 비좁은 데다, 숙소에 들어앉아 있어 봐야 답답하기만 하니, 틈만 나면 망루에 올라 바다와 주변에 포진한 명군 진지를 살피곤 했다.
“아무리 봐도 저들이 우릴 공격할 엄두도 못 내는 건 우리 화포뿐만이 아니라 해군 함선 때문인 것 같다.”
김태덕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제1함대 소속 함선들을 가리켰다. 1함대 측은 등주의 해병대를 지원하기 위해 교대로 대형선을 3척씩 보내 주었다. 그래서 육지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함포로 지원하고, 방어하기에 불리한 상황까지 몰리면 즉시 해병대를 태워 물러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그래도 다음 배편엔 사령부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여긴 너무 위험합니다.”
황보민 부장이 간곡한 표정으로 말했다.
김태덕 사단장은 등주에 꽤 오래 머물고 있었다. 그래서 부관들이 안절부절못하는 것이다.
“뭐가 위험해? 18연대 병력 전원이 신형 소총으로 무장했는데.”
등주 주둔군이 가장 위험한 곳에 자리 잡고 있기에, 해병대 측은 전 병력에 건흥 1식 소총을 보급했다. 이 시대 형편에서 보면 엄청난 화력을 보유한 셈이었다. 게다가 두 종류의 박격포도 규정보다 더 많이 보유하고 있어, 18연대 병력만으로 명군 수만 명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걸 알고 있기에 김태덕은 전혀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다.
“늘어지는 보급선 때문에 이 병력만으로 산동성을 공격할 수는 없겠지. 그래도 등주 거점 하나 지키는 건 충분할 거네. 설령 대군이 온다 해도 끄떡없겠지.”
“뭐, 그건 그렇습니다만.”
황보민은 체념하듯 대답했다.
“생각 같아선 우리 5사단 병력 전체를 끌고 와서 산동성을 모조리 점령하고 싶네만.”
“그러게요. 명국 조정에 압박을 가하기 위한 목적이라 들었습니다만, 막상 이렇게 계속 버티고 있자니, 이게 뭘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군 수뇌부는 이곳 등주 이동 지역이라도 차지하자고 건의하는 모양이다만, 조정에서 다들 반대하고 있다고 해.”
“이유가 뭐랍니까?”
“우리가 다스려야 할 땅이 너무 넓고, 이민족의 수도 많다고.”
“음, 그건 그렇네요. 여길 차지하면 또 엄청나게 많은 한족이 우리 백성으로 편입될 테니까요.”
황보민은 단박에 발해 조정의 뜻을 이해하고, 수긍했다.
“음, 명 조정에서 보낸 사자가 온 것 같습니다.”
“참, 뻔질나게도 보낸다.”
등주 수성과 명군 진영 사이에 자리한 모든 가옥이 비워졌고, 또 대부분 포격에 무너진 상황이라, 명군 진영에서 사자가 나서면 바로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사자가 도착해 김태덕과 마주했다.
그런데 오늘 온 사자는 전과 달리 매우 온화한 기색을 보였다. 전에 온 사자는 꾸짖듯 화를 내며 당장 물러나라고 고함치다 갔고, 그때마다 발해군도 강하게 받아쳤다. 아직 발해와 명의 전쟁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기도 했다.
이번에 사자로 온 이는 정5품 예부의 낭중 직위에 있는 자였다.
“이제 소모적인 전쟁을 마칠 때가 되지 않았소? 그러니 귀 조정 대표와 함께 종전 협상을 열었으면 하오.”
“밑도 끝도 없이 종전 협상을 열자고? 그건 공식적인 거요? 아니면 비밀 협상이오?”
김태덕이 날카로운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험험! 비밀 협상이오.”
“후후! 그러면 그렇지.”
김태덕은 명의 속내를 바로 알아챘다.
“조건은?”
“모든 것을 열어 놓고 협상할 생각이오.”
“장소는 어떻소?”
“이곳 수성과 우리 진영 중간 지점에서 열면 됩니다. 우린 예부시랑을 대표로 보낼 예정이니 발해도 같은 직급의 관리를 보내 주시오.”
예부시랑은 발해의 외부협판과 동급의 관직이었다.
“알겠습니다. 이 뜻을 조정에 전달하지요. 답신이 오면 바로 사자를 명군 진영에 보내겠소.”
“고맙소.”
명의 사자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갔다.
이 짧은 면담 장면을 지켜봤던 황보민 부장이 간단히 소감을 밝혔다.
“명이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그럴 수밖에. 이제 후금이 무서운 적으로 돌변할 거란 사실을 저들도 깨달았겠지. 또 우리 해군에게 북부와 남부 해안이 봉쇄되어 수운도 멈췄고, 은화의 유입도 예전과 같지 않을 테니까.”
명의 북부와 남부 해안이 봉쇄되다 보니, 이제 명의 주된 무역항은 중부에 자리한, 항주 부근의 영파(닝보)가 되었고, 이러한 중부 지역 항구들을 통해 그나마 숨을 쉬고 있었다.
“비밀 협상이라면 뭔가 주고받은 다음, 적절한 명분을 붙이고 종전하겠네요.”
“그렇겠지.”
“우리 조정이 응할까요?”
“글쎄다.”
김태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사하란섬의 남부에 자리한 마이진(홀름스크) 지역.
마이진 지역은 전체적으로 평지가 적은 편이나, 해안선 부근만큼은 그리 가파르지 않은 구릉지가 넓게 자리해 있었다. 그래서 발해군 주둔지도 항구 근처 언덕에 자리를 잡았고, 첫 이주민 마을, 아니 정확히 유배지 마을도 군영 주변에 들어섰다.
“아버지, 바닷바람이 아직 찹니다. 이제 집으로 들어가시지요.”
바위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있는 초로의 사내를 향해 젊은 아들이 다가와 귀가하길 재촉했다.
“아니다. 조금만 더 있다 가자.”
“예, 아버지.”
초로의 사내는 이진사였다. 원래 경기도 여주에서 떵떵거리며 살던, 조부가 참판까지 지냈다고 하여 이참판댁이라 불린 집안의 가주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흘리더니 아들에게 물었다.
“밭은 좀 일구었느냐?”
“예, 넓은 땅을 받았으나,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어 얼마나 거둘지 조금 저어됩니다만.”
“허허! 어쩔 수 없이 농사도 배워야 할 것 같구나.”
이진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해병대 병사가 와서 조금씩 거들고 있습니다. 그들한테 농사도 배우고 있지요.”
“휴! 미안하구나. 나로 인해 고생이 많다. 한창 젊은 나이에 같이 귀양이나 살다니.”
꼬장꼬장했던 이진사는 이곳 유배지에 도착한 이후 다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고향과 멀어진 만큼 마음과 신념도 약해진 것이다. 더구나 이곳은 바다 건너에 자리한, 변방 중의 변방이고, 털이 많아 외모 면에서 조선인과 많이 다른 원주민이 사는 땅이었다.
“괜찮습니다, 아버지. 그리고 저 역시 공식적으로 거사에 가담하지 않았습니까?”
“거사는 무슨.”
이진사는 피식 웃어넘겼다.
이진사는 소위 사상범이었다. 동료 양반과 자신을 추종하는 주민을 모아 소위 의병을 결성한 그는 발해군 소대 병력이 마을 근처를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자 산길에 매복해 있다가 발해군을 습격했다. 그러나 발해 병사 두 명만이 화살에 맞아 조금 다쳤을 뿐, 아무런 소득도 없이 작은 소동으로 귀결됐을 뿐이다. 그러나 아들은 이를 ‘거사’라고 굳게 믿었다.
상처뿐인 반발이었다. 발해군은 이십여 명으로 구성된 이들을 사상자 없이 사로잡은 후, 재판에 넘겼다. 그래서 젊은 축에 드는 이들은 노역형에, 나이가 든 그와 동료 양반은 10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유배지가 사하란섬이라, 가족이 동행하면 토지도 주고 발해군이 보호해 줄 것이란 조건을 내걸자, 노역형을 선고받은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가겠다고 신청했다. 그러다 보니 가족 일부가 유배형이 끝날 때까지 사하란에 거주하게 되었다. 가주와 가문의 계승자가 유배길에 올랐으니 이진사의 손주와 맏며느리도 동행한 것이다.
“그래, 10년만 견디자. 우리 가문의 토지가 고향에 그대로 남아 있으니, 돌아가면 다시 재기할 수 있겠지.”
“재산을 보전해 주는 것만큼은 우리 가문에 도움이 될 일이니, 고마워할 수는 없어도 욕할 수는 없군요.”
“민심을 얻기 위한 교묘한 술책에 불과할 뿐이다. 땅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발해 조정이 굳이 우리 땅을 빼앗으려 하겠느냐? 지천으로 널린 땅 믿고 민심을 어지럽히려 선심 쓰는 척할 뿐이지.”
“그렇군요.”
“근데 언제까지 밭농사만 지을 수 있다더냐?”
이진사는 다시 농사로 화제를 돌렸다. 가족의 생계가 걸린 문제라 그도 농사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 아직 관개가 안 되어 논농사까지 짓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런 기후에서 자랄 벼 종자가 있는지도 모르겠답니다. 해병대 병사가 그러더군요.”
“그럼 잡곡과 방울마 농사만 짓겠군.”
사실 사하란섬의 주산물은 방울마와 목축 관련 산물, 그리고 수산물이었다. 목축업의 경우, 이 땅의 미래 러시아 주민들은 생육이 빠른 사료 작물을 재배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므로 일조시간이 부족해 잘 자라지 않는 일반적인 농작물 대신, 곡물이면서도 사료 작물인 귀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만약 귀리가 열리고 익는다면 나름대로 성공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째로 수확해 건초로 쓰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반가 사람들이 목축업을 종사할 리는 만무했기에 죽으나 사나 농사를 짓는 수밖에 없었다.
“예.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상인들이 드나들며 이곳 원주민이 모아 둔 모피를 사 갈 것이라고 하니 그들 편에 부족한 곡식이나 물품을 구할 수 있을 거랍니다. 또 식량이 부족해 배를 곯게 되면 군이 식량을 배급해 준다고 했습니다. 이는 재판받을 때 보장된 겁니다. 물론 지금도 그 곡식으로 살고 있지요.”
“그래, 알았다.”
이진사는 다시 동해로 눈길을 돌렸다. 그의 눈빛에 한없는 그리움이 배어 있었다.
“사무치게 그리운데, 고향이 그리운지, 조선이란 모국이 그리운 건지 모르겠구나. 벌써 모든 게 바래지고 있으니.”
결국 그는 고개를 떨궈야 했다.
* * *
후금의 수도 우르허천.
누르하치는 맏아들 츄잉이 보낸 승전보를 읽고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진짜 대단하구나. 원정을 떠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승전 소식을 전해 오다니.”
“릭단칸 진영이 완전히 무너진 모양입니다.”
슈르하치도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런 모양이다. 오르도스 땅이 얼마나 넓은가? 그걸 우리가 순식간에 차지했으니 말이야.”
오르도스 역시 초원지대였다. 또 꽤 고도가 높은 고원지대이기도 했다. 물론 만리장성 이북에 자리한 지역이었다. 츄잉의 후금군은 만리장성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며, 그 북쪽에 있는 몽골 부족을 정복 중인 것이다. 아울러 오르도스는 차하르에 속한 부족이었다.
“본래 우리 군이 강하지만 여기에 화약 무기까지 더해지니, 저들이 더 큰 공포를 느낀 듯합니다.”
홍타이지는 나름의 분석을 곁들였다.
“옳지! 그런 면도 있을 거다. 차하르 군이 아마 대경실색했겠지. 그래서 이렇게 빠르게 성과가 나왔겠군.”
“이번에 오르도스를 취했으니, 알샤와 투메드 정벌도 곧 끝나겠군요”
“그렇다고 봐야지?”
“그럼 지금부터 금주위 공략 준비를 서두르시지요. 이 정도 속도라면 서부 정벌은 곧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이다. 이번에 내가 친정을 떠날 테니, 너도 준비하거라. 아우는 수도를 지켜주게나.”
“예, 형님.”
“그러지요.”
“네 말대로 발해와 일찍 전쟁을 끝낸 게 전화위복일 될 것 같구나. 아주 느낌이 좋아.”
누르하치는 홍타이지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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