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345
345화
귀환 (1)
한성부 운종가(종로) 거리.
늘 구름처럼 사람이 모여들어 북적거리던 운종가는 오늘따라 더욱 한산했다. 발해에 예속된 이후 꾸준히 일어난 현상이었다. 발해와 하나가 된 직후, 몰려오기 시작한 여러 발해 상단이 한성부가 아닌 그 외곽에 자리를 잡은 탓이다. 한성부가 발해 내에서 조선왕의 자치령이란 특별한 지위에 있기에 그들은 성저십리 밖 경계 지역을 상단 거점으로 선택했다. 상인 특유의 불안 심리 때문이다.
사실 한성부 자치령의 경계에 울타리를 둘러친 건 아니었다. 한성부로 통하는 도로마다 경계를 표시하는 표지판만 세워 뒀을 뿐이다. 그러나 성저십리 안팎에 사는 이들의 운명은 다소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자치령은 발해 헌법만 준수할 뿐, 자체 법령의 규정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헌법에 따라 노비의 면천이나 국세, 국방의 의무와 같은 사안은 조선 자치령도 준수해야 하나, 그 이외의 지방세 정책이나 주민 생활에 영향을 주는 다른 법률은 자체 제정이 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동북쪽은 양주현 해촌사(미래의 서울 도봉구) 지역에, 서북부는 고양현 덕수천 부근에 점차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곳에 발해 상단뿐만이 아니라 발해군 주둔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해촌사의 경우, 이번에 부설된 한안선 철도노선이 그 지역을 통과하고 해촌역까지 있어 성시를 이루게 되었다.
이처럼 성저십리 밖에 마련된 발해 상단들의 두 거점에 주변 고을과 한성부에서 장사하는 수많은 소매상이 발해 상품을 구하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간 탓에, 운종가의 상권이 급격히 위축된 것이다.
이부 국장 이이첨은 천천히 운종가를 살피며 걷다 나직이 한숨을 터트렸다.
“허탈하군요. 한성부 주민이 이렇게 많이 빠져나갔을 줄 몰랐소.”
그와 나란히 걷고 있던 예부 국장 류몽인도 헛웃음을 흘렸다.
“헛허! 민심의 흐름이 그런 걸 어찌하겠소?”
“떠난 자들은 다 북쪽으로 갔을까요?”
“그랬을 겁니다. 모름지기 출세하려면 당연히 새 도성으로 가야 하는 법. 솔직히 발해는 과거의 조선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큰 나라입니다. 그러니 문무관 관직의 수도 몇 배나 많겠지요. 수십만에 달하는 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니 무관 관직은 얼마나 많겠습니까? 땅덩어리가 광활하니 지방관의 수는 또 어떻고요? 중앙 관직 역시 조선의 몇 배는 된다고 들었어요.”
“그것만이 아니오. 중추원 의관이라고 들어 보셨소?”
“아, 그 투표로 뽑는다는?”
“예, 한 고을에서 한두 명을 뽑는데, 그게 당상관에 해당하는 직위라 하더이다.”
“음, 그렇다면 우리 조선 땅에서도?”
“멀지 않아 실시되겠지요.”
“그러면 조선의 향반이나 중앙 관직에 있던 이들은 그 자리를 노리겠군요. 발해의 요직이야 수많은 개국 공신이 차지하고 있을 테니까요.”
“그러게요. 그러니 출세에 뜻을 둔 이라면 당연히 북쪽으로 향할 수밖에. 더구나 신기한 문물이 널린 곳이 서울이외다.”
“발해에서 만들어진 상품을 써 보니 민심이 확 기운 게 이해되더이다. 특히 성냥 말이오. 이렇게 편리하게 불을 붙일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후후! 서울을 한번 가 보시오. 성냥은 아무것도 아니라오.”
“그래요?”
“역시 한성부만이라도 전처럼 성세를 누리려면 발해의 서울과 똑같이 만들어 가야 한다는 말인데.”
“당연한 얘기요. 이제 조선은 사라졌다고 봐야 합니다. 전 발해 태왕이 주상 전하의 왕위를 그대로 인정하고 한성부를 자치령으로 내준 걸 보고 참 통이 큰 군주라 생각했습니다.”
북인의 일원이었던 류몽인은 문장가이자 외교 방면에서 이름이 높은 이였다. 사고가 유연하다 보니, 매우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현왕인 광해군과 깊은 친분이 있기에 떠나지 않고 그의 곁에 남게 되었다.
두 사람은 흥인문을 나와 동묘 동쪽, 안암천 천변에 자리한 동문역으로 향했다. 이 동문역이 바로 한안선 철도 노선의 종점으로, 미래의 동대문구 신설동에 자리했다.
“한양 사람들이 다 여기 있었군.”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한성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린 탓에 오늘따라 운종가가 더욱 한산하게 느껴진 것이다. 한안선 개통식이 열린다는 소식이 널리 퍼지자, 사람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기차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열 일 제쳐 두고 달려왔다.
철도 부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공사 현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러다 보니 철도 선로와 침목을 잔뜩 싣고 온 화물열차를 이미 목격한 이들도 있고, 이들의 입을 통해 더욱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 * *
열차는 철원역을 지나 연천역으로 향했다.
발해 태왕과 황후, 조선왕을 비롯해 이하륜 등이 탄 귀빈 칸은 매우 화려하게 꾸며졌고, 정복 차림의 근위대는 물론이고, 중무장한 병력이 앞뒤 칸에 승선해 있었다.
조선왕이 정인홍과 합석하겠다며 자리를 비우자, 이하륜이 웃으며 말했다.
“궁금한 게 참 많은가 봐요. 질문이 그치질 않네.”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이 재미있나 봐.”
“호호! 나도 그런데요, 뭐. 그새 많이 변해 볼 게 많더라고.”
홍은도 오랜만에 떠난 장거리 여행이라, 창밖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확실히 세상을 바꾸는 데 철도만큼 좋은 게 없다니까. 지금 중앙지 신문사들이 급격히 커지는 거 아세요?”
이하륜이 홍은에게 물었다.
“아, 그렇겠네. 기차를 통해 빠르게 지방으로 배송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럼 지방지들이 조금 위축되겠네요.”
발해 신문 업계에서 지방지의 힘은 매우 컸다. 중앙지의 배송이 해운을 통하더라도 일주일에서 한 달 가까이 걸리다 보니, 지방 독자들은 당연히 지방지를 구독할 수밖에 없었다.
“철도가 중앙과 지방의 정보격차를 줄여 주는 거지. 그런 격차가 점차 사라져야 그만큼 나라의 통합과 국가 정체성의 공고화가 더 빠르게 진행될 거다. 그러니 철도 부설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태건은 정보격차의 해소를 안보보다 더 중요하다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형님, 그럼 이참에 전신기 개발을 서둘러 볼까요? 어차피 전기산업에 손대기 시작했으니까.”
“그게 좋겠다. 당장 전국 곳곳에 깔리기 시작한 철도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지.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예, 형님.”
현재 발해 철도노선은 대부분 단선 철도였다. 그래서 열차들은 철저히 시간을 지켜 운행해야 했고, 비상시에는 역마다 연결된 신호용 줄과 같은 온갖 재래 신호 방식을 활용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유선 전신기의 개발이 시급한 과제로 부상할 수밖에 없었다.
“난 한글 전신 부호를 고안해 볼까?”
모스전신기와 부호를 발명한 사무엘 모스는 19세기 사람이라, 수백 년 후에나 태어날 예정이었다. 그래서 홍은은 모스부호 대신 ‘한글 전신 부호’란 표현을 썼다.
“그러자면 배터리도 개발해야 하고. 정말 일이 끝이 나지 않는군요.”
이하륜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후후! 팔자려니 해야지. 우린 처음부터 그랬잖아?”
“그러고 보니 처음 경흥으로 갈 때가 생각나네?”
“그때는 정말 막막했지. 벌써 25년 가까이 됐군.”
세 사람은 잠시 상념에 잠겼다. 한성부가 가까워진 탓에 지난 일이 생각난 것이다.
“근데 명나라의 강화 회담에 응할 생각이세요?”
이하륜이 침묵을 깨고, 조선왕 탓에 미처 의견을 나누지 못한 안건 하나를 꺼냈다.
“응해야지. 후금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명의 국력을 조금 더 깎아낸 다음에 해야 하지 않나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우린 포로를 5년간 노역에 동원한 다음 풀어 주지만, 인구가 부족한 후금은 반드시 흡수하게 되어 있거든. 금주성 전투에서 꽤 많은 명나라 장수와 병사들을 얻었으니, 병력도 부족하지 않겠지. 아마 병력 늘리기에 재미가 들린 누르하치라면 분명 몽골인 거주지를 통해 산해관 바로 앞으로 내려와 퇴로를 막고, 영원성 공략에 나서겠지. 그러면 또다시 수만 명의 포로를 얻는 것이고.”
“지난 금주성 전투 얘길 듣고 보니 명의 전력이 상당히 약해진 것 같기도 하고. 만력제가 조선에 좋은 일을 했으나, 내치는 엉망이라 한창 내리막을 걷고 있긴 하니까.”
“그리고 우리에겐 또 하나의 제어 수단이 있다.”
“제어 수단이요?”
“우리한테 묶여 있는 명군 포로가 무려 7만 명이란 사실을 잊었어?”
“아! 그렇구나. 하하하! 그들이 있었지.”
이하륜이 활짝 웃었다.
“그럼 그들을 어디로 풀어 주느냐에 따라 판도가 갈리겠네요?”
홍은도 이내 태건의 속뜻을 알아챘다.
“그렇지. 해로를 통해 명에 데려다주면 명이 잘 활용하겠지. 육로를 통해 후금에 내어주면 그들 모두가 고스란히 후금 병력이 될 테고.”
포로의 노역이 시작된 시기는 포로마다 조금씩 다르나, 이른 경우는 3년 전이므로 2년 후부터 풀려나는 포로가 나오게 된다.
“그런데 항복한 장수들이 잘 협조할까요? 중화 어쩌고, 오랑캐 어쩌고 하며, 긍지니 뭐니 따지는 애들이?”
홍은이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오삼계를 생각해 봐.”
태건이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도록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맞다. 오삼계. 헙!”
홍은은 자신의 목소리가 컸다는 사실을 깨닫고 황급히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명의 망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는 사실 이자성이었다. 이자성의 난으로 인해 명은 사실상 망국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청군을 중원에 들여 명의 완벽한 종말을 고하게 한 자는 오삼계였다. 그러나 지금의 오삼계는 아직 유아기를 보내고 있었다.
“북경을 점령할 이자성도, 산해관을 스스로 열어 줄 오삼계도 필요 없어. 공성포 덕분이지. 또한 항복한 명나라 장수와 병사들도 당시에 큰 공을 세웠지. 지금도 그래. 한족 팔기가 완성됐다잖아? 긍지는 무슨, 후후!”
“미래에나 지금이나 말만 요란할 뿐이지요.”
이하륜도 웃으며 거들었다.
“그럼 강화조건은요?”
홍은이 물었다.
“우리가 점령한 땅 중, 등주만 돌려주고 나머지는 고스란히 우리가 가지겠다고 해야지.”
“등주를 돌려준다니 조금 아깝네요. 등주 이동의 산동반도 끄트머리만 잘라서 가져와도 훗날 여러모로 도움이 될 텐데. 바다 영토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지.”
이하륜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이미 논의가 끝난 얘기다. 지금 시점에선 부작용이 더 많잖아? 물론 먼 훗날 우리 인구가 몇 배로 늘어나면 고려할 만하지. 그건 또 그때 가서 처리할 문제니까 이번엔 넘어가자.”
태건이 웃으며 이하륜을 달랬다.
“비밀회담이라면서요? 그걸 어떻게 보장받죠?”
“공표만 하지 않을 뿐, 문서는 작성해야지.”
“아, 그러면 되겠네. 그럼 하늬제도와 홍콩제도, 묘도열도도 우리 영토로 공인받는 거죠?”
“당연하지.”
홍콩제도는 홍콩섬과 봉산섬을 비롯해 그 남쪽과 서쪽에 있는 모든 부속 섬을 말한다.
“근데, 한성부에 도착하면 조선왕이 많이 놀라겠는데요?”
이하륜은 열차 뒤 칸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선왕만 그렇겠어요? 다들 우리 선물을 보고 까무러치겠지.”
홍은도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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