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347
347화
귀환 (3)
장군은 석상처럼 우두커니 서서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를 바라보았다. 그의 나이도 벌써 일흔. 하얀 수염과 희디흰 귀밑머리가 가을의 미풍에 흔들렸다.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가득 아로새겨졌으나, 자세만큼은 꼿꼿했다.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린 채 우뚝 서 있는 그의 자태는 자연스레 영웅의 풍모를 뿜어내고 있었다.
뭔가에 세게 얻어맞은 듯한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백성들. 그들을 둘러보는 장군의 눈빛에 회한과 그리움, 안타까움, 반가움 등의 복잡한 감정이 배어 있었다. 속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라 그의 눈이 살며시 감겼다.
동문역 광장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바람에 나부끼는 각양각색의 깃발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착각했으리라.
이제 백성들이 조금씩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그가 누구인지 다들 알아챘기 때문이다. 태왕부 국장은 정적에 이어 연출된 이 미지근한 반응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나섰다.
“전 조선 삼도수군통제사이자 현 발해의 융무왕이시오. 예를 갖추시오!”
국장의 목소리에 당황한 감정이 묻어 나왔다. 백성들의 이런 반응을 미처 예상하지 못한 탓이다. 이순신 장군이 나서는 즉시 모두가 뜨겁게 환영하리라 생각했다. 물론 착각이었다. 사람들이 품은 감정의 깊이까지 헤아리지 못한 탓이다.
그의 의도대로 그의 발언이 신호탄이 되었다. 갑자기 땅이 울릴 정도로 커다란 환호성이 일순간에 터져 나왔다.
“와아아!”
“와아! 통제사 영감~”
“어서 오시오! 장군!”
“허허허! 살아계셨어.”
백성들은 펄쩍펄쩍 뛰며 기뻐했다. 반가움에 겨워 내지르는 소리는 비명이나 다름이 없을 정도였다.
통제사로 활약하던 시절, 남해안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그를 볼 때마다 이런 반응을 보였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르자 장군에 대한 소문은 조선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래서 다들 자신들이 왜적에게 당하지 않고 이렇게 살아 있는 걸 모두 이순신 장군 덕택으로 돌렸다. 북방으로 도주한 못난 임금과 대비해 구국의 영웅으로 그를 떠받들게 된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환호하는 백성을 향해 깊게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백성들은 허리를 숙이다 못해 아예 땅바닥에 꿇어 엎드렸다. 이 큰절은 전염성이 있어, 마치 짚단이 차례로 쓰러지는 것 같은 광경을 연출했다.
그렇게 모두가 이제 발해의 왕으로 책봉된 이순신을 향해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예를 표했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랜만에 귀환한 장군을 백성들은 진심으로 환영한 것이다. 더구나 장렬히 전사한 줄만 알았던 그가 살아 돌아왔다는 점이 더욱 감정을 증폭시켰다. 어느새 백성들의 뺨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태건이 다시 비서국장에게 손짓하자, 다시 그가 또 다른 귀빈들을 소개했다.
“당시 통제사 이순신 장군을 모시던 분들이오. 발해 해군 제3함대 34전대장 송희립 참장과 부전대장 이완 정령을 비롯한 해군 간부들이오.”
왜란의 마지막 날, 대장선에 탔던 이들이 모두 나와 장군 옆에 서더니, 백성들을 향해 인사했다. 그러자 또다시 광장을 뒤흔드는 것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류몽인은 이이첨이 볼까 두려워 재빨리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통제사 영감이 살아계셨소. 정말 놀라운 일이오.”
“살아 있을 거라 짐작한 이들이 조금 있었지요. 발해 선단이 구했을 수도 있다고. 그런데 오늘 이 자리에서 이렇게 갑자기 등장할 줄은 몰랐소.”
“더 놀라운 건 백성들의 태도올시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겁니다. 왜란에서 조선을 구한 이가 누구인지. 그래서 그 은혜를 잊지 못하고 이리도 감격해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걸 부정하는 이는 없지요. 선왕과 몇몇 조정 중신들을 제외하고.”
이이첨 역시 류몽인의 견해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광해군의 측근이었던 그 역시 선왕 선조에 대한 감정이 좋지 못했다.
“휴! 오늘이야말로 조선과 영영 작별하는 날인 것 같소. 이 동문역 광장은 굿판이고. 저 백성들의 눈물을 보시오. 마치 씻김굿 끝에 모든 회한을 풀고 망자와 작별하는 모습이란 생각이 들지 않소? 주상 전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 같군요.”
이이첨은 고개를 돌려 조선왕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떨군 채 상념에 잠겨 있었다. 얼굴을 볼 수는 없으나 몹시 위축된 자세에서 깊은 절망감이 느껴졌다.
“통제사 영감의 존재 자체가 조선의 허물이고 치부요. 나라를 구한 큰 공을 세운 분이었소. 그런 고마운 분, 백성의 절대적인 신망을 얻은 분에게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웠지. 그리고 목숨이 경각에 달할 정도로 고신하고, 심지어 처형할 뻔하지 않았소? 이 처사를 질투심에 눈이 먼 선왕의 허물로 몰아갈 수도 있으나, 현 국왕은 그분의 아들이니 그럴 수도 없지요. 뿌리를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
류몽인의 지적은 너무나 예리했고, 그만큼 아팠다. 그러나 이이첨은 단 한마디도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에 반해 발해는 저분을 사지에서 구했고, 그간 잘 돌봐드렸지요. 또 조선이라면 꿈도 꿀 수 없는, 황제국이나 가능한 선물을 주었습니다. 통제사 영감을 왕으로 책봉하는 일. 그리하여 백성들도 명에 사대하는 조선보다, 그를 왕으로 책봉할 수 있는 발해를 더 자랑스러워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민심은 한 치라도 되돌릴 수 없게 되었소. 왜란이 언급될 때마다, 통제사 이순신을 입에 올릴 테고, 그러면 자연스레 조선 조정을 욕하는 말이 따라 나올 겁니다.”
이이첨은 여전히 듣기만 했다. 결국 조선 국왕도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그의 떨림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국왕이 분노한 게 아니라 울고 있다고 여겼다.
이순신 장군은 이제 몸을 돌려 태건에게 공손하게 인사하고 태건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태건 부부를 제외한 가장 상석이었다. 심지어 이하륜이나 조선왕보다 상석이었다.
그리고 이순신은 현 조선 국왕에게 가볍게 눈인사만 건넸다. 더 이상 조선의 신하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 * *
태건과 조선왕, 그리고 이하륜은 소실된 경복궁 터를 거닐었다. 왜란 때 불탄 이후, 잔해는 모두 치워졌고, 그 자리에 벌써 풀이 자라고 있었다. 이제 경복궁은 공터나 다름이 없었다.
조선왕이 이하륜에게 물었다.
“전 삼도수군통제사를 언제 구했지요?”
국왕은 융무왕 대신 조선의 관직으로 호칭했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이하륜은 전혀 개의치 않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마지막 해전 때 구했어요. 현장에 있던 우리 해군 장수들 얘길 들어보니, 매우 위험한 형세에 놓였는데, 끝끝내 대장선을 지키겠다고 고집부리자 부하 장수들이 기습적으로 그분을 끌어안고 바다로 뛰어내렸대요.”
“그랬군요.”
“부하 장수와 딸린 식구들을 지키려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려 한 거겠죠?”
이하륜이 물었으나, 조선왕은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앞만 보고 걸었다. 당시 광해군인 그 역시 선왕에게 당한 게 많은 피해자 중의 하나였다. 심지어 아들인 그조차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야 했다. 그래서 당시 통제사의 심정을 헤아리고도 남았다.
“그럼 그 이후 발해에 출사했소?”
“여러 번 권했지만, 그저 전장에서 싸우다 전사한 장수로 세상에 알려지고 싶다고 했어요.”
“그랬군요.”
“그간 작위도 거부했는데, 발해와 조선이 하나가 된 이후 겨우 마음을 돌리더이다. 그게 며칠 전의 일었어요.”
그다음 얘긴 굳이 물을 필요도 없었다.
이번엔 태건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놀랐소?”
“예, 조금.”
조선왕의 표정에 자못 원망하는 기색이 배어 있었다.
“일종의 깜짝 선물이라 생각하시오. 미리 알려지면 오늘 본 것과 같은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진 못했겠지.”
태건의 말을 받아 이하륜이 말했다.
“그래서 선물인 겁니다. 백성들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보셨죠? 융무왕 그분도 감동하셨고. 또 그 부하 장수들은 어떻고요? 그 나이 든 양반들이 아주 어린애처럼 펑펑 울지 않았소?”
되도록 감정의 기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던 융무왕과 달리 송희립과 다른 장수들은 너무도 감개무량한 나머지 눈물을 철철 흘렸다. 백성들이 보인 눈물에 전염된 덕분이었다. 또한 자신들이 모시던 이순신 장군이 비로소 공적을 인정받은 데 대해 감격했기 때문이다.
이하륜은 조선왕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까 발해는 조선과 다르다는 겁니다. 우린 신문과 잡지라는 게 있어서, 이런 깜짝 행사를 열어야 행사 취지가 잘 전달되거든요. 그래야 취재 나온 기자들이 현장의 분위기를 생동감 있는 필체로 전달하는 거고, 화원들도 눈을 확 잡아끄는 장면을 골라 그림으로 기록하게 마련이지요.”
“신문 때문이라고?”
조선왕은 살짝 이하륜을 쏘아보았다.
그는 처음부터 이하륜이 못마땅했다. 자신과 지위가 같은 왕이란 사실 자체가 싫었다. 경흥으로 떠날 때만 해도 겨우 만호에 불과한 자였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그런 감정이 일어났다.
“뭐, 이해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겁니다.”
이하륜은 조선왕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말만 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뭐지요?”
태건이 조선왕에게 물었다.
“하고 싶은 거와 해야만 할 일이 조금 다릅니다. 해야만 할 일은 당장 한성부를 정상화하는 것이겠지요. 정무 체계야 겨우 자리를 잡았지만 빠져나가는 백성을 붙잡을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게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건 바로 경복궁을 중건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석조 단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근정전 터를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궁궐 이야기가 나오자 조선왕의 말이 많아졌다. 그의 시선은 어느새 돌 틈 사이로 풀포기가 돋아나 있는 근정전 터에 가 있었다.
“그럼 둘 다 추진하세요. 경복궁 중건에 드는 비용을 태왕부 내탕금으로 대 주겠소.”
“저, 정말입니까?”
태건의 말에 조선왕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한양 도성이야말로 소중한 우리 동족의 문화유산입니다. 그러니 한성부를 잘 복원하고 관리하십시오. 그러면 유람온 이들만 잘 대접해도 한성부 백성이 충분히 먹고살 수 있게 될 겁니다.”
이하륜도 거들고 나섰다.
“또 백성들이 객관도 짓고, 음식점도 많이 차리게 하시지요. 우리 서울도 숙박업과 요식업에 전문으로 종사하는 이들이 많이 늘어났고, 그 사업으로 갑부가 된 이도 많답니다. 물론 그로 인해 세금도 많이 걷힐 테고요.”
“그 정도로 유람온 이들이 많소?”
“직접 봤잖아요? 얼마나 많은 외지인이 왕래하는지.”
“음, 그랬지요. 구경거리가 워낙 많긴 했어요.”
이하륜의 말을 듣자, 국왕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왕위 계승을 보장받았고, 종묘사직에 제사도 지낼 수 있어서 다행이나, 실제로 나라를 잃었다는 점은 변함이 없었다. 그로 인해 늘 의기소침하게 지내 왔는데, 이제 뭔가 할 일이 생긴 것이다. 특히 궁궐 중건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기던 그였기에 태건의 제안은 희망을 주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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