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353
353화
전기의 시대 – 에필로그
건흥 23년, 서기 1618년, 여름. 슬해항.
발해 해군의 해랑급 초도함인 해랑함이 슬해만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오더니 사뿐히 슬해항 부두에 접안했다.
몇 시간 전부터, 그러니까 동해안 육지가 시야에 들어온 직후부터 갑판에 나와 있던 영국령 남포르모사 총독 헨리 미들턴은 전방에 펼쳐진 슬해항의 모습에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허허허! 초량항은 아무것도 아니었어. 슬해항이 거대하다는 얘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는데, 과연 그렇군.”
슬해항은 처음 개항한 때에 비해 10배 이상 커졌다. 그래서 슬해만 해안의 거의 절반이 항만으로 개발되어 이제 저령시 하평동 해안까지 연결되었을 정도였다. 게다가 인접한 연추항과 봉황항도 날로 커지고 있어 더 시간이 지나면 슬해만 해안 전체가 항만으로 연결될 태세였다.
게다가 항만 구역 배후에 자리한, 6층 이상의 고층 건물이 들어선 슬해시 시내 모습도 슬해항을 더욱 번화하고 웅장한 느낌이 들게 했다.
“그보다 전 이 배가 너무 탐나는데요?”
이번에 미들턴과 동행한 존 사리스는 해랑함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그건 나도 그렇네. 우리도 빨리 이 배를 본떠 쾌속선을 보유했으면 좋겠군.”
미들턴은 고개를 돌려 갑판을 살폈다.
초량 교구에 적을 두고 있는 예수회 신부들과 포르투갈 대표 몬테로스 도밍고, 스페인령 필리핀의 도독 후안 데 실바 및 가르시아 부관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들 역시 혼이 나간 표정으로 슬해항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미들턴의 시선이 또 다른 무리에 닿았다. 그러자 그의 표정이 저절로 구겨졌다. 그들은 바로 대월국과 브루나이 왕국, 다리다연합, 타라그연방에서 보낸 사절단이었다. 미들턴은 포르모사와 동남아 원주민 국가들이 발해와 교류하는 걸 매우 경계하고 있었다.
태건의 명을 받은 송희립은 구마국 상인의 도움을 받아 함대를 이끌고 대월국과 브루나이왕국을 방문했고, 그 이후 사람과 물자가 조금씩 오가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나라 사람들도 이번 행사에 초대되어 해랑함에 타게 된 것이다. 이들 이외에 류큐와 구마국, 타이잔국, 일본의 사절단도 같이 승선한 상태였다.
“허허! 정말 대단해.”
사절단의 면면을 살피던 미들턴은 발해의 외교력에 혀를 내둘렀다. 청의 사절단도 이미 와 있다고 하니, 발해는 명국만 제외한 모든 동북아시아 국가, 그리고 몇몇 동남아국가까지 광범위하게, 그것도 우월적 지위를 갖고 교류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그렇긴 합니다. 이 배에 탄 사람들을 보니 발해의 힘이 느껴지네요. 저 필리핀 도독을 보세요. 전 스페인 도독이 직접 올 줄은 몰랐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도…….”
사리스는 민망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미들턴도 영국의 귀족이고 총독의 지위에 있어 명목상 실바 도독과 동등한 위치에 있었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쓰나? 아마 나와 같은 생각으로 저 실바 도독도 초대에 응했을 거네. 아마 국왕이 직접 가고 싶다며 떼를 쓴 나라도 많았겠지. 신하들이 극구 말리니까 못 왔을 테고.”
“하하하! 그렇겠네요.”
“발해의 정책이 크게 바뀐 모양이야. 이제 서울의 문호를 개방한다고 했으니.”
발해 조정은 사실 국립중앙박물관의 개관식 명목으로 각국 사절단을 초대했다. 그러나 초대장을 받은 각국 조정은 발해가 최초로 서울을 개방한다는 사실에 더 주목했다. 그간 베일에 싸여 있던 발해란 대제국의 본토를, 그것도 수도를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남해부에서 가장 번화한 초량을 자주 다니며 서울에 대한 궁금증을 달래 왔던 그들에게 이번 초청은 일생일대의 기회나 다름이 없었다.
“저도 초대장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제 공개해도 괜찮다고 판단한 모양이야.”
“그럴 만도 하죠. 현재의 발해라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네덜란드가 빠진 게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생각해 보니 그렇군. 발해와 척을 져서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다니, 참 어리석지?”
“정말 아둔했지요. 발해가 그간 얼마나 경고했습니까? 동북아 해역에서 해적질하지 말라고. 그런데 감히 발해 상선을 상대로 그 짓을 하지 않았습니까? 더구나 명나라 편에 서서 참전하기까지 했지요.”
뒤늦게 남포르모사로 들어온 사리스는 그간 동북아에서 일어난 일을 전해 듣고 크게 통쾌해했다. 네덜란드가 저지른 일에 대해, 특히 하늬제도 해전에 대해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마치 자신이 현장에 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화가들도 신났군.”
이들과 마찬가지로 갑판에 나와 있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영국인 화가들도 정신없이 주변 풍경을 스케치하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발해의 문물을 최대한 많이 화폭에 담아 본국에 보낼 계획이었다.
해랑함과 부두를 연결하는 목제 계단이 내려지자 손님들은 차례로 하선하기 시작했다. 가장 앞에 선 이는 허균이었다. 허균 역시 외부 손님을 인솔할 겸 해랑함에 승선해 있었다.
허균을 따라 스페인령 필리핀의 실바 도독과 미들턴이 차례로 하선했다.
허균을 맞아 준 이는 이하륜이었다. 오랜만에 재회한 두 사람은 활짝 웃으며 손을 마주치더니 서로 팔뚝을 부여잡았다. 이 시대에 보기 어려운 발랄한 인사법이었다.
이하륜은 손님들을 차례로 맞아 주었다. 발해 권력 서열 2위, 재상의 마중 인사에 외빈들은 몹시 만족해했다. 그만큼 자신들을 존중한다는 뜻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외부 관리들은 외국 사절단을 슬해시에 있는 최고급 객관(호텔)으로 안내했다. 초량항에서 배 타고 오느라 지친 이들을 하룻밤 그곳에서 쉬도록 배려한 것이다.
* * *
슬해객관에서 진행된 환영 만찬이 끝나자 이하륜과 허균, 해군총장 태미, 해병대 사령관 전지로는 별도로 모여 술자리를 가졌다.
“그러고 보니 내가 한양에서 처음 만난 사람만 모였네?”
허균이 술잔을 높이 든 채 웃으며 말했다.
“어라? 정말 그렇네? 여기에 기하와 황후님을 비롯해 몇몇 사람만 더하면 다 모이는 거지?”
이하륜이 허균의 술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군부대신과 육군총장도 이 자리에 있으면 좋았겠군. 본 지가 오래됐어.”
허균은 송찬황과 정강빈을 뇌리에 떠올렸다.
“그땐 다 파릇파릇한 20대였는데 말이야. 전지로 사령관을 포함해서. 크크크!”
이하륜이 짓궂게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자 전지로 역시 쑥스럽게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대업을 이루기 위해 경흥으로 떠나기 전의 외모가 이들에겐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태건은 벌써 50줄에 들어섰고, 다른 이들도 비슷한 연령대였다.
태미가 전지로를 보며 물었다.
“이번에 해병대 사령관직을 내려놓는다면서요?”
“예, 홍제부 도독으로 부임할 예정입니다.”
“잘하시겠네요.”
“허허! 그렇지도 않답니다. 이제 홍제부는 고려인이 훨씬 더 많은 곳이 되었어요. 그러니 누가 가든 잘 할 수 있지요.”
일본 본주 북부와 사도섬으로 구성된 홍제부는 이주 희망자 사이에서 북해도보다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그래서 조선이 발해에 흡수된 직후 꽤 많은 이주민이 들어가 인구도 급격하게 늘었다. 금과 은이 쏟아져 나오는 사도섬의 광산들 덕분에 지방 세수도 풍족해져 개발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 곳이었다.
“아무튼 축하드려요. 그간 군문에서 고생 많았잖아요.”
“고맙습니다. 공주님.”
“아유! 공주는 무슨. 그냥 편하게 대하시라니까요.”
태미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전지로는 일본에서 처음 만난 이래 태건을 주군으로 모셨기에 그 동생인 태미에게 깍듯한 태도를 보여 왔다. 태미는 그게 불만이었다.
“근데 홍콩은 어때?”
“술자리에서 또 일 이야긴가? 참~ 너무하는군.”
이하륜의 질문에 허균이 한숨을 터트렸다.
“술안주잖아?”
“그래, 술안주이긴 하지. 히히!”
술자리 운운한 건 순전히 엄살이었다. 허균은 신이 난 표정으로 흥겹게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홍콩제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개발되고 있네. 봉산섬에도 건물이 척척 들어서고 있고. 이게 다 명나라 상인들이 아주 떼로 몰려온 덕분이지. 그래서 일찌감치 홍콩에 진출한 제주 출신 상단들이 아주 떼돈을 벌고 있다네. 이들이 초량에서 상품을 배로 실어 오기 바쁘게 명의 상인들이 쓸어 가거든. 그것도 아주 비싼 가격으로. 그래서 제주 출신 함덕상단의 성장세가 아주 무서울 정도야.”
꽤 오랫동안 명나라 상인들은 발해 상품을 합법적으로, 또 대량으로 구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리기를 오매불망 열망해 왔다. 그런데 발해 조정이 명과 강화하며 홍콩을 명 상인에게 개방하자, 홍콩이 들끓기 시작해, 홍콩섬과 봉산섬의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웃한 마카오 상권이 많이 죽었겠는데?”
“거기야 뭐, 서양 배들이 주로 드나드니까 상권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지. 그리고… 캬! 좋다.”
허균은 술잔을 기울여 술을 입안에 시원하게 털어 넣은 후 다시 말을 이어 갔다.
“브루나이왕국 측에서 무기 수출을 요청했네. 화승총과 화약, 총탄을 되도록 많이 달라고.”
“예상대로군.”
“그렇지. 저들 처지에서 영국과 스페인에 네덜란드까지, 모두가 무서운 적이니까. 그래서 기하의 당부대로 그 무기들과 교관을 보내기로 했지.”
“영국이 뜨끔하겠군. 저들은 분명 브루나이왕국을 노리고 있을 거야. 가야섬을 빌려 쓰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포르모사에서야 우리 눈치 보느라 남포르모사에 만족하지만, 브루나이왕국이라면 욕심낼 만하지. 우리 간섭에서 벗어나 있는 곳이니까.”
“그러게. 영국 애들 참 골치 아프겠어. 네덜란드와 경쟁도 해야 하고, 또 원주민 국가들이 화약 무기로 무장하기 시작했으니.”
허균이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리고 특이한 소식도 하나 있네. 동사도라고 들어봤는가? 우린 환영도라고 명명했네만.”
허균이 이하륜에게 물었다. 물론 이하륜은 알고 있지만 아는 척을 할 수가 없는 처지였다.
“금시초문인데?”
동사도는 홍콩에서 동남쪽으로 약 330장미 거리에 있는 외딴섬으로 산호초 섬이었다. 동사도 이외에 수면에 잠긴 몇몇 암초를 묶어 동사군도라고 부르는데, 미래에 이 섬을 실질적으로 점유한 국가는 대만이다.
여러 경로로 이 섬에 대한 소문을 들은 해군이 함대를 띄워 찾아냈다고 허균이 설명해 주었다.
“무인도지?”
“당연하지. 거기에 사람이 어떻게 살겠나? 지하수도 나온다고 하는데 염분이 다소 함유돼 있어 식수로 적당치 않다더군.”
“그런데도 해군은 그 섬을 영토로 만들고 싶어 해?”
“응. 워낙 위치가 좋아 꼭 가져와야 한다더군. 거긴 비가 많이 내리는 곳이니까, 거기 주둔할 병력이 평소에 빗물을 잘 받아 놓으면 된다더군. 아니면 증류해서 담수를 만들어도 되고.”
“호호! 그거 내가 한 얘긴데?”
태미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허허! 제가 얘기에 열중하다 보니 그걸 잠시 망각했군요.”
“해군 사람들도 영토 욕심이 엄청나게 강해졌어.”
이하륜이 태미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어디 육군에 비하겠나? 저 텅텅 비어 있는 북방 영토를 보게.”
“크크! 그건 우리 기하 작품이고. 근데 카베와 차 농사는 어떤가?”
카베는 곧 커피였다. 태건의 요청에 응한 영국 측이 아라비아와 인도의 무굴제국에서 커피 묘목과 종자를 빼돌려 발해에 비싼 값을 받고 제공했던 것. 그게 작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카베의 경우, 북포르모사에서 열심히 시험 재배하고 있지. 영국도 남포르모사에서 농사를 시작했다더군. 차야 뭐 계속 농장을 늘려 가고 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지.”
커피 이야기를 나누자, 이하륜의 눈빛에 그리움의 감정이 듬뿍 배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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