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36
36화. 왜란 발발 (1)
경흥부의 수뇌부인 태건과 이하륜을 비롯해 휘하 만호들 모두가 원정을 나가 있다 보니, 경흥부의 내정을 허균과 태원이 관장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아직 정식으로 관직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무과 급제자였던 태원도 서울에서 출발할 당시 하급 무관직을 사직하고 떠나왔다. 그럼에도 태건의 측근과 친동생인데다 생원시와 무과에 급제한 양반 출신이라, 관리들은 두 사람에게 조언을 구해 가며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오늘도 허균과 태원이 관원과 상담을 끝내고 귀가할 무렵, 홍은이 찾아오는 바람에 세 사람은 태건의 사택으로 향했다.
요즘 홍은은 태건의 지시에 따라 허균과 함께 초등교육 교재를 만들고 있었다. 홍은이 맡은 여러 업무 중의 하나에 불과했지만, 홍은은 이 일에 흠뻑 빠져 있었다. 허균이 드디어 홍길동전을 집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얼 출신인 스승 이달의 영향을 크게 받은 그는 예전부터 홍길동전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한글 교재 이야기가 나오자 바로 집필을 시작한 것.
태건은 한글을 활용한 조선어문학 교재를 어떻게 만들지 고심하다, 결국 허균에게 모두 떠넘기기로 결심했다. 아울러 어문학뿐만이 아니라, 역사 교재까지 허균에게 맡겼다. 원래 글을 쓰기 좋아하는 허균은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태건은 그에게 미래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홍은을 붙여 줘 문법 규칙과 띄어쓰기 방식을 창안하게 했다. 그런 면에서 홍길동전과 같은 한글 소설 자체가 훌륭한 교재가 될 수 있었다. 아울러 허균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다른 이들의 글도 번역해 한글 교재에 수록 중이었다.
셋은 주안상을 앞에 두고도 다시 일 얘기를 안주로 삼았다. 다들 처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 쉬는 시간에도 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 띄어쓰기 말이오. 그렇게 하니 정말 가독성이 뛰어나더군요.”
허균은 홍은의 띄어쓰기 제안을 받아들여 시험 삼아 써 본 뒤, 그 편리함에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아울러 가로쓰기를 채택하자는 홍은의 제안도 바로 수용했다. 열려있는 사고방식을 가진 허균다운 태도였다.
“가로쓰기도 그래요. 익숙해지니 꽤 편리하단 느낌이 들던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지요?”
“그냥 생각이 나서요.”
“허허! 그냥 생각났다니··· 정말 하늘이 낸 의남매들 같습니다.”
허균은 태건과 이하륜, 홍은을 입버릇처럼 의남매라 지칭했다. 그런 의미에서 태건에겐 친남매도 셋이고, 의남매도 셋인 셈이다.
허균은 이들 셋 모두 천재라 여겼다. 새로운 기물과 문물이 이들의 두뇌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 이하륜에 의해 발판식 탈곡기와 경흥 조면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현재 재봉틀과 방적기 및 방직기 제작에 들어간 상태였다.
홍은 역시 비누와 유리를 만들어 이미 세상을 놀라게 한 바 있는데, 허균은 한글 교재 작업을 하며 더욱 홍은을 천재라 믿게 되었다. 그래서 아직 열여섯에 불과한 소녀이나 허균은 홍은을 은근히 어려워했다. 사실 이팔청춘이란 말도 있듯, 이 당시 사람들은 열여섯을 어린 나이로 여기지도 않았다.
“의남매 아니라니까요!”
물론 홍은은 남매라는 호칭을 너무나 싫어했다. 그에 반해 친동생 태원은 의남매 운운하는 말을 몹시 기꺼워했다. 그 역시 홍은과 이하륜을 몹시 좋아해 형제 대하듯 했다.
미소를 머금은 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태원은 다른 일을 거론했다.
“다들 증기기관이란 걸 만드느라 고생하고 있죠? 어떻게, 잘 되어 가오?”
“야장분들이랑 상의해 가며 조금씩 진전시키고 있어요. 아직까진 순조로운 편이에요.”
“그게 만들어지면 세상이 달라질 거라던데······. 정말 그래요?”
태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확 달라질 거예요. 지금 우리가 구상 중인 증기기관의 힘은 말 서른다섯 마리가 끄는 힘을 낼 수 있거든요. 기계가 그 정도의 힘을 지속해 낸다고 생각해 보세요.”
“말 서른다섯이나? 놀랍군요.”
태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흠, 석탄을 태워서 그걸 동작시킨다고요?”
허균은 석탄에 주목했다.
“예, 그래서 이번 훈춘 부락 원정이 중요하답니다. 훈춘에 그 석탄이 지천으로 묻혀 있거든요. 이곳 아오지에도 많이 있지만 훈춘은 탄층이 지표면과 무척 가까워 채굴하기가 쉬운 장점이 있대요. 태건 오빠가 지난번에 그걸 확인하고 왔거든요.”
홍은은 자신이 어떻게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숨기기 위해 태건이 이미 답사했다는 거짓말을 보탰다.
“그래서 앞으로 훈춘에 커다란 공방을 여럿 세울 거래요.”
실제로 태건은 훈춘강 유역만 농경지로 활용하고, 훈춘 평원 주변의 계곡이나 낮은 언덕에 대규모 공단을 건설할 계획이었다.
“그러자면 철이 많이 필요할 텐데······.”
허균이 철 문제를 언급하자 홍은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휴! 그러게요. 철이 문제네요. 지금이야 송화상단을 통해 남쪽에서 계속 들여오고 있지만 왜란이 터지면 어떻게 될지.”
“혹시··· 철주덕에 대해 들어 본 적 있소?”
허균이 물었다.
“철주덕이요?”
“거기에 대해 아는 이가 몇 있던데.”
“거긴 왜요?”
“그 철주덕 고개 부근에서 질 좋은 철광석이 많이 난다던데요?”
“예에? 정말이요?”
홍은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지명 자체에 철이 들어가 있지 않소? 철기둥이라고.”
“아, 정말 그러네요.”
“내 이곳에 사는 어떤 야장과 대화하다 우연히 알게 되었지. 철광석이 기둥처럼 땅속에 박혀 있어 철주라고 이름 붙였다고. 그러니 그곳을 개발하면 되지 않겠소? 이곳이 워낙 변방이라, 아직 관에서 제대로 건드리지도 못한 모양이오. 그러니 아는 야장들이나 조금씩 캐서 필요한 분량의 철을 얻는다고 들었소.”
붙임성 좋은 허균은 경흥으로 들어온 후, 경흥에 거주하는 번호 지도자들은 물론 여러 장인이나 상인들과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들을 통해 경흥의 형편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철주덕에 대해 듣게 된 것이다.
홍은은 허균의 말을 듣고 태건, 즉 박철헌의 지식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깨달았다. 철주덕, 혹은 철주동은 경흥에서 유명한 철광산이었다. 하지만 후세에는 그렇지 못했다. 이미 철광석 자원이 고갈되었는지 철주동은 주요 철광산 목록에서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태건은 코앞에 좋은 철광산을 두고도 고심한 셈이었다.
“위치가 어디에요?”
“안화와 굴포 사이에 있는 산지라 들었소.”
안화는 미래 북한의 라선 지구 중 라진항과 그 부근이고, 굴포는 곧 웅기항이었다.
“안화와 굴포라면······.”
홍은은 태건에게서 배운 경흥 지리를 떠올렸다. 안화와 굴포 모두 입지 조건이 좋은 항구였다. 그러므로 미래에 웅기항과 라진항이 될 이 포구들을 이용해 배로 화물을 운반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철주덕에 숯가마와 제철 시설을 만들고, 여기서 생산된 철을 굴포나 안화를 통해 배편으로 운반하면 되겠네요.”
홍은이 말한 제철 시설은 전통 고로를 말하는데, 이하륜은 조선 후기 동남부 지역에서 유행한 석축형제철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흙과 돌을 이용해 만든 전통적인 소형 용광로로 숯과 풀무로 온도를 올려 철광석에서 쇳물을 뽑아내는 구조였다. 대형 제철소를 건설하기 전까지 이런 소형 용광로로 철을 만들어 쓸 수밖에 없었다.
* * *
태건과 이하륜이 내놓은 해법은 간단했다. 어차피 송찬황과 강대구 부대가 훈춘 부락 전체를 토벌하자면 많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굳이 무리해서 사제성을 공략하기보다, 산성에서 외부로 통할 만한 주요 통로마다 병력을 배치해 적을 고사시키는 전술을 채택했다. 현자총통으로 공략하자는 정강빈의 의견도 있었지만, 태건은 굳이 화약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며 이를 일축했다. 또 이들 화포가 공성포로 쓰기에 위력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었다.
열기구로 성 내부를 살핀 결과, 저들은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갈 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사제성에서 수성전을 펼칠 생각으로 근처 마을 주민들을 성안으로 이미 들여보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므로 식량 비축분에 비해 인구가 너무 많아 식량이 곧 고갈되리라 판단한 점도 이 결정에 한몫했다.
“훈춘강 중상류 지역에서 원군이 올 때까지만 버틸 생각이었겠지.”
태건의 말을 이하륜이 그대로 이어 받아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원군은 오지 않죠. 우리 군이 포도송이 따먹듯 일일이 점령해 가며 올라가고 있으니까.”
사제성을 봉쇄한 지 벌써 일주일이나 흐른 시점이라, 첨터허가 조바심을 내자 태건은 느긋이 기다리면 다 해결된다며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추장 번보코도 저 산성에 들어가 있으니까, 더욱 유리한 상황이지요.”
“그렇다면 저 산성에 들어간 게 오히려 패착 같습니다.”
첨터허는 태건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크크! 하지만 후퇴하는 선택도 어려웠어요. 우리 기병한테 유린당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당시로선 최선의 선택이었죠.”
“아, 그렇겠네요. 정말 번보코는 꽤나 난감했겠군요.”
이하륜이 설명에 첨터허는 번보코가 당시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 정확히 이해했다.
“그런데··· 경흥을 비우고 여기서 이렇게 오래 있어도 괜찮습니까?”
첨터허가 태건을 걱정해 주었다. 그도 번호 수장 중의 하나이다 보니, 주변을 떠도는 소문을 귀담아듣고 있었다. 육진 지역 곳곳에 자리해 있는 강내 번호 ― 두만강 안쪽 조선 영토 내에 거주하는 번호들 ― 들을 통해 북병사 오천태와 태건 사이가 좋지 못하다는 사실 또한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음, 그러고 보니 오늘이 사월······.”
“열이틀입니다.”
첨터허가 재빨리 날짜를 알려 주었다. 오늘은 음력 4월 12일이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태건의 시선이 자연스레 남쪽으로 향했다.
오늘은 임진왜란 발발 하루 전이었다.
* * *
선조 25년, 서기 1592년 임진년 음력 4월 13일.
선발대 17,000여 병력을 태운 왜 군선 700여 척이 부산포 앞바다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바다를 가득 메운 왜 군선을 보고 화들짝 놀란 부산포 응봉 봉수대 봉화군은 즉시 봉화를 올렸다.
일본군 선발대 대장은 고니시 유키나가였다. 그가 이끄는 왜군 병력은 부산포에 상륙해 부산진성과 동래성을 차례로 함락시켰다. 그 과정에서 부산 첨사 정발과 동래부사 송상현이 전사했고, 수많은 장졸과 백성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일본군은 이미 지난 3월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왜군이 발판으로 삼은 곳은 조선통신사 사행단의 기착지였던 나고야(낭고야)였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각지의 왜군들은 나고야로 속속 들어왔다. 아울러 선발대는 나고야를 떠나 이키섬(일기도)으로 전진 배치되기도 했다.
부산에 상륙한 왜군은 대략 20만에 달했다. 이들 중 15만 8천 7백여 명은 육군의 정규 병력이고, 그밖에 구키와 도토 등이 인솔한 수군 9,000여 명이 군선에 승선한 상태로 해전에 대비했다. 이들 이외에 후방 경비대와 선박을 관리하는 병력까지 포함해서 20만이란 숫자가 나온 것이다. 나고야에서 대기 중인 예비대 10만까지 포함하면 왜국은 이번 전쟁에 무려 30만을 동원한 셈이었다.
침략의 명분은 당연히 ‘정명가도’였다. 즉 명을 치러 갈 테니 길을 빌려 달라는 요구인데, 이를 조선이 거절했기에 응징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것이다. 결국 조선통신사 사절단이 받아온 국서 내용과 한 치도 달라진 점이 없는 셈이었다.
이렇게 조선 최대의 비극이라 할 수 있는 왜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제 겁에 질려 온갖 패착을 저지르는 왕과 조선 조정의 어처구니없는 대처로 인해 셀 수없이 많은 인명이 희생될 운명을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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