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37
37화. 왜란 발발 (2) (지도 첨부)
부산포와 동래성에서 장졸과 백성들이 전멸을 각오하고 치열하게 싸우는 와중에도 조선 조정은 여러 가지 일로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심지어 왜란이 발발한 지 벌써 사흘이 지났는데도, 조선 조정은 아직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신하들은 오천태의 또 다른 장계가 올라오자 이른 아침부터 그 일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감찰을 담당할 행대어사는 예전에 출발했지만, 고자질에 맛들인 오천태가 그새 또다시 보고서를 올린 것이다.
“경흥도호부 부사 태건은 멋대로 군을 이끌고 경흥과 강외 영토를 벗어나 상훈춘에서 남눌올적합과 전투를 벌이고 있답니다. 남눌과 같은 거대한 야인 집단을 건드려 변방을 위태롭게 하고 있으니 이는 이적 행위와 다를 바가 없사옵니다. 이처럼 부사 태건의 방자한 망동이 지속되고 있으니, 더 늦기 전에 반드시 추포해 와야 합니다.”
병조판서 김남응이 또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발언은 매우 짧았으나 모두 이치에 부합하는 말인지라, 영의정 이산해와 좌의정 류성룡도 멍하니 지켜볼 뿐이었다.
국왕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관료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이제 확실히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태건을 언제든 잡아 죽일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후! 역시 어리군. 이렇게 쉽게 처벌의 빌미를 제공하다니······.’
더욱 여유가 생긴 국왕은 태건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유를 궁금해했다.
“왜 굳이 상후춘까지 올라가서 남눌올적합과 싸우고 있지?”
조선 측은 남둘루 부족을 ‘남눌’로, 훈춘을 ‘후춘’이라 부르곤 했다. 올적합은 곧 워지이기 때문에 ‘남둘루 워지’ 부족에 대한 조선식 표기인 셈이다.
오천태는 태건이 원정에 나선 이유에 대해 한마디도 기술하지 않았다. 현상만 파악하고 재빨리 보고서를 꾸몄기 때문이다. 오로지 태건을 죽이기 위함이니 진상을 파악할 필요도 없었다.
“남눌이 고현성 지역의 번호 울량합을 먼저 공격했을 겁니다. 현성 성주가 구원을 요청하자 부사 태건이 나서지 않았겠습니까? 번호의 보호는 변장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류성룡이 힘없는 목소리로 태건을 변호했다. 하지만 태건의 군사 행동이 너무 과했기 때문에 그도 더 이상 보호해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변방을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병판의 의견이 참으로 옳도다. 그러니 의금부는 당장 태건을 추포··· 응?”
왕의 명령이 미처 떨어지기 전에 편전 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국왕은 말을 멈추고 눈살을 찌푸렸다.
좌부승지가 장계를 들고 급히 편전으로 들어와 도승지에게 전달했다. 그의 귓속말을 들은 도승지 이항복은 떨리는 목소리로 국왕에게 고했다.
“저, 전하! 급보이옵니다.”
이항복이 국왕에게 장계를 바쳤다. 장계를 읽던 국왕은 결국 다 읽지도 못하고 장계를 무릎에 떨어뜨렸다. 국왕은 도승지에게 장계를 건네 대신 읽게 했다.
장계를 올린 이는 경상우수사 박홍이었다. 왜 대군이 부산진에 상륙, 부산진성이 순식간에 함락되었다는 내용의 장계였다. 문제는 그의 장계가 작성된 날짜였다. 그에 따르자면 오늘은 왜란 발발 후 나흘째 날이었다.
원래 봉화가 먼저 도착해야 옳았다. 그렇지 못했으니 봉화망이 중간에 끊긴 게 분명했다. 그 와중에 파발들이 열심히 달린 덕분에 장계가 무사히 도착했다는 점 하나는 다행이었다.
이제 조정은 비상이 걸렸고, 왜침에 대처하기 위해 의견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태건에 대한 처벌 얘기는 쏙 들어가게 되었다.
* * *
며칠 후, 태건은 다시 사제성 앞으로 나와 성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직 버틸 만한가?”
“쫄쫄 굶고 있는 모양이던데··· 꽤 끈질기군요.”
정강빈의 목소리엔 어느 정도 측은지심이 담겨 있었다.
그는 열기구를 통해 성내 상황을 훤히 지켜보고 있던 터라, 속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온전히 군사적 목적으로 구축된 산성이고, 산세가 험하다 보니 주거가 가능한 공간 자체가 협소해 남둘루 주민들은 무척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식량까지 부족해 하루에 한 끼 정도만 배급되는 실정이었다.
“전령이 오고 있네요. 상류 쪽입니다.”
동북쪽으로 나아간 원정군은 계속 전령을 보내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
“벌써 진안령까지 점령했다고?”
진안령이란 말이 들리자, 이하륜과 정강빈은 재빨리 지도를 펼쳐보았다.
“목표의 육 할을 성취한 셈이군요.”
정강빈은 지도를 보며 탄성을 터트렸다.
태건은 이곳 하남동 너머 훈춘강 유역에 자리한 중요 거점들을 지도상에 표기해 넣었다. 그 첫 번째가 마적달이었다. 발해 시기에 축조된 석탑이 있는 곳으로 남하동에서 약 35㎞ 거리에 있었다. 그 다음이 바로 진안령인데, 마적달로부터 약 17㎞ 떨어진 곳에 자리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최종 목적지라 할 수 있는 안춘 부락이었다.
안춘 부락은 향후 청나라 시기에 춘화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훈춘강은 안춘 부락 서북쪽 계곡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흐르다, 진안령에서 급격히 서쪽으로 꺾여 흐르게 된다.
“이번에 얻은 저 너른 땅을 죄다 관리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점령해 놓고도 그림의 떡이라니······.”
이하륜은 안춘 부락 점령 작전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남동 이동 지역의 경우, 훈춘강 유역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넓은 계곡 분지와 훈춘강 지류에 해당하는 일부 좁은 협곡을 제외하면 모두 험한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사람이 살만한 곳이 별로 없었다.
그러므로 태건 군이 훈춘강 유역 전체를 확보하면, 그 길이가 무려 100㎞에 달하는 길쭉한 모양의 땅을 새로 얻는 셈이었다. 면적만 봐도 남콜칸이나 하훈춘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하지만 현재 형편상 당장 수성군을 조직해 요충지를 지키게 하고, 관리를 파견하는 등의 영토화 작업을 진행하는 건 불가능했다.
“처음 계획 그대로 가야지. 몇 군데에 경계 시설을 만들고 각기 중대 병력을 주둔시키는 정도로 마무리 짓자고. 특히 마적달에 남북으로 산성이 두 개나 있으니까, 거기까진 어렵지 않게 지켜 낼 수 있을 거다.”
방어가 아닌 경계 시설이란 말 자체에서 태건의 의도가 드러난 셈이다. 태건은 방어하기보다 적의 침략이나 남둘루 주민의 반란 여부만 탐지할 생각이었다. 아직 병력이 적은 상황에서 이 드넓은 땅에 병력을 골고루 배치하기란 불가능했다. 그 대신 이곳 하남동에 대규모 예비 병력을 주둔시켜 비상 상황에 대비하고, 마적달을 전방의 방어 거점으로 삼기로 했다.
“훈춘평부터 잘 관리해 힘을 길러야지. 그러면 언젠가 안춘 부락까지 온전히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다.”
“와르카 사람들이 잘 협조해 주면 그날이 금방 오겠죠.”
태건은 자신의 명령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인 전령에게 말했다.
“보병 대대는 더 이상 전진하지 말고 진안령에서 진지를 구축한 채 대기하고, 중군 기마대대만 안춘 부락으로 향하게 하라. 기마대는 안춘 부락에 도착한 다음, 적진을 잘 살펴 공격 여부를 결정하라고 전하게.”
“예. 명령 받들겠습니다.”
태건은 안춘 부락을 결코 경시하지 않았다. 훈춘강 상류임에도 꽤 넓은 분지 지형에 자리 잡고 있어, 인구가 꽤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심스레 행동하라 이른 것이다. 아울러 태건은 일단 진안령까지 어떻게든 지켜 낼 작정이었다. 그럼에도 안춘 부락까지 토벌하는 건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함이었다.
“어라? 또 다른 전령이네?”
동북쪽에서 온 전령이 떠나자마자 서쪽에서 전령이 말을 타고 달려왔다.
“북병사가 보냈군요.”
전령의 정체를 알아보고 이하륜의 표정이 바로 구겨졌다. 전령이 곧바로 이곳으로 찾아왔다는 건 곧 오천태가 태건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단 뜻이었다.
전령은 태건에게 군례를 올리더니 서신 하나를 건넸다.
“음, 왜란이 발발했다는군.”
태건이 덤덤한 반응을 보이자 전령은 내심 놀란 눈으로 태건을 바라보았다. 조선 조정은 일단 왜군이 침략했다는 사실을 각지로 파발을 보내 알리고 있었다.
“북병사 영감의 명대로 처결하겠다고 전하게.”
“예, 그럼.”
전령이 떠나자 태건은 첨터허를 비롯한 와르카 수장들을 불러들였다.
* * *
첨터허는 태건의 예견대로 왜란이 발발했다는 얘길 듣고 몹시 불안해했다.
“당분간 남둘루를 걱정할 일은 없어졌지만, 서부에 거주하는 추장들이 문제입니다. 조선이 전쟁 중인 상황을 노려, 대대적으로 약탈에 나설지도 모를 일입니다.”
첨터허는 번호들의 성향에 대해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었다.
“특히 뒤늦게 들어온 집단 중에 약탈이 일상인 자들이 많습니다. 휴! 그런 점에서 태 부사님의 이번 남둘루 원정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추장과 촌장들은 맞는 말이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눈빛 역시 진심을 담고 있었다. 아직 사제성에 틀어박힌 무리들이 남아 있지만 남둘루에 대한 걱정이 덜어지자, 비로소 한시름 덜게 된 것이다.
분위기가 훈훈하게 흘러가자 이하륜이 나섰다.
“두만강 유역에 큰 풍파가 닥쳐오는 건 기정사실이 되고 있죠. 그러므로 이제 공동으로 대처 방안을 찾고 규약을 만들어 대응해야 않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규약이 아니라 맹약이라도 해야지요. 우리 마을과 내 가족을 지키는 일인데.”
첨터허도 이하륜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감했다.
“좋습니다. 그럼 일단 모병 문제부터 논의합시다.”
모병이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 다들 이견이 없었다.
“이곳 하남동에 조선군이 주둔할 군영을 건설하고 훈련소도 만들 계획입니다. 그러니 추장과 촌장분들은 일정한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에 따라 장정들을 뽑아 보내 주시면 됩니다.”
피오성을 비롯한 훈춘평 번호 세력이 보유한 군사도 나름 잘 훈련된 병력이었다. 그러므로 집단 전술 훈련을 비롯, 새로운 병기에 적응하는 훈련 위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일정한 기준이라면······.”
“누구든 예외 없이 적용되는 기준이죠. 그런 면에서 모병이 아닌 징병인 셈입니다. 예를 들어 18세에서 35세 사이의 장정이라면 누구나 삼 년간 징병되어 병영 생활을 하고, 그 이후 예비병으로 편성, 외적이 침입했을 때, 혹은 맹수가 너무 늘어나 함께 구축할 필요성이 있을 때 동원되는 방식이죠.”
함경도를 비롯한 두만강 일대는 호랑이와 표범, 이리 떼 등 각종 맹수가 우글거리는 곳이다. 그래서 군 병력이 해야 할 주된 임무 중의 하나가 바로 맹수 구축이었다.
“음, 괜찮군요. 그럼 한 집안에 장정이 여럿일 경우, 입대 시기를 잘 선택하면 집안의 생계유지에도 지장이 없겠네요.”
첨터허는 이하륜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그렇습니다. 훈련을 마치면 주션인도 조선군,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 경흥군의 지휘 체계에 따르게 됩니다. 우리 군이 어떻게 돌아가고, 전투하는지 모두 보셨지요?”
“허허허! 정말 마음에 드는 얘기군요. 우리 장정이 그런 강병이 된다면 든든할 겁니다.”
이하륜과 태건이 마련해 둔 이 징병제 계획은 이미 오래전에 수립한 것이다. 그걸 우선 강외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하게 된 셈이다.
“어떻소? 다들 찬성하시면 손을 들어주시오.”
첨터허가 추장과 촌장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모두 손을 들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70여 호 정도 되는 마을 수장도 추장이라 표기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심지어 20여 호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도 그 위치와 촌장 이름, 촌장의 아들 이름까지 실록에 기록되어 있었다. 훈춘평 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러면 일단 모두 천 명 정도의 장정을 모을 수 있겠습니까?”
태건은 예전에 나눈 대화를 기억해 내며 물었다.
“예. 그 정도면 당장이라도 가능합니다. 필요하면 더 모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대략 천오백 정도?”
“좋습니다. 그러면 순차적으로 진행합시다. 일단 오백 명을 먼저 뽑아 주십시오.”
“그게 좋겠네요. 수용할 시설도 문제니······.”
첨터허의 말이 끝나기 전, 갑자기 정강빈이 막사로 뛰어 들어와 급히 보고했다.
“대장님! 산성에서 추장으로 보이는 자가 나왔습니다. 항복할 모양입니다.”
“오오! 그래?”
태건은 벌떡 일어나더니 바깥으로 나갔다. 정강빈의 예상대로 성을 나온 이는 번보코였다. 자신이 직접 나서야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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