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38
38화. 다들 참 못났다 (1)
태건과 태미는 이하륜에게 훈춘평의 일을 모두 맡기고 호위대원들과 함께 서둘러 경흥으로 귀환했다. 국왕이 보낸 행대어사가 도착했다는 전갈 때문이다.
훈춘 부락 추장 번보코는 태건의 요구가 그리 혹독하지 않았기에 태건이 요구하는 모든 조건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번보코는 자신을 포함, 많은 이들이 바로 처형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태건은 어느 누구도 학대하지 않았고, 신사적으로 남둘루 인들을 대해 번보코를 놀라게 했다.
태건이 내건 조건은 오로지 귀부와 포로 요구였다. 그래서 와르카 마을을 무단으로 약탈한 점과 조선군의 요구를 거부하여 전쟁에 이르게 한 책임을 지고, 전투에 참여한 이들 중 600여 장정을 포로로 내주게 되었다. 이는 전투 중 붙잡힌 기병들까지 포함된 숫자였다. 태건은 콜칸의 예에 따라 이들을 5년간 노역형에 처하겠다고 통보했다.
태건은 심지어 번보코를 잡아 가두지도 않았다. 번보코나 그의 가족을 인질로 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600여 포로 자체가 인질이고, 또 포로들 입장에서 보면 훈춘 부락에 남아 있는 자기 가족도 인질로 여길 것이라며, 태건은 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현재 강대구가 이끄는 기마대와 대치 중인 안춘 부락의 항복을 받아내야 했기에, 정강빈은 번보코를 압송해 안춘 부락으로 향했다. 훈춘 부락과 관련된 사안 이외에 훈련소와 병영 구축 등의 일은 이하륜이 남아 처리할 예정이었다.
국왕이 보낸 행대어사는 정6품 사헌부 감찰 조경린이었다. 감찰 직위는 태건에 비해 훨씬 낮으나 관리에게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사헌부 소속이라 위세가 무척 등등한 자리였다.
태건은 경흥부에 도착하자마자 조경린에게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는 문제가 된 노비 면천 건부터 캐물었다.
“노비 셋을 샀다고 하던데 노비 문서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소.”
태건은 준비해 둔 노비 문서를 조경린에게 보여 줬다. 소유권 이전을 증빙하는 문서였다.
“그런데 왜 성과 이름을 지어 주었지요?”
“행대분은 노비를 사람이라 생각합니까?”
태건이 갑자기 반문하자 조경린은 다소 당황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다, 당연히 사람 아니겠습니까?”
“그럼 개똥이, 꺾쇠, 분년이, 개노미, 도야지, 부질개, 개불······. 이게 사람 이름으로 느껴지오?”
조경린은 태건의 굳은 얼굴을 보자 그가 어떤 사상의 소유자인지 어느 정도 이해했다.
“그럼에도 성까지 지어 주신 것은······.”
“그냥 출신지 지명을 따서 붙여 주었지요. 단천 출신이라 단자를 써서. 정식 성은 아니나 사람 이름다운 느낌이나 내보자는 뜻으로 말이오.”
조경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노비 셋을 샀고, 그 노비 이름을 바꿔 준 행위가 조정에서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는 점 자체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사를 이끌고 골간올적합 영역으로 깊게 들어간 일도 조정에서 문제 삼았습니다만.”
“이런··· 이번에 그보다 더한 걸 하고 왔는데. 못 들으셨소?”
“예?”
태건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허허! 아직 그 소문이 조정까지 도달하지 않았나 봅니다. 아니면 행대분께 아직 소식이 닿지 않았거나.”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남눌올적합의 훈춘 부락 전역을 토벌하고 왔소. 아니, 지금쯤 더 북쪽에 있는 안춘 부락도 정벌했을 테지. 우리 송찬황 만호가 그쪽에서 한창 원정 중이니.”
“안춘 부락?”
조경린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안춘 부락의 위치를 가늠해 보았다. 하지만 자신의 기억에 없는 지명이었다.
”상훈춘을 출발해 훈춘강을 따라 대략 250리를 가면 안춘 부락이 나옵니다.”
“이백오십 리라면··· 그럼 사흘 거리까지 다녀왔단 말입니까?”
조경린은 너무나 놀라, 멍한 표정으로 태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선의 거리 단위상, 하루 거리는 대개 90리였다. 그러므로 하남동이 아닌 경원부를 기점으로 삼을 경우, 안춘 부락은 나흘 거리에 해당되는 셈이다.
“훈춘평이 얼마나 넓은지 아십니까?”
“예, 대충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 땅이 조선의 강토로 들어오면 어떨까요?”
“엄청난 일이지요. 그 넓은 옥토가 우리 땅이 된다면야······.”
“그러자면 틈만 나면 상훈춘과 하훈춘으로 내려와 약탈을 일삼는 훈춘 부락 야인을 토벌할 수밖에.”
“그럼 태 부사님은 훈춘 평원을 조선의 강역으로 만들고자 일을 벌인 겁니까?”
“그렇소. 어차피 주상 전하께서 우리의 강외 군사 행동을 어느 정도 보장한바, 문제 될 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소. 경흥도호부의 힘만으로 강외 영토를 지켜 내라고 명하셨기에.”
“하지만 방금 새로운 강토를 얻으려 공세를 펼쳤다고 얘기하셨잖습니까? 지켜 내는 게 아니라······.”
“겸사겸사. 공세적 방어 전술의 일환이오. 훈춘 평원의 영토화는 어차피 주상전하의 허락이 필요한 일이니까. 그냥 미래를 위해 예비해 두었다고 여기면 그만 아니겠소? 더구나 우리 군의 피해가 전혀 없으니 별로 문제 될 일이 없을 것 같소만.”
조경린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사사건건 문제 삼으면 문제 되지 않는 게 없다. 하지만 태건은 그런 점에 개의치 않고 대국적으로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미리 조사해 본 바, 태건은 사재까지 털어 일을 벌이고 있었다. 조경린은 이를 문제 삼는 북병사나 조정 대신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울러 태건 탄핵을 위한 꼬투리를 잡으러 나온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도 부끄러움을 느꼈다.
조경린은 말이 나온 김에 훈춘 부락 원정 건에 대해 더 자세히 물었다. 태건은 가감 없이 대답해주었다.
“휴! 그럼 오늘은 이만 마칠까 합니다.”
조경린이 숙소로 돌아가자 태건은 허균과 태미를 불러들였다. 곁에서 조사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태원이 먼저 물었다.
“왜 그렇게 자세히 풀어놓았어요? 대충 둘러대지.”
“조정도 알고 있어야지.”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 형님을 탄핵할 구실을 찾는 중인데.”
태건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으며 허균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허균은 뭔가 떠오른 게 있어 무릎을 쳤다.
“하하하! 전 대충 알겠습니다. 몇 수 앞을 내다본 포석이군요.”
“맞네.”
“그런데 북병사가 뭐라 지시했습니까? 지금 왜군의 침략 때문에 난리가 났을 텐데요.”
허균은 행대어사 건보다 북병사의 지시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독특한 지시였어. 경흥부를 제외한 나머지 5진에 병력을 더 모집하고 병장기를 점검하라는 명을 내렸다네.”
“우릴 제외한다고요?”
“응. 우린 강외 영토 수성에 전념하라더군. 야인들이 뒤를 노리면 답이 없다고. 조정에도 그렇게 고하겠다고 했네.”
“북병사가 그런 명령을? 하하하하! 하룻강아지가 따로 없군.”
허균이 폭소를 터트렸다. 태건도 덩달아 미소를 지었고, 태원과 태미도 오천태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같이 웃어 댔다.
“호호호! 오라버니가 정말 무서운가 보네요.”
“무섭고말고. 야인들을 연전 연파한, 호랑이 같은 경흥부 군대가 언제든 자기 뒤통수를 노릴 수 있으니까. 왜군을 치러 6진 병력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간다고 생각해 봐. 앞에는 사나운 왜적이, 뒤에는 원수지간이 된 경흥군이 있는 상황이잖아?”
“호호! 그러게 왜 우리 경흥군하고 척지냐고.”
두 남매의 즐거운 대화에 허균도 끼어들었다.
“장졸들 얘길 들어 보니, 눈앞에 오천태가 있으면 실수할지도 모르겠답니다. 화살을 쏘다 손이 삐끗해, 본의 아니게 오발이 날 수도 있다고.”
“오발? 와, 거 참 좋은 발상이네요. 하하하!”
태원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는 표정으로 반응했다. 그때, 밖에 서있던 전지로가 태건에게 고했다.
“부사 나리!”
“들어오게.”
전지로가 들어와 빠르게 고했다.
“파발마가 방금 도착했는데, 묘하게도 부사 나리가 아닌 행대어사부터 찾습니다.”
“파발마가? 후후! 그럴 줄 알았지.”
태건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조정에서 보낸 파발일 겁니다. 감찰을 중단하고 빨리 돌아오라고.”
총명한 허균도 벌써 무슨 상황인지 이미 이해하고 태원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렇다면··· 음, 더 이상 자극하지 말라는 뜻이겠네요. 형님이 무척 신경 쓰이나 봅니다.”
“다들 참으로 못났구나!”
태건은 한탄 조로 한마디 내뱉었다. 오늘 벌어진 모든 일들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말이었다.
* * *
5월 1일, 경기도 파주 마산역 부근.
호우가 내리는 가운데 왕과 왕을 호종하는 신하들 모두 비에 젖은 채 길을 가고 있었다. 궁인들이 울면서 어가를 따랐으나 그 울음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빗줄기가 더욱 거세졌다.
한양 도성에서 같이 출발했던 관원들 상당수가 벌써 이탈한 상태였다. 가솔들을 데리고 피난을 떠나기 위해 다시 도성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규모 면에서 왕의 행렬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상주 전투에서 순변사 이일이 이미 패한데다, 지난 4월 28일에는 도원수 신립과 부원수 김여물이 이끄는 토벌대 1만 6천명이 왜군에 전멸당했다는 소식이 들어오자 국왕은 곧바로 몽진 ― 정식 용어는 파천 ― 의사를 밝혔다. 물론 신하들은 이를 뜯어말렸다.
영의정 이산해는 울며 통곡까지 했지만, 회의를 마치자 슬그머니 과거에도 그런 사례가 있다며 한발 물러서 크게 비난받기도 했다. 이처럼 모두가 벌떼처럼 일어나 반대했으나 잔뜩 겁을 집어먹은 국왕을 그 누구도 말릴 수가 없었다.
결국 국왕은 파천을 선언했다. 왜란이 발발한 지 불과 보름만의 일이었다. 그러자 한양 도성 전체가 들썩거렸다. 반대 상소가 올라오고 결정을 철회해 달라고 울며불며 궁문을 두드리는 이도 나왔다. 하지만 왕은 태연히 거짓말을 했다.
‘도망가지 않고, 경들과 함께 목숨을 바쳐 지킬 것이다.’
그렇게 관리와 백성을 안심시킨 뒤 4월 30일, 국왕은 같이 떠날 이들을 소집해서 바로 궁을 떠난 것이다. 마산역을 지날 무렵, 밭에서 일하던 농민들이 어가를 알아보더니 이내 어가 앞으로 달려와 통곡하며 소리쳤다.
“국왕이 우리를 버리고 가니 우리는 누구를 믿고 살아간단 말입니까?”
국왕도 그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왕이 아닌 겁에 질린 일개 필부일 뿐이었다. 왕은 몽진 길에 백성들에게 온갖 비난을 들어야 했다.
곧 도착하게 될 개성에서 ‘그간 임금은 민생을 뒷전에 놓고, 수많은 후궁의 배 불리기에만 열중했다’는 비난을 백성들로부터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양반이었다. ‘너 같은 것도 임금이냐’라며 돌팔매질을 하는 백성도 있었다. 그렇게 백성들이 어가를 공격한 사례가 여러 번이었다.
이처럼 백성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국왕이 도성을 빠져나간 후 백성들이 궁궐에 불을 질렀다. 가장 먼저 노비 문서를 보관하던 장예원과 형조가 불탔다. 다른 전각들도 차례차례 약탈하고 불을 질렀다.
궁궐 주변에 모여 있던 장수들도 달아나면서 ‘이 전쟁은 하늘이 낸 게 아니라, 사람이 빚어낸 일이다’라며 무능한 조정을 탓했다. 이렇게 탈영도 일상화되었다. 이제 백성뿐만이 아니라 관리들과 군사들도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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