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40
40화. 몰려드는 인재들 (1)
태건의 예언은 며칠 지나지도 않아 현실로 드러났다. 경흥부 관리들은 끝없이 몰려드는 이주민의 행렬에 그만 넋을 잃고야 말았다. 앞으로 식음을 전폐하며 일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눈덩이 효과인가?”
태건 역시 문루에 올라 이주민 행렬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게 뭐지요?”
허균이 물었다.
“눈덩이 만들 때, 작은 뭉치부터 시작하지 않나? 그게 구르면서 순식간에 집채만 하게 커지지.”
“그럼 송화상단 행렬이 작은 눈 뭉치란 말이군요.”
김명신의 명령에 따라, 송화상단 구성원들은 지역별로 늦겨울 혹은 이른 봄 즈음부터 상행을 중단하고 상단 보유 재물을 우마차에 실은 채 일제히 경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경상도에서 사는 이들은 동해안 길을 따라 북상했고, 호남과 충청, 경기, 한양, 황해도 등지에서 출발한 자들은 철령을 통해 함경도로 들어왔다. 극소수이긴 하나 평안도에서 산길을 타고 함경도로 들어오는 상인도 있었다.
김명신은 이들의 안전을 위해 함경도 남부 문천에 집결한 다음, 무리를 이뤄 오라고 지시했다. 지방의 각 지점마다 검을 잘 쓰는 호위 노릇을 하는 이들이 있어, 이들이 뭉치면 웬만한 도적떼 정도는 충분히 퇴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송화상단이 크다 하더라도 소속 상인 수가 백 명을 넘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거래 관계에 있는 보부상과 짐꾼, 호위들과 그 가족까지 합류하자, 무리의 수가 오백을 훌쩍 넘어갔다.
이 엄청난 숫자 덕분에, 함경도 각 고을을 지날 때마다 큰 소동이 일어났다. 이들의 최종 행선지가 경흥이란 사실을 알게 된 현지 주민들은 새로 확보한 강외 영토가 그리 대단하냐며 수군거렸다. 식구들 먹여 살리기도 힘들 정도로 적은 농토를 소유한 빈농이나 소작농들은 이들에게 자극받아 더욱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관원들은 송화상단 행렬을 건드리지 않았다. 김명신이 미리 고을 수령들을 매수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남쪽에서 왜군이 무서운 기세로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까지 전해진 게 결정타가 되었다. 결국 망설이던 자들마저 대거 이주민 대열에 합류하는 바람에 결국 경흥이 이처럼 북새통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일단 팔지부터 채워 넣고, 그다음으로 저령강 일대와 훈춘평으로 보내야 할 것 같군.”
시전평과 납고평 지역엔 이미 초봄에 온 이들이 먼저 터를 잡고 있어, 그 이외의 지역에 이주민을 수용할 생각이었다. 물론 시전평과 납고평에 정착한 이들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아, 추가로 수용할 수 있는 여지도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강내 거주 번호들은 꿈쩍도 하지 않네요? 성내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은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그 연유가 뭐라 생각하십니까?”
“진정한 조선인이 되고 싶으니까.”
“아. 강외로 나가면, 또다시 흉포한 야인 취급받을까 봐 그러는군요.”
“그런 심리가 좀 있지. 번호 촌장들 모인 자리에서 모든 면에서 평등하게 대우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좋은 반응이 나오지 않더라고. 워낙 불신의 뿌리가 깊어서 그런가······.”
“여러모로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간 부임해 온 부사들마다 모피 욕심에 번호 마을들을 강제로 수탈했다고 그러더군.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변장들의 말을 좀처럼 믿지 못하게 됐지.”
“차차 나아질 겁니다.”
“그래야지. 그럼 좀 둘러볼까?”
태건은 이주민 임시 수용소가 있는 두리산 부근으로 향했다. 경흥부 관리들은 부지런히 이주민 명부를 작성하고 있었다. 이 관리들 대부분은 지난 겨울 교육을 받은 자들로, 드디어 현장에 투입된 것이다.
태건은 이들이 작성한 명부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한글 사용이 원칙이라 서류는 한글로 작성되어 있었다.
“관리 후보는 몇 명이나 되오?”
책임자인 손중일에게 물었다. 비록 임시 직위이긴 하나 이민국 국장에 임명되어 이주민 관련 대책의 책임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쉰 명 정도 뽑아 보았습니다.”
“면담은 하셨고?”
“그렇습니다. 다들 기뻐하더군요.”
관리가 너무나 부족하다 보니 태건은 이주민 중에서 글공부를 조금이라도 한 이들을 선별한 다음, 직접 면접을 봐서 최종 선발할 생각이었다.
“군역은 어떻소?”
“다들 피하고 싶어 하나 나라에 난리가 난 마당에 별 수 있겠습니까? 분부대로 열여덟에서 서른다섯 살 사이의 장정 중, 한 집안에 둘 이상 있는 경우에 한정해서 한 명씩 징병하고 있는데, 아직 그 수가 많지 않습니다. 겨우 이백 정도 뽑았습니다.”
“이주민이 계속 들어오고 있으니 금방 인원수를 채울 수 있겠지.”
“예.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이 추세가 유지되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이주민들 받을 준비는 잘 되어갑니까?”
“팔지 쪽은 모두 마쳤습니다. 팔지령과 저령강 유역은 아직 준비 중이고요. 그쪽 주둔 병력과 악양진 관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송구하게도 훈춘평은 아직······.”
“괜찮소. 준비된 곳부터 시작하시지요.”
“예. 알겠습니다.”
순시를 마친 태건은 이주민 임시 수용소를 벗어나 노구진에 있는 조산만 공방촌으로 향했다.
* * *
태건이 도착하자 조산만 선소에 머물고 있던 태미와 화포장 이장곤이 태건을 맞아 주었다.
이장곤은 군기시 장인 출신으로 김명신이 섭외해 온 귀한 인재였다. 화승총의 생산도 그의 감독하에 들어갔다. 그가 온 덕분에 야장 박기수는 철주덕으로 건너가 철의 생산 과정을 지휘할 수 있게 되었다.
이장곤은 화승총 보관 창고로 태건을 안내했다. 창고는 꽤 컸는데, 화승총이 담긴 나무 상자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총 몇 정이나 되죠?”
“천 정 조금 넘었습니다.”
“천 정이나? 많이 늘어났군요.”
기존 500정에, 1,000정이 더 늘어났으니 벌써 화승총을 1,500정이나 보유하게 된 셈이다. 그간 계속된 출정으로 인해, 경흥부 군은 생산된 화승총을 수령할 기회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징병이 이뤄지고 훈련이 진행될 예정이라 태건이 이곳을 찾게 된 것이다.
“모두 이천 정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 두 달 내에 가능할까요?”
“노력해 봐야죠. 잘하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요.”
“좋군요.”
태건은 만족해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천 정이 다 만들어지면 어떻게 배치할 거예요?”
태미가 물었다.
“모두 별동군에 줘야지. 각 대대에 200정씩. 안 그래도 궁수가 부족한 상황이라, 소총수를 대폭 늘릴 생각이다.”
각궁의 핵심 재료가 수입품인 물소뿔이기 때문에 경흥부의 힘만으로 수량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 병력의 증가 추세에 비례해 궁수도 늘어나야 하나, 그렇지 못한 실정이라 부족한 궁수 보직을 소총수로 채울 생각이었다. 둘 다 원거리 무기이긴 하나 현재 화승총의 성능상, 유효사거리와 발사 속도 면에서 명백한 한계가 있어 반드시 두 무기 모두 운용해야 한다.
“자, 그럼 시험장으로 가실까요?”
이장곤은 신이 나 있었다. 원래 낙천적인 성격인데다, 만드는 일 자체를 좋아해 자기의 작품을 선보일 때면 환갑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아이처럼 들뜬 모습을 보였다.
“시험장?”
“보여드릴 게 있습지요.”
태건은 노구산 아래에 있는 훈련소 겸 시험 사격장으로 쓰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오오오! 드디어 완성되었군요.”
“호호! 정말 좋은가 보다. 오라버니가 이렇게 기뻐하는 모습, 오랜만에 보네요~”
태미도 활짝 웃었다.
시험장 한구석에 각기 구경이 다른 불랑기포 두 문과 홍이포 한 문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불랑기포 역시 서양에서 전래한 후장식 화포인데, 모포와 자포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 개의 모포에 5~9개의 자포가 세트로 딸려 있어 빠르게 발사할 수 있는 데다, 가늠자와 가늠쇠를 달아 놓아 명중률이 높다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태건은 공성 무기인 홍이포만 염두에 두었는데, 판옥선 건조가 본격화되면서 군선용 소형 화포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불랑기포의 개발도 결정했다. 그래서 급히 이하륜이 설계도를 그려 이장곤에게 준 것이다.
향후 조선군도 불랑기포를 만들어 사용하게 된다. 명군이 일본군을 공격할 당시, 무척 효과가 좋은 걸 보고, 이를 본떠 만들기 시작했다
“진짜 철로 만드는 데 성공했군요. 문제는 없었어요?”
“여기 야장들 실력이 뛰어나, 생각보다 오래갈 겁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이상 징후가 보이면 사용을 금해야 합니다. 어디까지나 주철이니까요.”
불랑기는 원래 청동제 화포였으나, 태건은 철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명나라 역시 통상 소구경은 청동으로, 대구경은 철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태건도 알고 있어 철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던 것. 구리 자원이 부족하다 보니, 화포를 많이 보유하려면 결국 철을 써야 했다.
조선의 전통 야금술의 기술력은 매우 뛰어난 편이다. 탄소를 빼내는 재료인 탈탄제를 쇳물에 가미하는 방식으로, 탄소 함유량을 적당히 조절, 능히 강철을 뽑아냈을 뿐만 아니라 탄산칼슘이나 숯 등을 첨가해 일반 주철에 비해 몇 배나 강하고 질긴 철도 만들어 낼 줄 알았다.
이장곤은 태건의 주문에 따라 포를 거치하는, 바퀴 달린 받침대도 달아 놓았다.
“그럼 시험 방포해 보겠습니다.”
이장곤은 벌써 여러 번 시험해 봤기에 자신이 있었다. 그의 지시가 떨어지자, 공방으로 파견 나와 있던 별동대 중군 소속 화포병들이 능숙한 솜씨로 불랑기 사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화포병은 자포에 포탄과 화약을 쟁여 넣고 모포에 끼워 넣은 다음, 빗장쇠인 족철로 고정해 사격 준비를 마쳤다.
“방포!”
펑!
포병 중대 군관의 명령에 따라, 불랑기 심지에 불을 붙이자 거대한 폭음과 함께 연기가 치솟았다. 날아간 포탄은 채석장 중턱을 타격했다.
“와아! 위력이 대단하네요.”
“좋군.”
시험 발사에 성공하자 태미와 태건 모두 크게 기뻐했다.
방금 발사한 불랑기포의 구경은 현자총통과 같은 포탄을 쓸 수 있도록 65㎜로 설계했는데, 태건은 이를 3호 불랑기포라 명명했다. 화포수들은 연이어 구경이 40㎜인 소위 4호 불랑기도 시험 발사했는데, 당연히 성공했다.
“마음에 들어?”
향후 경흥부 수군도 이 두 종류의 불랑기포를 모두 활용할 예정이라, 태건이 태미에게 물었다.
“그럼요. 발사 속도로 보나 위력으로 보나, 저걸로 무장하면 대적할 자가 없을 것 같아요.”
다음 순서는 홍이포였다. 바퀴 달린 포가에 육중한 크기의 화포가 얹혀 있었다. 포신의 길이만 해도 2미터가 넘고 구경은 무려 100㎜, 최대 사거리도 4㎞로, 불랑기 보다 훨씬 길었다.
뻥!
홍이포의 발사음이 노구산을 뒤흔들었다. 뜻밖의 폭음에 태미는 깜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포탄은 만포 해변을 향해 날아가 곧 수면 위로 떨어졌다. 동해 쪽을 제외하곤 모두 계곡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바다를 향해 발사할 수밖에 없었다.
“어, 어떻게 저렇게 멀리··· 그래서 공성 병기라 그랬구나.”
태미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소감을 얘기했다.
“그런데 부사 나리. 이 화포는 모든 면에서 너무 비쌉니다. 철을 많이 쓰긴 했으나 구리도 만만치 않게 들어가는 데다, 화약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다는 단점이 있지요. 이걸 쓸 일이 있을까요?”
“앞으로 자주 활용하게 될 겁니다. 말씀대로 비용과 재료 문제가 있으니, 일단 두세 문만 만들어 봅시다. 그 대신 불랑기를 되도록 많이 만들자고요.”
“음, 알겠습니다.”
이장곤은 엄청난 위력을 가진 이 공성용 병기를 자주 활용할 거란 말에서 태건의 뜻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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