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44
44화. 염주평과 연추를 얻다 (3)
현재 조선에서 화약을 만드는 일은 참으로 눈물겨운 고역의 연속이었다. 흑색 화약의 성분은 질산칼륨이라 할 수 있는 염초 성분이 75%, 유황 15%, 목탄 10%의 비율로 구성되는데, 여기서 가장 많은 성분을 차지하는 염초의 생산이 문제였다.
인도나 중국의 경우, 염초를 만들 수 있는 초석 광산을 보유하고 있어 문제가 없으나 조선은 그렇지 못해 변소 근처나 아궁이 흙 등을 긁어모은 다음, 여러 공정을 거쳐 염초를 얻었다.
태건은 그보다 훨씬 나은 방법을 알고 있었다. 숙종 대의 역관 김지남이 편찬한 ‘신전자초방’에서 제시한 방법을 경흥의 화약장에게 알려 주어 다른 곳보다 더 많은 염초를 생산하고 있었다.
사람과 동물의 분뇨 범벅이 된, 주요 도로나 마을 주변의 흙을 모으는 방식이다. 그런 흙에도 염초 성분이 있다는 사실을 중국에서 먼저 알아냈고, 역관 김지남이 이를 조선에 전한 것이다.
태건은 한발 더 나아가 서양에서 주로 썼던 염초밭을 만드는 방식도 고민했지만, 이 또한 꽤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공정이었다. 그래서 아예 시간이 걸리더라도 무연화약을 개발해 쓰기로 결심했다.
“석탄을 외기가 통하지 않는 용기에 넣고 고온으로 가열하면 여러 가지 성분이 나오는데······.”
“성분이라면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체와 액체, 고체 등등 뭐 다양하게 나오는데, 그중 기체 속에······.”
이하륜은 조경린의 표정을 보자 더 이상 설명을 이어 나가지 못했다.
“단보와 자주 얘길 나눠 보시오. 필사한 책도 갖고 있으니 빌려서 읽어도 보고.”
태건이 미소를 지으며 해법을 제시해 줬다.
“그래도 궁금합니다. 계속 말씀해 주시지요.”
조경린은 허균에 대해 은근한 경쟁의식을 갖고 있었다. 대과에서 장원으로 급제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보니, 이제 겨우 생원시를 통과한데다 나이도 어린 허균을 아직 온전히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성능이 좋은 화약을 만들자면 질산과 황산이 필수적으로 들어가는데, 질산의 원료가 되는 암만과 황산의 원료인 이산화황이 석탄을 건류해서 얻는 기체에 포함되어 있소. 화약 원료뿐만이 아니라 도료나 염료 등 꽤 유용한 물질의 재료도 석탄 건류 과정에서 추출된 재료에서 얻지.”
태건은 암모니아를 ‘암만’이란 용어로 바꿔 설명했다.
조경린은 아예 외워 버릴 생각으로 눈을 부릅뜨고 태건의 얘기를 귀담아들었다. 그 또한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인지라, 이 정도 외우는 건 자신이 있었다.
“음, 그런데 태 부사님은 이 원리를 어찌 아셨는지······.”
“사물의 본질에 대해 궁구하다 보면 다 깨닫게 된다오.”
“사물의 본질이요?”
“단보에게 물어보시오. 단보 역시 내가 찬한 책을 읽고 공부했으니.”
“···그게 낫겠습니다.”
조경린은 결국 허균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결심했다.
“응?”
멀리서 말달리는 소리가 들리자 이하륜이 그쪽을 응시했다.
“경흥에서 보낸 전령이네요.”
전령은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곧바로 태건에게 보고했다.
“북병영에서 급한 전갈이 왔습니다. 왜군이 철령을 넘어 북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병사가 출진 준비를 서두르고 있답니다.”
“남병사는?”
“잘 모르겠습니다.”
태건은 날짜를 되새겨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임진왜란은 그가 알고 있는 바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빨리 경흥으로 돌아가 중군 강대구 대대장에게 전하라. 남쪽으로 정찰병을 보내 왜적의 이동 경로와 병력 규모를 정탐하라고. 고을마다 정보를 수집하는 이들이 상주하고 있으니, 이들과 접촉하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들과 접촉하는 방법은 송화상단주가 알고 있고.”
“예. 알겠습니다.”
전령이 먼저 부리나케 남쪽으로 떠났다.
“가자! 이제 우리도 출진 준비해야지.”
“그럼 바로 북병영 군에 합류할 생각입니까?”
조경린이 물었다.
“아니, 북병사와 조정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지요.”
조경린은 태건에게 떨어진 북병사 오천태의 명령을 떠올렸다. 오로지 오랑캐의 방어에 신경 쓰라는 명이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도 지켜야 하니까.”
“예?”
조경린은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태건은 경흥부 소속 병력을 전면 재배치했다.
경흥부는 현재 훈춘평에서 모병한 와르카인 병력을 포함, 총 다섯 개의 수성군 대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태건은 하연추와 피오성, 국화당동, 하남동 등의 방어 거점과 경흥부에 각기 수성군 한 개 대대씩 배치했다.
아울러 중군을 포함한 별동군 여섯 개 대대 중, 훈춘 부락 마적달에 새로 편성한 별동군 제5대대를, 중연추 지역에 별동군 제4대대를 배치해 콜칸과 남둘루인의 반격에 대비하게 했다. 그리고 나머지 별동군 네 개 대대, 이천여 병력을 아오지보 근처 산악 지대에 집결시킨 다음, 집단 전술 훈련에 돌입했다.
그렇게 부지런히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을 무렵, 그간 왜군이 함경도로 들어서자마자 벌어진 놀라운 일들에 대한 첩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첩보는 태건의 측근 장수들로 하여금 여러 측면에서 경악하게 했다.
가장 우스우면서도 슬픈 일화는 부원수 신각의 참수 소식이었다. 구원하러 온 함경도 남병사 이혼의 병력과 신각은 경기도 양주의 해유령에서 왜군과 싸워 승리했는데, 조선 조정은 적을 앞에 두고 도주했다는 도원수 김명원의 보고만 믿고 선전관을 보내 신각을 그만 참수한 것.
이 해유령 전투는 조선군이 육지에서 거둔 최초의 승전인데, 그 승리의 주역을 처형한 셈이었다. 앞서 김명원과 신각은 한강 전투에서 패전, 후퇴하는 과정에서 서로 연락이 두절된 바 있었다. 김명원이 이를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성급히 보고해 벌어진 일이었다.
조경린은 그 소식을 듣자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잘~한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허균은 여전히 표현에 거침이 없었다.
“그보다 더 우스운 일이 함경도에서 벌어졌지.”
가토 기요마사와 나베시마 나오시게, 사가라 요리후사 등이 이끄는 왜군 2군은 텅 빈 철령을 넘어 함경도 경내로 들어섰다. 그로부터 온갖 황당한 사건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태건은 보고서를 조경린과 허균에게 건네주었다.
“같이 듣게, 읽어 보시오.”
두 사람은 한 장씩 들고 빠르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왜장 가등청정이 이끄는 왜 대군이 함경도로 진입하자, 함경도 관찰사 유영립은 산속으로 도주했다. 그러나 조선군 병사가 왜적에게 고자질하는 바람에 왜적에 사로잡혀··· 어허! 이런······.”
조경린이 읽다 말고 탄식을 터트렸다. 함경도 관찰사나 되는 자가 조선군 병사에게 배신당해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허균이 읽는 부분은 점입가경이었다.
“함경도 남병사 이혼 역시 적군의 빠른 진격 속도에 놀라 자리를 이탈, 갑산으로 도주했다. 그를 발견한 갑산 주민들이 그를 붙잡으려 추격하자, 밭 사이 토굴에 숨었으나 결국 발각되어 반민들과 격투 끝에 살해당했다. 갑산의 반민들은 그에 이어 갑산 부사까지 벤 다음 왜적에게 투항······. 쯧쯧! 그러게 평소 백성들한테 잘했어야지.”
“얼마나 민심을 잃었으면 이 정도로 허망하게······.”
정강빈이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젠장! 대체 이게 뭐냐고!”
송찬황은 욕설을 내뱉기 직전이었다. 흥분해서 얼굴도 붉게 달아올랐다. 왕조실록을 기록한 사관은 이런 현상이 일어난 원인에 대해 나름 분석해서 기록을 남겼다. 태건은 측근들에게 이 내용을 가정법을 써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라는 민심이 떠난 원인을 변장에게 돌리고 있겠지.”
실록은 변장을 ‘무리들’, 즉 무관 관리라 표현했다. 그래서 무리들이 백성들에게 학정을 펼쳐 국가를 증오하게 만들었다고 해설한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육진을 포함, 함경도 전체에서 그런 일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조정이 그간 함경도를 얼마나 차별 대우를 한 지 잘 알지 않나?”
“그렇습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없지요. 그러니 전란이 닥치자 바로 백성이 등을 돌린 것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국왕은 도성과 백성을 팽개치고 도주까지 한 마당이니.”
송찬황도 거침없이 국왕과 조정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실록은 또 ‘왜가 새로운 임금을 세우고 국정을 개혁해 줄 거라는 유언비어에 백성이 현혹되어, 장수와 관리를 다투어 결박해서 적에게 넘겼다’고 기록했다. 즉 백성들이 왜적의 유언비어에 넘어가 벌인 일이라 묘사한 것이다.
함경도의 성난 민심은 다른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사대부들은 재산을 지참하기 좋은 패물로 바꿔 함경도로 피난을 떠났는데, 토병들은 이들을 붙잡아 재산을 대부분 약탈했다고 한다. 하지만 귀양을 온 사족들만큼은 국가를 원망하는 사람들이라 여겨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그럼 민심이 원하는 건 뭘까?”
태건이 물었다.
“국정을 쇄신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조경린이 답했다. 너무나 빤한 대답이라, 아무도 그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았다.
“희망이지. 지금 그걸 왜적에게서 찾고 있는 거고.”
태건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슬픈 현실입니다. 나라를 침탈한 왜적이 백성의 희망으로 떠오르다니.”
허균이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왜군을 해방군으로 여기고 있겠지. 침략군이 해방군이 되다니 참으로 웃기고도 서글픈 현실이지요.”
이하륜도 한마디 보탰다.
“그럼 왜군은 무인지경으로 올라오고 있겠군요.”
정강빈의 말에 송찬황이 바로 반응했다.
“관찰사건 남병사건 간에 죄다 잡아 왜적에게 바치는 판에 무슨 반격을 하겠나? 현지인 출신 토병들이 모두 반기를 든 모양일세. 그러니 장수들이 병사를 피해 숨기 바쁜 형국이겠지. 말하고 보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군. 병사를 통솔해야 하는 장수들이 병사를 피해 다닌다니······.”
“이래서 왜적이 경흥까지 올라온다고 장담하셨군요?”
허균이 태건의 선견지명에 크게 감탄했다.
“그런 예상을 언제 하셨습니까?”
조경린이 물었다.
“부사님은 왜적이 침략하기 전부터 예상하셨소.”
“세상에······.”
조경린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태건을 바라보았다. 처음 그는 태건을 무예가 뛰어난 무장 정도로만 보았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태건의 여러 능력에 대해 제대로 파악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경흥은 괜찮을까요?”
최철주 대대장이 물었다.
“최 여과가 잘 알지 않을까요? 이 자리에 있는 장수들 중, 토관의 대표라 할 수 있으니.”
“허허!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전 부사 나리는 물론, 휘하 장수와 관리들이 식솔들을 모두 데리고 왔기에, 외지에서 온 분이란 사실을 잠깐 망각했지요.”
“저도 방금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경흥에 주둔 중인 수성군 제1대대장 김무정도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역시 토관 출신으로 종6품 부여과의 직위에 있었다.
“경흥은 어떤 문제도 없으리라 장담합니다. 아니지, 오히려 주민들이 우리 군을 도우려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겁니다. 우리 경흥부야말로 희망이 있는 곳이니까. 그래서 함경도 주민들이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지 않습니까?”
“암! 그렇고 말고.”
김무정의 견해에 최철주도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네요.”
이하륜이 밝게 웃었다.
“앞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피난민이 몰려올 겁니다. 가산을 모두 챙겨 온 이주민들이야 먹을 양식이 있겠지만, 황급히 피난을 떠나온 이들 중에 식량을 미처 챙기지 못한 이들이 많을 테니까요.”
김명신은 벌써 식량 수급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전 재산을 살뜰하게 챙겨 온 이주민들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지금도 챙겨 온 식량으로 버텨 가며 삶의 터전을 가꾸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또 일단 근처 밭부터 개간, 밭작물을 심어 이듬해까지 버틸 식량도 준비 중이었다. 그에 반해 급히 길을 떠나온 다른 피난민들의 형편은 분명 좋지 못할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
“공역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최대한 많이 구휼하는 수밖에 없지요. 와르카 사람들에게 식량을 사들일 필요도 있고.”
“예, 그게 좋겠네요.”
김명신도 여차하면 와르카 농민들에게 기댈 생각이었다.
“김 부여정.”
“예. 부사님.”
“다시 말하지만 병력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손중일 국장과 함께 계속 징병에 힘써 주시오. 이들 중에 틀림없이 탈영한 이들도 있을 테니, 잘 다독여 이곳 아오지로 데려와 주시오.”
“예, 그리하지요.”
김무정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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