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45
45화. 함경도에 찾아온 위기 (1) (지도 첨부)
경흥부의 수군 기지, 조산보.
태건이 부임하기 전까지 경흥부 수군은 장비와 병력이 태부족해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태건도 처음엔 조산보 병력을 수군이 아닌 수성군으로 분류해 운용해 왔을 정도였다.
그러나 조선장들이 들어와 판옥선을 건조하기 시작하자, 태건도 이제 수군을 본격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기존 150여 명의 수군 병력에 더해, 그간 꾸준히 모병을 추진, 모두 300명가량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약 한 달 전, 또다시 약 50명 정도의 귀한 인재들이 경흥부로 들어왔다. 그들은 바로 경상좌수영 소속 수군 병력이었다. 이들 역시 조선통신사 동료였던 이들로 군관 두 명을 포함, 사공과 격군들로 구성되었다.
경상좌수영은 왜란 발발 직후 가장 먼저 치명적인 타격을 당한 부대였다. 본영이 동래현 해운대포에 자리한 덕분에 먼저 왜군에게 당한 것이다. 그로 인해 일본에 같이 다녀왔던 이들 중에 벌써 유명을 달리한 이도 꽤 많았다.
그날 이후부터 경상좌수영은 임진왜란 내내 힘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그런 형편이라 태건과 인연을 맺었던 이들이 경상좌수영을 벗어나 육로를 통해 경흥으로 들어온 것이다. 태건은 이들 중 무관 이천호를 수군 대대장에 임명해 경흥부 수군을 지휘하게 했다. 그 덕분에 이하륜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태건 일행이 조산보에 이르자, 이천호 대대장이 바로 마중 나왔다.
“많이 바쁘시다고 들었습니다.”
“다들 그렇지.”
이천호는 태건의 뒤에 도열해 있는 수많은 사내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들이 야인······.”
“콜칸 사람이라 하게. 아니면 동해인이라 부르든지.”
태건은 야인이란 말을 점차 없애고자 했다. 그래서 두만강 너머, 강외 지역을 통틀어 동해주라 명명하고 여진인 원주민을 동해인이라 호칭하기로 방침을 결정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습관이 안 되어서··· 그 콜칸인 포로들입니까?”
태건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부장 진태종에게 손짓했다.
격군이 너무 부족하다고 이천호가 인력 수급을 요청하자, 태건은 고심 끝에 채석장에서 노역 중인 콜칸인 포로를 활용하기로 하고, 그중 100명을 선발해 데려온 것이다.
진태종이 콜칸인 포로 대표의 등을 살짝 밀자 그가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어눌한 조선어로 인사했다. 그간 조선어를 익힌 덕분에 생활에 필요한 말부터 조금씩 구사하고 있었다.
“콜칸인 이사로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이사로 역시 김와일란과 마찬가지로 조선 조정으로부터 명예직 벼슬과 이씨 성까지 받은 촌장 집안의 자제였다.
“어, 그래. 잘해 보세나.”
“콜칸인들은 타고난 뱃사람들이란 말이 있네. 그러니 저들을 포로가 아닌 동료로 대해 주면 큰 도움이 될 수 있겠지.”
“명심하겠습니다.”
콜칸 포로들의 얼굴은 매우 밝아 보였다. 경흥부 측의 대우가 인간적이고 좋았던 데다, 김와일란 휘하 100명의 기병처럼 포로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이제 노역장에 남은 포로는 300여 명 정도인데, 이들도 향후 기병이나 수군으로 차출될 가능성이 컸다.
“저들까지 포함하면 이제 수군 병력 규모가 모두······.”
“사백오십입니다.”
“꽤 늘었군. 훈련 상태는 어떤가?”
“현재 판옥선 세 척 정도는 충분히 띄울 수 있습니다. 다만 화포가 무척 부족해 실전에 나서기는 좀 어렵겠습니다.”
현재 경흥부 수군은 그간 꾸준히 판옥선을 건조한 덕분에 판옥선 다섯 척과 일곱 척의 협선을 보유하게 됐는데, 아직 활과 화포 등 무장이 충분치 못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럼에도 경흥부 수군은 3호와 4호 불랑기포, 현자총통 등으로 차근차근 무장하고 있고, 화포 사격 훈련도 진행 중이었다.
“동생은 어디에 있지?”
태건이 태미에 대해 묻자 이천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녹둔도 앞바다로 기동훈련 겸 순찰을 나가 있습니다.”
“잘···하나?”
“물론입니다. 워낙 성격이 수더분한데다, 수군 업무에 능해 다들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판옥선 한 척의 지휘를 맡겨볼 생각입니다. 지금 수군 군관이 저를 포함해 겨우 둘뿐이라, 지휘관 한 명이 더 필요한 상황입니다.”
“뭐, 대대장 뜻대로 하게.”
“알겠습니다.”
“앞으로 판옥선과 협선을 짝을 지어줘서, 대초도까지 교대로 탐망 좀 해 주게.”
대초도는 안화(나진항) 앞 바다에 자리한 큰 섬이었다.
“왜적의 북상에 대비하기 위함입니까?”
“그렇지. 안화로 올 가능성은 별로 없으나 혹시 모르지 않나? 그러니 해안선을 따라 잘 살펴 주게.”
“네. 분부 받들겠습니다.”
태건은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왜군의 북상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점을 의식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해안선을 따라 정찰하라고 지시했다.
* * *
국왕은 영변을 떠나 의주로 향하던 도중에도 아예 요동으로 넘어가자고 계속 졸라 댔다. 그때마다 당연히 신하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자 왕은 전략을 바꿔 대응했는데, 그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태건이 화제로 부상했다.
“혹시 경들 중에 경흥부사 태건에 대해 소식을 들은 이가 있는가?”
도승지 이항복이 답했다.
“송구하오나 알지 못합니다. 죄를 추궁하러 보낸 행대어사도 왜적에게 길이 막혀 아직 돌아오지 못했나이다.”
행대어사 이야기가 나오자 국왕은 움찔했다.
“파발을 보내 행대를 즉시 귀환시키지 않았나?”
“행대가 한창 태건을 심문하는 중에 파발이 도착한 모양입니다.”
파발이 워낙 빠르다 보니, 행대어사 조경린의 보고가 몽진 전에 먼저 한양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 그런가?”
국왕은 다소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래도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여기서 산길을 타고 함경도로 가는 건 어떤가?”
요동 타령을 하다 갑자기 함경도 이야기가 나오자 신하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하! 어가가 평안도에서 함경도로 이어지는 그 험한 산길을 어찌 갈 수 있겠나이까? 더구나 경흥부사 태건은 이미 행대어사로부터 추궁을 당한 바가 있어, 자신에 대한 처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겁니다. 그자가 과연 어가를 기쁘게 맞이하겠나이까?”
“이런 고얀! 신하된 자가 어찌 감히······.”
국왕은 태건에 의지해 볼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화를 냈다. 태건을 견제하던 때의 감정이 다시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아울러 북관은 오로지 한 가닥 길만 있으니 궁한 처지에 놓이게 되면 오랑캐가 사는 땅 이외에 갈 만한 곳이 없으니 의주에 머무는 것만 못합니다.”
“한 가닥의 길이라······.”
국왕은 비로소 함경도로 통하는 길이 동해안을 따라 나 있는 길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안도와 함경도의 험준한 산길로 가는 건 애초에 말이 되지 않았다. 이항복은 국왕의 마음을 돌리려면 그가 좋아하는 미끼를 던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의주로 가야만 중국 군사와 접촉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혹여 불행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내부하면 됩니다. 거기서 지내며 천천히 국토를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이항복은 요동으로 도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 입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국왕은 희색이 만면해서 들뜬 목소리로 답했다.
“내 뜻이 본래 내부하려는 것이니 경의 말을 따르겠다.”
이항복은 허탈한 표정으로 그저 고개를 조아렸다.
하지만 국왕의 계획은 얼마 못 가 난항에 부딪혔다. 의주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압록강을 건너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자 신하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반대했다. 당파와 관계없이 모든 신하가 나섰다.
‘당초 요동으로 가자는 계책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나이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논의가 나온 뒤로 신민들 모두가 경악하였나이다. 달려가 하소연할 곳도 없으니, 그 안타깝고 절박한 심정이 왜란 초기보다 심하여 마음이 허둥지둥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비록 왜적들이 가까이 다가왔지만, 아직 여러 고을이 병화를 입지 않았는데, 전하는 수많은 신민을 팽개치고, 한낱 필부처럼 행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왕조실록에 있는 기록이다. 누가 이렇게 간했는지 나와 있지 않으나, 그 신하는 국왕을 겁에 질린 한낱 필부와 같다며 맹비난했다.
그럼에도 국왕의 고집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수용할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졌다. 명나라 측에서 내부를 원한다는 국왕의 자문에 응해, 요동의 관전보에 있는 빈 관아에 거처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소식을 전해 줬기 때문이다. 그제야 비로소 국왕은 마음의 안정을 찾고, 한동안 의주에 머물기로 결심했다.
* * *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왜군은 함경도 단천까지 진출했다. 그는 부장 나베시마 나오시게에게 영흥과 함흥 지역을, 쿠키 히로다카에게 단천의 수비를 맡긴 다음, 자신은 사가라 요리후사와 함께 본대 병력을 이끌고 계속 북상했다.
그 소식을 들은 함경북도 북병사 오천태와 신임 남병사 이영은 조선군 1,000명을 이끌고 왜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나아갔다. 그간 오천태는 꾸준히 북병영 관할 지역에서 병력을 모으고자 노력했으나 육진 지역의 민심 역시 불안정하다 보니, 부사들은 고작 수백의 병력만 이끌고 오천태의 북병영군에 합류하게 되었다. 또 아예 소집에 응하지 못한 부사들도 있었다.
오천태는 병력을 이끌고 길주 서남쪽에 자리한 원평에 일단 진을 친 뒤, 여러 부사와 함께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경원부사 원희가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여기서 뭉그적거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당장 마천령으로 달려가 험한 지세에 의지해 적을 막아야 합니다.”
“그러다 놈들이 사각령으로 돌아가면?”
“지금 왜적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정도로 등등합니다. 병사의 수도 많은데다,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함경남도 각 고을을 점령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그들이 우리 조선군이 무섭다고 사각령으로 빙 돌아 움직이진 않을 겁니다.”
이들이 이런 논쟁을 벌이는 이유는 단천에서 길주에 이르는 구간의 경우, 동해안까지 험준한 산세가 이어져 있어, 해안 쪽에 아예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륙의 여러 고갯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단천에서 길주로 향하는 여러 경로 중 가장 빠른 길이 바로 마천령을 넘은 다음, 해정창 ― 후세의 성진으로 북한은 이곳을 김책시로 개명 ― 을 거쳐 길주로 향하는 경로였다. 오천태가 예를 든 사각령은 더 북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우린 다른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하네. 우리마저 무너지면 육진과 왕자 마마들은 어찌 되겠나?”
오천태는 임해군과 순화군을 입에 올렸다. 이 두 왕자는 근왕병을 모집하기 위해 각기 강원도와 함경도로 파견되었다가, 왜군의 거센 진격에 겁을 집어먹고 회령부으로 피신해 있었다. 원희는 흥분해서 큰 소리로 오천태의 주장을 반박했다.
“우리 군이 정병이라 하나, 왜적과 정면으로 대결을 펼친다면 그 수적 열세로 인해 이기기 어려울 겁니다. 그러니 지리적 이점이라도 반드시 점유해야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 왜적이 길을 달리했다면 다시 마천령을 내려와 길주로 돌아오면 됩니다.”
“흠. 그게 나을까···.”
“영감! 빨리 결정을··· 그리고 지금이라도 경흥부에 연락해 병력을 이끌고 와 뒤를 받치라고 명령하시지요. 내 알아보니 경흥부의 병력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또 인심을 잘 다독인 덕분에 반란의 기미도 전혀 없답니다. 그러니······.”
“됐네. 그런 방자한 자가 내 명령에 따르기나 할까?”
“북병사! 경원부사의 말이 타당해 보이오. 나 또한 경흥부사 태건의 소문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만한 장수가 많지 않으니 지금이라도······.”
남병사 이영도 오천태를 설득하려 했다. 그때, 연락을 담당하는 군관이 장막을 열고 들어와 다급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북병사 영감! 정찰병의 보고입니다. 적 선봉대가 양덕에 모습을 드러냈답니다.”
“뭐, 뭐야?”
오천태는 잠시 멍하니 군관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영감! 뭐 하십니까!”
원희가 분노해 소리쳤다.
“아, 알았네. 바로 출진하세.”
양덕은 단천에서 마천령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마을이다. 그러므로 왜군이 사각령으로 우회할 가능성은 없어진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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