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47
47화. 태건, 출정하다 (1) (지도 첨부)
두만강에서 때아닌 도하작전이 펼쳐지고 있다. 원희는 안원보를 지난 지 한 식경도 지나지 않아 오백의 와르카 병력이 수십 척의 나룻배와 뗏목을 이용, 강을 건너오는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태건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연유요? 이천을 넘는 우리 군세를 앞에 두고도 야인들이 저런다는 건··· 설마?”
“내가 불렀습니다.”
“허, 이런, 놀랍군. 그럼 저들은 어디 소속이오?”
“훈춘평에 사는 강외 번호 중 피오성 수비군입니다. 얼마 전, 훈춘 부락이 훈춘평 번호 마을을 약탈한 불상사가 일어나는 바람에 제가 병력을 이끌고 가서 토벌한 일이 있었습니다.”
“오! 그래서 울량합 인들이 보은코자 도우러 왔군.”
“뭐, 그렇지요.”
태건은 구구절절 설명하기 귀찮아 답변을 대충 얼버무렸다. 토벌군은 곧 경원 읍성에 도착했고, 곧바로 성을 포위했다.
“포위를 끝냈습니다. 피오성 병력도 자리를 잡았고요.”
이하륜이 와서 고했다.
포위가 완료되자 문루와 성벽에 올라와 있는 반란군 병력은 눈에 띄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태건은 이를 눈치채고, 사자 자격으로 진태종을 성문 앞으로 보내 항복을 유도하려 했다.
“경흥부사 겸 토벌 대장의 전언이니 새겨들으라! 우린 다 같은 조선인이다. 왜적이 지척에 이르렀는데 동족끼리 피를 흘려서야 되겠는가? 그러니 지금이라도 투항하고 우리와 힘을 합쳐 왜적과 싸운다면 그간의 허물을 없던 일로 해 주겠다. 조정에도 그대들의 공을 상세히 상신해 정상참작이 되도록 조치하겠다. 하지만 끝까지 역도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진태종이 성문 앞에서 당당하게 외치고 돌아왔다. 사자의 통첩은 또다시 성을 술렁이게 했다. 태건이 원희에게 물었다.
“성내 병력이 얼마나 됩니까?”
“오백을 넘지 못할 것이오. 경원부에서 가용한 병력 중 상당수를 이끌고 원정을 다녀왔으니까.”
“토관이 다 연루되었습니까?”
“그런 모양이오. 모두 한통속이라. 그런데··· 언제까지 기다릴 심산이오?”
“지금 저들은 두려움에 빠져 있을 겁니다. 저절로 성문이 열릴지도 모르지요.”
“그러면 좋겠다만······.”
원희는 초조한 표정으로 경원부 읍성을 응시했다. 사실 읍성뿐만이 아니라, 경원부가 관리하는 다른 보들도 문제였다. 그간 지나쳐온 건원보나 안원보는 경흥과 가까워 별다른 문제는 없었지만 다른 곳은 그렇지 못했다. 중앙에서 임명해 보낸 만호나 군관들을 잡아다 왜군에게 바치는 게 육진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원희와 동행한 휘하 만호 하나와 군관 몇 명 이외에 남은 이들은 벌써 임지를 벗어나 도주했을 가능성이 컸다.
태건은 잠시 상황을 지켜보다 중군의 화포 중대에 명령했다.
“저들이 볼 수 있는 곳에 화포를 방열하라!”
명령받은 화포 중대 병력은 홍이포 두 문과 3호 불랑기포 열 문을 시야가 탁 트인 언덕 위에 방열하기 시작했다. 태건군의 화포를 처음 목도한 원희는 깜짝 놀라 물었다.
“저 총통들은 무엇이오? 모두 처음 보는 건데?”
“왜란에 대비해 새로 개발했습니다.”
“놀랍군. 태 부사가 선견지명이 있다는 얘길 귀가 아프도록 듣긴 했는데, 언제 저런 걸 다······.”
성을 장악한 반란군도 태건군이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성에서 기별이 왔다. 반란을 주도한 토관이 태건과 단독으로 만나 얘기하고 싶다고 전해 온 것이다. 원희는 자신이 아니라 태건을 지목한 데 대해 매우 불쾌히 여겼지만, 토벌군의 지휘자가 태건이기에 이해되는 면도 있어 잠자코 있었다.
태건과 반란군 수장은 양 진영의 중간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회원위의 여과 김수군입니다.”
경원부 토관의 무관 직위 중에 가장 높은 자리는, 경흥과 마찬가지로 정6품 여과였다.
“나를 보자고 한 이유는?”
태건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우린 태 부사님 휘하에 드는 조건으로 투항하길 원합니다.”
“굳이 내게?”
“예. 무관과 아전들뿐만이 아니라 경원 부민들도 모두 원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생각이군.”
태건은 이들의 생각을 알 것 같았지만, 일단 시치미를 뗐다. 그걸 이해한다는 사실 자체가 구설수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아국의 조정과 타지인들이 육진을 업신여기는 것도 우릴 분노케 하나, 지방관의 학정 또한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그건 강내에 거주하는 번호뿐만이 아니라 성내 조선인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입니다. 선정을 베푸는 지방관을 만나기란 가물에 콩 나듯 하는 실정이지요. 그 때문에 부민과 토병들이 이번에 일어난 거 아니겠습니까?”
“면목 없네. 그 일은 나 또한 인정하는 바이니. 경흥에 부임한 후로 그런 얘길 참 많이 들었지. 그렇다고 왜적이 침략한 지금, 나라에 등을 돌려서야 되겠는가?”
꾸짖기는 했으나, 중앙에서 임명된 관리인 태건이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자 김수군은 몹시 놀랐다.
“역시··· 태 부사님은 소문과 다르지 않군요.”
“소문?”
“육진 백성들 중에 태건 부사님에 대해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다들 경흥부 사람들을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아십니까? 강외로 영토를 넓혀 넓은 농토를 확보한 것뿐만이 아니라 만사를 공평무사하게 처리한다고 소문이 자자······.”
김수군의 말이 길어지자, 태건이 말을 잘랐다.
“그럼 내게 투항한단 말은 곧······.”
“강외에 주둔하는 경흥부 병력은 독립적으로 움직인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왜적을 축출하고 나면 저와 우리 병사를 모두 강외로 보내 주십시오. 그러면 태 부사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어허! 충성이라니. 외람된 말이네.”
“죄, 죄송합니다.”
김수군은 매우 현명한 제안을 한 셈이었다. 사후 강외로 빠져 나가면 조정의 추궁을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즉 도피처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미 반도로 낙인찍힌 이상, 자신뿐만이 아니라 가족도 언제든 참수당하는 참극을 겪을 수 있다. 말이 많은 조선 조정이 정상을 참작해 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좋다. 수락한다. 앞으로 내 휘하에서 움직이다, 왜적을 물리치고 나면 항병들과 그들의 식솔들을 이끌고 강외로 이동하게. 거기서 할 일이 많을 거네. 땅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고.”
“고, 고맙습니다. 부사 나리!”
“경원부 휘하 진지를 장악한 토관들도 설득해 줄 수 있나?”
“예, 당연히 제가 할 일입니다.”
김수군은 크게 기뻐했다.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가 오히려 행운을 잡은 셈이었다. 태건은 원희를 불러 회담 결과를 설명했다.
“좋소. 피를 흘리지 않고 진압한 셈이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지. 더구나 사후에 강외로 나가 산다고 했으니 골치 아픈 일이 사라져 좋고. 설마 조정에서 강외로 나가 잡아 오라고 하겠소?”
“그렇긴 하죠. 그럼 입성하실까요?”
“좋소.”
김수군이 돌아가 회담 결과를 전하자 성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연이어 성문도 활짝 열렸다.
태건과 함께 원희가 성으로 들어서자 김수군이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했다. 원희 역시 흔쾌히 그의 사죄를 받아 주었다. 어차피 서로 피를 본 상황도 아니었기에, 괘씸할지언정 원한은 없었다.
* * *
태건은 피오성 병력을 경원성 밖에 주둔하게 한 뒤, 원희와 함께 병력을 이끌고 온성으로 향했다. 경원에서 반란을 일으킨 병력을 다시 원희가 맡았지만, 사전에 약속한 바에 따라 태건의 명에 따르기로 했다. 이제 원희는 본격적으로 태건의 부장 노릇을 하게 된 셈이었다.
태건은 이동 중에도 온성은 물론, 종성과 회령 등지로 계속해서 정찰병을 파견해 정보를 수집했다. 병력이 온성 읍성 동남쪽에 자리한 황척파보에 이르렀을 무렵, 정찰대원이 돌아와 놀라운 소식을 전해 줬다.
“회령에 머물던 가등이 조선군 천 명과 왜병 삼천을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야인의 땅으로 정벌을 떠났습니다.”
“뭐라? 야인의 땅으로? 그게 말이 되는가?”
원희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정찰대를 지휘하는 권관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회령이 가장 중요한 곳이라, 직접 그곳을 다녀온 그였다. 태건은 미소를 머금었다. 자신으로 인해 어쩌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가토 기요마사는 어김없이 두만강을 건넜기 때문이다.
태건은 가토가 원정을 떠난 사실 말고, 다른 부분에 집중했다.
“조선군이 천이라고?”
“그렇습니다. 분명 천이었습니다.”
태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이하륜이 다가와 태건을 한쪽으로 끌고 갔다.
“원래 이천 아니었나?”
“기록을 모두 믿을 수는 없지. 또 저 권관이 직접 보았다고 하니······.”
“우리 때문에 조금 바뀐 거 아닐까?”
이하륜이 제법 타당성 있는 가설을 제기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렇다면 회령의 국경인이 원래 보유한 병력 규모가 오천이 맞을 거다. 터무니없는 숫자라 생각했는데, 육진 병력 상당수가 회령으로 모여들었나 보네.”
국경인이 보유한 오천 병력이라면 충분히 회령을 지켜 낼 수 있으리라 여기고, 가토가 과감히 출정했다고 판단했다. 태건과 이하륜이 돌아오자 원희가 물었다.
“왜장은 우리 군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모양이오?”
“그럴 가능성도 있지요. 또 여러 고을을 거저 얻었으니, 아직 항복하지 않은 고을이 있다고 해도, 경시했을 겁니다. 나중에 토벌하면 된다고 생각했겠죠.”
“그런데 왜 야인 땅으로 넘어갔을까?”
“후후! 지금 왕 놀음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왕?”
“함경도는 곧 자기의 영지. 그러니 앞날을 위해 함경도 변방을 어지럽히는 야인들을 선제적으로 토벌하려 했겠죠.”
“휴!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요. 일개 왜장이 조선에 들어와 왕 노릇 할 생각하다니.”
“더 큰 문제는 백성들이 그걸 용인하는 걸 넘어, 적극적으로 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태건은 몹시 딱딱한 어조로 대답했다. 원희 역시 직접 겪었기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다 우리의 허물에 기인한 것이오. 조정도 잘못했고, 이제껏 부임해 온 변장들도 모두······.”
두 사람이 정보를 분석하고 있는 동안 다른 정찰병들의 보고가 연이어 들어왔다.
“국경인의 숙부, 국세필이 경성부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왜장이 그자를 부사로 임명했답니다.”
“정말수가 명천의 지방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가토 기요마사가 여진족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미 실행된 사안이었지만 정찰병들은 이제야 그 사실을 파악하고 돌아와 보고했다.
가토는 차근차근 함경도를 자신의 영지로 만들기 위한 단계를 밟아 나가고 있었다. 함경남도에 주둔 중인 부장들은 벌써 합법적으로 조세를 걷을 준비를 마쳤고, 재정의 원천인 은을 얻기 위해 단천 은광을 개발할 계획도 세워 두었다. 단천 은광은 조선 최대의 은광산이라, 일본 측도 익히 알고 있었다.
태건은 다시 군을 움직여 온성 읍성에 도착했다. 온성은 한반도 최북단에 자리한 지역으로, 강내와 강외 지역에 수많은 번호 마을이 자리했다.
온성 부사 이수가 회령에서 포로가 되어 있다 보니, 토관들은 별다른 충돌 없이 온성을 차지했다. 하지만 경흥부의 대군이 몰려오자 즉시 성문을 열어 주었다. 이들이 반역을 꾀하기로 결의했다 하더라도 아직 행동으로 옮긴 바가 없으니, 죄를 추궁할 이유도 없었다.
태건은 온성에서 잠시 주둔하며 종성과 회령의 동향을 살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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