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57
57화. 변방에 드리운 암운 (3)
태건이 순찰사를 구해 준 셈이었다.
윤영은 태건이 다가와 인사하자,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더구나 초면인데도 태건이 자신을 알아본 점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 그래요. 반갑소.”
“순찰사 영감. 어명을 받들어 오셨고, 중차대한 임무를 맡은 점, 저도 잘 아오나··· 지금은 가등청정의 왜군을 추격하는 게 더 시급한 상황입니다.”
“아, 얘기 들었소. 대승했다고. 그들은 지금 어디 있소?”
“반나절 거리 안쪽입니다. 그러니 얘긴 차차 나누기로 하고, 일단 우리 군과 동행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조, 좋소. 그럽시다.”
윤영은 백성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좋았다. 그래서 평소 같으면 자신을 홀대한다고 불만을 표했을 상황이지만 오히려 태건의 제안에 감사하며 흔쾌히 응했다.
태건은 정강빈을 불렀다.
“순찰사 영감을 모시게.”
“예. 장군.”
정강빈은 윤영 일행을 변장들과 정문부 등이 있는 우군 쪽으로 안내했다. 현재 우군이 후위를 담당하고 있어, 그들과 같이 있는 편이 훨씬 안전했기 때문이다.
행렬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길주 주민들은 조정에서 태건의 상관 노릇을 할 자가 파견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챘고, 이 소식 또한 태건의 형모와 업적에 덧붙여져 순식간에 함경도 전역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워낙 많은 인파가 운집했기에,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깃거리가 생성되어 방방곡곡 넓게 퍼져 나갈지 능히 짐작할만했다.
길주를 빠져나가자마자 태건은 행군 속도를 더욱 높였다.
정찰병들이 돌아와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왜군 패잔병이 해정창에 이르렀다고 보고했다.
“해정창에 이르렀다면, 단천이 멀지 않았다는 말인데······.”
현재 가토의 부장, 쿠키 히로다카가 단천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보유 병력이 많지 않기 때문에, 더 남쪽에 주둔 중인 나베시마 나오시게가 병력을 얼마만큼 이끌고 오는지, 되도록 빨리 파악해야만 다음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그래서 태건이 정찰대장에게 다른 명령을 전하려는 순간, 이하륜이 손을 들어 전방을 가리켰다.
* * *
두만강 변에 자리한 종성 읍성.
종성의 방어를 맡은 부여과 한치구는 각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보고를 듣고 발을 동동 굴렀다. 종성 본성도 어떤 위기에 처할지 몰라, 아예 문루로 올라와 있었다.
“야인 놈들이 정말 미쳐 날뛰는군.”
현재 종성부가 관리하고 있는 동관진과 방탄보, 세천보 모두 함락 위기에 빠진 상태였다. 이들 모두가 두만강 변에 자리해 있어 가장 먼저 야인들의 목표가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여러 두만강 지류 유역에서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강내 번호들의 터전마저 침략자의 목표가 되었다.
침략자들은 이번에 수확한 곡식들을 모조리 약탈하고, 심지어 사람까지 잡아가고 있었다. 다음 차례는 각종 방어 시설에 들어가 거주 중인 조선인이었다. 이들 진과 보가 함락되면 조선인 주민도 위험에 처하게 된다.
종성이 위기에 빠지게 된 이유는 풍선 효과 때문이다. 원래 노토 부락 병력은 회령을 노렸는데, 회령군이 항왜병까지 합세해 막아 내자, 종성으로 공격 방향을 튼 것이다.
“온성은 괜찮을까요?”
토관 문관 직 중 하나인 정7품 전사 박웅이 물었다.
“거긴 남눌이 문제일 거 같은데? 태건 부사님이 남눌을 건드렸으니, 지금 독이 바짝 올랐겠지. 뭐, 지금 변방에서 경원과 경흥을 제외하고 안전한 곳이 있을까? 응?”
“헉! 야, 야인 병력입니다.”
“가만, 저자들은 번호 이라대 같은데?”
“또 한 무리가 있습니다. 아, 휴악 부락의 역수입니다.”
토관들은 주변 번호들의 복장과 깃발만 보고도 출신지를 알 수 있었다. 한치구와 전사가 말한 이라대와 역수는 추장의 이름이었다. 역수가 이끄는 무리는 종성 부근으로 이주해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번호로 흉포하기 짝이 없는 자였다.
땡땡땡땡!
경계병도 여진족 병력을 발견하고 경종을 울렸다. 종성 읍성 병사들은 이미 무장한 채 대기 중이라, 금세 자신이 맡은 자리를 찾아갔다.
“또, 또 옵니다. 아, 노토 부락 놈들입니다.”
노토 부락 병력은 서남쪽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아, 그럼 방탄보가 함락되었다는 말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노토 부락 대추장 로툰이 종성 주변 번호들을 선동한 게 분명했다. 그래서 이렇게 협공을 가해 온 것이다.
“전투 준비!”
한치구는 읍성 수성군에게 전투에 대비하라 명령했다.
“끝까지 버텨보자. 버티다 보면 경흥에서 원군이 올 것이다.”
한치구는 우렁찬 목소리로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이윽고, 종성 읍성의 조선군 병력과 여진족 간에 생존을 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종성의 조선군은 용감하게 싸웠다. 처음엔 화살로 적을 공격했지만, 화살이 다 떨어지자 이제 본격적인 수성전에 들어갔다.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넘어오는 여진인들을 검으로 창으로, 베고 찔렀다. 그러나 아무리 육진 조선군이 용맹해도 절대적인 수적 열세는 도저히 극복할 수가 없었다.
결국 종성은 몇 시간 만에 함락되고 한치구 이하 조선군 삼백은 전멸을 면치 못했다. 아울러 성내의 조선인 재산은 약탈당했고, 꽤 많은 주민이 포로로 잡혀 저들의 본거지로 이송되었다.
“이런··· 너무 늦었군.”
뒤늦게 구원병을 이끌고 종성에 도착한 경흥부 수성군 제1대대장 김무정은 이미 함락당한 종성 읍성의 모습을 보고 크게 탄식했다.
경흥부는 주변의 적대적 번호 세력이 완벽히 정리된 데다, 강내 번호들의 충성도도 남달라 적은 병력만 남겨 두고 와도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종성부에서 구원병을 보내 달란 급보가 오자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거리가 멀다 보니 제때 도착하지 못한 것이다.
“제길! 죽일 놈의 왜적 때문에······.”
종성과 같은 큰 성이 여진인들에게 함락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왜군의 침략으로 육진의 균형과 질서가 무너지자, 실제 그 일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김무정은 전령을 뽑아 태건에게 보내 이 사실을 알리게 했다.
“우린 온성으로 간다. 하지만 온성도 성치 못할 것 같구나.”
김무정은 병력을 북쪽으로 이끌었다.
* * *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파였다.
이들은 갑산과 단천 방면에서 온 이주민들이었다. 이들 중 의병으로 자원하려고 온 장정도 꽤 많이 섞여 있었다. 현재 의병 규모는 꾸준히 불어나는 중이다. 당장 길주와 명천에서도 수많은 의병이 자원해 태건 군의 행렬을 따라붙은 상태였다.
태건은 잠시 행군을 멈추고, 이들과 얘길 나눈 덕분에 왜군의 동향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마천령에서 대치하게 될 것 같은데?”
태건은 모든 정보를 종합해 볼 때, 해정창 남부 마천령이 전선이 되리라 예측했다.
“마천령이요? 크크! 성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간다고?”
이하륜이 웃으며 속삭였다.
“마천령이 요충지니까 그렇겠지. 왜군도 공성전을 해 봐야 의미 없다는 걸 알았을 테니까, 험한 지형에 의지해 싸울 것 같다.”
“원 부사가 오네요.”
원희가 말을 몰고 다가오자, 이하륜이 군례를 올렸다.
“지금까지 추가로 합류한 의병의 수가 무려 이천이 넘었소. 출신지는 길주와 명천, 갑산, 단천, 함흥 등 여러 고을이오.”
“그럼 의병만 4천이네요?”
“그런 셈이지. 그래서 정현룡 부사와 의병을 나눠 지휘하면 좋겠는데.”
“그러시지요. 그럼 정현룡 부사가 맡을 의병 부대를 후군으로 분류하겠습니다.”
“허허! 좋소. 그런데 말이오.”
원희는 길가에 앉아 쉬고 있는 이주민 무리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저 이주민들··· 너무 많지 않소? 아무리 봐도 왜군의 패색이 짙어지니까, 조정의 보복이 두려워 길을 떠난 것 같은데, 저들을 수용할 수 있겠소?”
원희는 정세를 정확히 읽고 있었다. 함경도민 대부분이 왜군 측에 협조한 전력이 있다 보니, 오히려 조선군이 승리하자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마디로 다른 형태의 피난인 셈이다.
태건은 씁쓸하게 웃었다. 자신의 존재로 인해 실제 역사에서 일어나지 않은, 이상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 모두가 태건이 대안을 마련해 놓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조정과 척을 지은 이상, 백성들은 차라리 강외 영토로 들어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겁니다. 얼마 전, 경흥에서 전갈이 왔는데, 북콜칸 인들이 대거 귀부를 요청했답니다. 그러니 저들을 수용할만한 토지는 차고도 넘치지요. 훈춘평도 여전히 많이 비어 있고, 훈춘 부락과 콜칸 북부로 거주지를 늘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대안이 있으니 다행이구려.”
원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동쪽을 힐끔 살피다 다시 태건을 바라보았다.
“순찰사 말이오.”
“예?”
“아무리 봐도 태 부사를 싫어하는 것 같소. 안 좋은 쪽으로 유도하는 질문을 계속 던지더군.”
“후후! 그렇습니까?”
“그럴 줄 알고 있었소?”
“예.”
“하긴··· 행대어사를 보내, 없는 죄도 추궁하려 했던 조정이니.”
원희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너무 심한 거 아니오? 함경도를 구한 큰 전공을 세운 무장을 벌써 깎아내리고 흠잡으려 하다니.”
“뭐, 다른 말은 없었습니까?”
“두 왕자의 구출 문제를 얘기하더군. 지엄한 어명이라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고. 근데 아무리 봐도 태 부사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구실에 불과한 거 같소. 도대체 무슨 수로 왕자들을 구출한단 말이오. 분명 함흥이나, 영흥, 안변 같은 남쪽 깊은 곳에 데려다 놓았을 텐데.”
원희는 이제 완전히 태건 편이나 다름없는 태도를 보였다. 거침없이 국왕의 처사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태건 편을 들지는 미지수였다. 가문이나 파벌 등 여러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또 있소. 태 부사를 북병사로 제수함이 마땅하다는 장계를 올린다고 했소. 그리고 외람되게도 날······.”
“감축드립니다. 남병사로 추천받으셨군요.”
“허허! 역시 태 부사의 선견지명은 언제 봐도 놀라울 따름이오.”
“그럼 잘 부탁합니다.”
“에이, 아직 정식 임명된 것도 아니지 않소.”
“그럼 순찰사 영감은 관찰사가 되는 겁니까?”
“그럴 것 같소. 이미 그런 언질을 받고 왔답니다.”
“음, 알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순찰사가 장계를 올리기 전에 우리가 먼저 올리는 게 좋을 것 같소만. 어찌 생각하시오? 순찰사가 올리게 되면 그간 우리가 치른 그 수많은 전투와 장졸들의 전공이 왜곡될까 저어되어 하는 말이오. 우리가 먼저 장계를 올렸다고 알리면 순찰사도 제 할 일만 하겠지. 감히 승첩 부분까지 가감해서 기록하진 못할 테니까. 그러니 북평사 정문부의 기록을 첨부하는 식으로 해서 내가 작성해 올려도 되겠소?”
원희의 이 제안은 매우 합리적이었다. 또한 태건이 군을 이끌고 있지만 엄연히 원희가 상관이었다.
“좋습니다. 전 상관없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하륜이 끼어들었다.
“이제 출발해야 합니다.”
“좋아. 바로 가자고.”
태건 군은 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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