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58
58화. 육진으로 돌아오다 (1)
원희가 후위로 돌아가자 이하륜이 다가와 속삭였다.
“웬일이래? 북병사 직을 준다니?”
“간단하다. 날 치려고 꾸민 일이겠지. 국왕이 결심을 굳힌 모양이다.”
“그거, 순찰사가 이쪽으로 오기 전에 왕이 미리 언질을 줬겠지?”
“내 생각도 그렇다.”
“휴! 큰 권한과 책임을 지운 다음, 그만큼 혹독하게 문책하겠다는 뜻이군.”
이하륜도 국왕의 의도를 바로 이해했다.
“지금 신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는 시점이잖아?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 육전에서 권율, 황진 장군에 곽재우 장군을 비롯해, 지금쯤 유명을 달리하셨을 고경명 같은 명망 있는 의병장에······.”
“거기다 형까지. 크크!”
“황망히 의주로 도망간데다, 제 혼자 살겠다고, 요동으로 들어가겠다며 떼를 썼던 왕이다. 근데 그 왕이 성정에 비해 머리만큼은 그리 나쁘지는 않거든. 영웅으로 떠오른 신하들과 국왕 자신을 백성들이 비교할 거란 사실을 모를까? 그러니 발작이 시작된 거지. 그중에 함경도 쪽이 한결 부담이 덜하니까 반드시 우릴 치려고 할 거다.”
태건은 매우 논리정연하게 국왕의 심리를 예측했다.
“아오, 짜증 나! 이거 서러워서 어디 일하겠나?”
“뭐, 예상한 바잖아? 일단 우린 나베시마 군의 예봉부터 꺾어야 하니까 빨리 움직이자고.”
“예, 형님.”
말을 마친 태건은 행군 속도를 올리라 지시했다.
태건의 예상대로 조선군과 일본군은 마천령에서 또다시 큰 전투를 치르게 되었다. 가토의 부장 나베시마가 끌고 온 병력은 모두 사천오백이었다. 여기에 가토의 패잔병 천오백이 더해져, 육천 명으로 불어났다.
태건은 마천령에서 왜군 진영에 치명적 타격을 가하면, 앞으로 가토 기요마사가 끌고 온 왜군 2군 전체가 지리멸렬해지리라 예상하고 강하게 밀어붙이기로 했다.
이제 조선군의 규모는 무려 일만 명에 달하게 되었다. 이들 중 의병이 4천이나 되나, 관군의 전력이 막강해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태건은 의병으로 구성된 우군과 후군에, 날개를 펼치듯 마천령을 남북으로 넓게 포위하라 지시했다.
조선군의 수가 훨씬 많다 보니, 왜군은 불가항력으로 삼면이 포위당하는 상황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공격 진형이 완성되자, 태건은 화포와 편전 등 원거리 무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화포의 경우 의병이 진을 친 능선으로 끌어올려, 위에서 내려다보며 공격하게 했다. 그 때문에 왜군 진영은 전투 초반부터 큰 혼란에 휩싸였다. 진지 전체가 화포에 노출되는 바람에 피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결국 가토 기요마사는 수적 열세에 따른 전력 차를 통감하고 곧바로 단천으로 후퇴했다. 가토의 결정이 빨랐던 이유는 지난번에 매복에 걸려 고생한 경험 때문이다. 그 덕분에 태건의 계획과 달리 꽤 많은 병력을 유지한 채 후퇴할 수 있었다.
가토는 태건 군이 보유한 무시무시한 공성 무기의 위력을 고려해 단천 읍성도 포기했다. 그래서 택한 전선이 바로 단천과 이성현 ― 후세에 이원현으로 바뀜 ― 사이에 있는, 마운령이란 매우 험준한 산지였다.
* * *
태건이 마운령에 진을 친 왜군을 상대할 전술을 짜려고 한참을 골몰할 때였다.
육진에서 엄청난 소식들이 연이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회령부에서 보낸 전령이 가장 먼저 도착했다.
“항왜군이 합세한 덕분에 각 진보와 회령성을 무사히 지켜 냈습니다만, 오도리 부족을 비롯한 강내 번호들의 피해가 막심한 상황입니다. 아울러 회령에서 패한 적병들이 종성으로 이동 중이니, 종성으로 곧 불똥이 튈 것 같습니다.”
“노토 부락이 종성도 노린다고? 본거지에서 그렇게 먼 곳까지?”
“예. 그래서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점령이 아니라 약탈이 목적이네요.”
이하륜은 노토 부락의 의도를 추론해 보았다.
“아니면 서로 짰던지.”
“음, 그럴 가능성도 있군요.”
태건은 전령에게 휴식을 명하고, 육진 지도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곧이어 또 다른 전령이 도착해 그의 상념을 방해했다. 경흥부 수성군 제1대대장 김무정이 보낸 전령이었다.
“뭐라! 종성부가 야인들한테 떨어졌다고?”
태건은 소스라치게 놀라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의 지식에 없는 비극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자세히 말해 보라.”
전령은 그간 있던 일을 상세하게 보고했다.
“그러니까 동량개 부락 추장 이라대와 휴악 부락 추장 역수가 이끄는 병력에 노토 부락 병력까지 합류해 협공했다?”
“그렇습니다.”
“심각하군.”
태건은 진태종에게 즉시 모든 장수들을 소집하라고 지시한 뒤, 먼저 순찰사를 만나 보기 위해 군막을 나가려 했다. 그런데 정강빈이 또 다른 전령을 데리고 급히 군막 안으로 들어왔다.
“장군! 전령입니다. 김무정 대대장이 또 보냈습니다.”
전령은 간단히 인사를 한 뒤, 즉시 보고했다.
“온성 읍성이 함락당했습니다. 미전보와 유원보, 영달보도 넘어갔습니다. 경원과 가까운 황자파보만이 건재한 상황입니다.”
“오, 온성까지 당했다고? 누구 소행인가?”
“정확히 모르겠으나, 주변 번호들의 전언에 따르면 남눌올적합 같답니다.”
“번호들은 어떤가?”
“그들 역시 피해가 큽니다.”
가야하 하류와 온성 북쪽 건너편 마을에 거주하는 남둘루 부족의 소행임이 분명했다.
“이놈들이 감히 육진을 노려?”
태건은 시퍼런 안광을 쏘아대며 이를 갈았다.
곧바로 열린 지휘관 회의. 종성과 온성이 강외 야인들에 의해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장수들은 크게 분노했다. 특히 종성 부사 정현룡이 그랬다.
“으··· 이라대와 역수! 그 잡놈들이 언제고 마각을 드러낼 줄 알았지.”
마음이 급한 태건은 즉시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전 육진 병력을 이끌고 회군하겠습니다. 지금 회령 주둔군과 경흥부 수성군이 종성과 회령 중간에 자리를 잡고 적도의 남진을 막고 있으나, 그 방어선이 언제 무너질지 모를 일입니다. 거기가 무너지면 행영과 회령도 위험에 처합니다, 게다가 변경 마을의 식량을 모조리 약탈당했고, 포로로 잡혀간 조선인의 수도 거의 수백, 수천에 달한다고 합니다. 빨리 손을 써야 합니다.”
원희는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변장들도 태건의 결정을 이해해 주었다. 하지만 순찰사 윤영만은 그렇지 못했다.
“안 될 말이네! 두 왕자분을 구출하라는 어명이 떨어졌는데, 어찌 북변으로 간단 말인가?
순찰사는 종2품 관직이라,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가장 직위가 높았다.
“더구나 왜적의 숨통을 끊기 직전이지 않나? 그러니 더욱 함경도 전역을 탈환한 다음에 움직여야 하네.”
“그러면 너무 늦습니다. 육진 전체가 오랑캐의 땅이 될 겁니다.”
“함경도 남부 백성도 왜적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지 않나?”
순찰사의 주장은 이 부분에서 설득력을 잃었다. 왜군은 군량 조달에 문제가 생긴 이후부터 약탈을 시작했으나 현재는 그렇지 않았다. 가토가 여전히 함경도를 제 영지로 여겼기 때문이다.
“순찰사 영감. 육진 군이 빠져나가도 대략 오천이나 되는 병력이 남게 됩니다. 아울러 지금도 계속해서 의병이 합류하고 있으니, 군을 나눠도 문제없을 겁니다.”
원희가 태건의 입장을 두둔하고 나섰다.
“어허! 안 될 말이오. 어명이 우선 아니오?”
“순찰사 영감. 다른 면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일가붙이가 위험에 처했는데, 육진에서 내려온 병졸들이 과연 제대로 싸우겠습니까? 그들의 회군을 막는다면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가뜩이나 함경도 민심이 사나운데, 육진 백성을 그냥 포기하는 모습까지 보이면 더 이상 의병도 합류하지 않을 것이고, 백성들의 도움도 얻지 못하게 됩니다.”
북평사 정문부가 현실을 고려하라고 조언했다. 그러자 윤영의 생각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길주에서 겪은 일이 생각난 것이다. 더구나 조선에서 가장 강한데다, 사납기로 유명한 육진군이 창끝을 돌리면, 그 자신도 살아남기 힘들 것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흠. 육진군이 반발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윤영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태건을 보며 말했다.
* * *
원희와 정문부가 공동으로 작성해 올린 장계가 도착하자, 의주 행궁 전체가 들썩거렸다.
“감축드립니다. 전하! 기세등등했던 왜장 가등청정의 기세도 이제 완전히 꺾인 것 같습니다.”
“부령과 경성, 명천, 길주에 이어 단천까지, 무려 다섯 고을을 탈환했으니 이 어찌 쾌거라 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경흥 부사 태건을 비롯한 장수들의 공이 크니, 후하게 포상하고 지위도 올려 주소서.”
평안감사 이원익과 병조판서 이항복이 차례로 나서서 의견을 말했다. 국왕은 애써 웃어 보였지만, 얼굴에 알게 모르게 그늘이 져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나?”
“경흥 부사 태건의 지위를 대폭 올려, 북병사로 봉해 육진군을 지휘케 하소서. 현재도 그리하고 있으니 자격은 차고도 넘칩니다. 아울러 강외 영토를 다스리는 역외둔전사란 직위를 정식으로 신설, 그 관직을 겸하게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이항복은 거침없이 자기의 생각을 밝혔다.
“음, 숙고해 보겠다.”
국왕은 누군가 반대하는 의견을 내길 바랐다. 하지만 대소신료들이 모두 태건을 칭송할 뿐, 누구도 나서지 않자 일단 보류해 두었다.
그런데 그런 국왕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어왔다. 며칠 후, 순찰사 윤영의 장계가 올라온 것이다.
윤영의 장계는 국왕의 입맛에 딱 맞아떨어지는 내용들로 그득했다. 특히 조정에 대한 함경도 백성들의 민심이 흉흉하나, 육진군을 대할 때는 크게 달랐다는 대목이 그랬다. 윤영은 이 상황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즉 태건을 콕 짚어 말하지 않았지만, 그를 경계하라는 의도가 담겨 있는 문장이었다.
신하들의 대부분은 윤영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고, 크게 탄식하며 함경도 민심을 탓하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국왕과 윤영이 사전에 말을 맞췄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용이 공교로웠고, 그걸 간파한 신료도 몇몇 있었다.
장계의 마지막 부분은 더욱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오랑캐가 대거 발호함에 따라, 태건이 육진 병력을 이끌고 북으로 회군했다는 대목을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육진 전체가 위험에 빠진 상황이니 육진군의 회군은 타당한 일입니다. 순찰사도 이를 이해하고 결국 허락해 주지 않았습니까?”
“소신의 견해도 같습니다. 왜군도 외적이고, 오랑캐도 백성을 해치는 외적이니 어느 한 곳만 위한다면 함경도의 민심은 더욱 흉흉해질 겁니다.”
공조판서 한응인과 병조판서 이항복이 차례로 나서 태건의 처사를 옹호해 주었다. 하지만 태건 탄핵에 앞장을 선 적이 있던 다른 관료들의 견해는 달랐다.
“임해군과 순화군을 구출하라는 어명을 내렸는데, 태건은 이를 무시하고 회군했습니다. 전쟁 중에 임금의 명을 어긴 행위는 중대한 범죄에 해당합니다. 선전관을 보내 그를 잡아들여 엄하게 문초하소서.”
그런데 국왕은 예상 밖의 반응을 보였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더구나 태건은 큰 공을 세우지 않았는가? 그러니 이번에 경성과 마천령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장수들을 포상함이 마땅하다.”
국왕은 태건과 측근들을 적극적으로 포상하고 직위를 올려 주었다. 아울러 원희를 남병사로, 정현룡을 남병영 병마우후, 정문부를 남평사로 임명해 이들이 남부군을 이끌고 왜군에 맞서게 했다.
임금이 선심 쓰듯 거침없이 하사하는 포상을, 이항복은 오히려 위험 신호로 받아들였다. 평소 그의 성정과 다른 행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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