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60
60화. 휴악 부락 토벌전 (1)
함경도 이성현 동부 마운령 전선.
태건이 육진군을 인솔해 회군한 이래, 남병사 원희가 지휘하는 남부군과 가토 기요마사 군의 공방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원희는 태건과 같은 전술을 구사했다. 주변 고을에서 지자총통과 현자총통을 모조리 걷어 와서 화포 부대를 편성했고, 편전도 적절히 활용했는데 꽤 효과가 좋았다. 하지만 번번이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벌써 여러 차례 9부 능선을 넘어 적진지를 코앞에 두었지만, 그때마다 왜군의 철포 부대에 당해 군을 물려야 했다.
원희는 잠시 공세를 멈추고 다시 병력을 재편성하기로 했다. 그간 누적된 피해 때문이었다.
윤영은 이처럼 전선이 고착되자 초조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는 국왕의 뜻에 따라 함경도 관찰사 겸 도순찰사로 승진해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게 되었다. 하지만 권한이 큰 만큼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게 문제였다. 국왕의 성품으로 볼 때,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심문하려 행대어사를 보내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틈만 나면 남병사 원희를 괴롭히게 되었다.
“정말 방법이 없나?”
“휴! 더 많은 의병이 합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앞세워 공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감.”
윤영이 새로 제수받은 도순찰사는 종1품 직위이기에, 그는 이제 영감이 아닌, 대감으로 불렸다.
“벌써 천이 더 늘지 않았소?”
“그렇긴 합니다만, 또 그만큼 잃는 바람에······. 하지만 왜적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저들도 각지에 흩어져 있던 군세를 모아서 병력을 보충하고 있을 테지요. 그런 면에서 우리가 헛고생만 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주상 전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 북병사 태건의 사례와 비교하지 않겠소? 태건은 했는데, 왜 너희는 못 하냐고.”
비록 상상이나, 뼈아픈 지적이다. 국왕의 입장이라면 능히 그럴 만하기에 원희도 순순히 인정했다.
“휴, 그렇겠지요.”
“그러니 태건의 육진군을 불러들여야 하지 않겠소?”
“지금 한창 야인을 토벌하고 있지 않습니까? 더구나 실상을 알고 보니 더 위중하더군요. 늘 말썽을 피우던 노토 부락과 동량개 부락이야 그렇다 쳐도, 남눌과 니마차까지 합세하지 않았습니까? 또 강외 북동쪽 변경에서 솔빈도 준동하고 있고요.”
윤영은 원희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멀뚱멀뚱 원희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사납고, 세력이 강한 야인들과 싸우고 있다는 말입니다. 전과 비교도 안 되게요.”
“그, 그런가?”
“더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이 찾아올 겁니다. 여기야 완연한 가을 날씨이나 육진엔 겨울이 금방 옵니다. 또 눈도 많이 내리기 때문에 군을 움직이기도 어렵지요. 그러니 못 온다고 봐야 합니다.”
“어허! 그럼 더욱 당장 불러들여야 하지 않나?”
원희는 그저 한숨만 쉬었다. 그 역시 태건이 오면 단숨에 마운령을 돌파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자존심 문제도 걸려 있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내가 주상 전하께 주청해 보겠소.”
“예? 장계를 올린다고요?”
“그 수밖에 없지 않나? 내가 부르면 그 오만하고 고집 센 태건이 부름에 응하겠냐 말이오.”
“그럼 장계를 올리기 전에 먼저 불러 보시지요.”
“됐네. 시간 낭비일 뿐이야.”
윤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자신의 숙소로 들어가 장계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 * *
태건은 김무정의 수성군 제1대대를 먼저 경흥으로 복귀시킨 다음, 병력을 이끌고 종성으로 향했다.
현재 육진군은 회령에 남아 있던 병력을 포함, 그 수가 무려 9천으로 불어난 상태이다. 무산진과 경흥부 그리고 강외 영토의 수비를 담당하고 있는 병력을 제외한, 태건이 가용한 병력만 9천이었다.
태건은 이들을 좌군과 우군, 중군으로 재편성했는데, 부대마다 기병 500기와 항왜병 500명씩 할애해 모두 삼천씩 배치했다. 아울러 조선통신사 동료였던 현양건을 비롯한 일본어 통역관도 붙여 주어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게 했다.
좌군 대장으로 최철주를 임명하고 이들에게 회령성과 주변 지역의 수비 임무를 부여했다. 노토 부락과 경계를 접하고 있는 회령부를 단단히 지키는 것만으로도, 노토 부락을 견제하는 효과가 있어 삼천이나 되는 병력을 배치한 것이다. 그리고 중군은 태건 자신이, 우군은 이하륜이 맡았다.
이제 중군과 우군의 육천여 병력이 기세 좋게 북상, 고령진을 지나 종성의 방탄보에 이르렀을 무렵이다.
“장군! 방탄보를 점유했던 적도들이 종성으로 도주했습니다.”
정찰을 맡은 군관이 돌아와 태건에게 보고했다.
“잘됐군.”
“우리 군세가 두려웠나 봅니다.”
이하륜이 웃으며 말했다.
“병력이 많으니 좋은 점도 있군.”
“응? 누가 저렇게 허겁지겁 달려오지?”
이하륜은 남쪽에서 말달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선전관 같다.”
“앗, 그럼?”
태건의 예측대로 황급히 태건 부대를 따라온 이는 조정에서 보낸 선전관이었다.
선전관이 가까이 오자 태건의 부하들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순찰사 윤영과 의견 다툼을 벌인 사실을 이들도 이미 숙지하고 있었다.
“경흥 부사 태건은 어명을 받으시오.”
태건은 여유로운 미소를 짓더니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었다. 선전관은 꽤 당당한 태도로 교지를 읽어 내려갔다.
“···왜장 가등의 군을 격파하고 함경도 여러 고을을 탈환한 공이 매우 큰 바, 경흥 부사 태건을 가선대부,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겸 함경북도 수군절도사에 봉한다. 또한 새로 개척한 영토를 관리하는 역외둔전사 관직을 신설하고, 그 직을 겸임케 하노라.”
한마디로 북병사 겸 역외둔전사로 임명한다는 말이었다. 선전관은 강외 영토를 다스릴 관리를 임명하는 권한까지 부여한다는 점도 곁들여 알려 주었다.
“현 조산보 만호 이하륜은 어명을 받들라!”
이하륜이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자, 선전관은 다른 교지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이하륜을 건공장군, 북병영 병마우후에 봉한다.”
병마우후는 종3품에 해당되는 고위급 무관 보직이었다. 선전관은 다른 교지도 꺼내 들었는데, 그 내용이 점입가경이었다. 정강빈은 경흥부 부사로, 송찬황은 경원부 부사로 임명되었다. 심지어 토관 출신인 최철주에게 부령 부사 자리를 줬다.
태건 군 부장들의 전공 역시 정문부의 장계로 인해 조정에 알려졌고, 그 덕분에 이들도 승진하게 된 것이다. 교지를 전달하는 절차가 끝나자 선전관은 다른 어명도 전했다.
“하루빨리 북방 오랑캐의 난을 평정하고, 왜적을 상대하라 하교하셨습니다. 특히 포로가 된 왕자분들 때문에 성려가 큽니다.”
태건은 그저 알았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선전관은 태건 군이 전투를 코앞에 둔 상황이라, 곧바로 돌아갔다.
“아주 대놓고 협박하는군.”
이하륜이 황당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번에 승진한 송찬황과 정강빈도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승진의 기쁨 따위의 감정은 전혀 없었다.
태건을 비롯해 모두가 20대 젊은 나이에 북병사와 병마우후, 도호 부사가 되었으니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파격 승진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이 조치 속에 임금의 감춰진 비수가 있다는 걸 모두가 느꼈다.
“마지막 호의라 보면 됩니까?”
정강빈이 물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잖아?”
이하륜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군요.”
이하륜의 비유가 너무나 정확해, 이런 문제에 둔한 편인 송찬황도 바로 이해했다.
* * *
동량개 부락 추장 이라대는 조선군 대군이 회령에 이르렀다는 급보를 접하자마자, 근처 보를 점령하고 있던 모든 병력을 종성 읍성으로 불러 모았다. 아울러 고라이동에 자리한 노토 부락 계열의 타타라 니탕가 추장에게 사람을 보내 원군을 요청했다. 니탕가는 로툰의 아들로 꽤 큰 세력을 보유한 자였다.
니탕가는 얼마 전 종성 공략전에 참전해 식량과 재물은 물론, 조선인과 번호 포로까지 충분히 챙긴 다음, 본거지인 고라이동으로 회군한 상태였다.
현재 종성 읍성에는 총 이천여 여진 병력이 들어와 있다. 주변의 진과 보에 흩어져 있던 병력을 모으니, 이처럼 읍성이 터져 나갈 정도로 가득 들어차게 되었다. 이들의 대부분은 동량개 부락과 휴악 부락에서 왔고, 일부 주변 번호 세력이 보내 준 병력도 있었다.
“지금 북상 중인 조선군 대군을 이끌고 오는 자가 그 유명한 태건이랍니다. 그 강성하다는 남둘루와 콜칸을 정벌한 자입니다. 그냥 물러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겁에 질린 역수는 이라대에게 즉시 후퇴할 것을 권했다.
사실 그는 태건이 이렇게 빨리 회군할 줄 꿈에도 몰랐다. 조선이 왜군에게 유린당하고 있고, 그 무섭다는 태건의 경흥부 병력이 왜군과 싸우느라 남하했다는 소식을 듣고 신나서 쳐들어왔는데, 어느새 태건이 종성을 탈환하려고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라대는 요지부동이었다.
“어떻게 얻은 종성인데 싸워 보지도 않고 다시 내주나? 니탕가가 구원병을 보내 줄 거다. 그러니 성에 의지해 버텨 보자.”
“니탕가의 원군이 와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강을 건너 돌아갑시다.”
타타라 니탕가가 최대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천오백 명이 넘으나, 그가 과연 원군으로 얼마나 보내 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라대가 망설이는 이유는 종성 읍성이 너무나 탐이 났기 때문이다. 종성을 차지하면 그는 동량개 부락부터 시작해 휴악 부락, 종성에 이르는, 동서로 긴 띠 모양의 영지를 갖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 종성을 무사히 지켜 낸 다음, 중간 지대에 있는 다른 번호들을 윽박질러 모조리 충성 맹세를 받을 심산이었다.
그가 차지하고 있는 동량개 부락과 그 동쪽의 드넓은 할란평 평야 지대 ― 미래의 서전벌 ― 전역을 영지화하면 세력을 얼마든지 크게 키울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종성을 차지하는 게 중요했다. 종성이 조선군에게 다시 떨어지면, 주변 번호들을 굴복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군의 수가 얼마지?”
이라대는 신경질적인 말투로 물었다.
“삼천 정도랍니다.”
“그럼 싸워 볼 만하잖아?”
이들은 조선군의 규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선군 중군과 우군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출발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후퇴 여부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조선군 기마병들이 어느새 종성 읍성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태건이 우군과 중군 소속 기마대 천 명을 먼저 보낸 것이다.
“아, 적 기마병이 천이나 됩니다.”
역수는 기마대의 모습을 보자 경기를 일으켰다.
쉬익!
“커헉!”
기마대의 절반은 두만강 강변 쪽으로 달려가 퇴로를 차단했고, 절반은 성에 접근해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그 화살에 맞아 벌써 몇몇 병사들이 쓰러졌다.
“응사하라!”
이라대가 응사를 명하자 여진족 병력도 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활의 성능상, 사거리 차이가 있어 이들의 화살은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지금 우리 퇴로만 막을 심산입니다. 공격은 그냥 시늉일 뿐.”
역수의 지적에 이라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 같군.”
역수는 발을 동동 굴렀다.
“지금이라도 성을 나가야 합니다.”
“그, 그게 나을까?”
하지만 이라대의 결단은 너무나 늦은 감이 있었다. 어느새 태건 군의 본대가 종성 남쪽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도대체 얼마나 온 거야?”
역수와 이라대는 태건 군의 규모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안 되겠다. 지금이라도 나가자. 빨리 인질부터 잡아!”
이라대는 이런 사태를 대비해 조선인 인질을 잡아 두었다. 노예로 팔아먹기 좋은 장정과 젊은 여자는 먼저 본거지로 보냈고, 남은 이들 중 일부를 인질로 활용하기 위해 성에 남겨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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