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64
64화
동해주 (1)
종성과 온성을 모두 탈환한 태건은 침략에 가담한 소규모 번호 부락들에 대한 응징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경흥 앞 노이도에 사는 차하단 부락이 대상이 되었다. 이 니마차 마을에 대한 토벌은 이하륜의 우군이 온성의 미전보를 점령한 직후 실행됐다. 이하륜은 침략에 가담한 장정들을 포로로 잡고, 이들을 경흥부로 보냈다.
태건의 중군 역시 주변 번호 촌장의 도움을 받아, 강변에 자리한 투정내 부락을 비롯한 몇몇 번호 마을을 토벌했다.
그 일이 마무리되자, 잡혀간 조선 백성들의 소재 파악에 주력했다. 이라대의 동량개 부락과 노토 부락, 가야하 유역에 사는 남둘루 부락을 토벌하자면 철두철미한 준비와 적진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필요했기에, 토벌은 다음 단계의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도리 부족의 일원인 타타라 마치카와 벌이대로부터 피로인들이 잡혀간 곳을 알아냈다는 연락이 오자, 태건은 이참에 그간 계획한 바를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하고, 동맹 관계에 있는 와르카와 콜칸 부족의 대표자 회의를 소집했다.
훈춘의 여러 추장, 즉 피오성 성주 첨터허를 비롯해 국화당 고성의 이아을, 팔련성의 다오가, 석두성의 김수라와 이번에 귀부한 북콜칸 여산 부락의 김아한, 염주평 촌장 유나루커 등을 모두 종성의 행영으로 불러들였다. 아울러 허균과 이하륜도 호출했다.
이들이 모이고 있는 사이 태건은 우군과 중군 병력 일부를 떼어 종성과 온성에 배치하고, 다음 출정을 위해 보급품도 행영에 비축해두기로 했다.
태건이 초대한 이들 중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오도리 부족의 마치카와 벌이대가 먼저 도착했고, 이하륜과 허균이 그 뒤를 이었다.
태건은 먼저 벌이대와 마치카에게 물었다.
“조선인 피로인들은 주로 어디에 있지요?”
“어휴! 너무 많아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마치카는 한숨부터 쉬었다.
“당연히 동량개 부락에 가장 많이 모여 있는데, 추장 이라대가 건가퇴에 자리를 잡은 니마차 추장들에게 선물로 주는 바람에 그곳에도 꽤 많이 가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고라이동을 다스리는 로툰 추장의 아들 니탕가가 서쪽과 서남쪽에 사는 여러 동족에게 조선인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쪽도 여기저기 흩어진 셈이죠.”
“회령도 그렇습니다.”
벌이대는 회령의 강내 번호 문제를 얘기했다.
“무산진 이서 지방에 거주하는 노토 부락 놈들이 우리 오도리 부족민도 많이 붙잡아 갔다고 합니다.”
“조선인을 모두 데려오려면 결국 죄다 토벌해야 한단 말이네? 어휴!”
이하륜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태건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마치카를 보며 말했다.
“소문을 좀 내주십시오. 피로인들을 돌려보내면 선처해 준다고.”
“그러면 이라대와 니탕가도 해당됩니까?”
“그놈들은 대상자가 아닙니다.”
이라대가 언급되자 태건의 눈에서 푸른 안광이 쏘아져 나왔다.
“더구나 피로인들을 선물로 줬다고?”
마치카와 벌이대는 태건이 어느 부분에서 분노하는지 깨달았다. 이 조선 무장은 민간인을 건드리고, 사람을 사고파는 일을 몹시 혐오했다.
“이번 약탈에 참여하지 않은, 피로인만 받은 군소 부락에 한하는 조치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묻겠습니다. 안 그래도 다른 손님들이 다 도착하면 할 말이긴 한데…….”
태건이 정색하며 말을 시작하자, 두 사람은 몹시 긴장했다.
“이번에 우린 동해주를 설립하려고 합니다.”
“동해주요?”
의외의 안건에 마치카와 벌이대는 다소 놀란 기색을 보였다.
“감이 잡히나요?”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조선에서 말하는, 야인 여진 땅을 관리하는 관청을 설립한다는 말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이제 그 동해주에서 조선인과 동해인들이 같이 살게 되었으니, 법이 필요하게 되었지요?”
“그럼 그 법을 제정하는 회동이군요.”
“예, 앞으로 열릴 회의는 일종의 원로회의 같은 겁니다. 복속된 부족이나 씨족은 참가할 자격이 없고, 귀부한 집단의 대표자만 참가할 수 있지요.”
“그럼 조선 조정과 어떤…….”
“뭐, 이번에 역외둔전사 직위를 받긴 했으니까.”
태건은 말끝을 흐렸다. 사실 표면적으로 역외둔전사 직무와 약간 관계가 있으나 본질은 달랐기 때문이다.
“자세한 얘긴 나중에 하고, 일단 하나만 확인하려 합니다. 난 동해주에서 노비나 노예의 존재 자체를 없애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지요?”
태건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허균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그토록 분노하셨군요.”
“예. 군인이란 놈들이 민간인을 건드리는 행위도 용납할 수 없지만, 민간인을 잡아다가 팔아먹는 건 더욱 용서할 수가 없군요.”
“그 때문에 콜칸의 시전 부락 장정이 많이 죽어 나갔지요. 전투에서 겨우 살아남은 자는 노역형을 살고 있고. 앞으로 이라대와 동량개 부락 역시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겁니다.”
허균이 나서서 거들어 주었다.
“음. 그렇군요. 하지만 반발이 클 것 같습니다만. 다들 노예를 재산으로 보고 있으니까요. 그런 조건이 걸려 있다면, 과연 추장들이 앞으로 귀부 요구에 응할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조선도 그렇지 않습니까?”
벌이대가 솔직하게 자신의 견해를 토로하자, 태건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노비를 방면하지 않으면, 두만강을 건너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훌륭하군요.”
마치카는 태건의 일관성 있는 행동에 크게 감탄했다.
“그러면 나중에 얘기를…….”
똑똑!
태건이 다시 말을 이어 가려는 순간, 부장 진태종이 문을 두드렸다.
“뭔가?”
“선전관이 도착해서 북병사 영감을 찾습니다.”
“선전관?”
태건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 * *
함경도 단천 남부의 부귀령.
쫓겨온 남부군이 부랴부랴 부귀령 능선에 자리 잡고 겨우 포진을 마치자, 마침내 왜군의 추격이 멈췄다. 조선군의 대패였다. 수백 명이 전사한데다, 후퇴하는 와중에 천 명 가까이 탈영해 이제 병력도 대략 3천 5백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 새벽, 남부군은 마운령 전선에서 왜군의 기습에 크게 당했다.
지금까지 왜군은 진지를 지키며 방어만 했기에 조선군의 경계 태세는 한껏 느슨해져 있었다. 능선을 차지하고 있는, 지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왜군을 앞에 두고 경계 태세가 풀어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오랫동안 성과가 없자 조선군의 사기가 크게 떨어진데다, ‘왜군은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는 학습 효과가 생긴 탓이다.
가토 기요마사의 승부수도 한몫했다.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계속 병력을 잃자, 이번에 안변, 덕원, 문천 등 함흥 남쪽에 배치된 병력까지 대거 불러올리는 승부수를 던졌기에 조선군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속사정을 알 리가 없는 관찰사 윤영은 버럭 화를 내며 남병사 원희를 질책했다.
“이제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 목을 칠 선전관이 당장 내일 온다 해도 할 말이 없잖은가?”
“휴! 면목이 없습니다.”
“그래서 태건과 육진군을 불러와야 한다고 내 몇 번이고 얘기하지 않았소?”
“유구무언이로소이다.”
패전의 책임이 있는 원희는 그저 윤영의 잔소리를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선전관은 태건에게 어명을 전했다.
‘지금 당장 군을 이끌고 남하해 남병사를 도와 왜적을 공격하라.’
어명은 매우 간단했다. 선전관도 어명만 전달한 후, 행영에서 쉬어갈 생각도 하지 않고 훌쩍 떠났다. 그도 조정 관리에 대한 육진의 여론이 험악하다는 말을 들은 바가 있어 제 몸 건사하기 바쁜 것이다.
“어떻게 하지요?”
이하륜이 물었다.
“어쩌긴? 따라야지. 할 일이 태산인데, 조금 그렇긴 하군.”
“꼭 가야 합니까?”
허균이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가야지.”
“여러모로 느낌이 좋지 않은데요?”
“그러니까 더더욱 가야지.”
“흠. 그렇다면야.”
태건과 허균은 마치 선문답하듯, 알 듯 모를 듯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일단 들어가서 얘기해 보세.”
태건은 자리에 앉자마자 지필묵을 준비해 지시사항을 쓱쓱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걸 이하륜에게 건넨 다음, 벌이대와 마치카에게 말했다.
“내가 없더라도 이번 회동에서 반드시 결론을 도출해야 하오. 조선인과 동해인이 같이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니까. 예를 들어 어떠한 경우라도 차별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당연히 들어가야지. 관리가 될 기회, 교육의 기회 등 모든 면에서?”
벌이대와 마치카의 안색이 더할 나위 없이 밝아졌다. 차별은 듣기만 해도 가슴에 욱신거리는 통증을 불러일으키는, 번호에게 생채기나 다름없는 단어였다.
“아울러 공용어와 공용 문자도 정해야 합니다. 아마 조선어와 한글을 써야 할 겁니다.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앞으로 동해주에 조선인이 더 많이 살게 될 테니까.”
태건은 일종의 지침을 제시하고 있었다.
“예? 조선인이 더 많이 산다고요?”
“함경도 인구가 100만 정도 되는데, 그들 중 삼 할만 옮겨 와도 30만입니다. 그런데 함경도 사람만 올까요? 가까운 평안도와 강원도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오겠지요. 땅이 필요한 자는 모두 이주를 고민할 겁니다.”
허균이 구체적인 수치까지 들어가며 태건을 대신해 설명해 주었다.
“그 대신 주션어도 부차적으로 쓸 수 있도록 허용해야죠. 하지만 문자만큼은 한글을 써야 합니다. 물론 동해주의 여러 관청에서, 주션 주민들을 대상으로 언어를 가르쳐 줄 겁니다. 최소한 아이들만이라도.”
허균의 추가적인 설명을 듣자 두 사람은 즉시 수긍했다. 조선화가 가장 잘 진행된 오도리 부족이라, 공용어 문제도 바로 이해했다.
“어쨌든 이번에 반드시 동해 부족과 조선인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잘 합의해 주세요. 그럼 나도 흔쾌히 여러분의 의견에 따를 테니.”
태건의 말에 두 사람은 다시 놀랐다. 일방적으로 규칙을 정하는 게 아니라, 번호들과 합의하면 태건이 따르겠다 표명했기 때문이다.
“아, 알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회동이 중요한 거군요.”
“그렇소.”
“그럼 남쪽으로 떠날 병력은 어떻게 하죠?”
이하륜이 물었다.
“경흥 별동군 이천만 끌고 갈게. 화포도 지난번과 똑같은 수량만 챙겨 가고. 아, 수군한테 단천까지 화포 배달을 맡겨야 되겠군. 그러면 이동 속도가 한결 빨라지겠지.”
“내가 같이 가지 않아도 되겠어요?”
“어. 여기 남아서 겨울 동안 기술 개발에 힘쓰라고. 최소 증기기관하고 방직기와 방적기만큼은 완성해야지. 전쟁으로 인해 너무 늦어졌잖아? 아울러 내가 설계도 그려 놓은 게 있으니까, 석탄화학 단지에 들어갈 기계와 용기도 좀 만들어 놓고.”
“음, 그리하지요.”
“그나저나 피로인이 걱정이다. 언제나 구출할 수 있을지. 꼭 구해 주겠다고 부모들한테 약속했는데.”
태건은 피로인에 생각이 미치자, 몹시 답답해했다.
마치카와 벌이대는 태건의 인물됨을 오늘 정확히 알게 되었다. 태건을 향한 이들의 눈빛도 달라졌다. 전에는 능력을 보고 경외감 어린 눈빛을 보냈다면 이제 신뢰감으로 바뀌었다.
“어차피 당장 토벌전에 들어갈 처지가 못 된다면, 여기 남은 병사들에게 교대로 휴가를 줘 집에 다녀오게 할까?”
“그게 좋겠네요. 다들 너무 오래 떠나 있었으니.”
“그럼 난 먼저 경성에 가 있을 테니, 병력과 물자를 차출해 보내 주게. 이번 기회에 북병영을 좀 살펴봐야 할 것 같군.”
태건은 북병사로 임명된 후, 아직 북병영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북병영과 경성의 행정부터 정상화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