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66
66화
나비효과 (1)
태건 군이 벌인 이성현 탈환 작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으나, 가토 기요마사 군의 토멸 계획은 남부군이 실기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태건 군이 이성 읍성을 공격하기 시작할 무렵, 전령으로부터 급보를 전해 들은 가토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즉각 후퇴를 결정했다. 가토는 이성현을 공격한 부대가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태건 군이라 직감했다. 계속 정찰병을 보내 남부군 진영을 감시하고 있어, 병력의 가감 상황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반대편에서 별동 부대가 나타났으니 분명 태건이 병력을 이끌고 돌아왔다고 판단한 것이다.
가토는 남부군과 태건 군 사이에 끼어 전멸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빠르게 이성 읍성으로 다가가 마치 공성전을 벌일 것처럼 포진했다. 태건도 무려 오천에 이르는 대군이 공성전 태세에 들어간데다, 어둑어둑해지는 시점이라 그대로 성에 머물렀다. 더구나 왜군을 바짝 뒤따르고 있는 남부군이 적의 후위를 공격하는 시점을 기다리느라 수성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새벽, 왜군 진영에 허수아비와 깃발만 가득 꽂혀 있는 걸 발견하고 태건은 크게 허탈해했다. 가토 군이 밤새 도주한 것이다.
아침이 되자 뒤늦게 원희가 이끄는 남부군이 도착했다.
“미안하게 되었소. 충신원에 주둔 중이던 왜군 본진 병력이 빠져나간 걸 뒤늦게 알아채는 바람에 추격이 늦었구려.”
태건은 우회 기동작전을 구사하기에 앞서, 적진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살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그들이 후퇴하기 시작하면 태건 군이 이성을 치고 있는 것이라 여기고 바로 추격해 왜군을 공격하라고 했다. 이 작전이 유기적으로 이뤄지면 가토 군을 섬멸할 수 있으리라 예상한 것이다.
“남병사 영감의 잘못이 아닙니다. 가등은 처음부터 후퇴에 주력했어요. 그자의 판단이 빨랐고, 행동이 신속했기에 잡기 어려웠던 겁니다.”
“고마운 말이긴 하나, 어쨌든 이번 일은 미안하게 되었소.”
태건의 말에 원희는 몹시 고마워했다. 하지만 관찰사 윤영은 한숨만 푹푹 쉬고 있었다. 이성현을 탈환한 공을 세웠으니 그나마 조정에 자랑할 게 하나 생겼지만, 가토를 잡는 결정적인 전공이 날아갔기 때문이다.
“휴! 아깝군. 추격이 조금만 빨랐어도 가등 놈은 독 안에 든 쥐 신세였는데.”
“지금이라도 빨리 추격하는 게 좋겠습니다.”
태건이 서두르는 기색을 보이자 윤영은 크게 기뻐했다.
“좋소! 그럼 빨리 움직입시다.”
육진군과 남부군을 합쳐도 왜군과 병력 규모가 비슷하기에, 이제 육진군과 남부군이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태건 군이 별동대가 되어 움직이는 전략은 이미 써먹은 수법이라 적도 대비할 게 빤해 정공법을 쓰기로 한 것이다.
조선군이 북청 인근에 이르렀을 무렵, 정찰병이 돌아와 보고했다.
“북청 읍성은 비어 있고, 적군은 계속 남하하고 있습니다.”
가토는 북청도 포기하고 계속 남하했다.
“오호라! 북청이 비어 있다?”
윤영은 신이 났다. 또다시 고을 하나를 되찾았기 때문이다.
“그럼 오늘은 북청에 들어가 유숙하시지요.”
태건의 제안에 원희도 동의했다.
“그럽시다. 이제 날씨가 쌀쌀해졌으니, 병사들도 쉬며 몸을 녹여야지요.”
이제 조선군에 월동 준비란 또 하나의 난제가 떨어진 상황이었다. 며칠 전부터 기온이 갑자기 떨어져 얼음까지 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태건이 이끄는 경흥부 별동군은 이미 겨울옷을 준비해 내려왔지만, 남부군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었다.
다음 날에도 날씨가 풀리지 않자, 결국 조선군은 북청에서 주저앉게 되었다. 윤영과 원희는 각 고을에 병사들에게 입힐 겨울옷을 바치라 닦달했다.
그 사이 왜군은 홍원현에 자리를 잡았는데, 태건은 가토가 그곳을 택한 이유를 바로 알아차렸다.
“별동 부대를 운용하는 우리 전략이 두려웠나 봅니다. 북청은 우회로가 많아 포기했지만, 홍원은 해안을 따라 나 있는 외길만 있기에 그곳을 교두보로 삼은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좋소?”
윤영이 물었다.
“별다른 수가 없습니다. 그냥 돌파하는 수밖에.”
“음,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윤영은 태건을 고깝게 보고 있지만, 장수로서 태건의 실력만큼은 인정했다. 그래서 어떤 제안을 할 때마다 구시렁거릴지언정 거부한 적은 없었다.
* * *
의주 행궁.
함경도 관찰사 윤영의 장계가 또다시 조정을 들뜨게 했다. 명의 원군 파병이 임박했다는 신호가 오고 있는 와중이라, 더욱 중신들을 기쁘게 했다.
“그간 남병영 군이 가등 군에게 크게 패한 바가 있으나, 결국 북병사 태건이 병력을 이끌고 합세해 이성현은 물론 북청까지 탈환했다니 이보다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항복은 얼굴이 굳어 있는 국왕의 기분을 풀어 주려 애썼다.
태건과 관련된 장계만 올라오면 아무리 좋은 소식이 올라와도 국왕은 그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더구나 이번 건의 경우, 왜군에 크게 패한 남병영 군과 비교된다는 점이 문제였다. 이 일로 태건의 능력이 더욱 돋보이게 되자 국왕의 심기가 불편해진 것이다.
왕에게 아첨을 일삼는 자들은 이런 심리를 잘 파악해 그간 거침없이 태건을 비난해 왔다. 이번에도 그런 양상은 변함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 패전조차도 태건이 지엄한 왕명을 무시하고 육진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벌어진 일입니다. 다시 돌아와 남병영의 승리를 도왔다고 하나, 그 허물이 감춰질 수는 없습니다.”
이들은 심지어 사실도 왜곡했다. 태건의 육진군이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남부군이 실기했지만, 사실을 뒤틀어 발언했다.
“더구나 승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가등 군을 놓쳤으니, 앞으로 힘겨운 싸움이 예정된 셈입니다. 그러니 그 공을 논할 가치도 없나이다.”
양사, 즉 사헌부와 사간원의 일원들이 하나가 되어 태건을 비판하자, 이원익은 한숨을 내쉬며 그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오랑캐가 대거 침략했기에 돌아간 거 아닙니까? 게다가 오랑캐들을 토벌해 종성과 온성을 되찾지 않았습니까? 이 또한 공을 세운 일이거늘, 어찌 그 전공은 거론조차 하지 않지요?”
“어명이 우선입니다. 그러니 북병사 태건은…….”
국왕은 손을 들어 신하의 발언을 제지했다. 태건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발언이 이미 나왔기에 국왕의 얼굴은 벌써 풀어져 있었다.
“그래서 북도 병력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는 바람에 잠시 쉬고 있나이다. 겨울 채비를 하고 다시 싸울 계획이라 들었습니다.”
도승지 류근이 대답했다.
“겨울 채비라니? 지금 그렇게 미적거릴 때인가? 승기를 잡았을 때 속히 밀어붙이고 겨울을 날 준비해도 늦지 않다. 서둘러 적을 공격하라 이르게.”
“알겠습니다. 그리 전하겠나이다.”
도승지가 재빨리 대답했다. 함경도 관련 안건만 나오면 항상 논쟁이 격화됐기에 이 정도에서 논의를 멈추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국왕은 태건을 향한 불편함으로 아무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이런 왕명을 발했다. 그게 어떤 큰 불행의 씨앗이 되어 돌아올지 전혀 짐작하지도 못했다.
매사에 신중한 이항복과 이원익도, 국왕의 발언에 토를 달지 못했다. 그 정도로 국왕은 승전보가 전해져 환희에 차 있어야 할 이 어전회의 자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귀한 재주가 있었다.
* * *
기존에 조성된 조산만 공방촌의 북쪽에 들어선 또 다른 공방.
이하륜은 화덕에 숯을 더 집어넣고, 발풀무를 밟아 공기를 주입해 화력을 키웠다. 그로 인해 증기의 압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이하륜은 급히 벽돌 벽 뒤로 몸을 감췄다. 이 벽은 폭발 사고에 대비해 마련해 둔 안전장치였다.
“에효! 이번엔 문제없이 돌아가면 좋겠네.”
벽 뒤에서 지켜보던 홍은이 말했다.
“될 것 같긴 하다. 복수기 문제를 해결했으니까.”
이하륜이 밖으로 돌며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홍은은 이하륜이 그려 준 설계도에 따라 공방 장인들과 함께 차근차근 증기기관을 만들어 왔다. 이 작업에 투입된 장인만 무려 열 명이었고, 허드렛일하는 일꾼도 여럿 따라붙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실패의 연속이었다. 부품이 불량해 작동 불능은 기본이고, 폭발 사고도 몇 번 일어났다. 안전장치를 마련해 둔 덕분에 그나마 인명 사고를 예방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하륜이 군무에서 벗어나 기술 개발 업무에 복귀하자 일의 진행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하륜은 금세 문제점을 파악했고, 곧바로 수정해 나갔다. 그 결과 드디어 증기기관을 다시 시험해 보게 되었다.
“쯧! 여전히 소리가 맘에 안 드네.”
충분한 화력이 공급됨으로 인해 이제 증기기관의 출력이 정점에 달했다. 상하 피스톤 운동이 회전운동으로 바뀌며 바퀴 모양의 플라이휠이 핑핑 돌아갔다.
“잡음이 있다고? 이유가 뭐예요?”
“아무래도 수작업으로 만든 부품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하지만 그리 걱정할 수준은 아닌 것 같아.”
“그럼 다행이고.”
곁에 있던 홍은의 오빠 홍진은 이하륜이 말한 게 무슨 뜻인지 몰라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다 그 역시 약간의 잡음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술에 매료된 홍진은 이제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공방 일에 매진했다. 그러다 보니 홍진은 자연스레 경흥부의 공방 업무에 정통하게 되었고, 공방 측과 경흥부 수뇌부를 중재하는 역할도 맡았다.
“오, 오빠! 이 정도면 다 된 거 아냐?”
한참 동안 어떤 문제 없이 기계가 돌아가자, 홍은의 목소리가 바르르 떨려 나왔다.
“그런 것 같은데?”
이하륜은 고개를 내밀어 증기기관을 힐끔 보더니, 몸을 빼내 기관 앞으로 갔다. 홍은이 얼굴만 삐죽이 내밀고 물어보았다.
“괜찮겠어요?”
“소리를 들어 보니 괜찮을 것 같다. 연료 좀 더 주입해 볼까?”
이하륜은 숯을 더 집어넣고 풀무를 밟았다. 그러자 증기기관 돌아가는 속도가 다시 빨라졌다.
“크크! 성공한 거 같은데?”
“정말?”
홍은도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이하륜 곁으로 다가왔다.
“오오오! 괜찮네. 잘 돌아가는데?”
“해낸 거요?”
홍진이 물었다.
“그런 거 같네요.”
“하하하! 성공했답니다.”
홍진이 뒤를 돌아보며 소리치자, 멀찌감치 서서 대기하고 있던 장인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와아아아! 됐다네.”
“어휴! 이게 얼마 만인가?”
“이제 성공한 건가?”
장인 무리에 섞여 있던 조선장 손원표가 뛰어오더니, 맹렬하게 돌아가는 바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바퀴의 속도에 관심이 있었다.
“이렇게 빠르다니. 그렇다면……?”
“그럼 바로 시험해 볼까요?”
이하륜이 웃으며 물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 해 보지요.”
“어렵지 않습니다.”
이하륜은 불을 꺼서 일단 증기기관을 식혔다.
플라이휠이 멈추자, 그는 플라이휠에 붙어 있는 작은 원통 모양의 주기관 축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둥근 기계톱의 축을 질긴 가죽으로 만든 긴 벨트로 연결했다. 이 기계톱은 항만 예정지 답사를 다녀온 후, 홍은이 야장 박기수에게 부탁해 만든 것이다. 증기기관 개발에 성공하면 가장 먼저 시험해 볼 기계였다.
이하륜은 다시 증기기관을 가동했다. 플라이휠이 돌아가는 것과 동시에 기계톱도 회전하기 시작했다.
회전력이 최고조에 이르자, 손원표는 미리 준비한 목재를 기계톱에 대보았다.
위이이이잉!
기계톱은 톱밥을 뿌려 대며 목재를 빠르게 잘라 냈다. 손으로 미는 족족 나무가 손쉽게 썰려가자 손원표는 쾌재를 불렀다.
“하하하하! 됐네요. 이제 다 됐군요!”
손원표는 춤을 추듯 펄쩍펄쩍 뛰며 기뻐했다. 수많은 목재를 일일이 사람의 힘으로 자르고 다듬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빨리 배를 만들 수 있지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