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67
67화
나비효과 (2)
다음 날, 바쁜 업무를 뒤로 하고, 허균을 비롯한 관리들도 조산만 공방촌을 찾아 증기기관과 이 기관으로 구동되는 기계톱의 모습을 구경했다.
“이, 이거였어. 이런 게 바로 세상을 바꾸는 거라고.”
허균은 전율이 이는지, 멍한 표정으로 기계가 작동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라는 게 바로 이런 형태였군.”
조경린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태건이 왜 그토록 기술 개발에 매진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됩니까?”
태원이 흥분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전후 맥락이 없는 질문이지만 찰떡같이 알아들은 이하륜이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석탄을 가져와야죠?”
“아, 그렇지. 그래서 국화당동 탄광과 연결되는 수송로를 만들라고 했지요?”
“증기기관을 제작하고 개량하는 일에 종사할 장인 집단을 육성하고, 그런 면에서 이번에 수고해 준 저 장인들을 잘 대우해 주세요. 아울러 기술학교를 세워 저분들을 선생으로 초빙, 후학들을 길러야 하니까 빨리 준비하시고.”
“맞습니다. 학교를 세워야죠.”
“인재가 많이 늘어나면 이제 저 증기기관을 상인이나 공장이 스스로 만들어 쓸 겁니다. 그래야 용도에 맞게 온갖 기계를 만들어 돌릴 수 있죠. 그리고 이번 기회에 증기기관을 몇 대 더 만들어 덕산동에 설치합시다. 방적기와 방직기도 돌려야 하니까.”
현재 면화 관련 공방은 태건의 식솔들이 모여 사는 덕산동에 세워져 있었다.
“좋습니다. 당장 서둘러야 할 것 같군요.”
태원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의 형이 말한, 소위 동력이란 게 뭔지 그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 * *
밤새 내린 눈으로 온 세상에 하얗게 변했다. 태건과 원희는 서문 성루에 올라 주변을 휘둘러 보았다.
성안이 좁다 보니, 장졸들 대부분이 서문 앞 벌판이나 서북쪽 연덕산 산자락에 기대 숙영하고 있었다.
벌판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추위를 이기고자 병사들이 화톳불을 잔뜩 피운 것이다. 일부 병사들은 눈길을 헤치고 연덕산에 들어가 나무를 해 오고 있었다.
태건이 데려온 경흥부 별동군은 추위에도 끄덕 않고 잘 견디고 있으나, 남부군은 오들오들 떨며 모닥불 곁을 떠나지 못했다. 고아한 산수화처럼 온통 새하얗게 변한 멋진 풍경과 대조되는, 너무나 가련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11월이군. 정신없이 싸우다 보니 겨울이 가까이 온 것도 몰랐소.”
원희가 한탄하듯 말했다. 북청은 남도병마절도사영, 즉 남병영이 자리한 곳이라 남병사 원희는 드디어 임지를 찾은 셈이나, 그의 얼굴엔 근심만 가득했다.
음력 11월이니 이제 완연한 겨울이다. 더구나 이곳은 함경도인데다 눈이 많기로 유명한 동해안 쪽이었다.
“이번에 아주 곤란한 왕명이 내려왔습니다. 어쩌지요?”
태건이 근심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어제 왕이 보낸 선전관이 어명을 가져왔는데, 그걸 듣자 다들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심지어 윤영도 그랬다. 하지만 지엄한 왕명이라, 누구도 항변할 수가 없었다.
“그 답을 줄 분이 오고 있네요.”
관찰사 윤영은 더욱 안절부절못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성루에 있는 걸 보자 부리나케 올라왔다.
“예서 뭐 하오? 빨리 진군할 준비를 해야지!”
“관찰사 영감. 조금만 늦출 순 없습니까? 지금 병사들에게 입힐 동복이 도착하지 못했소. 이 상태에서 행군을 시작하면 큰 사달이 벌어집니다.”
원희가 애원조로 말했다.
“안될 일! 그대들이나 나나 어명을 어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더구나 선전관이 지켜보고 있지 않소?”
선전관은 출진하는 모습을 반드시 확인한 후 돌아가겠다며 남병영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니 며칠만 시간을 끌어 주시오. 지금도 추위에 떠는 저 병졸들을 보십시오. 억지로 출진하면 분명 큰 문제가 뒤따를 겁니다.”
원희가 다시 요청했으나 윤영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출진을 강행하기로 했고, 조선군은 줄줄이 북청을 벗어나야 했다.
북청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태건과 원희가 염려한 그 부작용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북청과 홍원의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평포에 이르러 야영하고 나자, 병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밤새 얼어 죽은 병사가 수십이고, 천여 병력이 이탈했습니다. 이러다 싸워 보기도 전에 군이 해체되게 생겼습니다.”
남병사 원희가 관찰사 윤영에게 다시 애타게 하소연했다. 모두가 남부군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겨울옷을 받지 못한 채, 북청을 나서자 병사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안 그래도 대부분 의병인데다 조정에 불만이 많은 함경도 출신자들이다. 그런데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는 자신들에게 부당한 왕명이 떨어지자 아예 불만을 품고 탈영한 것이다. 탈영을 안 하고 잠이 든 이들 중 수십 명은 그대로 동사하고야 말았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오? 어명인 것을.”
윤영은 남의 얘길 하듯 원희의 청을 또다시 일축했다. 원희가 태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태건 역시 고개를 젓는 수밖에 없었다.
조선군은 계속해서 남하했다. 하지만 병력은 계속 줄어들었다. 구불구불한 숲길이라, 병사들이 이탈해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병사들은 살기 위해 떠났다. 한겨울 이런 산속에서 야영하면 얼어 죽기 십상인데다, 이탈 병력이 빠르게 늘어나자 왜군과 싸워도 이기기 힘들 것이란 생각에 이탈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렇게 왜군을 코앞에 둔 대문령에 이르렀을 무렵, 남부군에서 남은 의병은 천 명도 되지 않았다. 병력을 점고할 필요조차 없었다.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천여 명의 관병은 잘 붙어 있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처벌이 무서워 도주하지 못했을 뿐이다.
원희가 원망에 가득 찬 표정으로 윤영을 노려보았다. 극도로 화가 난 것이다.
“내 뭐라 했습니까? 이 지경에 이를 거라 몇 번이나 경고하지 않았소?”
“그거야… 병사들을 관리 못한 장수들이 잘못한 거 아니오?”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장수들 잘못이라니요!”
원희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화를 폭발시키려 하자, 태건이 나섰다.
“대감도 어명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험험! 알긴 아는군.”
태건의 중재에 윤영은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헛기침했다. 그도 이제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한 상태라, 정중한 태도로 태건에게 물었다.
“이제 우리 병력이 적의 반절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길 수 있겠소?”
태건은 고민할 것도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불가능합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적병의 수가 월등히 많은데다, 유리한 고지를 점한 채 우릴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구나 철포병의 수도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느 하나 우리에게 유리한 점이 없습니다. 무슨 수를 써도 백전백패할 겁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오?”
“조정에 실태를 알리고, 북청으로 회군하시지요. 남은 병사마저 잃으면 함경도 전체가 다시 위험해집니다.”
“그럽시다, 대감. 어쨌든 우린 어명을 받들었고, 그 때문에 이리된 거 아닙니까? 이 추운 겨울에 가을옷을 입고 산속을 행군하다 보니, 병사들 태반이 얼어 죽고 일부는 도주했다고 장계에 적으시지요. 그럼 주상 전하도 충분히 이해하실 겁니다.”
“음. 그, 그게 낫겠지요?”
윤영은 결국 원희의 의견에 따랐고, 조선군은 북청으로 다시 회군했다.
* * *
경성 읍성의 북병영 관청 앞.
관리가 나와 관보를 벽에 붙이자, 주변에 있던 주민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한글로 적혀 있다 보니 무리 중에 글을 읽을 줄 아는 이가 여럿 있었다.
“북관 관보라고?”
북관이란 함경도 지방 중, 단천의 마천령을 경계로 그 이북 지역을 말하는데, 함경북도를 통칭하는 말이라 보면 된다.
“창간호라네.”
“그게 뭔가?”
“북관 지역과 북병영 관련된 소식을 전하는 벽보인가 보네. 음, 이레마다 간행된다는군.”
“오오! 어서 읽어 주게. 뭔 내용인지 궁금하구먼.”
전쟁 중이라 온갖 소문이 떠돌고 있지만, 정확히 아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다들 어떻게 세상이 돌아가는지 궁금하게 여겼다. 관에서 이를 알려 준다고 하니 다들 안달이 난 것이다.
한글조차 익히지 못한 이들도 많았다. 그래서 아는 척하는 이들에게 읽어 달라 조르자,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 앞에 나섰다.
“그럼 제목만 읽어 주겠소. ‘이제 겨울이라 더 이상 강외 지역 이주민을 받지 못하니, 겨울을 난 다음에 움직이길 바라오’ 음, 이런 문구가 있군.”
“아~ 이주민 얘기로군. 조금 더 읽어 줄 수 없나?”
“음, 하연추와 상훈춘의 하다 지역까지 이주민을 유치했으니, 내년 봄부터 중연추와 상연추, 창룡동, 마진군 등지에 개척촌을 건설한다는군.”
주민들은 아직 강외 지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누구 아는 사람 없나?”
한 주민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러자 강외 지역에 대해 귀동냥을 한 이가 나섰는데, 정보의 질이 형편없었다.
“다 기름진 땅이라 들었네.”
“에이! 그걸 누가 모르나? 아무튼 강외로 나가면 넓은 토지를 받을 수 있다는 거지? 한 몇 년 고생이야 하겠지만.”
“또 무슨 소식이 있나?”
“관리가 되고 싶으면 우선 언문을 익히라네. 언문을 한글이라 이름했으니 그리 알라는 말도 있구먼.”
“뭐야? 언문을 익히면 관리가 되는 길이 열린다고?”
“그렇게 적혀 있군. 앞으로 아전에게 월급을 지급할 예정인데, 아전 역시 시험을 봐서 뽑는다는군. 그러니 먼저 언문을 익히고, 언문으로 된 책을 구해서 읽으라 하네.”
“오오! 이것도 놀라운 소식이군. 아전에게 삯을 준다니.”
관리가 되고픈 욕망이 강한 이들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에, 그리고… 이건 뭐지? 증기기관? 이걸 경흥부에서 처음 만들었는데, 이걸 둥근 톱에다 연결하니, 나무가 저절로 썰어지더라?”
“그게 도대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린가? 나무가 저절로 썰어지다니!”
“아무튼 그런 게 있다는군. 오호! 아래쪽에 더 중요한 내용도 있소. 우리 태건 북병사 영감이 북병영 군을 이끌고 남쪽으로 가서 이성과 북청을 단숨에 탈환했다네.”
“허허! 역시… 상승장군이 어디 따로 있는가? 우리 북병사 영감이 상승장군이지.”
상승장군은 삼국지의 조자룡에게 붙은 별호였다. 육진 주민들은 태건 앞에 항상 ‘우리’란 말을 붙여 불렀다. 친근함의 표현이기도 하나, 운명 공동체로 묶여 있다는 점을 주민들도 은연중에 느낀 것이다.
“그러게. 지금까지 백전백승한 장군 아닌가? 이번에 쳐들어온 오랑캐도 죄다 무찌르고.”
이 관보는 허균이 직접 원고를 써서 인쇄한 것이다.
인쇄 관련 장인들이 힘써 노력한 덕분에 대량으로 한글 활자를 주조하는 작업이 마무리되자, 허균은 그 첫 사업으로 관보를 인쇄해 경성 북병영과 육진 전체에 게시하기로 했다.
허균은 주민 전체가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관의 방침을 공유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한글로 관보를 만들게 되었다. 태건이나 이하륜도 관보 발행을 생각한 적이 있지만 그간 전쟁으로 경황이 없어 추진하지 못했는데, 허균이 먼저 안을 내고 이하륜의 동의를 얻어 실행에 옮긴 것이다.
허균의 관보는 향후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물론 허균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음, 그런데 연호가 단기라니… 더구나 조선 기원도 병기했군. 그럼 대국 연호는?”
양반들도 지나가는 길에 이 관보를 보더니, 이상한 점을 찾아냈다. 관보 상단에 단기와 조선 건국 기원 몇 년이란 연호는 있는데, 명의 연호인 ‘만력’이 빠져 있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뭐야? 대국 연호가 빠졌다고? 게다가 단기는 뭐고, 조선 기원은 뭔가?”
동료 양반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이 두 사람은 남쪽에서 피난 온 타지 출신 양반이었다.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미쳤군. 아니면 무식하든지.”
“그러게. 하여간 함경도 사람들은 여러모로 무지몽매…….”
양반 하나가 함경도 사람을 욕하려다 말았다.
이들의 말투가 다른 걸 깨달은 주민들이 두 사람을 노려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