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69
69화
하륜방적기 (2)
태건의 경흥부 부임과 동시에 조성되기 시작한 덕산동 공방촌. 처음 태건의 식솔들과 송화상단 소속 장인들이 자리를 잡고 공방을 연 곳이다.
덕산동은 주변 지형보다 다소 높은 편에 속하는 서쪽의 천덕산 산줄기와 동쪽의 읍성 뒷산 사이에 있는, 약 10㎞에 달하는 긴 계곡 지형의 중간에 자리했다. 이 계곡을 따라 두만강 지류인 회동천이 흐르고 있어, 공업단지가 들어서기에 매우 훌륭한 입지 조건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회동천 상류에 자리한 회동과 하류의 마전동 방향으로 점차 공방촌이 확장되고 있었다.
처음 들어선 시설은 숯가마와 벽돌 공장이었는데, 노역하는 콜칸인 포로가 투입됨에 따라, 두 시설의 규모는 날이 갈수록 커졌다. 그만큼 숯과 벽돌의 수요가 빠르게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홍은이 운영하는 비누 공장과 유리 공방을 비롯해, 활자를 제작하는 주자 공방, 가죽 공방, 목공소, 옹기 공방, 대장간 등 그간 경흥에 들어온 여러 장인이 운영하는 공방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에서 농사지으며 살던 번호들과 경흥 읍성에서 거주하는 조선인들이 공방 문을 두드리게 됨에 따라 한가롭던 덕산동 계곡이 사람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공방 임금이 무척 후한 편이라, 일어난 현상이었다.
아울러 송화상단이 운영하는 거대한 면화 창고가 세워지더니, 면화가 끊임없이 들어와 창고를 채워 나갔다. 곧이어 목화를 가공할 조면기 공방과 방적 공방, 방직 공방도 차례로 들어섰는데, 목화씨를 빼내는 조면기 공방만 가동되고 있었다. 다른 두 공방은 기계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직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었다. 동력이 연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여긴 공방에서 공장으로 승격하게 될 거다.”
방적 공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이하륜이 한 말이다.
현재 태건과 이하륜, 홍은은 공방과 공장이란 단어를 엄격하게 구분해 사용했다. 그들 기준에서 일정 규모 이상 되어야 공장이 될 수 있었다.
“그러게. 정말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다들 그러더라고. 도대체 언제 실을 잣고 천을 짜냐고. 그럴 바엔 물레라도 돌려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는데, 뭐 할 말이 있어야지.”
“그래, 수고 많았다. 여길 지키느라.”
이하륜은 홍은의 공을 인정해 주었다. 태건과 이하륜이 자리를 비운 사이, 홍은은 홍진과 함께 조산만 공방과 이곳 덕산동 공방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냈기 때문이다.
“전쟁 나간 사람도 있는데, 이게 뭐 대수라고.”
“오호! 이제 겸양까지? 와, 그러고 보니 너 쫌 성숙해 보인다? 키도 큰 거 같고.”
“그~럼. 벌써 내 나이도 열일곱이라고.”
“나리, 이제 준비를 마쳤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든 이는 이번에 기관 원대장으로 임명된 장봉수였다.
원대장은 태건이 도입한 호칭으로, 부문별 장인 우두머리를 뜻한다. 현재까지 원대장으로 임명된 이는 야장 박기수와 화포장 이장곤, 조선장 손원표 등이었다.
“그래요? 갑시다. 하하!”
이하륜은 활짝 웃으며 공방의 안쪽으로 향했다.
공방은 규모가 크게 지어졌으나 대부분 비어 있고, 한쪽에 방적기 한 대와 이번에 새로 제작한 2호 증기기관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하륜과 홍은이 다가오자 모두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허균과 조경린, 태원, 손중일 등 문관들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방적기와 증기기관을 번갈아 살피다가, 이하륜을 맞아 주었다.
이하륜이 활짝 웃으며 허균에게 말했다.
“크크! 이번에도 이거 관보에 쓸 거지?”
“당연히 그래야지…요? 하하하!”
친구 사이다 보니, 둘만 있을 땐 격의 없이 어울렸지만 여럿이 있는 자리라 예의를 갖춰야 한다.
허균이 관보에 기계톱에 대해 알린 이후, 많은 이들이 조산만 공방을 찾았지만 아무도 볼 수가 없었다. 아직 조산만 공방을 외인에게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공개될 예정이라, 이제 주민들도 증기기관의 실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시작합시다.”
“예. 나리.”
기관장 ― 증기기관 제작에 참여한 장인들을 통칭하는 말 ― 하나가 화덕에 불을 붙이고 증기기관을 가동하자, 가죽 벨트로 연결된 방적기도 같이 연동해 돌아갔다.
이윽고 원료 격인 조사와 연결된 100개의 방추가 팽팽 돌아가며 실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오오오! 실이, 실이 저절로 만들어지고 있어!”
허균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허허허! 세상에 이런 일이…….”
조경린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계톱의 원리는 단순해서 금방 동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해 줬다면, 방적기는 실을 잣는 복잡한 공정을 기계가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이걸 형님이 고안하셨다고요?”
태원이 감격해하며 이하륜에게 물었다.
“고안이야 내가 했지만 만든 건 저분들이지.”
이하륜은 멋쩍어하는 표정으로, 손을 들어 장봉수와 기계장들을 가리켰다.
“뭐, 아직 개량할 것도 많고 보조할 수 있는 다른 기계도 만들어야 하니까… 갈 길이 먼 셈이야.”
이하륜은 여전히 부끄러워했다. 남의 발명품을 훔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기계를 하륜방적기라 합시다. 어때요?”
갑자기 허균이 나서서, 하륜의 이름을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이 방적기에 붙이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이하륜의 볼이 더욱 빨개졌다.
* * *
이항복의 예상대로 평양성 전투 승리 소식이 전달된 지 9일 뒤, 어가가 의주를 떠날 준비를 하던 날, 드디어 함경도 홍원에서 승전보가 날아들었다.
관찰사 윤영은 장계를 통해, 홍원 전투에서 가토 기요마사 군 병력의 절반 이상을 죽이거나 사로잡았을 정도로 크게 이겼고, 홍원도 탈환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함흥을 향해 진격 중이라는 내용도 장계에 들어 있었다.
국왕은 또다시 얼굴을 찌푸렸다.
“그게 언제 일어난 일인가?”
국왕은 ‘잘했다’, ‘수고 많았다’란 말 대신, 그 일이 일어난 시점을 물었다. 태건을 비롯한, 꼴도 보기 싫은 함경도 변장들의 공을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의 발현이었다.
국왕은 그간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 하나를 해결하고 한층 고무된 상태였다.
그는 며칠 전, 갑자기 광해군에게 왕위를 선위하겠다고 선언해 조정에 풍파를 불러일으켰다. 물론 그 이유는 간단했다. 평양성까지 탈환하고 보니, 겁을 집어먹고 의주로 도주했던 자신의 과거 모습이 생각난 것. 그게 청사에 기록되고 저잣거리의 화제로 떠오른다면, 큰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에 면죄부를 받고자 그런 자작극을 벌였다.
몽진 도중 돌팔매질하며 ‘네가 그러고도 왕이냐?’라고 고함치던 백성들의 모습이 생생했다. 또 공식 석상에서 신료들에게 ‘필부나 다름없다’란 조롱을 여러 번 들었으니 왕의 체통은 땅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래서 양위 여론이 거세질까 봐 미리 수를 쓴 셈이다. 결국 왕이 그린 그림대로 조정 대신들이 너도나도 나서서 뜯어말리는 장면이 연출된 덕분에 자연스레 국왕의 위신을 되찾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조명 연합군이 평양성을 탈환하면서 일신의 안위 문제까지 해결되었으니, 그 기쁨은 더욱 배가되었다.
그런데 함경도에서 들어온 장계가 국왕의 좋던 기분을 망치고야 말았다.
“이레 전의 일입니다.”
도승지가 대답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여전히 길이 막혀 기존 파발로가 기능하지 못하고 있나이다. 그래서 적 주둔지를 피해 돌아오다 보니…….”
“알았다.”
국왕은 엉뚱한 질문을 했고, 그 질문에 대답해 줘도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전하! 급보입니다.”
갑자기 우부승지가 소리치며 의주 행재소 안으로 허겁지겁 들어왔다. 그는 밖에서 정주로 출발할 준비가 되었는지 살피고 있었다.
다들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전하! 전임 북병사 오천태가 순화군과 함께 방금 당도했나이다.”
“뭐, 뭐라?”
국왕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 *
함경도 감영이 자리한 함흥부.
함경도 지방을 대표하는 도시인 함흥은 가토 기요마사 군으로 인해 쑥대밭이 되었다.
홍원에서 대패한 가토 군은 함흥에 이르자, 패잔병에서 약탈자로 변신했다. 이미 함경도를 영지로 만들고자 했던 가토의 꿈은 산산조각이 난 셈이기 때문에, 지금은 약탈이 그에게 이득이 되는 행위였다. 마침내 왜군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무엇이든 다 쓸어 담아라. 군량을 우선해야 하나, 서책이나 옷감, 도자기, 불상 같은 값나갈 만한 것이라면 모두 챙겨라!”
가토의 약탈 허용 지시에, 사가라 요리후사는 신이 나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이행하라!”
또 다른 부장 쿠키 히로다카도 부하들을 독려했다. 감영 안을 서성거리던 가토 기요마사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문밖으로 나와 두 부장을 찾았다.
“적군의 위치는?”
“홍원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정찰병 보고가 있었으니, 지금쯤 함관령에 이르렀을 겁니다.”
함관령은 홍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무척 험준한 고갯길이었다. 그러므로 왜군이 함관령을 지나쳐 왔다는 건 바로 함흥도 포기할 생각이란 뜻이었다.
“음, 생각보다 늦군.”
“적군의 상태도 그리 좋지 못합니다. 이 망할 놈의 겨울 날씨를 적들도 견디기 어려웠을 겁니다.”
사가라 요리후사가 진저리를 치며 대답했다. 이런 매서운 추위를 생전 처음 겪어 본 왜병들은 고통 속에서 겨울을 나야 했다.
“어디가 좋겠나?”
가토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던졌지만, 부장들은 모두 알아들었다.
“가장 좋은 건 후군이 있는 안변으로 후퇴하는 겁니다만…….”
현재 나베시마 나오시게는 안변에 머물며 후군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안변은 함경도 최남단에 자리해 있어, 가토군의 가장 중요한 보급 거점이자 퇴로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쿠키 히로타카는 말을 마치지 못하고 가토의 눈치를 보았다. 예상대로 가토는 고개를 저었다.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 봐야지. 본국에서 지원이 더 올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영흥 읍성으로 들어가 수성해야 합니다.”
“음. 좋은 계획이군. 읍성 앞으로 용흥강이란 큰 강이 흐르니 요새나 다름없지.”
“그럼 일단 거기까지 후퇴합니까?”
“그러지.”
가토의 결심으로 인해 조선은 함흥에 이어 정평까지 어떤 희생도 치르지 않고 탈환하게 되었다. 조선군이 가까이 왔다는 정찰병의 전언에 이제 약탈을 멈추고 이동하려던 찰나, 가토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순화군이 탈출했다니? 도대체 경계를 어떻게 했기에?”
“아무래도 병력이 이쪽으로 많이 빠져나오는 바람에 경계가 허술해져 그런 모양입니다.”
사가라 요리후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세히 말해 보라.”
가토의 명에 전령 역할을 맡은 장교가 상세히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북병사 오천태란 놈이 원래 혼자 탈출했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러다 왕한테 벌 받아 죽게 생겼으니까 다시 돌아와 순화군을 데리고 갔다?”
가토가 상황을 복기하며 되물었다.
“예. 아무래도 임해군 숙소의 경계가 삼엄한 편이라, 상대적으로 허술한 순화군을 노린 것 같습니다.”
오천태는 적진에 왕자들을 놓아둔 채 혼자 탈출할 경우, 왕에게 처벌받을 게 두려워 순화군만 챙긴 셈이었다. 가토는 전후 사정을 모두 듣고 그런 간교한 속내를 바로 파악했다.
“치졸한 녀석! 결국 처벌을 피하려고 어린 왕자 놈만 하나 데려간 거로군. 뭐, 상관없다. 넌 돌아가서 임해군이나 단단히 지키라 전하라.”
가토는 임해군이 아직 수중에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