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71
71화
회군 그리고 결단 (2)
단천 시장 앞 공터.
오늘따라 많은 주민이 나와 벽보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어디나 그렇듯 큰 소리로 글을 읽어 주는 이의 목소리도 들렸다.
단천이 조선군에 의해 탈환된 지 여러 달 지났지만, 아직 정식으로 군수가 임명되지 않아 관찰사 윤영이 임시로 아전에게 단천군의 행정을 맡겨 놓은 상태였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이곳 분위기는 여러모로 뒤숭숭했다.
“에, 그러니까 우리 함경도 의병이 해체된 이유가… 엄동설한에 겨울옷도 주지 않고, 왜적과 싸우라는 조정의 명 때문이었다고 하네. 밤새 얼어 죽는 이가 속출하자, 결국 탈영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네.”
글 읽어 주는 이가 기사를 다 읽자마자, 주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 저런!”
“소문이 사실이었구먼. 나도 들은 적이 있지.”
“정말 조정은 우리 함경도 사람을 백성 취급하지 않나 보네. 그 추운 겨울에 얇은 옷만 입히고 적과 싸우게 했다니. 갑옷을 내주지 못한 걸 미안해해야 하는 처지이거늘 겨울옷도 주지 않았다고?”
“근데 의진에서 탈영했다고 우릴 처벌하는 건 아니겠지?”
개중에 의병으로 나섰던 이가 불안한 기색으로 친구에게 물었다.
“설마, 그러겠나?”
“그거 혹시 어명이었소?”
사내 하나가 걸걸한 목소리로 글을 읽은 이에게 물었다.
“그런 모양이오. 행간을 읽어 보니 어명인 듯하오.”
“이런, 제길!”
이들이 읽고 있는 건 허균이 발행한 북관 관보였다.
허균이 찍어 내는 관보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처음 육진 지역에만 게시되었는데, 남쪽 주민들도 관보를 요구해, 그 남쪽의 명천과 길주를 넘어 이곳 단천까지 배달되었다. 배송에 시간이 걸리다 보니 지금 단천 주민들이 읽고 있는 건 무려 20일 전에 발행된 관보였다.
관보가 인기 있는 이유는 함경도 주민들의 정보에 대한 갈증이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관보의 발행 면수도 늘어났고, 내용도 다채로워졌다.
창간호는 후세의 신문지 크기로 단 한 면만 발행되었는데, 몇 호 지나지 않아 벌써 4면으로 늘어난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전쟁 관련 소식뿐만이 아니라, 강외 7군에서 적용될 법규와 지역 소개 글이 매회 수록되었다.
여기에 더해 이하륜과 홍은의 제안에 따라 허균의 자작 소설인 홍길동전도 연재되었다. 이 소설은 진즉에 탈고되었지만, 아직 교과서가 만들어지지 않아 일단 관보에 부록으로 수록하는 방식으로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되었다.
“아무래도 두만강을 건너가야 할 것 같다. 이거 뭐, 더러워서 함경도 땅에서 살 수가 있나?”
조정에 대한 불만이 커질수록 이들은 대안으로 강외 지역으로의 이주를 생각하게 되었다. 관보를 읽자 그런 욕망이 더욱 강해졌다. 그러나 조상의 선산이 있고, 피붙이와 이웃이 있는 고향을 떠나는 결정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난 그보다 북병사 영감이 걱정이네. 경성 사는 사람한테 들은 말인데, 국왕이 북병사 영감을 시샘해서 곧 제거할 거란 소문이 떠돌고 있대.”
“뭐어? 함경도에서 왜적을 몰아낸, 그런 큰 공을 세운 장군을 왜 내친단 말인가? 그게 말이 되나?”
“도성을 지키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하더니, 의주로 야반도주한 왕일세. 뭔들 못하겠나?”
국왕의 야반도주 건은 워낙 오래된 일이고 유명한 일화라, 그 소문이 함경도까지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이런 공적인 자리에서도 왕을 서슴없이 비판하곤 했다. 물론 관리가 없을 때나 해당하는 얘기였다.
“왜적이 물러나도 걱정이군. 왜적이 물러나면 조정이 또 다른 도적 떼를 보내겠지.”
“맞는 말일세. 게다가 태 장군이 물러나면 강외 영토가 지켜지기나 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그런데 말일세. 이 관보 좀 이상하지 않나? 조정의 처사를 비판하는 소식을 서슴없이 적지 않았나? 더구나 신분 차별을 꼬집는 소설이란 것도 있고. 무슨 관보가 이런가?”
날카로운 식견을 가진 이 하나가 관보 발행인인 허균의 속내를 정확히 읽고 문제를 제기했다.
* * *
태건은 덕원부 ― 미래의 원산시 ― 에 도착해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가토 기요마사 군이 바로 남쪽 안변에 주둔 중이란 사실을 파악했기에, 여기서 본진이 오길 기다리기로 했다.
태건이 서두른 덕분에 영흥 남쪽, 즉 고원과 문천, 덕원 지방은 왜군의 약탈을 겨우 피해 갈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이끄는 별동군 2천여 병력이 덕원부에 입성할 때, 과도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주민들의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덕원부 주민들도 태건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간 태건이 북방 변경에서 여진족과, 함경도에서 왜군과 맞서 싸워 크게 이긴 일, 또 태건의 각종 무용담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구경거리라도 난 것처럼 태건을 보고자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 정도였다.
태건이 덕원의 민생을 살피는 사이, 관찰사 윤영과 남병사 원희가 이끄는 본진 병력도 덕원부로 들어왔다. 아울러 이하륜이 보낸 전령도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이하륜의 서신을 보고 대경한 태건은 급히 윤영에게 지휘관 회의 소집을 요청했다.
“남눌올적합, 니마차올적합, 솔빈올적합 부족과 울량합 중에 노토 부락, 동량개 부락이 연합해 육진 곳곳을 노리고 있는데, 그 수가 일만을 넘는다고 합니다. 심처 야인들이 더 많은 병력을 동원한다면 일만이 아니라 이만, 삼만이 될 수도 있습니다.”
“허! 이런… 이거 큰일 아닌가?”
태건의 얘기를 듣자, 남병사 원희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변장으로 근무해 본 이들은 현재 육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바로 깨달았다.
“그러게요. 노토 부락과 이라대의 동량개 부락만 해도 골치가 아플 지경인데, 심처 야인까지 나섰다니… 이를 어쩐담?”
병마우후 정현룡도 충격받은 표정으로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관찰사 윤영만은 다른 반응을 보였다.
“남아 있는 병력이 성에 의지해 수성에 집중하면 적들을 물리칠 수 있지 않겠소?”
“그러면 성 바깥 지역이 모두 약탈당할 텐데요?”
원희가 태건을 대신해 나서서 윤영의 의견을 반박했다.
“그래 봐야 태반이 번호들 거주지 아닌가?”
“번호는 사람 아닙니까? 모두가 조선에 귀부한 이들입니다. 또 내륙의 조선인 마을은 화를 피해 갈 수 있으리라 봅니까?”
태건의 딱딱한 목소리가 덕원부 관청 안에 울려 퍼졌다. 원희는 태건이 분노했음을 깨닫고 눈짓으로 자중하라 신호했다. 하지만 태건은 거침없이 말을 이어 갔다.
“아울러 저들이 성을 포위하면 우리 군과 백성이 성에서 얼마나 버티겠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겠단 말인가?”
“육진군을 이끌고 회군하겠습니다. 지금 여기 나와 있는 병력이 육진의 주력입니다. 남아 있는 병력으로 적 대군을 막기 어려울 겁니다.”
“안될 말!”
윤영은 태건을 쏘아보며 태건의 의견을 일축했다.
“가야 합니다.”
“어허, 안 된다니까! 지금 북병사는 어명에 따라 여기 와 있단 사실을 잊었나? 더구나 왕자를 아직 구하지 못했잖나? 그 또한 어명 아니던가? 왕명을 무시하고 군을 움직일 셈인가?”
“그래도 가야 합니다. 안 간다면 여기 있는 육진군 병력이 큰 분란을 일으킬 겁니다. 자기 가족이 야인에게 당하게 생겼는데, 가만히 있겠습니까?”
“대감. 북병사의 의견이 타당합니다. 더 큰 분란을 방지하자면 차라리 보내 주는 게 낫습니다.”
원희가 다시 태건의 입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어허! 남병사까지 왜 이러는가? 육진군이 떠나고 나면 우리한테 고작 천여 병력밖에 남지 않는데, 그 병력으로 뭘 어쩌자는 것인가?”
“가등 군은 반드시 남쪽으로 후퇴합니다. 그러니 이곳 덕원에서 모병하며 병력을 불려야 합니다. 어차피 북병영 군은 언제든 귀환해야 할 병력이었습니다.”
원희가 다시 태건을 돕고 나서자 윤영은 원희마저 쏘아보았다. 그러자 남평사 정문부도 나섰다.
“올적합 삼백이면 조선군 일만을 능히 상대할 수 있고, 일만이 모이면 나라마저 위태롭게 할 수 있단 말이 있습니다. 북병사가 돌아가 변방을 지키는 건 곧 나라를 지키는 일입니다. 사사로운 일도 아닌데 허락하시지요.”
“경흥부 군이 올적합 수백 수천을 상대해 패퇴시켰는데, 무슨 삼백이 일만을 상대한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거야 용맹한 육진군이니 가능한 겁니다. 오랫동안 오랑캐와 싸워 본 경험이 있으니까.”
또다시 원희가 윤영의 말을 반박했다.
“그럼 이렇게 하시지요. 조정에 장계를 올려 이 사실을 고하고 어명을 받아 움직이는 게 어떻습니까?”
병마우후 정현룡이 해법을 제시하자, 태건과 원희가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태건이 먼저 나서서 그 의견을 반박했다.
“그럼 늦어요. 우리 군이 육진까지 닿으려면 지금 당장 출발해도 한 달 가까이 행군해야 합니다.”
“맞소. 그러니 빠른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오.”
“난 병마우후의 의견에 찬성일세. 내 절대로 육진군의 회군을 허락 못하나, 그래도 전하의 하교가 있다면 따르겠네. 그러니 장계를…….”
태건은 멍한 표정으로 주절주절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덧붙이는 윤영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다음으로 원희와 정현룡, 정문부에게 차례로 시선을 주었다. 태건의 눈은 이미 시퍼런 안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태건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원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러시오?”
“같잖아서.”
짧지만 매우 충격적인 말이었다. 모두가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헉! 그게 무슨 말이오?”
원희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관찰사 대감. 대감이 원하는 게 이 나라와 백성의 안위인가? 아니면 그대의 공적인가?”
“아니, 이자가 미쳤나? 어디서 감히 그런 망발을!”
“난 가겠다. 나머지 일은 당신들이 알아서 하라.”
“뭐라?”
태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윤영이 소리쳤다.
“여기서 내 허락 없이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인다면, 왕명을 무시하고 군을 움직인 죄를 짓는 것이다. 그건 반역이나 다름없지. 내가 그렇게 주상께 고변하길 바라는가?”
“그러든지.”
태건은 곧바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윤영이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그대들은 뭐하나? 저자를 포박하라!”
윤영이 명령을 내리자, 정현룡이 눈치를 보며 어물쩍 일어나더니 검집에서 칼을 뽑았다. 그도 부당함을 알았으나 군령이 떨어진 이상 따르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그러자 태건도 몸을 돌리더니 즉시 환도를 뽑았다.
스릉!
“헉!”
윤영은 화들짝 놀라 입을 쩍 벌렸다.
“나와 싸우고 싶다면 언제든 환영이다.”
“북병사! 이러면 안 되네. 고정하고 자리에 앉으시게.”
원희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빌듯이 태건에게 말했다.
“됐습니다. 여기서 저런 간신배들이랑 노닥거리며 지체할 시간 따윈 없습니다. 그럼, 남병사 영감. 만수무강하시오.”
태건은 마치 작별 인사를 하듯 원희에게 이렇게 한마디 던지고 자리를 벗어났다.
“아, 이런…….”
태건의 뒷모습을 보며 원희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탄식을 터트렸다.
기세등등했던 윤영은 어느새 바짝 얼어 덜덜 떨고 있었다. 태건이 눈앞에서 칼까지 뽑았으니, 자신을 바로 해할까 염려한 것이다.
“관찰사 대감. 지금 큰 실수한 겁니다. 나라를 위태롭게 만들었어요.”
“그, 그게 무슨 말인가?”
“북병영에 속한 병력만 이제 일만에 달합니다. 더구나 그 사납고 강한 왜적과 오랑캐를 가볍게 무릎 꿇린 강군입니다. 전 꽤 오랫동안 북병사와 같이 싸워 저들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어요. 이제 저들의 칼끝이 우리에게 향한다면 어쩔 겁니까?”
“대감, 오늘 일을 그대로 조정에 고하면 큰일 납니다. 그러니 되도록 내용을 완화해서 보고하시지요. 수습은 차후에 천천히 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