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73
73화
파국 (2)
함경도 문천 지방.
태건이 약 천 명의 기병을 이끌고 지나간 데 이어, 4천에 이르는 보병이 또다시 남쪽에서 올라오자 문천 주민들 대부분이 길가로 나와 쑥덕거리며 이 장면을 지켜보았다.
“왜 북쪽으로 가지? 오랑캐가 쳐들어왔나?”
“그런 모양이지. 지금 전쟁이 한창인데 회군할 이유가 그것밖에 더 있나?”
“어라? 저 뒤를 보게. 피난민들이 따라붙었지 않은가?”
“맞네. 피난민이야.”
주민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면을 모두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오랑캐가 쳐들어왔는데 왜 거꾸로 북쪽으로 피난을 가나? 설마 왜적에게 우리 관군이 패했나?”
“에이! 말도 안 되네. 저게 어디 패잔병의 모습인가? 걸음걸이가 당당하기만 한데.”
“흠. 그렇긴 하군.”
행군 대열이 지나고 피난민들이 다가오자, 주민들이 그들 중 어느 가족에게 물었다. 중년 부부와 딸 하나, 아들 하나로 구성된, 전형적인 4인 가족이었다.
“어디서 오셨나?”
“덕원이오. 강외로 나가려고 나선 길이지.”
“강외로? 그럼 왜 고향을 등지게 되었지요? 혹시 왜군이 다시 올라왔나?”
“왜군은 무슨. 놈들은 패퇴해서 지금 안변까지 밀려 내려갔는데. 게다가 명나라에서 원군을 보내 줘 평양도 탈환했다고 들었소. 그러니 놈들도 곧 안변을 버리고 남쪽으로 물러나겠지.”
“오라! 평양을 탈환했다고?”
깜짝 놀란 주민이 동네 친구에게 말했다.
“그럼 왜적의 기세가 완전히 꺾였다는 말인데.”
“그러게.”
주민은 다시 피난민 가장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떠나왔지요? 도대체 이해되지 않아 묻는 말이오.”
“이제 왜적이 물러났으니 조정에서 곧 관군을 보내 함경도를 도륙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지 않소?”
“헉! 그, 그게 무슨 말이오? 함경도를 도륙한다니. 혹시 전에 있던 일 때문에?”
함경도 사람들은 주민과 토병이 나서서 관리와 장수들, 심지어 왕자까지 붙잡아 왜적에게 넘긴 일을 기억하고, 그걸 가슴 한구석에 담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 그 기억을 떠올릴 때면 등골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했다. 심지어 조정이 함경도를 토벌할 거란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기도 했다. 그래서 의병 진영에 너도나도 가담했는데, 그마저 해산되는 바람에 저마다 내면에서 조금씩 불안감이 싹트고 있던 참이었다.
대화를 나누던 피난민은 얘기가 시작된 김에 아예 쉬어갈 생각으로 등짐을 내려놓더니 그 위에 걸터앉았다. 그의 가족들도 길가에 앉아 다리를 주무르며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아요. 문천 사람들도 잘 생각해야 할 거요.”
“또 무슨 일이 있소?”
“우리 북병사 영감이 관찰사와 크게 싸웠다고 하오.”
“뭐요? 그럼 항명이 아니오? 관찰사가 어명이 어쩌고 하며 북병사와 남병사를 마소 부리듯 한다던데.”
“항명이 맞지. 하지만 항명을 안 할 수가 있나? 북방 오랑캐가 떼를 지어 쳐들어올 기세라는 전갈을 받았으니 당연히 북병사는 군을 되돌리겠다고 했지.”
“에휴! 그걸 또 못하게 막았구만. 그 쳐 죽일 놈의 관찰사가.”
“맞소! 그래서 크게 충돌했다고 하오.”
“그럼 조정에서 북병사 영감을 잡아 죽이려고 하겠군. 반역이니 뭐니 하며.”
“불을 보듯 빤한 일이지.”
“가만, 그럼 북병사까지 역도로 몰면 우리 함경도 사람들은…….”
문천 주민은 비로소 이들이 피난을 나선 이유를 알아차렸다.
“설마 백성들을 다 죽이기야 하겠소? 하지만 타지 출신 관군들이 들어온다면 온갖 핑계들 대며 못살게 굴지 않겠소? 재산을 약탈하고, 다 자란 딸내미도 건드릴 테고.”
“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오. 근데 그쪽은 어떻게 이리 잘 알고 있소?”
“육진군의 군관에게 들어 알고 있소. 물어보니 자초지종을 잘 얘기해주더이다.”
“어허, 이런! 그럼 그쪽 말이 다 사실이란 말이네?”
“사실 맞지. 군관이 그러더이다. 강외로 나가면 괜찮을 거라고. 북병사 영감도 강외와 육진을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결심한 모양이오.”
“헉! 그럼 조정과 맞서겠다는?”
“별수 있소? 맞서지 않으면 오랑캐한테 쓸려 나갈 판인데? 북병사 영감도 여러모로 참 안 됐소. 북쪽에서 오랑캐가, 남쪽에서 조정이 괴롭히고 있으니. 살려면 결단을 내리는 수밖에 없지.”
“그, 그럼 혹시 나라를 세우기라도?”
“그럴지도 모르지. 강외 영토가 무척 기름지고 넓은 모양이외다. 난 그리로 가기로 했소. 함경도 땅이 아주 지긋지긋해졌소. 그쪽도 잘 생각해 보시우.”
말을 마친 피난민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짐을 챙겨 들었다.
* * *
이하륜과 홍은은 목조 교량 문제로 한창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두만강 같은 큰 강에 나무로 다리를 놓을 수 있단 말이지?”
“당근이지. 문제는 내구력이지만.”
“내구력이야 어차피 콘크리트가 개발될 때까지 계속 수리하며 쓰면 되니까.”
“그렇긴 하네.”
“흠. 이거 당장 추진해야 할 것 같은데? 설계, 가능해?”
“해 본 적은 없지만, 배우고 본 건 있으니까 머리를 짜내 봐야지.”
도로 공사가 진척될수록 교량 건설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이하륜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건축을 전공한 홍은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작은 개울의 경우, 교각을 세우지 않고 굵은 통나무 몇 개를 양쪽 둑 위에 걸쳐 두어 상판 구조를 만들고 그 위를 흙과 짚, 잔가지, 널빤지 등으로 덮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두만강이나 훈춘강, 경흥의 아오지천, 경원의 오룡천과 같은, 교각이 여러 개 필요한 큰 강이 문제였다.
특히 두만강은 교각 건설의 필요성이 절실한 곳이었다. 현재 나루터를 통해 사람과 물품이 오가다 보니, 여기서 꽤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그럼 일단 두만강에 딱 두 군데만 놓아 보자.”
“어디?”
“경흥은 무이보와 수빈동 구간?”
“음. 좋네. 용케도 강폭이 좁은 곳을 골랐군.”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거든?”
“아, 네. 그러시겠지. 그럼 다른 곳은?”
“경원의 훈융진하고 국화당동 구간.”
“음. 거기도 필수적인 곳이긴 하네. 그래야 종성과 회령이 훈춘과 연결되니까. 알았어. 틈틈이 설계해 볼게.”
두 사람이 토론을 끝마칠 무렵, 허균과 조경린이 전령과 함께 두 사람이 있는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허균과 조경린은 경흥부 관청에서 일하던 중에 전령이 가져온 태건의 서신을 받자, 밀담을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을 급히 찾아 나선 길이었다.
“어휴! 여기 계셨군.”
허균은 탁자 위에 지도와 함께 교각을 대충 그린 그림이 있는 걸 보고, 또 두 사람이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보니, 허균은 중차대한 문제를 들고 왔음에도 그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런!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이것 좀 보시게.”
허균은 서신을 품에서 꺼내 이하륜에게 건넸다. 이하륜은 서신을 빠르게 읽어 내려가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에휴! 우리 북병사 영감이 큰 사고를 쳤구만.”
이하륜의 반응을 본 허균은 너무나 당황했다.
“사, 사고라고?”
“솔직히 진즉 일어날 일 아니었나? 언제까지 관찰사 놈과 조정에 끌려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싸울 때는 싸워야지.”
“음… 그, 그렇긴 한데, 너무 노골적이지 않나? 조금 놀란 척이라도 해 줘야지. 아직 적응하지 못한 사람도 있으니까.”
허균의 말을 들은 조경린은 입을 쩍 벌린 채,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적응 못한 사람의 전형적인 반응이었다.
“어디?”
홍은도 이하륜의 손에 있던 서신을 낚아채고 빠르게 훑어보았다.
“에휴! 사고를 친 건 오빠가 아니잖아? 관찰사란 작자지.”
“아~ 생각해 보니 그렇네.”
이하륜은 곧바로 자신의 의견을 정정했다.
“맞소. 관찰사가 잘못했지. 하지만 조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틀림없이 사람을 보내 치죄하겠다고…….”
조경린은 자기만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말을 하면서 깨달았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어요. 주상 전하의 성정이 어떤지 잘 알지 않습니까? 그게 넌더리가 나서 경흥으로 온 것 아니오?”
허균이 핵심을 찌르자 조경린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휴! 그렇긴 하지요. 결국 조정은 북병사 영감에게 반역죄를 뒤집어씌우겠군요.”
“왜란만 아니었으면 벌써 그러고도 남았을 겁니다.”
“인정하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인가?”
허균이 이하륜에게 물었다.
“이렇게 될 걸 예상하고 어느 정도 준비해 두었지.”
태건은 이하륜에게 이미 병력을 충원하란 지시를 내려 둔 상태였다. 경흥부와 하훈춘 와르카 수성군의 보유 병력, 또 그 외 육진군 병력만으로 예상되는 여진군의 대공세를 방어하기에 벅찬 형편이었다. 그래서 이하륜은 그간 천 정도를 추가로 모병하고 훈련을 시켜 왔는데, 태건은 천 명을 더 충원, 모두 2천을 더 늘리라고 지시했다.
“나머지 천도 금방 모병할 수 있겠지. 현 상황을 육진에 널리 알릴 생각이거든. 그러자면 응? 알지?”
이하륜이 미소를 지으며 허균을 바라보자, 그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관보를 활용하잔 말이지?”
“그래. 이번에 덕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주 상세하게 밝히라고. 더 보태지도 빼지도 말고. 그래야 관보의 신뢰성이 유지되니까. 또 여진족의 침략을 격퇴하는데 더 많은 병력이 필요하니 자원해 달라는 기사도 좀 써 주고.”
“알았네. 바로 처리해야겠군.”
허균과 대화를 마치자 이하륜은 다시 조경린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제 눈치 볼 것 없이, 준비해 둔 지방행정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 같군요. 현령들 후보자 검증도 시작해야 하고.”
“알겠습니다.”
“앞으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이주민이 들어올 거예요. 그전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이번 일로 함경도 백성들이 크게 동요할 테니까. 그러니 더욱 빨리 강외 지역의 행정 체계를 완비해야 할 겁니다.”
이윽고 이하륜의 부름에 응해 태원과 김무정도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허균이 먼저 나서서 그간 벌어진 일을 빠르게 설명했고, 이하륜은 김무정에게 먼저 태건이 지시한 사안을 전달했다.
“빨리 수군을 준비시켜 내려보내랍니다. 화포를 비롯한 무거운 장비를 실어 와야 한다네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경흥부 병력을 제외한, 다른 육진에 해당하는 지시입니다. 기존 병력 4천에 신규 병력 2천을 더하고 이를 재배치하는데, 무산진에 오백, 회령에 이천, 온성에 이천, 종성에 천오백을 배치하랍니다. 그러나 아직 천여 명의 병력이 부족하니, 모병을 마치는 대로 각지에 나눠 보내기로 합시다.”
“그럼, 이 육천이 방어에 필요한 최소한의 병력이군요.”
“맞습니다. 남쪽에 파견 갔던 병력이 돌아올 때까지 공격은 언감생심이죠.”
“예, 곧바로 이행하겠습니다.”
김무정이 물러나자, 이하륜은 태원에게 말했다.
“이번에 야인들의 침입을 격퇴하고 나면 할 일이 많을 거네.”
“잘 알고 있습니다, 형님. 이제 바로 준비에 들어가자는 말이죠?”
“맞아. 그러자면 많은 인력과 재원이 필요하지. 특히 재정이 문제인데……. 북병사 형님이 예전에 말한 바가 있는데, 단천까지 선을 긋자고 하네?”
“선을 긋는다고요?”
“어, 조금 중기 과제이긴 한데, 그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재원이라면… 더구나 단천이라면, 은광 때문이군.”
허균은 태건의 속뜻을 즉시 알아차렸다.
“맞아. 게다가 함경도 이주민의 동선이 너무 길어 생기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지. 아마 함흥과 그 이남에서도 이주민이 올라올 거야. 그런데 머지않아 관군도 들이닥치겠지. 그런데 우리는 북방 야인들 때문에 여력이 없으니 이주민을 모두 보호할 수가 없잖아? 그러니 이주민이 최소 단천까지만 오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게 하잔 말이지.”
“좋은 생각이네. 은점을 개발해 재정을 확보하고, 이주민도 보호한다니.”
허균도 즉시 동의했다. 은점이란 은광산을 말하는데, 조선은 보통 귀금속 광산을 금점, 은점, 동점이라 표현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