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78
78화
북청 차사 (3)
북청과 홍원의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상가령 어느 계곡에 어느 날 갑자기 산채가 자리를 잡더니 많은 사내들이 모여들었다.
이 집단의 지도자 중 하나인, 30대 중반의 이당은 화살을 손질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휴! 아깝군. 반드시 죽여야 했는데.”
“다음 기회가 있을 거네.”
동료이자 의형인 이붕이 그를 위로해 주었다.
“형님은 성공했는데, 난 그렇지 못했잖소? 면목이 없습니다.”
“어허! 그 얘긴 그만하자니까.”
이당과 이붕은 이번에 함경도 의병이 되어 간부로 활약했던 이들이었다.
이당은 무관 명문가 출신 인사였다. 그러나 집안이 빈한하다 보니, 농사와 무예 수련을 병행해야 했다. 그런데도 당당히 무과에도 급제했으나, 벼슬살이에 싫증을 느끼고 북청으로 낙향해 활쏘기와 수렵을 낙으로 삼으며 지내다 이번에 의병으로 나섰다.
이붕도 향반 출신인데, 국경인과 국세필의 난을 보고 곧바로 의병이 되었다. 그는 의병 진영에서 이당과 만나 생사고락을 함께하다 보니 어느덧 의형제 사이가 되었다.
둘이 처음 의병으로 자원한 곳은 부령이고, 첫 전투를 치른 곳이 바로 경성이었다. 그들은 경성 공성전과 생기령 전투에서 태건의 활약상을 보며 총대장 태건을 몹시 존경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계속 승승장구하며 크나큰 기쁨을 맛보았고, 그만큼 태건에 대한 충성심도 깊어갔다. 둘뿐만이 아니라 동료 의병 모두가 그랬다.
그러나 오랑캐의 준동으로 인해 태건이 육진군을 인솔해 떠나간 이후, 그런 행복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패배도 거듭되었고, 급기야 국왕과 관찰사 윤영의 무책임한 고집 때문에 동료 의병도 순식간에 흩어졌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두 사람은 끝까지 남았으나, 결국 다시 불려온 태건이 윤영과 크게 충돌하더니 끝내 역모 혐의까지 뒤집어쓸 걸 감수한 채, 다시 육진으로 회군하는 모습을 보자 미련 없이 의병을 그만두었다.
두 사람 다 양반 출신인데다 이당은 중앙에서 무관 벼슬도 했기에, 태건이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할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곧 의기투합한 뒤 음지에서 태건을 돕기로 결심하고, 또 다른 형태의 의병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모인 병력이 무려 백여 명에 달했다.
준비를 마친 이당과 이붕은 병력을 이끌고 함관령으로 나아갔다. 거기서 의금부 행렬을 목격하자, 병력을 나누었다. 이붕은 병력 절반을 이끌고 의금부 행렬을 추격했는데, 그는 의금부 관헌들을 공개 처형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 북청에서 이들을 습격했다. 물론 그 효과는 탁월했다. 그 사건을 목격한 북청 주민들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결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함관령에 남아 있던 이당은 오천태 일행을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다. 반드시 처단해야 할 자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기습은 실패했다. 화살 두 발을 맞추는 데 성공했으나 목숨까지 끊지 못했다. 그래서 이당이 깊게 자책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한 놈도 통과시키지 맙시다.”
“후후! 그래야지. 아울러 저들이 변복하고 부임할지도 모르니, 당분간 홍원에서 지내며 외지인을 감시하자고.”
“예, 그게 좋겠습니다.”
오천태 암살 실패가 약이 되었는지, 이당과 이붕은 향후 단 한 번의 실패도 겪지 않았다. 그로 인해 항간에 ‘함흥차사’에 빗대어 ‘북청차사’란 말이 돌기 시작했다. 북청 이북으로 부임하는 관리들이나 태건을 체포하려 나선 의금부 관헌들이 계속해서 봉변당했기 때문이다.
* * *
태건의 작전 지시에 따라, 정강빈과 송찬황은 병력을 이끌고 곧바로 알목하를 건넜다. 아울러 본대가 보유한 기병을 미리 풀어 전방을 정찰하게 했다.
“적군은 오로지 전방에 있는 회령군과 우리 기병에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더구나 북병사 영감이 지휘하는 기병이 계속 움직이며 저들의 이목을 끌어 주고 있어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정찰병을 이끌고 다녀온 소대장이 면밀하게 상황을 전달해 줬다.
“오호! 그렇단 말이지? 하긴 놈들의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천을 넘는 기병이 눈앞에서 오락가락하면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지.”
송찬황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더구나 여전히 갈수기라, 기병이 마음만 먹으면 알목하와 같은 얕은 하천 정도는 바로 건널 수 있으니까.”
남쪽은 초봄에 맞게 날씨가 많이 풀렸지만, 육진은 여전히 추웠다. 그렇다 보니 하천 수량은 여전히 적은 편이었다.
“그럼 빨리 움직이자고.”
“그래야지.”
송찬황과 정강빈은 다시 군을 움직였는데, 노토 군의 눈에 띄지 않으려 서쪽에 있는 산줄기에 바짝 붙어 이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토 부족 진영이 시야에 들어오자, 정강빈은 모든 화포를 언덕에 올려놓은 다음, 곧바로 방열하라 명했다. 아울러 보병에게 적 기마대의 돌격에 대비하기 위한 진형을 짜게 했다.
이윽고 모든 준비를 마치자, 정강빈은 즉시 하늘로 효시를 발사했다.
휘이이이익!
효시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하늘을 날자, 전방에 있는 노토 부족과 회령의 조선군 병력의 시선이 모두 남쪽으로 향했다.
“쏴라!”
퍼퍼퍼펑! 퍼펑!
화포 부대는 불랑기포의 자탄 대부분을 조란탄으로 채웠다. 그 결과 순식간에 많은 노토 병력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물론 철환도 섞여 있었다. 철환은 밀집해 있는 노토 군 보병 대열에 떨어져 많은 사상자를 냈다.
늘 그렇듯, 화포의 공격은 노토 군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몇 년 전, 니탕개의 난 때도 개인용 화포인 승자총통에 크게 당한 적이 있었다.
“편전도 쏴라!”
정강빈의 명령에 따라 사수들도 애기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조란탄과 편전이 계속해서 하늘을 뒤덮으며 날아들자, 노토 군 사상자가 빠르게 늘어났고, 공포감에 잠식된 병사들은 여기저기로 날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토 군의 지휘관인 왕이누와 니탕가는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독전대를 내세워 금세 혼란을 진정시키더니, 남쪽의 조선군 본대를 향해 즉시 기마대를 출동시켰다. 전방에서 기동 중인 조선군 기병의 위협을 무시하고 아예 화포부터 없앨 심산이었다. 그 정도로 화포로 인한 피해가 컸다.
“크하하! 좋은 선택이다. 죽는 길을 아주 잘 골라잡았군. 나 같으면 후퇴했겠다.”
말에 올라타 있던 송찬황은 편곤을 빙빙 휘두르며 출동 시점을 재고 있었다.
천에 달하는 조선군 기병대가 알목하를 건너는 장면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노토 기병이 본진을 비우자마자 행동에 나선 것이다.
조선군 기병은 크게 두 무리로 나뉘었는데, 태건과 진태종이 한 무리를 맡아 선두에서 나란히 달리고 있고, 강대구가 또 한 무리를 맡았다. 조선군 기병대는 이내 노토 보병 진영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정강빈은 화포와 편전 공격을 중지시키고, 각 대대의 소총수에게 명령했다.
“사격 준비!”
화승에 불을 붙인 다음, 불씨 부분이 꺼지지 않게 입으로 호호 불며 대기하고 있던 소총수들은 드디어 명령이 떨어지자,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적 기마대를 조준했다.
“쏴라!”
타타타탕! 타타탕!
일차로 오백 정에 달하는 화승총이 불을 뿜었다.
“커헉!”
“으으윽!”
말과 사람이 내는 비명이 알목하 골짜기에 메아리쳤다.
“쏴!”
소총수만 무려 천에 달하다 보니, 정강빈은 오백씩 두 번에 걸쳐 사격하게 했다. 또다시 수백의 노토 기병들이 쓰러졌다.
“장창수!”
사격을 마친 소총수들이 재빨리 대열 안으로 물러서자, 자연스레 장창수가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자신의 진로 앞에 시퍼런 창날이 숲을 이룬 모습을 본 노토 기병들은 깜짝 놀라 즉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일부 기마는 속도에 따른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창에 몸을 꿰이고야 말았다.
이렇게 지리멸렬해진 노토 기병을 어느새 태건이 이끄는 500여 기의 기병이 따라와 들이쳤다. 이후 벌어진 장면은 학살극이나 다름없었다.
태건은 노토 기병대를 이끄는 자 중 가장 화려한 갑옷을 입은, 대장으로 보이는 자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그는 태건을 보자 싸울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건의 말은 이미 가속력이 붙어 있고, 그는 방금 막 말머리를 돌린 상황이라 이내 따라잡혔다.
태건이 월도를 들어 후려치려 하자, 그는 곧바로 말에서 뛰어내렸다. 태건은 고개를 돌려 황당한 표정으로 땅바닥을 구르는 그를 바라보았다.
“……!”
태건은 다시 말머리를 돌려 그자에게 다가가, 그의 목에 월도를 대고 주션어로 물었다.
“이름은?”
“사, 살려 주시오.”
“이름!”
“왕이누입니다.”
“왕이누? 추장이군.”
태건이 잠깐 짬을 내어 어설픈 주션어로 그를 심문하는 사이, 부장인 경현호가 다가와 통역해주었다.
“당장 이 싸움을 멈추게 하라!”
“예, 장군.”
경현호가 몇 마디 하자, 왕이누는 땅바닥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그러자 모든 노토 기병들이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무기를 버렸다.
왕이누의 서부군이 투항하자, 북부에서 고라이동과 안출라쿠 병력을 이끌고 온 니탕가는 남은 병력을 수습해 두만강을 건넜다. 하지만 후퇴 과정에서 또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다. 니탕가 하나를 살리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노토 병력이 목숨을 잃었다.
태건은 추적을 멈추게 했다. 지금은 패잔병을 치는 것보다 종성의 상황이 더 급했기 때문이다.
* * *
태건은 주로 보병으로 이뤄진 본대 병력을 먼저 종성을 향해 출발시킨 다음, 회령 병력 중 천 명을 빼내 보을하보와 고령진 등의 진보에 다시 병력을 배치했다.
이렇게 후속 조치를 마무리 짓자 회령군 지휘관 성이례가 전투 결과를 보고했다.
“적 추장 왕이누를 비롯해 오백 가량을 사로잡았고, 군마 역시 약 오백 필을 획득했습니다. 적 전사자는 천에 달합니다.”
“그럼 포로들을 경흥부로 데려다주게. 거기서 할 일이 많을 거네. 노획한 무기와 군량도.”
“예. 그리하겠습니다.”
“왕이누를 대령하라.”
“예, 장군.”
왕이누가 포박된 채 태건 앞으로 걸어왔다. 포로로 잡힐 때만 해도 비굴한 태도를 보였지만, 도르기 비라의 3대 추장이란 자부심이 아직 남아 있어 무척 뻣뻣한 태도를 보였다.
이를 고깝게 여긴 군관이 사정없이 그의 오금을 걷어차자, 그는 저절로 무릎을 꿇었다.
“크흑!”
“내 딱 하나만 묻겠다. 조선과 오도리 피로인은 어디에 있나?”
“예?”
“네놈들이 노예로 잡은 사람들 말이다!”
태건이 호통을 쳤다.
“아, 예. 도르기 비라 여러 마을에…….”
“도르기 비라 출신 포로 몇 놈을 풀어 줄 테니, 도르기 비라 촌락마다 들러 내 얘길 전하도록 하라. 피로인을 풀어 주면 처벌은 한결 가벼울 것이다. 그러나 향후 내가 친정 나갈 때까지, 그들을 붙잡고 있다면 그 부락의 장정 모두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헉! 예, 예. 알겠습니다.”
“성이례 대대장!”
“예, 장군.”
“이자를 심문해서 도르기 비라는 물론 노토 부족 전체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뽑아내게.”
“네, 그리하겠습니다. 그럼 심문을 마치면 죽입니까?”
성이례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웬만하면 포로를 죽이지 않는다. 그러나 예외도 있긴 하지.”
“그럼 저자를…….”
“살려 두게. 포로들의 대장도 필요하니까. 그럼 회령을 잘 부탁하네.”
“예, 장군.”
태건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기병들을 이끌고 종성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