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8
8화. 오사카와 사카이 항 (4)
태건은 곧바로 일본 무사와 맞붙었다.
챙! 채챙! 챙!
두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만 들어도 두 사람의 움직임이 얼마나 빠른지 알만했다.
태건은 무예 실력은 갈수록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태건의 몸이 보유한 천부적 무예 재능과 철헌의 수준 높은 검법 지식이 점차 융합되며 일어난 효과였다.
태건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상대의 공격을 받아 냈지만, 몸의 움직임은 범인들의 눈으로 쫓기 어려울 정도로 빨랐다. 더구나 정면으로 부딪칠 경우, 상대의 검을 부러뜨리기 일쑤인 왜도를 상대하고 있다 보니, 태건은 상대의 힘을 적당히 흘리며 대결해야 했다. 일본 무사도 그걸 알고 있기에 속도와 힘을 중시했다.
태건은 독특한 동작으로 적의 왜도를 빗겨 치거나 피한 다음, 빠르게 공세로 전환했다. 태건의 달라진 기세에 놀란 일본 무사는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이렇게 몇 합을 겨룬 다음, 두 사람은 떨어져 잠시 호흡을 골랐다. 태건의 표정은 여전히 여유로웠지만 일본 무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후후! 왜검을 구사하셨군.”
이하륜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검술요? 와! 어쩐지 비슷하더라니. 아니! 그럼 태 판관님은 언제 왜검을 익혔단 말입니까?”
송찬황이 기겁하고 물었다.
“대련하며 자연스레 익히신 게지.”
이하륜은 무예도보통지에 왜검술도 있다고 차마 밝힐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다시 대련을 재개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중에도 태건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상대의 검이 어떻게 움직일지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방어했고, 공격할 때는 상대의 헛점을 정확히 찌르고 나섰다. 상대 왜검술 보다 더 빠른 왜검술을 시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태건의 검법에 변화가 일어났다.
정강빈이 이를 알아보고 이하륜에게 물었다.
“저, 저건 무슨 검법이죠?”
“제··· 음, 잘 모르겠군.”
이하륜은 ‘제독검’이라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명의 원군을 이끌고 온 이여송 제독의 부하 장수에게서 나온 검법이기 때문이다. 무예도보통지는 한중일 삼국의 무예를 집대성한 백과사전과 같은 무예서이기 때문에, 태건은 왜와 명의 검술을 번갈아 활용하고 있었다.
이하륜은 저들에게 혼란을 주려는, 태건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헉!”
일본 무사는 기겁을 하더니 그대로 굳어 버렸다. 태건의 검은 어느새 그의 목에 닿은 채 멈춰 있었다.
“끄, 끝났다.”
“와하하하! 이겼다.”
“이거 실력 차가 너무 나지 않나?”
조선 무관들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그 결과를 이미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뒤이어 구경꾼들의 함성과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대로를 뒤흔들었다.
황윤길과 김성일도 다를 바가 없었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파안대소하며 박수를 쳤다. 일본의 부당한 처사로 인해 쌓인 심화 때문에, 기쁨이 더욱 배가 되었다. 태건은 두 사람을 향해 공손히 군례를 올렸다.
* * *
오사카 남쪽에 자리한 사카이하마항 ― 후세의 오사카 부 사카이 시.
통신사 사행단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오사카로 이동했기에 사카이항을 자세히 살필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오사카에서 꽤 오래 머물러야 할 처지라, 허성은 태건에게 사카이 항에 다녀오자고 제안했다.
“허 참! 변복해도 태 판관의 뛰어난 용모는 가려지지 않는구려. 변복을 왜 했는지 모르겠소.”
허성은 앞서 걸어가고 있는 태건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태건은 뒤를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그 역시 자신의 외모가 너무 튄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정말 그렇습니다요. 왜인에 비해 최소 머리 두 개는 더 커 보이지 않습니까?”
허성의 뒤를 따르던 화원 하나가 그의 말에 반응했다.
태건은 허성의 제안을 받자마자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바로 준비할 것이 있다고 답했다.
‘먼저 모두가 허드렛일을 하는 이들의 옷으로 변복해야 합니다. 서장관님이 나서면 왜인들이 반드시 따라붙어 사사건건 방해할 테니까요. 하지만 하인들은 물품을 구하려고 바깥출입이 잦은 편이니 감시자의 눈에서 한결 자유롭지요.’
태건이 감시자 운운한 이유는 사카이가 일본의 무기고나 다름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카이는 일본도의 이름난 산지이자, 포르투갈 상인에 의해 전래된 조총과 화약이 대거 제조되는 곳이기도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주군으로 섬기던 오다 노부나가가 크게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도 사카이를 수중에 넣고, 소위 철포 부대를 풍부하게 운용했기 때문이다.
사카이는 국제항답게 엄청나게 번화한 곳이라, 거리는 일본인들로 넘쳐났다. 이처럼 작은 일본인 사이에 있다 보니 180대 중반을 훌쩍 넘는 태건의 키는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와 나란히 걷고 있는 정강빈도 180에 달했기에, 군중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두 조선인 무관에게 향했다.
앞에서 걸어가던 태건이 뒤를 돌아보더니 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거리 구경을 하느라 두리번거리며 걷던 허성과 화원은 태건의 손짓에 따라 정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무, 무슨 배가 저렇게 크담?”
“저게 혹시 그 말로만 듣던 남만 배입니까?”
“그런 모양일세. 정말 웬만한 동산만하군.”
이들을 놀라게 만든 서양 범선은 부두에서 조금 떨어진, 수심이 깊은 곳에 정박해 있는데도, 주변에 널려 있는 일본 배들 때문에 더욱 커보였다.
“아, 저자들이 남만인들인가 봅니다.”
화원은 부두를 배회하고 있는 포르투갈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인세에 도깨비가 있다면 저 모양새로 나타나겠어.”
허성은 서양인들을 처음 봤기에 포르투갈 상인을 뚫어져라 관찰했다.
일본인들은 남쪽에서 왔다고 하여 서양인을 남만인이라 뭉뚱그렸다. 즉 동남아인도 남만인이고, 서양인도 같은 인종으로 치부한 셈이다. 그 때문에 조선도 이들을 남만인이라 했다.
부두가 가까워지자 포르투갈 상선이 더욱 잘 보였다.
“전 여기서 그림을 그리겠습니다.”
화원 하나가 먼저 나섰다. 생전 처음 보는 배의 모양새에 매료된 그는 당장 그림으로 옮기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 태건이 데려온 화원은 두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잠깐 상의하더니 절반씩 나눠 그리기로 했다.
태건은 화원들의 작업 장면을 지켜보다 다시 부두 쪽을 면밀히 살폈다. 분명 일본 배인데, 포르투갈 상선을 닮은, 꽤 큰 배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저게 주인선인가?”
주인선(슈인센)은 막부로부터 해외무역허가증을 취득한 배로, 일본 상인들은 이 배를 이용해 포르투갈 상인들의 거점인 마카오를 비롯한 인도네시아까지 진출했다. 주인선 제도가 본격 실행된 시기는 약 10여년 뒤, 즉 초기 에도 시대이나, 벌써 이 대형 상선이 건조되어 활용되고 있었다.
“저건 일본 배 아닌가? 남만선을 모방해 만든 모양이야.”
허성도 주인선을 발견하고 태건에게 물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흠, 그렇다면··· 저 배도 부탁함세.”
“예. 서장관님.”
화원이 바로 답했다.
“그럼 이 분들 호위를 맡아 주게.”
태건이 정강빈에게 부탁했다.
“서장관님, 저쪽으로 가실까요?”
“좋지요. 그럽시다.”
태건과 허성은 부두를 벗어나 사카이의 진면목을 살피고자 했다. 두 사람은 무기 공방과 도매상이 밀집해 있는 구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근데 남만 배 그림을 그려서 어쩌시려고?”
허성은 그가 굳이 화원을 데리고 가자고 청했을 때부터 이 점을 궁금하게 여겼다.
“우리 조선도 언젠가 저런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 남만인들과 교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허! 그래요?”
허성은 그저 웃어넘겼다. 조선의 현실상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분은··· 혹시 선전관님?”
“응? 그렇군.”
태건은 왜도 공방 앞에 서있는 황진에게 다가갔다.
“왜도를 사시려고요?”
옆에서 조선어가 불쑥 들려오자 황진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아, 태 판관. 서장관님도? 어라? 변복하셨네?”
“저만 그런 게 아닌데요?”
“귀찮은 일을 방지하고자··· 후후!”
황진도 태건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황진 역시 칼의 본향이라고 하는 사카이 공방 사정이 궁금해,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하급 통역관인 소통사 한 명을 데리고 나온 길이었다.
실제 역사에서 황진은 노잣돈을 탈탈 털어 일본에서 왜도 두 자루를 구입해 돌아와 열심히 수련했다. 그는 통신사 사행 과정에서 왜란이 일어날 거라 확신하고, 귀국하자마자 미친 듯이 무예 수련에 몰입했다고 한다.
태건은 황진의 현재 상황과 미래에 펼쳐질 개인사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임진왜란에서 권율 장군보다 더 큰 공을 세운 장수라는 평도 있을 정도로 뛰어난 무장이었다. 전주를 지켜낸 웅치와 이치 전투에서 크게 활약했고, 이후 곳곳에서 큰 공을 세웠다. 항간에 ‘바다에 이순신, 땅에 황진’이란 말이 돌 정도로 백성들이 흠모한 인물이었다.
“그럼 태 판관은 어인 일로 여길······.”
“전 철포에 관심이 있습니다.”
“철포? 나도 그와 관련된 얘길 자주 듣긴 했지.”
공방 주인이 칼 두 자루를 내오자, 같이 나온 소통사가 셈을 치렀다. 일본도를 받아든 황진은 검집에서 칼을 꺼내어 슥슥 휘둘러 보더니 만족해하는 미소를 지었다.
“어제 대결도 아주 인상적이었소. 태 판관이 검 쓰는 모습을 보고 나니, 무관으로서 그간 검 수련을 너무 게을리했다는 생각이 들어 깊이 자책했다오. 그래서······.”
황진은 묻지도 않았는데, 왜도를 산 이유에 대해 밝혔다.
태건은 그간 꾸준히 일본 무사들의 도전을 받아 왔다. 오사카에서 처음 대련한 이래 네 차례나 더 대결을 벌였고, 압도적인 기량 차로 승리했다. 벌써 수차례 대결이 펼쳐지다 보니, 오사카 주민들은 이 검술 대련을 조선통신사 사행단의 주요 행사로 인식할 정도였다.
물론 허성을 비롯한 세 사신들도 이를 말리기는커녕, 더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태건의 무예 실력을 깊이 신뢰하기도 했지만, 무료함을 달랠 목적도 있었다.
“그럼 같이 다녀 보실까? 나도 철포에 대해 좀 알아봐야겠소.”
“그러시지요.”
이제 황진과 소통사까지 더해져, 넷이 된 일행은 공방 거리를 천천히 구경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공방이 밀집한 곳이다 보니 곳곳에서 쇠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칼을 구입하러 나온 일본 무사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조총을 만드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로 인해 태건 일행은 한참동안 공방거리를 헤매야 했다.
“잠깐만요.”
태건은 등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고 있다는 걸 느꼈다.
“무슨 일이오?”
허성이 놀라 물었다.
태건은 대답하지 않고 검을 움켜쥔 채, 뒤를 돌아보았다.
“음, 누구시더라······?”
태건은 이내 미행하는 자를 발견했다. 예상대로 일본인이었다. 그런데 그는 몰래 따라온 게 아니라는 표정으로, 먼저 태건에게 공손히 허리 숙여 인사했다.
“아하! 그······.”
낯이 익었지만 생각해 보니 통성명을 한 적이 없었다.
“뉘요?”
허성이 물었다.
“하리마국에서 저와 진검 대련을 펼친 자입니다.”
“아! 그자! 그런데 왜?”
허성 역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소통사가 나서서 일본어로 물었다. 두 사람은 한참동안 얘기를 나눴다.
“이름이 사카타 코지로랍니다. 하리마국의 영주로, 관백의 사위인, 그 뭐냐······.”
일본 영주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아 소통사가 말을 더듬자 태건이 대신 답해 주었다.
“기노시타 이에사다?”
“아, 네. 그렇습니다. 그 휘하에 있던 자로······.”
소통사는 태건의 기억력에 놀라 크게 탄복했다.
“쫓겨났군요.”
“그, 그랬답니다.”
“이곳 공방 거리를 돌아다니던 중 우릴 발견하고 따라왔다?”
“아, 아니 어떻게 그걸 다 아십니까?”
사행단에 합류하기 전, 태건은 일본어를 전혀 몰랐다. 하지만 벌써 몇 달 째 일본에서 지내다 보니 일본어가 조금씩 귀에 익었다. 그렇다고 일본 무사의 말을 다 알아들은 건 아니었다. 그저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충분히 추론이 가능했기에 넘겨 짚어 본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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