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80
80화
종성과 온성 전투 (2)
평소의 양반 차림을 하고 나온 이당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함흥 감영이 불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게 천심인가 보오.”
“맞네. 천심이지. 우리만 있는 게 아니었어.”
이붕의 얼굴에 엷은 웃음기가 감돌았다.
살아남은 오천태가 함흥 감영에 묵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숨통을 끊으려 부리나케 함흥으로 달려온 두 사람은 함흥 감영에 불이 난 걸 목격하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누군가 오천태를 죽이려 불을 지른 것이라 확신했다.
“아, 저기! 그놈입니다.”
오천태가 쿨럭거리며 부사들의 부축을 받아 방을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돌풍으로 인해 거세진 불길이 마루로 나오던 오천태 일행을 덮치자, 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지켜보고 있던 함흥 관리들이 즉시 다가가 몸에 붙은 불을 꺼주었으나, 그새 화상을 입은 오천태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쯧쯧! 수염과 머리카락이 다 타 버렸군.”
먼발치에서 보아도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오천태의 부상은 심각했다.
“차라리 살려 두는 게 낫겠어요.”
“허허! 그게 저놈한테 더 고통스러울지도 모르지.”
오천태의 몰골이 너무 흉하고 불쌍해, 어떤 인간인지 알면서도 속에서 측은지심까지 일어났다.
함흥 관리 하나가 화상을 당한 오천태를 업고 의원을 찾아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관리는 얼마 못 가 땅바닥을 굴러야 했다.
“헉! 화살이?”
화살은 정확히 오천태의 등을 꿰뚫고 들어가 그를 업은 관리의 등에도 상처를 입혔다. 매우 놀라운 솜씨였다.
“형님! 저기!”
이당이 성벽의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엔 복면한 사내가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쏜 화살이 정확히 명중했음을 확인하더니, 즉시 몸을 날려 사라졌다.
“복면했지만 왠지 낯이 익은데?”
“아, 강경우 교리 아닐까요?”
“허허! 맞네. 딱 봐도 강 교리군.”
이붕도 바로 복면인의 정체를 알아봤다. 같은 의병 동료로 매우 친하게 지냈기에 체형만 보고도 감을 잡은 것이다.
강경우 또한 과거에 급제한 후 한동안 교서관 교리 직에 있었기에, 다들 그를 강 교리라 불렀다. 그는 문관임에도 무예에 뛰어났다. 그래서 자연스레 일군의 의병을 이끌고 태건 군 진영에 들어와, 간부로 활약했다. 그러다 태건이 떠나자 탈퇴했으니, 이당이나 이붕과 같은 사례라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이제 화살을 맞은 오천태의 상세에 관심을 돌렸다.
비명을 지르던 오천태는 축 늘어진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주변에 있는 관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걸 보면 즉사한 게 분명했다.
“후후! 갔군. 그토록 못되게 굴더니.”
“이제 홍원으로 돌아갑시다.”
“그러세.”
두 사람은 서둘러 함흥을 떠났다.
* * *
퍼퍼퍼펑!
화포들이 조란탄을 토해 내자, 셀 수 없이 많은 남둘루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타탕! 탕! 탕!
대대장 전지로가 지휘하는 항왜병 화승총 대대의 활약도 엄청났다. 이들은 장전 속도도 빠른 편이었다. 조선군의 주특기인 화살도 남둘루 병사들을 계속해서 쓰러뜨렸다.
4천이나 되는 남둘루 병력이 온성 읍성을 포위하고 공격하고 있지만, 성벽을 넘은 병사가 단 한 명도 나오지 못할 정도로 조선군의 화력은 무서웠다. 온성에 화포부대와 항왜병 소총수 대대가 포함된 주력군을 배치한 덕분이었다.
전투를 지휘하고 있는 이하륜은 계속해서 성의 남쪽을 주시했다. 지난번 온성 공략전에서 무너져 내린 곳이기 때문이다. 급히 보강했으나 아직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후후! 그럼 그렇지.”
이하륜은 적들이 물러나는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비록 적병이 두 배나 많았지만, 조선군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수성만 하면 되는 유리한 입장에 더해, 뛰어난 화력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남둘루 군도 힘에 부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잠시 병력을 물린 것이다.
남둘루 군이 물러남으로 인해, 온성은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다.
“나리, 저쪽을 보십시오!”
이하륜의 부장 역할을 맡은 장호가 동쪽 주원사 쪽을 가리켰다. 주원사는 온성 바로 동쪽에 자리한 마을이다.
“하하! 드디어 왔구만.”
놀랍게도 주원사 쪽에 모습을 드러낸 부대는 정강빈과 송찬황이 이끄는 본대 병력이었다. 이들은 주원사를 지나 곧바로 두만강 변으로 향했다.
“그럼 서쪽 변포사 쪽에 형님의 기마대도 와 있겠네?”
이하륜은 즉시 남둘루 진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들은 새로운 공성 전술을 짜느라, 아직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시간 끌어라. 그럼 우리만 좋지.”
“아, 드디어 우리 본대가 강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크크! 드디어 시작이군.”
송찬황과 정강빈이 노리는 곳은 바로 강 건너편에 자리한 남둘루 인의 거주지, 대동이었다. 온성 수비군만으로 충분히 온성을 지켜 낼 수 있으리라 예상한 태건은 보병대로 하여금 아예 두만강을 건너 대동과 회파동을 공격하라고 미리 지시한 것이다.
잠시 후, 남둘루 군이 다시 온성 읍성 공략에 나섰다. 아직도 병력이 월등히 많다 보니, 그냥 돌아서기에 미련이 남아 나선 것이다.
남둘루 군이 다시 성을 공격하자, 온성 서부 변포사 지역 숲속에 숨어 기회를 보던 태건이 드디어 나섰다.
태건이 이끄는 천여 기의 기마대는 남둘루 군의 배후를 습격했다. 이 기습으로 배후가 어지러워지자, 남둘루 군의 공세는 바로 중지됐다. 이제 남둘루 군은 앞과 뒤 양쪽에서 공격받는 처지에 빠졌다.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피해가 양쪽에서 계속 누적되자, 결국 견디다 못한 남둘루 군은 서북쪽으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퇴각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온성 읍성의 성문이 열리더니 이하륜이 지휘하는 3백여 기병이 남둘루 군의 후미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호응해 태건은 적의 선두를 노리고 두만강 변으로 달려갔다. 이제 전세는 걷잡을 수 없이 기울어진 상황. 그것을 본 온성의 보병들도 뛰어나와 퇴각하는 남둘루 군을 공격했다.
선두에 포진한 적 기병대를 공격하던 태건은 기병대 무리 속에서 적 대장을 발견했다. 바로 민안 도바얀이었다. 그는 겁에 질려 황급히 말에서 내려 갑옷을 벗더니 두만강으로 뛰어들었다. 그 뒤를 따르던 기병들도 마찬가지로 헤엄쳐 도주하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거 하난 빠르군.”
태건은 결국 말머리를 돌렸다. 민안 도바얀을 놓친 게 못내 아쉬웠지만, 빨리 전투를 끝내는 게 자비를 베푸는 일이라 판단해 공격을 중지시켰다.
조선군이 공격을 멈추자 강을 건너지 못한 남둘루 병력 모두 즉시 항복했는데, 그 수가 무려 천에 달했다. 꽤 많은 포로를 획득한 셈이었다. 온성 앞의 두만강은 수량이 풍부하고 깊어 퇴각이 어렵다 보니, 포로를 많이 잡을 수 있었다.
한편, 두만강을 건넌 본대 병력은 곧바로 북쪽으로 나아갔다. 정강빈은 행군하는 도중 송찬황을 불렀다.
“자네가 기병을 이끌고 북쪽 통로를 막게. 조선인 피로인을 구하려면 도주하는 자를 모두 잡아야 하지 않겠나?”
“그게 좋겠군.”
대동은 삼각형 모양의 땅으로 동서 양쪽 산줄기가 꺾쇠 모양으로 두만강 변까지 뻗어 있었다. 그래서 동서 양쪽이 산지로, 남쪽은 강으로 막혀 있고, 외부로 통하는 길은 북쪽 산지에 두 개가 나 있었다. 북쪽의 이 두 고갯길을 넘으면 바로 회파동이 나온다.
송찬황은 본대가 보유한 기병 3백 기를 이끌고 대동 북부지역으로 달려가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정강빈은 대동 남부의 첫 마을이 나타나자, 곧바로 마을을 포위했다. 규모가 꽤 큰 편이라 정강빈은 이곳부터 점령하기로 했다.
거의 4천에 이르는 대군이 강을 건넌 사실을 알고 있어, 이미 대동 땅에 있는 모든 마을이 난리가 난 상태였다. 하지만 북쪽을 휩쓸고 다니는 기병대로 인해 피난을 떠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정강빈은 통역관을 데리고 마을로 들어가 촌장을 찾았다. 촌장은 겁에 질린 얼굴로 정강빈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내가 여기 온 걸 보면 전쟁이 어떻게 귀결되었는지 알 수 있지?”
“헉! 그, 그럼 우리가 패한 겁니까요?”
촌장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민안 도바얀이 행차해 모병을 진행할 때, 촌장은 흔쾌히 응했다. 여진 세력이 대거 연합했기에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네놈들이 살길은 단 하나다. 지금부터 노예로 잡혀 있는 조선인과 친조선 번호들을 모두 내놓아라. 단 한 명이라도 숨길 경우, 널 포함해 네놈들을 몰살시키겠다.”
“헉! 아, 알겠습니다.”
촌장은 피로인이 없다고 부인할 수가 없었다. 지난번 온성 습격 때 남둘루 군이 많은 조선인을 잡아 왔는데, 자신도 병력을 보낸 대가로 조선인 노예를 받았기 때문이다. 또 눈앞의 장수는 그 사실을 알고 찾아온 게 분명했다.
촌장이 나서서 마을 사람들에게 정강빈의 말을 전했다. 정강빈 역시 병사들에게 마을을 수색하라고 명령했다.
이윽고 곳곳에 잡혀 있던 조선인과 번호들이 조선군에게 인도되었다. 피로인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병사들은 이들을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그런데 어떤 젊은 여인이 손가락으로 남둘루 주민 하나를 가리키더니, 통곡하며 한참 동안 속내를 토로했다. 그러자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가 그자를 순식간에 때려죽였다. 그래도 분이 덜 풀렸는지 병사들은 식식거리며 다른 여인에게 달려가 또 무언가를 물었다.
정강빈은 갑자기 벌어진 사태에 살짝 당황했지만, 그냥 눈감아 주기로 했다. 굳이 얘기를 듣지 않아도 사건의 본말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 *
국왕은 현재 평안도 영유현에 머물고 있었다. 영유현은 평양 북쪽에 있는 고을이다. 여기서 그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태건을 체포하러 떠났던 의금부 금부도사 일행이 북청에서 습격받아 몰살당한 데 이어, 북병사 부임 행렬도 함관령에서 변을 당했다는 소식이 연이어 들어온 것이다.
국왕은 몹시 분노해 목소리를 높였다.
“감히 의금부 관리를 암살하고, 북병사 일행을 습격하다니! 도대체 누가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했단 말인가? 태건인가?”
“전하! 그건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함경도 민심이 개전 초로 돌아간 거 같아 몹시 걱정됩니다.”
이항복은 추호도 태건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를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으나 지금까지 그의 행보를 보면 이런 짓을 할 인물은 아니라 판단했다. 그보다 백성들이 관리를 붙잡아 왜군에게 넘길 때의 일이 먼저 연상되어 왕에게 그렇게 고한 것이다.
“어허! 이런……. 도대체 함경도를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인가! 역적 태건 세력이 북방에서 웅크리고 있는 데다, 백성마저 모두 역도나 다름없으니.”
“전하! 함경도 관찰사와 남병사에게 군을 이끌고 북쪽으로 가서, 함흥과 북청의 치안을 확보하고 범인을 색출하라 하교하소서.”
인성 부원군 정철이 의견을 냈다. 그러자 병조판서 이항복이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관찰사 윤영이 이미 고하지 않았습니까? 남병영에 남은 병력은 고작 오백이라 했습니다. 그들을 움직이라 명하면 그 병졸마저 흩어질 겁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타지 출신 병력을 보내야 합니다. 그러자면 한성을 수복한 다음, 시세를 살펴 결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너무 늦다. 시간이 갈수록 역적 태건의 세력이 날로 커질 터. 그러니 당장 그자를 추포해오고 북병영을 장악해야 한다. 더구나 지금 그자는 변경에서 오랑캐와 한창 싸우고 있을 테니,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다.”
국왕도 오랑캐 토벌에 바쁜 태건이 이 일을 꾸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태건에게 경도된 일부 적도들이 설친다 해도 조정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포기할 수는 없는 법. 그러니 병력을 더 많이 붙여 의금부 관리와 북병사가 임지에 무사히 도착하게 하라. 아울러 유명을 달리한 부사들 대신 새로 부임할 자를 천거하라.”
“예. 전하.”
도승지 심희수가 머리를 조아렸다.
며칠 후, 국왕은 오천태의 사망 사실까지 보고받자 크게 노해 길길이 날뛰더니, 결국 새로운 북병사도 선임해 보냈다.
국왕의 이러한 고집으로 인해, 결국 ‘북청차사’란 신조어가 생겨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