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82
82화
안춘 부락 정벌 (2)
함경도 안변의 학성 산성.
관찰사 윤영과 남병사 원희를 비롯한 함경도 관리들과 이제 겨우 오백만 남은 남부군 병력은 현재 학성 산성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함경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안변의 민심도 험악해져, 안전을 이유로 아예 산성으로 올라간 것이다.
윤영은 문루에 올라, 산 밑의 관도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자들 모두 육진으로 가는 건가?”
“그런 것 같군요. 갈 곳이라고 해 봐야 그곳밖에 더 있겠어요?”
원희가 대답했다.
현재 안변으로 들어가는 관도는 전국 각지에서 오고 있는 이주민 행렬로 인해 늘 붐볐다.
이주민의 행색은 너무나 볼품이 없었다. 잘 먹지 못해 피골이 상접하고, 길을 가면서도 구걸하는 자들이 많았다.
“살려면 뭐라도 해 봐야지. 지금 경기도 상황이 몹시 안 좋다죠? 관도에 굶어 죽은 백성의 시신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답니다. 일일이 묻어 주기도 어려울 정도로…….”
이런 상황을 방지하고자 태건이 감자와 고구마를 들여왔지만, 아직 보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큰 효과가 없었다.
현재 조선 전역에 대기근이란 초유의 재앙이 닥친 상황이었다.
이 임진왜란이 초래한 굶주림을 일러, ‘계갑대기근’이라 했다. 올해 계사년과 내년 갑오년의 천간 두 글자를 딴 이 대기근은 지금 한창 진행 중이었다. 전란으로 인해 제대로 농사를 짓지 못했기에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이 대기근 중에 일어난 참상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백성들은 ‘두만강 너머로 나가면 농사지을 땅을 얻을 수 있다’, ‘육진의 식량 사정이 좋으니 그곳에 가면 살 수 있다’는 등의 소문을 접하자, 굶주린 몸을 끌고 힘겹게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함경도 사람들 사이에 암암리에 떠돌던 희망 섞인 소문이 다른 지방에도 전파되기 시작한 탓이다.
전자는 당연히 사실이고, 후자도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여러 이유와 경로를 통해 최소 경흥부만큼은 꽤 많은 식량을 비축하고 있었다.
“그래도 막아야 하는 거 아닌가? 저들이 다 태건 놈한테 가면 역도의 세력이 더 커지지 않겠나?”
윤영이 다시 헛소리하자 원희가 그를 쏘아보며 한마디 했다.
“그럼 막아 보시지요. 어떻게 되나. 지금 우리가 왜 안변 관아에 있지 못하고, 이곳 산성으로 올라와 있는지 망각하셨소?”
“음.”
“신임 북병사가 암살당했다죠? 부사들도 줄줄이 죽어 나갔고. 전임 북병사를 추포하려고 파견된 의금부 관헌들도 다 몰살당했고.”
“그만하시게!”
윤영이 짜증을 냈다. 그 얘기만 들으면 모골이 송연해졌다. 어쩌면 그들의 운명이 자신의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 또한 듣는 귀가 있어, 함경도 백성들이 얼마나 자신을 증오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때 왜 그러셨소? 그로 인해 얼마나 큰 문제가 초래됐는지, 몸으로 겪어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만하라니까!”
윤영은 결국 버럭 화를 냈다.
싸웠다 하면 승승장구하던, 넘쳐나는 병력으로 활기 넘치던 때의 기억을 간직한 남병영 간부들은 요즘 들어 부쩍 윤영에게 대놓고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병력은 쪼그라들었고, 응원받아야 할 백성을 기피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지금 안변도 텅텅 비게 생겼답니다. 덕원과 문천, 고원, 영흥 등 함경도 남부 백성들도 계속 북쪽으로 이주하고 있고요.”
원희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제발 그만하시오.”
원희의 눈빛이 심상치 않아, 윤영은 이제 화내는 것도 자제하게 되었다. 자칫 남병영 무관들에게 화를 당할 수도 있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명이었단 말이오. 그게 어떻게 다 내 책임일까?”
“정말 할 말이 없군요.”
원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앞으로 안춘현이란 이름이 붙게 될 안춘 부락의 북부 지역. 이하륜은 눈앞에 있는 평지성, 영성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또 공성전이라니.”
“공성포도 갖고 왔으니 그냥 부숴 버리면 되는데, 뭘 걱정입니까?”
송찬황이 웃으며 대답했다.
“누가 그걸 걱정하나? 저 성을 재활용해야 하니까 그렇지.”
“아, 그럼 고칠 걱정을?”
“당연하지.”
“아, 예.”
송찬황은 혀를 내둘렀다. 태건은 너무나 머리가 좋아 그의 행동을 예측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직속상관인 이하륜은 너무 엉뚱해서 예측이 어려울 때가 많았다.
“뭐, 그래도 성장 산성을 비워 준 게 어디야?”
“맞습니다. 너무 커서 놈들 병력으로 성장성을 지키긴 어려웠겠죠. 더구나 두 성에 병력을 분산 배치할 수도 없고.”
영성과 성장 산성은 안춘 부락 북부에 자리한 성으로, 두 성 간의 거리는 2.5㎞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가까웠다.
성장 산성은 고구려 때 축조된 성으로 중국 측은 ‘성장립자 산성’이라 명명했다. 전체 성벽의 길이가 10㎞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큰 산성이다. 영성 ― 영성자성 ― 은 성장성보다 조금 늦은, 발해 시대에 세워진 성이다. 물론 성장 산성과 영성은 태건이 고쳐 붙인 이름이다.
이하륜은 온성에서 무려 2천여 병력을 이끌고 원정을 나왔다. 이하륜의 부대가 진안령에 이르자, 와르카와 경흥부 연합군 병력이 크게 기뻐하며 맞아 주었다. 진안령에는 훈춘평의 와르카 소속 수성군 3개 대대와 경흥부 소속 2개 대대, 이렇게 2천5백여 병력이 2천여 남둘루 병력과 대치하고 있었다.
전력이 비슷하다 보니, 그간 두 진영 사이에 큰 전투는 없었고 자잘한 충돌만 몇 차례 발생했을 뿐이다. 이하륜도 사전에 지키는 데 주력하라고 명령을 내려 두었기에, 연합군은 남둘루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하륜이 증원군을 이끌고 왔기에 상황이 돌변했다. 연합군은 압도적인 화력을 투사해 남둘루 군을 패퇴시켰다. 진안령 전투에서 삼 할의 전력을 상실한 남둘루 군은 결국 안춘 부락을 지키는 것도 포기하고, 영성에 들어가 방어에 전념하게 되었다.
이하륜은 대화를 멈추고, 지도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탄성을 토해 냈다.
“캬! 정말 병력이 늘어나니 너무너무 좋구만.”
“예? 뭐가 말입니까?”
“전에는 이곳 안춘 부락을 관리할 엄두도 못 냈잖아?”
“아, 그런 의미에서요?”
“어. 근데 여길 봐봐.”
이하륜이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여기! 여기가 영성과 성장 산성이잖아? 여기서 쭉 북쪽으로 올라가면 동녕이란 곳이 나오지. 거기도 남둘루 땅이고.”
태건은 청이 붙인 동녕이란 지명을 그냥 사용하기로 했다.
“그럼 솔빈강 물줄기가 나온단 말이죠?”
송찬황도 남둘루 인이 솔빈강(수분하)을 따라 거주한다는 사실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지. 그러니 그 강을 따라 진격하면 남둘루를 정벌할 수 있단 말이지.”
“음, 그렇군요.”
“그쪽보다 여기가 더 절묘해.”
이하륜이 가리킨 곳은 삼각형 모양으로 불거져 나와 있는 고원 형태의 분지 지형이었다.
“저기 말이야.”
이하륜이 지도에서 눈을 떼고, 동쪽을 가리켰다.
“저 각져 보이는 언덕을 넘어 조금 더 나아가면 야춘정맥이 나오지?”
경흥부 사람들은 관상감 출신 지리학 교수의 의견에 따라 야춘산 산줄기를 ‘야춘정맥’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 야춘산을 거대한 산맥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저기가 바로 분수령이거든. 그곳만 넘으면 동해안으로 넘어갈 수 있지.”
“그러네요. 그런데 그 고갯길이 험하지 않을까요?”
“아니, 전혀. 고개를 넘어가면 바로 완만한 계곡이 나오거든. 그래서 여기에 고구려와 발해가 성을 쌓은 거 아니겠어?”
“그럼 고구려와 발해도 이곳을 매우 중시했단 말이죠?”
“그렇지.”
안춘 부락에 고구려와 발해의 중요 군사시설이 자리한 이유는 바로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현재 안춘 부락 건너편, 동해 연안 지방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수이푼 부족이었다.
“우리가 쟤네 남둘루 애들을 쫓아낸 다음, 여길 중요 군사 거점으로 삼는 거지. 그래서 고개를 넘어 바로 수이푼을 치면 어떨까? 저 남쪽 어지미 부락의 아군과 협공하면 수이푼 정도는 금방 정벌할 수 있지 않겠어?”
“아, 정말 그렇네요.”
송찬황은 입을 떡 벌리고 이하륜처럼 지도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러니까 저 성이 아깝단 말이야.”
“아~ 그렇군요.”
이하륜이 왜 공성포로 영성을 무너뜨리길 주저하는지 꽤 멀리 돌아 설명한 셈이었다.
“포위망이 완성되면 항복을 권유해 볼까?”
“그게 좋겠습니다. 심지어 번보코도 살려 주겠다고 약조하면 생각이 바뀌지 않겠어요?”
번보코는 북쪽에서 원군이 오자 안춘 부락에서 추가로 징병한 다음, 진안령으로 진군했다. 포로로 끌려간 장정의 안전도 고려해야 했지만, 원군까지 온 마당이라 조선에 다시 반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떠밀려 다시 나선 셈이었다.
이윽고, 성의 포위를 마치자 이하륜은 주션어에 능한 번호 출신 소대장을 사자로 보내 항복을 권유했다. 물론 번보코의 생존도 보장한다고 했다.
“항복…하겠지?”
“그러지 않겠어요? 병력 규모에서 너무나 차이가 나는데.”
현재 연합군 병력은 사천오백이고, 남둘루는 천오백에 불과했다. 더구나 조선군 화포의 위력까지 통감한 마당이라, 이하륜은 남둘루 군이 항복하길 기대했다.
역시 기대대로 번보코는 또다시 성을 나와 항복 의사를 밝혔다. 두 번째 항복인 셈이었다.
* * *
경흥의 덕산동 공방촌.
오늘 또 하나의 기계가 선을 보였다. 홍은의 연락에 서둘러 말을 타고 온 허균과 조경린은 역직기 공장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라 입을 쩍 벌렸다.
천을 짜는 기계 때문이 아니었다. 역직기 가동 시험은 이미 얼마 전에 참관한 바 있다.
“저, 저게 바로 바느질해 주는 기계란 말이오?”
허균이 홍은에게 물었다.
“예.”
이하륜이 설계한 페달식 재봉틀이 드디어 실물로 나와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된 것이다. 실제 제작에 관여한 홍은과 홍진은 재봉틀의 기계가 작다는 점을 고려, 아예 다섯 대를 한꺼번에 만들었다.
재봉틀이 공방으로 들어오자 홍은은 재봉틀 사용법을 공방의 여직원에게 가르쳤고, 지금 그들이 재봉틀을 돌리고 있었다.
조경린은 실성한 사람처럼 눈을 껌벅거리며 홀리듯 재봉틀로 다가가더니 그대로 굳어 버렸다. 방적기와 역직기를 처음 접했을 때도 그랬다. 그러나 재봉틀은 또 다른, 이목을 끄는 면이 있었다.
조경린이 그 점에 집중해 물었다.
“그럼 이 재봉틀이란 건 증기기관을 연결할 필요 없이 사람만 있으면 되는 거네요?”
“그럼요. 더구나 힘도 안 들어요.”
홍은이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허! 이런… 그럼 이 기계만 있으면 누구나 옷을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단 말인데.”
조경린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그럼 앞으로 이걸 이용한 상단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수도 있겠어요.”
“예. 그렇겠죠. 그걸 봉제업이라 해요.”
“봉제업?”
“이것도 우리 병마우후가 고안한 거라고요?”
허균이 빤히 아는 사실을 다시 물었다.
“예.”
“도대체 얼마나 이런 걸 더 많이…….”
허균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말도 끝맺지 못했다.
“앞으로 더 많이 나올 거에요. 오빠들은 틈만 나면 이런 걸 만들 궁리를 하거든요.”
홍은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