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83
83화
동해자치부 출범 (1)
경흥부 관아 앞에 마련된 관보 게시판.
경흥부 주민에게, 틈만 나면 이 게시판 앞에 모여 의견을 나누는 습관이 생겼다. 관보의 내용 자체가 많은 얘깃거리를 제공해 주는 데다, 주민의 상당수가 경흥부 공무에 종사하고 있다 보니 여러 정보에 정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의 관보는 창간한 이후, 가장 놀라운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내 읽어 주겠소. 험험!”
관보 읽어 주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내가 나섰다. 처음 관보가 게시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섰는데, 한글을 익히고 난 후 글 읽는 재미에 빠진 게 계기가 되었다.
“동해자치부가 정식으로 출범하게 되었으니, 이에 관보를 통해 알리오. 동해자치부는 악양현, 연추현, 여산현, 훈춘현, 하다현, 마진현, 안춘현, 이렇게 일곱 개 고을로 구성되고, 앞으로 더 늘어날 예정이라오. 동해자치부에서 적용될 자치부 법은 경흥부 관리와 동해인 지도자들이 합의해 제정되었소. 이를 아래에 게재하니 백성 제위들은 꼼꼼히 보아주시오!”
워낙 중요한 내용이라, 사내는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또박또박 읽어 주었다.
“자치부? 그게 뭐지?”
“자치란 말을 붙인 걸 보니, 이제 조선과 결별하겠다는 얘기 같은데?”
“오호라! 강외 지역은 이제 조선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말이군.”
“잘 생각하셨어. 이제 북병사 영감의 터전이 생긴 거잖아? 안 그래도 전 북병사는 물론이요, 관찰사에, 조정에… 북병사 영감을 좀 괴롭혔나?”
벌써 오랫동안 만나 토론을 했던 터라, 이들은 기사의 머리글만 읽고도 경흥부 수뇌부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했다.
“잠깐, 자치부 법도 좀 읽어 보겠네.”
“오! 그래 부탁함세.”
관보에 게재된 자치부 법은 요약본이었다.
“행정구역에서 가장 큰 단위가 부라네. 그래서 동해부가 되었군. 언제는 동해주라고 하더니.”
“아니네. 더 밑을 보게. 주도 있어.”
“오호! 주, 부, 현, 사에, 동과 평 순이군. 이제 이해했네. 전체 면적이 부 정도에 불과해서 일단 동해부가 된 거로군.”
“그럼 부가 곧 도인가?”
“그런 모양일세.”
“관리 명단도 있네. 동해부 도독은 당연히 북병사 영감이고, 부도독은 병마우후 나리일세. 그리고…….”
태건은 중앙 행정 조직을 6부 체제로 구성하고 장관도 임명했다.
“보자. 학부 장관에 허균 나리가 됐군. 공상부 장관은 태원, 내부 장관 손중일, 탁지부 장관 김명신, 군부 장관 최철주, 법부 장관 조경린이라 되어 있군.”
“뭐, 될 사람이 다 되었군그래.”
그 이외에 태건은 홍진을 공부 산하 공장청장 자리에 앉혔다. 홍진에게 이 자리를 준 이유는 사실 홍은 때문이었다. 즉 홍은의 활동 공간을 넓히고, 힘을 실어 주기 위함이었다.
군 체제도 개편, 육군 제1군 사령관으로 송찬황을, 2군 사령관으로 정강빈을 각각 임명했고, 수군 사령관으로 이천호를 내세웠다.
각 현을 책임질 현령도 뽑았다. 현령 중 동해인은 성주 첨터허가 유일했다. 게다가 동해부의 부도, 즉 수도가 될 훈춘현의 현령 자리라서, 사람들은 이 조치를 눈여겨봤다. 현령 중의 현령이라, 동해인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른 셈이었다.
“훈춘에 동해부 관청이 세워지고 있는데, 그게 완공될 때까지 일단 경흥을 임시 부도로 한다네.”
“그렇군. 더 읽어 보게.”
딱딱한 행정 체계에 관한 내용인데도 주민들은 흥미를 잃지 않았다.
“음, 동해부 헌법이라는군. 법 중의 법이 헌법이라는데?”
“그게 뭔가?”
“모든 법의 토대가 되는 법이라고 적혀 있군.”
“그게 뭐든 빨리 읽어 보게.”
“에… 동해부 내에서 만민은 평등하다. 종족과 성별, 신분의 차별을 두지 않으며 모든 이에게, 생명과 신체를 지킬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관리가 될 권리, 재산을 모으고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오호!”
관보를 읽어 주는 이가 읽다 말고 탄성을 터트렸다.
“이거 진짜 마음에 드는군.”
“그러게. 신분제도 그래. 북병사 영감이 노예와 노비 제도를 혁파할 거라는 소문이 예전부터 돌지 않았나?”
“그뿐만이 아니지. 사농공상의 차별도 없앤다는 뜻일세. 응? 그러고 보니 남자와 여자 차별도 없앤다는 말 같은데?”
“그런 모양이군. 이건 좀 그렇지?”
“뭐가 그래? 이왕 차별 철폐하는 거 화끈하게 해야지.”
확실히 남녀 문제로 가니 약간의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기존의 노비나 노예는 5년 안에 풀어 줘야 한다는 예외 조항을 두었군.”
“하긴 당장 실행하면 땅바닥에 드러누울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 동해인 권력가들이라면 특히.”
“그리고… 동해부 주민에게 권리에 따른 의무도 부여된다. 먼저 그 둘만 열거하노니, 첫째가 납세의 의무이고, 둘째는 군역의 의무이다. 뭐, 이런 당연한 얘길 하나? 이런 게 헌법인가?”
헌법 조항 밑에 납세와 군역에 관한 내용도 요약이 되어 있었다. 주민들은 그 조항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토론을 벌였다. 특히 3년간 현역, 5년간 예비역 체계로 짜인 군역은 매우 파격적이라, 큰 환영을 받았다.
그런데 토론 도중, 누군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럼 우리는?”
“뭐?”
“우리 경흥부 말이야.”
“그러네. 그럼 우린 여전히 조선에 사는 건가?”
주민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누군가 바로 답을 주었다. 토론에 끼지 않고 묵묵히 관보를 읽던 이가 한마디 한 것이다.
“주민투표로 결정한다는군.”
“투표? 그게 뭔가?”
주민들은 또다시 이 사안을 두고 한참 얘기를 나눴다.
* * *
노토 부족의 대추장 타타라 로툰은 마을우평 추장들을 불러 모아 비상 대책 회의를 열었다.
회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침울했다. 회령과 차유령에서 노토의 대군이 대패한데다, 도르기 비라의 3대 추장 중 하나인 왕이누는 아예 포로 신세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안출라쿠의 피해가 아주 큽니다. 니탕가 추장이 끌고 간 장정 중 절반도 돌아오지 못했답니다. 다른 부락 역시 사정이 비슷하지요.”
로툰의 측근, 커리가 나서서 지난 전투 결과에 대해 풀어놓고 있었다.
“어허! 이런… 쯧쯧!”
로툰의 조카 타타라 안충가가 대놓고 혀를 찼다.
그는 마을우시배의 추장으로, 로툰의 아들 니탕가와 비슷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을 정도로 큰 세력가였다. 로툰은 슬며시 안충가를 쏘아보았다.
안충가는 이번 출정을 반대했다. 아무리 여러 와르카 부족과 워지 부족이 연합해 공격한다 해도, 조선군의 전력이 생각 이상으로 강하기에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숫자만으로 전력을 평가하면 안 된다. 지금 조선군은 무시무시한 신무기로 무장했다. 왜군의 침략이란 변수가 생겨, 한때 우리가 우세를 점할 수는 있으나, 끝내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이런 논리를 내세워 로툰을 설득하려 했지만, 야심가 로툰은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세력을 확장하겠냐며 고집을 부렸다. 그러자 안충가는 그냥 수긍하고 넘어갔다. 어차피 도르기 비라와 안출라쿠 지방의 추장들만 나설 예정이라, 자신이 크게 손해 볼 일은 없기 때문이다.
“계속하게.”
로툰이 커리에게 말했다.
“도르기 비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차유령을 넘어 양영만동보 공략에 나섰으나, 태건이 구원병을 이끌고 기습하는 바람에 가시툰 추장이 크게 패했고, 이어진 회령 전투에서도 또 태건한테 당해 왕이누 추장이 그만…….”
“그건 이미 아는 얘기고.”
로툰이 살짝 짜증을 냈다.
“예. 이번 패전으로 도르기 비라의 동족이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태건이 조선인과 오도리인 노예의 송환을 요구했는데, 덧붙인 말이 가관이었습니다. 단 한 명이라도 여전히 잡고 있거나 위해를 가했다면, 향후 그 부족을 몰살시키겠다고 협박했답니다.”
“모, 몰살시킨다고? 그, 그래서?”
안충가가 깜짝 놀라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 역시 조선인 노예를 보유하고 있었다.
“도르기 비라 추장과 촌장 모두가 황급히 노예를 돌려보내고 있답니다. 그들을 차유령까지 데려다주면 조선군이 데리고 가는 식으로…….”
“제길!”
로툰이 짜증을 냈다. 그런 행동을 보일 정도면 이미 굴복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태건 그놈이 그렇게 무섭나? 그렇게 비굴한 모습을 보일 정도로?”
로툰이나 이 자리에 있는 마을우시배 추장들은 사실 태건 군의 무서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아직 직접 대결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결과가 말해 주지 않습니까? 남둘루와 니마차, 수이펀은 물론 동량개 부락과 할란평 부락이 연합했지만, 결국 모든 전선에서 패하지 않았습니까? 한 곳도 이기지 못했고, 피해 규모도 치명적이라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백부! 이번 기회에 노예를 모두 풀어 주고 화친을 제의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태건이 이끄는 조선군이 본격적으로 원정에 나서기 전에요.”
“그게 무슨 망발인가? 항복하자는 겐가?”
“하, 항복이 아니고…….”
“태건이 콜칸과 남둘루에 어떤 짓을 했는지 모르나? 귀부 어쩌고 하며,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데 그게 바로 항복하란 얘기 아닌가?”
“아우, 그건 아버지 말이 맞아. 내가 보기에 태건은 야심가야. 우리 동해인의 땅을 모두 조선령으로 만들려고 하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기의 영지로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아. 하훈춘과 훈춘 부락에서 벌어진 일을 보라고. 콜칸은 어떻고? 결국 다들 조선의 일원이 되지 않았나? 그 땅에 조선인들이 대거 유입되고 있고. 결국 강제 복속이냐, 투항이냐, 그에 따른 미미한 차이만 있을 뿐이지.”
로툰의 맏아들 아로가 사촌 동생 안충가에게 말했다.
“휴! 그건 형님 말이 맞아요.”
안충가는 순순히 아로의 의견을 인정했다.
“하지만 노예 문제에 매우 예민하다고 하니, 노예만큼은 풀어 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굳이 작은 문제로 저들의 심기를 더 자극할 필요는 없잖아?”
“음, 그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군. 나도 노예를 보유하고 있으니.”
아로까지 약한 모습을 보이자 로툰은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다른 추장들 또한 같은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아로의 의견에 동의하는 낌새였다.
“저들이 우리 땅을 침범할 거라 보나?”
로툰이 다른 주제를 꺼냈다.
“전 그렇다고 봅니다. 가야하와 온성 대안의 남둘루인 터전이 완전히 조선에 복속되지 않았습니까?”
아로는 태건 군이 두만강을 넘어 대동과 회파동, 허제평과 집지평 지역을 모두 정벌한 점을 들어 태건이 정벌에 나설 것이라 예상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만, 먼 미래의 일이라 생각합니다.”
안충가가 의견을 말했다.
“그 이유는?”
“아직 남둘루와 니마차가 건재하기 때문이죠. 더구나 동량개 부락의 이라대가 니마차를 끌고 오는 바람에 저들의 세력이 건가퇴까지 확장된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니마차가 태건의 조선군을 저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겁니다.”
“그럼 그들이 물리칠 수 있을까?”
“그 정도는 아니겠죠. 시간을 끌 수 있을지언정. 이번 전투 결과가 말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안충가는 냉정하게 평가했다.
“만약 저들이 도르기 비라나 안출라쿠 쪽을 치고 들어온다면?”
“그게 문제에요. 두 지역 모두 산악지대라 방어하기 쉬운 면이 있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방어만 한다면 제아무리 강한 태건 군이라도 또 상황이 달라지니까.”
“우리가 그 사납다던 왜군도 물리치지 않았나?”
“그러게요. 그래서 잘 대비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도 장정을 뽑아서 안출라쿠와 도르기 비라로 보냅시다. 순전히 수비를 위한 병력으로. 우리 땅도 지켜야 하니 많이 보낼 수도 없잖아요?”
“수비라…….”
“노예도 돌려보내고, 되도록 싸우지 않는 게 좋지 않겠어요?”
같은 주장이지만 안충가의 말이 이제 다르게 느껴졌다. 로툰은 스스로 화들짝 놀라 고개를 흔들었다. 그 역시 조금씩 두려움에 잠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수는 없지.”
로툰은 끝내 유화책에 반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