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85
85화
단천 은광 (1)
여산현 어지미 부락의 동북쪽 끝에 자리한 안곡동.
안곡동이란 지명은 이번에 여산 현령으로 임명된 정대남이 붙인 이름이다. 현재 수이푼을 중심으로 한 워지 부족 연합군과 동해부군 ― 태건은 동해자치부의 군을 동해부군이라 명명했다 ― 은 안곡동 계곡을 경계로 대치하고 있었다.
안곡동은 서부 안춘 부락의 경계를 이루는, 소위 분수령에서 발원한 안곡천의 침식 작용으로 인해 형성된 계곡 지형이다.
처음 동해부군과 워지 연합군은 안곡천 서편 산지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워지 군이 결국 한발 밀려나는 바람에 하천이 경계가 된 상황이었다.
이번에 여산 현령으로 임명된 정대남과 몇몇 관리들은 강원도 삼척에서 온 이주민 대표들과 함께 안곡천을 따라 상류 쪽을 향해 나아가며 지형을 살피고 있었다.
“이쪽 하천들은 관리가 안 되어 그런지, 모양새가 죄다 심하게 구불구불합니다요.”
“맞네. 다 그 모양이지.”
사람의 손길이 닿지 못한 곳이라, 이곳 강외 지역을 흐르는 하천의 모양새는 대개 복잡했다. 범람이 일어날 때마다, 계속 물의 흐름이 바뀌다 보니, 넓은 평원을 만나면 물줄기가 몇 갈래로 나뉘어 흐르기도 했다.
“사람이 한꺼번에 붙어 손보면 논 만들기에 딱 좋은 땅 같은데… 어휴! 엄두가 안 나네요. 얼마나 많은 인력이 필요할지.”
“노역하는 포로가 많으니 필요하면 얘기하게.”
“오, 그렇습니까?”
“그러라고 포로를 잡았지. 우리 동해부군은 예전처럼 함부로 적병을 죽이지 않거든. 우리 태 장군님의 방침 때문이지.”
적의 수급으로 군공을 확인하던 조선군의 관행 때문에 더욱 여진인들이 반발했다는 설도 있다. 그래서 이런 비인간적인 행태를 개탄해, 포로를 잡아도 같은 전공으로 인정해 달라는 상소를 올린 변장이 나올 정도였다. 당연히 태건은 이를 엄금했다.
“여긴 자네들 살던 강원도와 비슷하지 않나?”
정대남의 질문에 농민들의 눈이 촉촉해졌다. 고향 얘기만 들으면 자동으로 나오는 반응이었다.
먼저 이주를 시작한 함경도 사람들이 두만강 가까운 지역을 차지하게 되자, 그보다 더 남쪽에서 올라온 이주민들은 순번에서 밀려 보다 북쪽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강원도 남쪽 끝, 삼척에서 온 이들은 이곳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이런 관행에 따라 훗날 삼남 지방에서 이주한 이들은 훨씬 더 북쪽에 정착하게 된다.
이곳 안곡천 하구 지역은 미래의 아무르스키 해협이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블라디보스토크와 마주한 곳이니, 꽤 북쪽으로 올라온 셈이다.
“그렇긴 합니다. 지형이 비슷하지요.”
“어떤가? 여기서 살아 보겠나?”
“흠…….”
주민 대표들은 고민에 빠졌다.
“조, 조금 더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좋네. 그럼 가 볼까?”
일행은 다시 움직였다.
안곡천의 수량은 매우 풍부했다. 하천의 길이만 해도 대략 50㎞에 달하는 데다, 상류 쪽에 수많은 지류가 있기 때문이다.
“아, 여기엔 군영이 있군요.”
“그렇네. 안곡천 중류 유역의 요충지라, 이곳에 군을 주둔시켰지. 저 서쪽 계곡에 우리한테 귀부한 콜칸인 마을이 있고 해서 여기에 자리를 잡았네. 세 개의 물줄기가 합류하는 지점이라 삼수진이라 명명했고.”
“그래서 평야 면적이 다른 곳보다 넓군요.”
정대남이 삼수진이라 이름 붙인 이곳은 미래 러시아의 ‘바라바쉬’란 곳이었다. 농민들은 드넓은 벌판을 보자 욕심이 동해, 한참 동안 토론했다. 전과 다른 태도였다.
정대남은 그 모습을 보더니 슬쩍 한마디 덧붙였다.
“여기가 심심산골처럼 느껴지겠지만 조금 지나면 달라질 거네. 이 하천 상류로 계속 올라가면 분수령이란 고개가 나오는데, 거길 넘으면 안화현이 나오지. 거기에도 많은 사람이 살게 되겠지. 지금도 남둘루 인들이 많이 살고 있고.”
“그럼, 거기랑 연결되는 길을 낸단 말입니까?”
“벌써 그걸 의논하고 있지. 일단 군사 목적으로. 내가 알기로 고구려와 발해 시기에도 이곳을 주요 교통로로 썼다는군.”
“군사 목적이라니 더 좋습니다. 그만큼 우린 안전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셈이지. 거기서 동해안으로 진출하려면 여길 지나갈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럼 앞으로 이곳이 꽤 붐비겠군요.”
“어때, 여기에 정착하겠나?”
“음, 좋습니다. 안 그래도 의견이 그렇게 기울고 있습죠. 더구나 군이 주둔하고 있으니 너무 좋군요.”
농민들이 다소 고민했던 이유는 입지 조건이 좋은 다른 곳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 안곡천 유역을 선택할 경우, 더 넓은 땅을 주겠다는 조건을 붙이자, 일단 보고 결정할 생각에 나선 길이었다.
“잘 됐군. 그럼 어디가 좋겠나?”
“저 뒤쪽 언덕에 동네를 이루면 좋겠습니다. 농토는 여길 개간하면 될 것 같고. 일단 우물이 관건이지만, 저 너른 땅에 우물이 없겠습니까?”
정착촌 건설에 가장 필수적인 게 바로 좋은 우물터였다. 사람이 마시기에 적당한 물이 나와야 마을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여길 논으로 만들고, 저 언덕 부근에 밭을 조성하면 되겠군.”
“예. 다들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세.”
“그런데… 현령 나리.”
“말해 보게.”
“외람되오나 동네 이름을 저희가 지으면 어떻겠습니까?”
“허허! 마음대로 하게. 어떻게 짓고 싶나?”
“용산동이라고, 저희가 살던 동네 이름입니다.”
“좋군. 용산동. 그럼 고향 앞에 흐르는 강 이름은 무엇이지?”
“무릉계입니다.”
“오호! 운치가 있어 좋군. 그럼 안곡천을 아예 무릉강이라 할까?”
“아, 고맙습니다. 나리.”
농민은 정대남의 배려에 몹시 감격해했다.
이렇게 해서 강원도 삼척 출신 농민 20여 호가 조선인 중 처음으로 무릉강 계곡에 정착하게 되었다.
* * *
이하륜이 최철주 군부국장을 불렀다.
“예, 부도독님.”
“곧 경무청을 설립해 제2군의 부담을 덜어 줘야 할 것 같아서 말인데요.”
“경무청이 뭡니까?”
“포도청과 비슷해요.”
“아, 포도청이요? 그렇군. 정말 필요한 시점이 되었지요.”
“원래 내부 산하로 둬야 하지만, 그러면 내부 관리들 다 죽을 거 같아서.”
“하하하! 맞습니다. 그 사람들 아주 여차하면 다 도망칠 기세던데요? 빨리 관리들 더 뽑아 달라며.”
옆에서 듣고 있던 정강빈이 폭소를 터트렸다. 모든 부서 중에서 가장 바쁜 곳이 바로 내부였다.
내부는 대한민국에서 내무부를 거쳐 행정안전부가 된 그곳과 비슷한 일을 하는 기관이다. 그러다 보니 중앙과 지방 행정조직의 뼈대를 만드는 일뿐만이 아니라, 주민투표 준비와 진행 과정도 맡게 되었다. 심지어 이주민을 등록하고, 이들의 정착지를 마련하는 일까지 담당하고 있어 가장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부서였다.
그러므로 수뇌부는 호남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온 인재들을 우선 내부에 배치, 그들에게 능력과 연륜에 따라 부장과 과장, 기사, 기수, 주사 등의 관직을 부여했다.
이들은 경흥부, 그리고 동해부가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 알고 있기에 관직을 받자 크게 기뻐했다. 더구나 신분과 관계없이 능력에 따라 자리가 주어졌기에 서얼이나 일반 양인 출신들은 감격에 겨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이러다 죽겠다며 관직이고 뭐고 때려치우겠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닐 정도로 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단 중앙에 지방 조직을 아우르는 경무청을 설치하고, 각 현마다 경무서를, 또 각 사에 분견대를 두는 식으로 조직을 구성하면 됩니다. 그 인력을 향후 복무 연한이 다 차서 군문을 나오게 될 갑사나 일반 병졸 중에서 뽑으면 되지 않을까요? 녹봉이건, 늠료건 간에 두둑이 준다고 하면 응하는 이들이 많을 겁니다.”
녹봉과 늠료는 관리에게 정기적으로 주는 급여이다.
현재 제정된 군역법을 기준으로 볼 때, 벌써 3년 연한을 넘긴, 제대해야 할 이들이 꽤 많았으나, 전시상황이다 보니 내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태건은 서토 정벌이 마무리되면 순차적으로 전역시킬 계획이었다.
“허허! 알겠습니다. 또 많은 관리가 뽑히겠군요.”
“나중에 동해부가 더 커지고 종국에, 그러니까… 어, 그렇게 되면 경무청은 다시 내부로 돌아갑니다.”
이하륜이 중간에 말을 얼버무렸으나, 능히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라 다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죠? 경무 관련 권력까지 군부에 주면 큰 사달이 날 수도 있다는 거.”
군과 경찰 권력을 한 부서에 몰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예,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최철주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하륜은 다시 군사령관들과 최철주에게 또 하나의 정책을 제안했다.
“아울러 이제 항왜와 동해인, 조선인 병력을 모두 섞어 편성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민족 별로 편성된 독립부대를 없애고.”
이 제안은 모두가 원하는 바였다.
“맞습니다. 같이 섞여 지내야 말도 빨리 익히고, 습성도 서로 이해하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항왜들 대부분 갑사로 남아 정착하길 바라는 모양이던데, 그러자면 이웃과 어울리며 사는 법도 알아야지요.”
태건 군은 부사관이란 용어 대신 조선의 갑사란 말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정강빈과 송찬황은 이하륜의 제안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그럼 그 건은 됐고.”
군과 관련된 사안이 해결되자 이하륜의 상념은 이제 남쪽으로 향했다.
“춘궁기인데… 조선 백성들이 이번 춘궁기를 어떻게 견뎌 낼지 걱정이군요.”
춘궁기가 언급되자 모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이들도 전국 곳곳에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문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전란이 발발하면 반드시 따라오는 재앙이 바로 기근과 전염병 등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이하륜이 입을 열었다.
“이주민 중 이곳으로 오는 도중 굶어 죽는 이도 꽤 많이 나올 텐데, 그런 사람이라도 구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일단 단천에 구휼소를 만듭시다. 단천에 우리 병력이 주둔하고, 동해광무공사의 지사도 들어설 테니, 딱 좋잖아요?”
동해광무공사 역시 단천 은광 개발을 추진하면서 설립한 공기업이었다.
“좋은 생각이오. 단천이 전체 함경도에서 대략 중간 지점에 해당하니까, 단천까지만 가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면, 더 많은 이주민이 용기를 내어 길을 나설 수도 있지요.”
최철주도 이하륜의 제안에 즉시 동의했다.
동해부의 식량 사정은 넉넉한 편이었다. 여진족의 침략으로 변경 지역이 약탈당하기도 했지만, 휴악 부락이나 온성 부근의 남둘루 권역을 토벌하면서 다시 찾아온 식량도 꽤 많았다. 또한 고려상단이 활발히 상행하며 훈춘평과 콜칸 지방에서 남아도는 식량을 사들여 꾸준히 비축해 둔 것도 한몫했다.
아울러 옥수수와 감자, 즉 방울마의 보급도 영향을 미쳤다. 작년에 갓 이주한 이들조차 이 작물들 덕분에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 넓지 않은 땅이나마 임시로 개간해 콩과 함께 이 두 작물을 심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수확을 얻은 것이다. 그 때문에 이주민들은 방울마가 왜 구황작물인지 제대로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옥수수는 지력을 빨리 소진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쌀보다 단위 면적당 부양 가능 인구가 훨씬 많은 작물이다. 쌀은 17.7명, 감자는 14.6명이다. 고구마가 가장 많아, 무려 27.7명에 달하는데 옥수수는 2위로 24.5명이다.
그런 면에서 고구마가 가장 효율적이긴 하나, 북방은 고구마의 생육 조건에 잘 맞지 않기 때문에 태건은 일단 대기근에 맞설 주요 작물로 옥수수와 감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