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86
86화
단천 은광 (2)
태건과 홍은을 비롯해, 홍은의 호위 겸 심복 역할을 맡게 된 태건 집안의 겸인 출신 소동구, 그리고 이번에 단천 파견대 대대장으로 임명된 장호는 말머리를 나란히 한 채, 남쪽으로 향했다.
이들 뒤로 1차 파견 병력 5백여 명이 뒤따르고 있었다. 화포와 군량 등 무거운 짐을 수군이 대신 운반해 주기로 했기에, 단천 파견군의 이동 속도는 무척 빠른 편이었다.
“회취법이란 연은 분리법이 단천에서 고안되었단 얘기, 들어 봤지?”
“어, 하륜 오빠한테 들었어요.”
은광석에서 은을 대량으로 추출할 수 있는 선진적이고 획기적인 제련 기술이 세상에 나온 건 지난 연산군 대의 일로, 양인 김감불과 장례원 소속의 종 김검동의 작품이었다. 그러다 이 기술이 일본으로 유출되는 사건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일본의 부흥이 시작되었다고 평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연은분리법에서 ‘연’은 납을 말한다. 은광석은 보통 납과 은이 범벅이 되어 채굴되는데, 제련술의 수준에 따라 산출할 수 있는 은의 양이 천차만별이었다.
후진적인 제련 기술로 인해 예전 일본의 은 매장량 대비 생산량은 그다지 많지 않았는데, 이 기술을 얻음으로 인해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그 결과 은을 기반으로 한 국제무역 질서에 자연적으로 편입되며, 일본 경제가 살찌기 시작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후 임진왜란을 포함해 한국이 일본으로 인해 겪은 여러 끔찍한 비극의 시초가 된 게 이 ‘연은분리법’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이 기술이 개발된 조선은 여러 이유로, 또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은이 화폐로 유통되고 있는 중국은 늘 은이 부족했다. 그래서 엄청난 양의 은을 조공으로 바치라고 조선에 요구할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에, 조선 조정은 아예 ‘조선엔 은이 나지 않는다’고 소문내고, 은광산을 모두 폐쇄하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화폐 경제가 일찍 자리를 잡지 못하는 바람에 조선의 경제 성장이 지체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물론 현 국왕도 훗날 단천의 은 채굴을 엄금하는 교서를 내리게 된다.
“근데 직접 행차하신 걸 보니, 단천에 관심이 참 많은가 봐요?”
홍은이 웃으며 물었다. 보는 눈이 많다 보니, 오늘의 홍은은 매우 예의 바른 소녀가 되었다.
“많지. 난 단천을 대도시로 키워 볼 생각이다.”
“은 때문에요?”
“그런 이유도 있고.”
함경도 중북부 동해안의 여러 도시 중, 대도시로 성장할만한 도시로 당연히 길주를 먼저 꼽을 수 있다. 꽤 넓은 평야 지대를 보유하고 있고, 훗날 자원의 보고로 떠오를 혜산진으로 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청진인데, 현재의 청진은 부령부에 속한 한적한 포구에 불과했다. 태건은 단천을 이 두 지역과 동급 이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또 뭐가 있어요?”
질문을 받자, 태건은 홍은에게 바짝 붙어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그로 인해 홍은의 볼이 홍시처럼 빨개졌지만, 태건은 이미 광물 이야기로 신이 난 상태였다.
“여긴 말이다. 박물관이야. 비철금속 광물 중에 없는 게 없지. 마그네사이트 매장량이 세계 최고라는 용양 광산이 있지. 또 검덕 광산이라고 거기서 구리와 납, 아연, 코발트, 금, 은이 나와. 여기에다 질 좋은 철광석이 나오는 수하 광산도 있고.”
“와! 그, 그걸 어떻게 다? 어휴! 알만하네요.”
홍은은 태건의 기억력에 혀를 내둘렀다. 태건은 다시 떨어져서 말을 이어 갔다.
“지금 우리한테 당장 필요한 게 여기에 다 있다. 은이 대표적이고, 그다음으로 금과 구리, 또 철광석까지. 그러니 단천을 대규모 공업도시로 성장시켜야 하지 않겠어? 앞으로 농업보다 광공업에 종사해야 더 많은 돈을 버는 시대가 올 테니까, 단천이 저절로 커질 수밖에 없지. 아, 그리고 흑연도 있다. 되도록 빨리 연필을 만들려고 했지만, 주변에 흑연이 나지 않아 미뤄뒀거든.”
“아, 맞다. 흑연. 그러고 보니 정말 연필이 얼마나 그리운지 몰라.”
장호와 소동구는 귀를 쫑긋 세우고 두 사람의 대화를 귀담아들었지만, 점차 대화가 미궁으로 빠지자 이내 흥미를 잃어버렸다. 가끔 저들이 조선어로 얘기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이 두 남녀와 이하륜은 처음 들어보는 단어를 써 가며 얘기를 주고받곤 했다.
“그럼 흑연하고 은 광산은 어디에 있어요?”
“은은 아까 얘기한 검덕 광산이라고, 이미 개발되어 가등도 손댄 곳이지. 파독지사의 검의덕에 있는데, 거기가 바로 그 유명한 단천 은점이다. 흑연은 말이야, 사실 단천보다 해정평 북쪽에 있는 업억 광산이 더 좋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곳부터 개발할 생각이다.”
“그렇군요.”
“여기서 은이 생산되어야 경제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는데. 좀 조바심이 나네?”
“잘 풀릴 거예요. 송화상단이 광산 장인들을 충분히 모았다니까.”
현재 이하륜의 주도로 송화상단이 모아 준 장인들을 토대로 동해광무공사가 설립되었고, 그중 일부가 곧 단천으로 올 예정이었다.
이윽고 태건과 군 병력 행렬이 단천 읍성에 이르자, 수많은 주민이 뛰어나와 뜨겁게 환영해주었다.
“하하하! 태건 장군님이 군병을 이끌고 오셨어.”
“휴! 이제 됐다. 그간 얼마나 불안했는지.”
“그러게. 이제 가슴 졸이며 살 일은 없겠군.”
주민들의 불안감은 당연히 조선 조정에 기인했다. 조선 조정이 군을 보내 함경도를 토벌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더구나 북청차사 관련 소문이 널리 퍼지자, 그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었다.
주민들은 북청차사를 일으킨 이들을 지지하면서도, 결국 그 일이 조선과 함경도의 관계를 완벽히 단절하는 행위라는 것 정도는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동해자치부가 출범했잖은가?”
태건을 보자 자연스레 화제는 동해자치부 얘기로 옮겨 갔다. 이제 북관 관보는 동해자치부 관보로 제호가 바뀌어 단천에도 배달되고 있었다.
“나도 알고 있네.”
“그럼 우리 단천은 언제나 거기에 낄 수 있나?”
“에휴! 아직 멀었네. 지금 경흥부터 주민 투표인가 뭔가를 시작한다잖나? 육진의 다른 곳은 준비 중이고. 주민등록이 마무리되어야 투표한다던데, 그러자면 여긴 어느 세월에 되겠어?”
“그래도 태건 장군이 군을 이끌고 왔으니 다행이지 뭔가.”
“정말, 다행이지. 이제 조선 관군 걱정, 도적떼 걱정을 덜어도 되겠어.”
주민들은 오매불망 육진에서 파병해 주길 고대해 왔다. 현 상황에서 믿을 곳은 오로지 태건 군이기 때문이다.
* * *
태건이 관아에 이르자, 단천 동헌을 지키고 있던 아전들은 충성 맹세 비슷한 행동을 하더니 무조건 지시를 따르겠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이들 역시 이곳 주민과 마찬가지 심정으로 지내 왔다고 했다.
태건은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은 후 곧바로 은광을 화제로 올렸다.
“은점 말이오. 이제 은을 채굴하고 제련할 생각인데, 어떻소?”
“아, 그렇습니까? 잘 생각하셨습니다. 안 그래도 가등의 부하가 이곳에 머물며 한때 은을 채굴했지요.”
“그럼 그 일에 동원된 이들을 찾아 줄 수 있소?”
“물론입죠. 여기저기 다니며 모아 보겠습니다.”
“제련 기술자도?”
“예, 당연히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채굴과 제련을 했던지라.”
“휴! 다행이군.”
태건은 비로소 한시름을 놓았다. 가토 기요마사가 조바심을 내며 은 채굴을 서두른 덕분에 어렵지 않게 전문 인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주민들은 어떻소?”
“어휴! 너무나 참혹해 말이 안 나올 지경입니다.”
아전들은 번갈아 나서서 태건에게 굶주림이 얼마나 심한지 얘기해 주었다. 그나마 길가에서 굶어 죽는 이가 나오지 않은 이유는 단천 주민들이 조금씩 도와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태건은 이하륜이 보낸 전령을 통해 단천에 구휼소를 만들기로 한 계획을 이미 알고 있어, 바로 아전들에게 지시했다.
“그렇다면 서둘러야 할 것 같네. 읍성 앞에 당장 구휼소를 설치하시오. 경흥에서 식량을 보내 줄 것이오. 아울러 그대들은 단천 고을을 돌며 동해자치부 법이 정한, 일 할의 세율로 조세를 걷어 주시오. 그래야 저 많은 이주민을 먹여 살리지.”
동해부 법에 규정된 일반 농민의 세율은 소출의 1할이었다. 과세 표준을 소출로 할지, 농지 면적으로 할지, 또 세율은 적정한지에 대한 논쟁이 격렬하게 일어났지만 일단 시행해 본 다음 개정을 논의하기로 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금을 걷는 게 바로 아전들의 전공이었다. 하지만 급여가 없다 보니 그 과정에서 비리가 싹트게 되어 있다.
“앞으로 그대들도 매달 급여를 받게 될 것이오. 경흥의 관리 월급과 같은 수준으로. 그러니 세수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착복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오.”
“예, 예. 물론입죠. 어느 안전이라고 저희가 감히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내 병력을 붙여 줄 테니, 같이 움직이시오.”
물론 그 병력은 감시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잘 알겠습니다. 장군.”
아전들은 ‘도독’이란 호칭을 차마 붙일 수가 없어 태건을 그냥 장군이라 칭했다.
“그리고 이주민이나 단천 사람 중 일부를 광부로 돌리면 좋겠는데. 역시 월급을 받으며 일하게 되겠지.”
태건은 이주민 중 일부에게 아예 일자리를 제공해 단천에 눌러 앉힐 생각이었다. 동해인 포로들을 활용할 수도 있지만, 그들 역시 북쪽에서 할 일이 많았다. 북쪽에도 앞으로 개발할 광산이 넘쳐났기 많기 때문이다.
“와! 좋은 생각입니다. 그 또한 알아보겠습니다. 그럼 희망한 자의 가족에게 숙소도 제공하실 겁니까?”
“당연한 일.”
“그렇다면 빈집이 많으니 그 집을 쓰시지요.”
“빈집이?”
“예. 농토가 비좁은 지방은 마을이 텅텅 빌 정도로, 꽤 많은 단천 사람이 강외로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빈 집이 무척 많습니다요. 농토야 다 팔고 갔으니 농사를 지을 순 없어도 집만큼은 저렴하게 구할 수 있을 겁니다.”
“흠. 그래요?”
태건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함경도 땅이 비기 시작했으니, 그만큼 이주민 일부를 아예 함경도에 정착시키는 것도 구휼 방법의 하나였다.
그러자면 태건이 함경도로 충분한 힘을 투사해야 한다.
“역시 단천부터 다져야 할 것 같군.”
“저, 그런데 장군님. 혹시 북청차사란 말을 들어 보셨는지요?”
“북청차사? 그게 뭐지요?”
“북청 이북으로 부임하는 관리, 혹은 그러니까, 에… 그 뭐냐…….”
아전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는 모습을 본 태건은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날 잡으러 오는 의금부 관리들?”
“그, 그렇습니다요.”
“그들이 북청에서 모조리 막히고 있습지요.”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다른 아전 하나가 재빨리 설명을 이어 갔다.
“관리들이 다 살해되고 있나요?”
태건은 함흥차사를 연상해 물었다.
“처음엔 몰살시켰답니다. 아마 그 일을 꾸민 자들이 그 정도로 분노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책임자 한 사람만 쏙쏙 화살로 맞추니, 다들 알아서 물러갑니다요.”
“화살 맞고 산 사람도 있겠군.”
“예, 대부분 부상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많답니다. 손속에 사정을 두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돌아가지 않고 다시 오면, 그땐 죽여 버린답니다.”
“저, 그런데 조정에서 역모죄를 씌운 모양인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예끼! 이 사람 못 하는 말이 없네? 감히 그런 걸 묻나?”
“괜찮소. 근데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시오?”
태건이 되묻자 아전들은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그야 당연히 새로운 나라를…….”
너무 놀란 탓에 속에 있던 말이 튀어나왔다.
“나라를?”
아전들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태건이 부드럽게, 또 예의를 갖춰 자신들을 대해 주고 있다 보니, 주책맞게 너무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다는 생각이 든 탓이다.
“일단 그냥 당할 생각이 없다는 정도로 이해하시오. 내가 당하면 너무 많은 사람이 다치니까. 오랑캐들은 독이 오를 대로 올라 있고. 조정도 백성의 안전에 전혀 관심이 없으니.”
“아, 예. 알겠습니다.”
“휴! 그리 생각하신다니 다행입니다. 함경도 백성한테 살길을 열어 주셔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내친김에 아전 하나가 자신의 속내를 솔직히 풀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