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87
87화
가지치기 북벌부터 (1)
경흥의 조산만 조선소.
이 조선소는 날이 갈수록 확장되고 있었다. 그간 꾸준히 조선의 전통적인 판옥선과 협선을 건조해 온데다, 새로운 선종인 소첨선 제작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산보가 담당해 온 항구 기능의 일부분도 이쪽으로 모두 옮겨 오는 바람에 조선소 옆의 선착장 역시 확장일로에 있었다.
“저기 오는군요.”
조선장 원대장 손원표가 웃으며 남쪽을 가리켰다. 마치 손녀를 기다리는 할아버지와 같은 표정이었다. 김명신 역시 조산만 바다를 가르며 선착장으로 다가오는 배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선수 갑판에 선 태미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바다에서 지내는 일이 많다 보니 태미의 얼굴은 건강한 구릿빛을 띠고 있었다.
태미는 배가 선착장에 닿자마자 수군사령관 이천호에게 군례를 올렸다. 태미를 따라 승조원들도 하선하며 예를 갖췄다.
“나오셨습니까? 사령관님.”
“수고했네. 이제 아주 능숙해졌군.”
“예, 조금 자신감이 붙네요. 그런데 무슨 일로 이렇게 다 나오셨어요? 탁지부 장관님도 그렇고.”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배부터 구경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그럼 올라가 볼까?”
김명신은 그의 아우인 고려상단주 김덕신과 함께 제1호 소첨선에 올라 배를 둘러보았다. 손원표와 이천호도 같이 승선했다.
“대개 열 명 정도 승선한다고요?”
김명신이 손원표에게 물었다.
“예.”
“이거보다 조금 크게 만들 수 있습니까? 화물도 많이 실을 수 있게 하고.”
“어렵지 않습니다. 안 그래도 사령관님의 부탁에 따라 만든 소첨선 2호는 조금 커서 다섯 명 정도 더 탈 수가 있지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태미는 왜 이들이 여기 나왔는지 바로 이해했다.
“그럼 2호도 보시면 되겠네요.”
“허허! 좋습니다.”
일행은 새로 건조한 2호에 올랐다.
“이거 정말 맘에 드는군.”
김덕신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더 큰 배에 오르니 만족감이 상승한 것이다.
“저 그런데… 서, 선장님?”
김덕신은 태미에게 뭐라 호칭할지 몰라 말을 더듬었다. 하늘 같은 태건의 동생이기 때문이다.
“함장이라고 부르면 되오. 아니면 태 참령이라고 하던가.”
이천호가 웃으며 알려 주었다. 수군도 이번에 군 체제가 개편됨에 따라 새로운 계급 체계와 직위를 도입했다.
태건은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의 군 계급 체계를 혼용하기로 결심했다. 육군의 경우 병졸의 계급을 일등병, 상병, 병장으로, 갑사(부사관)는 참교(하사), 부교(중사), 정교(상사), 특무정교(원사)로, 위관은 참위, 부위, 정위로, 영관은 참령, 부령, 정령으로, 장성은 참장, 소장, 중장, 대장, 원수로 나눴다.
현재 수군의 형편상 겨우 함대 하나만 보유 중이라, 수군 사령관 이천호 참장 산하에 바로 함장만 몇 명 있는 구조였다. 각 함장의 직급은 미래의 소령 계급에 해당하는 참령이었다.
“호호! 말씀해 보세요.”
“항해해 보니 정말 격군이 필요 없습니까?”
“예. 정말 필요가 없어요. 저 삼각돛을 잘 활용하면 어느 정도의 역풍에도 항해할 수 있거든요. 다행히 두만강 하구는 바람이 잘 부는 편이라, 바람이 없어서 고생한 적은 거의 없지요.”
“오, 그렇습니까?”
“무슨 일 때문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 예. 도독님이 남쪽으로 순행 떠나기 전에, 이제 민간 차원에서 수운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 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러자면 당연히 고려상단이 담당해야 해서 상단주와 같이 왔지요.”
김명신이 나서서 태미의 질문에 답해 주었다.
“그런데 소첨선을 만들 수 있는 조선장이 또 있습니까?”
김명신이 손원표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이번에 같이 작업해 본 이들은 어느 정도 만들 수 있소.”
“그럼 한 분만 저희가 데려갈 수 있을까요? 도독님이 민간 조선소도 운영해 보라고 하셔서.”
“허허! 벌써 그런 명령이 내려왔습니까?”
“예. 수군을 키우는 것만큼이나 수운의 활용이 시급하답니다.”
“음. 그건 맞는 말입니다. 내가 다녀 보니 우리 슬해 해안만큼 수운을 활용하기에 좋은 곳은 없더군요. 북쪽 끝 어지미부터 함경도까지 배를 대기에 좋은 포구가 널려있는 데다, 바람이 그치질 않아 삼각돛을 단 배들이 다니기에 아주 그만이지요. 심지어 판옥선조차 격군의 힘을 빌리지 않고 돛을 이용해 움직일 때도 많습니다.”
“그럼 선소는 누가 운영해요?”
태미가 물었다.
“조선장들이 직접 운영합니다. 재원은 고려상단이 일부 대기로 했고요.”
“조선장들이라면… 또 있습니까?”
손원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그간 들어온 이주민 중에 조선장들이 몇 명 있어서 이번에 채용했습니다.”
“오! 잘됐군. 그럼 우리 쪽에서 한두 명만 보내면 되겠군.”
“그렇습니다.”
태미가 다시 김명신에게 물었다.
“민간 선소는 어디에 들어서게 되나요?”
“부도독님이 콕 짚어 주셨습니다. 안화사 포구에 선착장, 그러니까 항구를 만들고 조선소도 그 옆에 세우라고.”
김명신은 항구란 단어를 아직 낯설어했다.
“굴포가 아니고요? 근처 철주동에서 철이 생산되니까, 굴포에 뭔가 만들 줄 알았는데.”
“굴포도 좋은 항구가 들어설 만한 곳이나, 어민을 위한 포구로 개발할 생각이랍니다. 거기에 공방촌이 들어서면 아무래도 물이 나빠지니까.”
“그렇군요.”
태미는 비로소 태건과 이하륜의 생각을 이해했다. 태건은 안화 ― 미래의 라진항 ― 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태미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태미가 수군 무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을 때의 일이었다.
* * *
태건은 경흥으로 돌아오자 측근들과 함께 경흥 읍성 서쪽에 자리한 경흥의학교로 향했다. 경흥의학교는 며칠 전 개교했는데, 병원도 겸하고 있었다.
태건은 김형렬이 경흥으로 들어오자마자, 그를 위해 이곳에 병원 겸 학교로 쓸 건물을 짓게 하고, 의원이나 의원이 되려고 하는 이를 힘써 모았다. 그런 노력 끝에 드디어 병원을 개원하고, 학교도 열게 된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도독님. 오랜만에 뵙는군요.”
김형렬이 활짝 웃으며 맞아 주었다.
태건은 경흥의학교를 먼저 둘러보았다. 관이 운영하는 한의원이 세워졌다는 소문이 돌자 이곳은 어느새 환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김형렬과 동료 내의원 고찬 이외에 벌써 여섯 명의 의원이 근무 중이었다. 아울러 의학교 학생으로 50명이 뽑혀, 이들 의원을 도우며 의술을 익히고 있었다.
“조만간 훈춘에도 학교 하나를 더 세워야 할 것 같은데요.”
“또 하나요? 우린 여유가 없는데요?”
“알고 있어요. 그런데 워낙 많은 이주민이 오고 있다 보니, 거기에 더러 의원도 끼어 있는 모양입니다.”
“오! 또 들어왔습니까?”
“예. 벌써 세 명 정도가 더 파악되었소.”
“그런 추세라면야……. 그럼 고찬 의원이나 내가 가서 열면 되겠군요.”
“김 의원님이 가시지요. 앞으로 거기가 서울이 될 테니.”
“아, 알겠습니다.”
사실 훈춘이 동해자치부뿐만이 아니라, 향후 건국될 나라의 수도가 될 거란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다만 누구도 아직 입에 올리지 않을 뿐이었다.
“그럼 그 일로 오신 겁니까?”
“투표가 어떻게 돼 가는지 볼 겸.”
태건은 임시 투표소가 된 의학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투표가 시작된 지 벌써 사흘째라, 주민들이 띄엄띄엄 와서 투표하고 있었다. 각사마다 투표소를 마련했음에도 아직 길이 좋지 못하다 보니 주민들에게 5일간 시간을 주기로 했다.
관리들은 주민들이 제시한 호패를 보고 명부를 확인한 뒤 투표지를 나눠 주었다. 그 이후의 절차는 미래 대한민국과 유사했다. 다만 아직 정당이 없다 보니, 투표참관인을 타지에서 온 이들이 맡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화원들이 투표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그림을 목판화로 만든 다음, 이를 인쇄해 관보와 함께 배포할 예정이었다.
“투표라는 거, 참으로 신기합니다. 백성이 자신의 운명을 투표로 결정한다니.”
“그러니 투표가 매우 중요한 행사인 겁니다. 그게 우리 동해자치부가 백성에게 부여한 권리 중의 하나이고.”
“권리라… 그렇군요.”
이 투표에서 결정할 사안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경흥부가 동해자치부의 일원이 되길 바라느냐를 묻는 것이고, 두 번째는 동해자치부 헌법의 승인이었다.
이 둘 중 하나라도 통과되지 못하면 경흥부는 동해부로 온전히 편입될 수 없다. 두 번째 건이 통과되지 못할 경우, 권리와 의무에 제약이 따르게 된다. 태건이 그 사실을 이미 알렸기에, 주민들은 이를 인지한 채 투표하고 있었다.
“도독님!”
경흥부에서 온 군관이 태건을 찾았다.
“무슨 일인가?”
“방금 온성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출진 준비가 끝났답니다.”
“음. 알겠네.”
“어휴! 또 친정을 나가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번에도 종군할 의원 좀 부탁합니다. 나와 같이 떠나면 되겠네요.”
“마땅히 그래야지요.”
김형렬은 그간 소속 의원을 원정길에 파견해 왔다. 단 한 명의 의원이라도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아울러 종군한 의원의 실력이 부쩍 늘어 온다는 장점도 있었다.
* * *
어가는 음력 3월 하순에야 평양에 입성했다. 국왕은 평양을 둘러보더니 다시 북쪽으로 돌아갔다. 평양에 입성한 이후부터 국왕의 어가는 북쪽 정주까지 나아간 다음, 다시 남하하는 등 여러 가지 일로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국왕은 한양 상황을 면밀하게 살피는 가운데, 함경도 상황도 주시하고 있었다.
“이제 병력을 빼서 함경도의 그 역도들을 토벌해야 하지 않나?”
국왕은 소위 북청차사로 인해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그 일로 국왕의 체면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태건을 붙잡아 오는 건 언감생심이고, 관리도 제대로 임명하지 못하는 치욕을 겪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함흥 이남 지역만큼은 관리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지역은 상대적으로 한성과 가깝다 보니 언제 조정의 복수에 당할지 몰라 백성들이 얌전히 지내고 있었다. 그 대신 인구가 북쪽으로 쑥쑥 빠지고 있어, 한 집 건너 한집이 빌 정도였다.
“불가합니다, 전하. 지금은 도성을 되찾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이항복이 간하고 나섰다.
“조명연합군의 활약으로 이제 겨우 균형을 맞춘 상황인데, 여기서 군사를 빼면 우리가 불리하게 됩니다.”
“어허! 참으로 답답한 일이로고. 그럼 함경남도에서 군병을 선발하는 게 어떻겠나?”
국왕이 말한 함경남도는 함흥 이남 지역이었다. 그의 질문에 다른 관료가 답했다.
“함경남도는 서울과 거리가 매우 먼데다, 너무 가혹하게 왜적에 도륙당했습니다. 관이건, 민이건 간에 모두 탕갈되어 군량 조달도 어려운데, 그렇게 외로이 살아남은 백성을 징발하면 원망이 따르므로 어려울 듯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라의 존망이 매여 있는데 어찌 그 정도의 폐단을 따지겠는가?”
실제 실록에 있는 대화 내용이다. 이처럼 국왕은 민심이 어떻든 개의치 않았다.
“전하. 재고하여 주소서.”
이항복이 다시 청했다.
“안될 말. 과인은 징병 상황을 지켜보고 관리를 보낼지 결정하겠다. 그러니 당분간 현지로 부임할 관리를 추천만 하고 대기하게 하라.”
국왕은 또다시 묘한 명령을 내렸다. 북청차사를 일으킨 자들로 인해 형편이 어려워졌다 해도, 나라다운 면모를 보여 주려면 관리를 보내야 한다. 하지만 계속 실패하고 있으니 국왕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다. 그래서 징병 운운하며 시간을 벌 궁리를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