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91
91화
이당의 방문 (1)
며칠 후, 동해자치부 군은 니마차의 만태성을 점령했다.
태건의 예상대로 쿠알라 부락의 추장 뇨후트(鈕呼特)와 그의 부하들은 샛길로 빠져 남쪽으로 도주했지만, 태건은 그들을 쫓지 않고 그대로 가야하를 따라 남하했다. 그러자 돌고개를 지키던 칠백여 니마차 병력은 돌고개 진지를 버리고 곧바로 북상, 수성에 유리한 만태성으로 들어갔다.
이 성은 고구려 시기에 축성되었는데, 쿠알라 부락과 집지평 중간 지점에 자리해 있었다.
태건이 이끄는 제2연대와 집지평에 주둔 중이던 제1연대가 북상해 만태성을 포위하고 화포로 공격하자, 니마차 군은 얼마 견디지 못하고 항복했다. 병력 규모 면에서 너무나 차이가 나는 데다, 화포 공격을 버텨 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태건의 북벌 작전은 어렵지 않게 종지부를 찍었다.
태건이 니마차 포로와 제1군 병력을 이끌고 집지평 진지로 돌아오자, 제2군 소속 제5연대장 김무정 정령이 반가이 맞아 주었다.
“어휴! 이번엔 포로가 너무 많군요.”
김무정은 포로 숫자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삼도현과 양수평, 만태성, 이렇게 세 전장에서 잡은 니마차 포로의 수는 대략 2천이었다.
“제2군 사령관에게 연락해, 포로를 데려가라 부탁해야 할 것 같군.”
“예. 그리 처결하겠습니다.”
태건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지휘관들을 불러 모았다. 먼저 제5연대장 김무정 정령이 나서서 그간 수집한 서쪽 지인동 방면의 적 동향에 대해 보고했다.
“처음엔 오백이었으나, 지금은 꾸준히 늘어 이천 가까운 적병이 계곡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곳 집지평에 아군 병력이 늘어나자 서쪽에서 증원군을 보낸 모양입니다.”
“이천이나?”
태건은 눈살을 찌푸렸다.
집지평에서 지인동으로 나가려면 분계강(부르하통하)의 침식 작용으로 만들어진 합수동 협곡을 지나야 한다. 그곳 지형이 몹시 험하다 보니, 그곳에 병력 2천을 배치해 틀어막으면 아무리 강한 태건 군이라도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태건은 지도를 한참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먼저 김무정에게 지시했다.
“이제 치안 유지에 필요한 병력을 제외한 집지평 주둔군 대부분을 데리고 장령평으로 가서 장령평 북쪽, 가야하와 장령천 합류 지점에 요새를 건설하고, 거길 방비해 주시오. 장령평에서 군정도 실시하고.”
태건은 장령평, 곧 쿠알라에서 군정을 실시해 그 지역을 동해부의 영토로 편입시키라 명령했다.
“예, 대장군.”
김무정은 크게 기뻐했다. 북쪽에서 고을 하나를 또 얻은 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고려상단에 연락을 취해 사람을 보낼 테니, 그때까지 양모를 최대한 많이 모아 주고.”
“예? 양모를 모으라고요?”
군사와 관련한 회의를 하다 말고 갑자기 양모를 모으라는 지시가 떨어지자 김무정이 놀라 되물었다. 그러자 송찬황이 웃으며 대신 대답했다.
“행군하며 보니, 면양을 대량 방목해 키우는 니마차 마을이 드문드문 있더이다. 도독님은 그걸 보더니 저 면양 양모를 빨리 사들여야 한다고 얘기하셨소. 겨울에 대비하려면 지금부터 모아서 모직물을 만들어야 한다고.”
태건은 함경도와 동해부 지역의 겨울철 의복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군복이 그랬다. 민간인과 마찬가지로 장졸들 역시 짐승 가죽을 두른 채 겨울을 나야 했다. 그래서 증기기관으로 방적기를 돌리기 시작한 시점에, 태건은 모직 제품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덕산공단 방적기는 양모로도 충분히 실을 자아낼 수 있기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아직 봄이라곤 하나, 지금부터 서둘러야만 겨울에 효과를 볼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그래서 미래의 왕청 지역이 목축업으로 유명하다는 점을 떠올리고 면양을 키우는 마을이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역시 예상대로 꽤 많이 분포해 있었다. 니마차가 속한 워지 부족 자체가 원래 유목과 낙농, 수렵에 능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아, 이해했습니다. 그럼 군량 비축분을 풀어서 양털을 사면 됩니까?”
“그게 좋겠지? 군량은 국토령을 통해 계속 들어갈 테니까.”
온성에서 장령평으로 향하는데, 그간 태건 군이 지나온 원정로가 가장 빠른 길이었다.
“가서 제3연대를 이쪽 중평 쪽으로…….”
태건은 탁자 위에 놓인 작전 지도 위를 지휘봉으로 짚어 가며 다음 계획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중평은 미래의 백초구란 곳으로, 장령평 서남쪽에 자리한 꽤 넓은 평지였다. 태건은 이곳에 중평이란 이름을 부여했다.
“중평 남쪽에 이르면 중평천과 가야하 합류 지점이 나오지. 여기서 우린 가야하 계곡 길로 왔으나, 제3연대는 중평천 길을 타고 서쪽으로 가다 방향을 틀어서…….”
태건은 니마차 추장들이 우회해 도주한 길을 제3연대의 행군 경로로 제시했다.
“오! 그렇게 되면 지인동을 앞뒤로 공격할 수 있겠군요.”
송찬황이 활짝 웃으며 반응했다.
태건이 제시한 경로는 중평천을 타고 서쪽으로 나아가다 남쪽으로 난 산길을 통해 산악 지대를 통과한 후, 의란천 ― 후세의 의란하로 부르하통하의 지류 ― 으로 빠져나오는 길이었다.
“문제는 산악 구간인데, 대략 오 리 정도? 그 구간만 잘 헤쳐나오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겠지.”
“예. 그럼 바로 출발해 전지로 연대장에게 전달하겠습니다.”
김무정은 곧 군막을 나가 5연대 간부들을 소집했다.
* * *
단천 읍성.
새로운 동해자치부 관보가 관아 앞 게시판에 붙자, 단천 주민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관보를 읽기 시작했다.
“오호! 경흥부 주민투표 결과가 나왔군. 어디 보자. 우와! 무려 구 할이 넘는 사람이 동해부로 편입되는데 찬성했다네? 동해부 헌법에는 칠 할이 동의했고.”
“오 할만 넘으면 된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 오 할을 훌쩍 넘었으니, 이제 경흥부는 함경도가 아니라 동해부 소속이 되었군.”
“부럽군. 그다음 투표하는 지역이 나왔나?”
“곧 경원부에서 실시될 예정인데, 아직 주민등록 업무가 끝나지 않아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군.”
“에휴! 빨리 육진에서 투표가 끝나야 우리도 덕을 보는데. 우린 언제나 될까?”
“우리 이럴 게 아니라, 대대장 나리한테 찾아가 단천도 동해부 편입 절차에 들어가면 안 되겠냐고 부탁해 볼까?”
“이미 해본 사람이 있네. 아전들도 계속 조르고 있고. 하지만 관리가 너무 부족해 육진 행정을 정상화하는 데도 시일이 필요하다고 그러더군. 그러니 여기까지 오려면 얼마나 오래 걸리겠어?”
“답답하긴 한데, 그래도 우리야 양반이지. 육진에서 군대를 보내 줬으니 그냥 농사나 지으며 기다리면 그만 아니겠나?”
“그건 그렇지.”
차림새는 허름하지만, 그래도 양반이라고 챙이 넓은 갓을 쓴 이당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민들의 대화를 귀담아듣고 있었다.
“단천은 복 받았군. 육진군의 보호받고 있으니.”
이당의 말에 그와 동행한 부하가 맞장구를 쳤다.
“단천뿐만이 아니랍니다. 갑산에도 군병이 들어갔답니다.”
“그렇다면 태건 장군은 단천과 갑산 이북을 영토로 생각한다는 뜻이군.”
“예?”
“태건 장군은 이미 나라를 세웠네. 조선 조정과 싸울 단계가 아니라서 개국 선포만 하지 않았을 뿐.”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은 육진의 도호부와 단천 사람들이 거기로 들어가려 애쓰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다들 필사적이지. 그럼 가 볼까?”
“예.”
이당은 관아로 들어가 바로 장호를 찾았다.
* * *
단천 파견대 대대장 장호는 단천 고을의 수령이나 다름없었다. 아전들이 그의 동의를 얻어 고을 공무를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휴! 이제 좀 마음이 놓이는군. 그간 중간에 있는 고을들이 신경 쓰였는데.”
장호는 관보를 가져온 이가 전해준 정강빈의 명령서를 읽고 한시름을 놓았다.
제2군 사령관 정강빈은 이번에 훈련을 마친 신병 천 명을 모두 제2군에 배당해 달라고, 이하륜에게 강력하게 요청했다. 여기에 여산 부락과 창룡 부락 출신 콜칸 병력 천 명을 더하면 무려 2천여 병력이 제2군에 새로 합류하게 된다.
이하륜은 당연히 이 요청을 받아들였다. 점령만 하면 그만인 제1군에 비해, 제2군은 지켜야 할 땅이 너무나 넓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1군의 활약으로 그 땅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렇게 네 개 대대가 더 늘어나자, 정강빈은 우선 무산의 양영만동보와 갑산, 그리고 집지평으로 각기 대대 하나씩을 보냈다. 집지평의 경우, 연대장 김무정이 병력 대부분을 이끌고 북상하는 바람에 집지평을 비롯해 남쪽의 하제평에서 군정을 도울 병력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이어서 남은 대대 하나를 단천으로 보내기로 한 것이다. 정강빈은 신병이 도착하면 단천 병력과 섞어서 재편성한 다음, 부령과 경성, 명천, 길주에 각기 중대 하나씩 배치하라고 장호에게 지시했다.
“그 고을들 주민 모두가 크게 기뻐하겠네요. 겨우 중대 하나라 다소 부족한 면이 있어도, 심각한 외부의 위협은 없으니, 그 정도만으로도 든든하다 느낄 겁니다.”
1중대장 공도명 정위가 웃으며 답했다.
“더구나 파릇파릇한 신병이 오고 있잖아? 지휘관들이 신병을 얼마나 반기는지 알지?”
“그럼요. 저부터 그렇습니다. 한글과 산학 기초를 떼고 오니 일 시키기 너무 좋지 않습니까? 전투 경험이 없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요.”
태건의 방침에 따라 신병들은 모두 훈련소에서 군사 훈련뿐만이 아니라, 한글과 수학, 지리학 등 군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양 교육을 받았다. 그로 인해 간부들이 신병들을 더 반기게 된 것이다.
태건은 군과 관에서 사람을 뽑아 쓰게 되면 집단 교육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문맹률을 줄여 나갔다. 학교와 선생이 너무나 부족하니, 아예 일하는 현장에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신병이 올 때, 광산과 제련소를 관리할 동해광무공사 사람도 같이 온다고 했으니, 이제 한결 편해지겠군.”
“저, 나리! 이당이란 분이 나리를 찾습니다.”
아전 하나가 밖에서 조심스레 장호에게 고했다.
대대장을 맡는 부령은 종4품 만호에 해당하는 꽤 높은 계급이었다. 그래서 새로 군제가 개편된 이후, 대대장이 출세의 기준이 되었다는 얘기가 동해부 내에서 벌써 돌고 있을 정도였다. 그걸 알기에 아전은 공손히 장호를 대했다.
“이당? 누구지?”
“예전에 의병장이었답니다. 거기서 중대장이었다고. 장 부령님과 같이 왜적과 싸웠다고 하던데요.”
“누군지 모르겠지만 굳이 만나지 않을 이유가 없지. 들이시오.”
이당은 관아 집무실로 들어와 장호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절 아시오?”
“허허! 당연히 알지요. 이야길 나눠 본 적은 없으나 태건 장군 곁에 계시는 장면을 몇 번 목격했지요. 그래서 태 장군의 총애를 받는 분이란 생각하였소.”
“총애는 무슨… 장계를 조정에 전달하는 일을 맡다 보니 그리된 거지.”
“아, 그러셨군요.”
이당은 그의 말을 듣자 더욱 태건의 총애를 받는 장수라 확신했다. 사실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장호는 태건의 조선통신사 동료였기 때문이다.
“의병장이라면서요?”
“예, 의병을 모아 부령에서 합류했지요. 그때부터 장 부령님과 같이 왜적과 싸웠고.”
“반갑습니다. 같이 싸운 전우였구려. 그런데 무슨 일로 절 보자고 하셨는지.”
“긴밀히 나눌 얘기가 있습니다.”
이당이 방 밖에 서서 대기 중인 아전에게 시선을 돌리며 얘기하자, 장호는 바로 말뜻을 알아차렸다.
“주변 좀 물려 주시오.”
“예. 나리.”
아전이 물러나자, 이제 이당과 장호, 공도명 정위만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