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92
92화
이당의 방문 (2)
날이 갈수록 이당과 이붕의 의병 세력은 급격히 불어나고 있었다. 아울러 동료였던 강경우까지 합류해 삼두 체제로 개편되었다.
세 사람은 의병 부대 이름을 ‘여민단’이라 짓고, 북청 아전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으로 이주민 구휼 활동에 나섰다. 그리 높지 않은 세율을 책정, 곡식을 걷고 이를 관아 창고에 모아둔 다음, 구휼소를 세워 이주민들에게 식량을 제공했다.
남쪽 상황이 심각하다는 얘길 들은 여민단은 과감하게 홍원현과 그 너머 함관령까지 진출해 이주민을 구휼했다. 이들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지자, 전에 같이 의병으로 복무한 동료들이 집에 보관 중이던 무기를 들고 몰려들기 시작해 벌써 천 명의 병력을 보유한 군대가 되었다. 어느새 남부군보다 규모가 더 커진 것이다.
“그러니까… 여민단 대표로 오신 거지요?”
장호가 미소를 지으며 묻자, 이당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혀 놀라지 않으시군요.”
“놀랄 게 뭐 있겠소. 언젠가 찾아올 거라 예상했지.”
“그럼 혹시 태 장군님이?”
“허허! 굳이 뭐, 우리 도독님까지.”
장호는 말을 얼버무렸다. 이당은 그 모습을 보자 장호가 태건으로부터 무슨 밀명을 받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북동쪽으로 이성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셨다고?”
장호가 질문했다.
“벌써 아셨군요.”
“그럼요. 이성이면 바로 코앞인데. 어쨌든 아주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장호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당을 향한 호의의 표시였다. 이당은 깊게 심호흡하더니 다음 얘기로 넘어갔다.
“왜 태건 장군은 단천 너머 남쪽 고을로 군을 파병하지 않는 겁니까?”
“병력이 너무나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역시…….”
“내 편안히 앉아 단천을 지키고 있자니, 북쪽에 있는 동료들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지금 우리 군은 여진인들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결하고 있소. 최근 들어 저들이 벌써 여러 번 침략해 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번 기회에 동해부 부근에 도사리고 있는 여진족의 뿌리를 뽑을 작정이랍니다. 그러니 남쪽을 신경 쓸 틈이 없지요. 그런데도 굶주린 이주민을 돕기 위해 크게 결단해 군을 단천에 파견한 겁니다. 함경도 전체 여정의 절반쯤 되는 단천에서 도움을 주면 더 많은 이를 구할 수 있으니까. 아울러 여기서 동해부 재정에 필요한 은도 확보하고.”
장호는 은을 채굴하고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밝혔다. 어차피 금세 소문으로 퍼질 일이었다.
“그렇군요.”
이당은 장호의 말을 온전히 수긍했다. 북쪽 형편이 위중하다는 사실을 그 또한 알고 있었다. 그로 인해 태건이 윤영과 다투고 북쪽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모르는 함경도 백성이 없을 정도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사실 이건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함경도 백성이 품고 있는 의문점일 겁니다.”
“음. 물어보시지요. 아는 것만큼 답해드리지요.”
“동해자치부 다음은 뭐지요?”
“허허허!”
장호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재미있는 질문이었다. 자신조차 동료들과 수백 번 주고받은 문답이었다. 그래서 간단히 답했다.
“아시면서 물으시네.”
“예?”
“아시잖아요?”
“…….”
“저는 일개 장수라, 감히 답을 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왜 태 도독님이 이주민에 집착하는지 아시면 속에 품은 의문이 말끔히 해소될 겁니다.”
“이주민?”
“도독님은 지금도 꾸준히 강외 영토를 확장하고 계시지요.”
“아, 더 많은 주민을 수용하기 위해서요?”
“예. 함경도뿐만이 아니라 조선 팔도에서, 땅이 필요한 이는 모두 오라는 뜻입니다.”
“그, 그렇군요. 당장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면 함경도 어디쯤 국경선이 그어질 테고, 그 국경은 바로 닫히겠지요. 그러면 더 이상 이주민을 받지 못하게 되겠군요. 야인들 수가 그리 많지 않으니 그들을 모두 흡수한다고 해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테고. 결국 백성이 너무 적으면 그 나라는 쉬이 고사할 수밖에 없지.”
이당이 빠르게 추론해 나가자 장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허허! 그런가요?”
“하하하하! 무관치고 참으로 능청스럽습니다.”
장호의 표정을 보고, 이당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가 뭘 도우면 될까요?”
이당이 물었다.
“지금도 잘하고 있어요.”
“그럼 식량을 보내 줄 수 있습니까? 그러면 함흥 이남 지역도 구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이당이 물은 건 사실 구휼에 필요한 식량이라기보다, 병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과 같은 것이었다. 식량이 곧 돈인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당은 군량이 더 확보되면 세력을 더 확장함과 동시에 구휼 활동의 범위도 넓힐 생각이었다.
“위에 얘기해 보겠소.”
“그리고 방울마와 단마도 더 보내 줄 수 있습니까?”
“방울마? 아, 그 마령서 말이군요?”
“예. 구황작물이란 얘길 들은 바가 있어서… 맛을 본 적이 있는데, 함경도 남쪽 농민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더군요. 우리도 직접 산골을 개간하고 그걸 심어 군량으로 쓸 생각입니다만.”
“방울마를 보내는 건 어렵지 않소. 그런데 단마는 뭡니까?”
“방울마랑 비슷한데 맛있더군요. 달고…….”
“아, 감저!”
고구마도 어느새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맛이 달다 보니, 농민들은 ‘감저’란, 발음도 어려운 이름 대신 고구마를 ‘단마’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 단마를 육진 사람들은 아직 구경하지도 못했다. 기후가 맞지 않아 아예 보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함경도 남부의 함흥이나 덕원(원산) 지방은 고구마 재배가 가능하다 보니, 역으로 남쪽에서 전파된 셈이었다.
* * *
분계강과 의란천이 합류하는 지점을 태건은 양수동이라 명명했다. 지인동의 서쪽에 자리한 지역으로, 모두가 미래의 도문시 영역에 속한 곳이다.
태건은 양수동 언덕에서 서서 이 두 하천이 합수되는 지점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합수동 협곡을 넘으니, 지형이 완만해서 좋군. 가축을 방목하기에 매우 좋은 지형이야. 숲도 그리 울창하지 않고. 여기서 논농사는 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목축업을 장려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어휴! 도망간 적은 아주 안중에도 없나 봅니다.”
송찬황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왜 없겠어? 방책이 있으니 여유를 부릴 수 있지. 어쨌든 양수동과 지인동을 얻었으니 한고비 넘긴 셈이군.”
“전지로 연대장의 공이 컸습니다.”
“그러게.”
태건 군은 전지로가 지휘하는 제3연대가 산길을 돌파해 의란천 하구로 빠져나오길 기다렸다. 며칠 지나지 않아, 전지로의 제3연대가 드디어 산지를 나와 이곳 양수동을 향해 진군하자, 삼수동 협곡을 지키고 있던 2천여 니마차 병력은 화들짝 놀라 그대로 후퇴하고야 말았다. 동쪽과 서쪽이 태건 군에게 막혔으니 니마차 군이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은 오로지 남쪽이었다.
이처럼 전지로의 3연대가 애써 준 덕에 단 한 번의 전투 없이 지인동와 양수동을 점령한 셈이었다.
태건은 고개를 돌려 출진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전지로와 그의 제3연대 병력 쪽을 넌지시 바라보다, 다시 주변 풍경을 살폈다.
“여긴 조선인보다 동해인들에게 맡겨야 할 것 같군.”
“예.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그 대신 하제평과 집지평에 조선인을 많이 이주시켜 논농사를 짓게 해야지. 그래서 그 두 평원과 돌고개, 돌고개 북쪽 계곡, 지인동, 양수동, 그리고 저 남쪽 산악 지대를 묶어 가야현이라 칭하고 현청을 집지평 삼수동에 두면 될 것 같군.”
“와! 멋집니다. 가야현이라니. 그럼 쿠알라 부락은 장령현이 되는 겁니까?”
“그럴 생각이네.”
“장군!”
정찰대 소대장이 송찬황에게 다가왔다.
“어, 김 부위. 정찰병들이 돌아왔나 보군. 어서 보고하게.”
“예. 적은 분계강을 따라 남하하다, 결국 용두산성으로 들어갔습니다.”
용두산성은 고구려 시기에 만들어진 매우 큰 산성으로, 중국 당국에 의해 붙여진 정식 명칭은 ‘마반촌 산성’이다. 해란강(할란강)과 부르하통하가 합류하는 요충지에 세워져 있어, 전략적 가치가 놓은 성이었다. 태건은 이곳을 용두산성이라 이름했다.
“서쪽은?”
“건가퇴 북쪽, 흥안성으로 적병이 모이고 있습니다.”
흥안성은 건가퇴, 즉 미래의 연길시 시내 중심부 북쪽의 언덕 지형에 자리한 성으로, 이곳 역시 고구려의 유산이었다.
정찰대 소대장의 보고를 들은 태건은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네 생각은?”
태건이 오히려 송찬황에게 되물었다.
“흥안성을 쳐야 할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용두산성은 보기에 따라 매우 중요한 요충지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건가퇴와 할란평을 점령하고 나면 그 성은 그저 산적들의 산채 노릇밖에 못 할 겁니다. 2천여 병력이란 큰 패가 묻힌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습니다.”
“맞네. 참으로 그 군의 수장이 멍청한 짓을 한 셈이지. 그럼 이곳 양수동에 대대 하나만 배치할까? 지형이 험해 그 정도면 충분히 길목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지요.”
“그럼 바로 출진하자고.”
태건은 다시 병력을 이끌고 서쪽으로 나아갔다.
* * *
옛 훈춘 부락에 해당하는, 하다현의 금구사, 마곡동 남쪽 계곡.
하다현의 초대 현령으로 임명된 현양건은 마곡동에 정착한 주민들 일부와 함께 이곳으로 와서 한참 동안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니까 이곳에 사금이 묻혀 있단 말이지?”
“예. 제가 한번 시험 삼아 채취해 봤는데, 정말 금가루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하다현의 공상국 국장이 대답했다.
일본어 통역관이었던 현양건을 태건이 특별히 이곳 하다현 현령으로 임명한 이유는 그만큼 신뢰하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관의 주도로 많은 양의 금을 생산할 지역이라, 신뢰할 만한 인물이 행정을 맡아야 했다. 더구나 아직 행정체계가 미흡, 감사와 감시 체계가 구축되지 못했기에 일단 시스템이 아닌 사람을 믿고 일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내정을 책임지고 있는 이하륜은 재정이 투입될 분야가 빠르게 늘어나자, 이웃한 마진현의 금평사 ― 황금평의 정식 명칭 ― 와 이곳 금구사에서 즉시 사금 채취를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현양건이 일할 주민들을 모집해 이곳으로 온 것이다.
“미안하지만 한번 해 보게. 사금 채취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군.”
“예, 안 그래도 주민들한테 보여 줄 생각이었습니다. 잘 보시지요.”
공상국 국장은 사금광에서 부역한 경험이 있는 이주민에게 배운 그대로, 사금 채취법을 시연하기 시작했다. 개울 바닥의 모래흙을 떠서 도태기(패닝 접시)에 담은 다음, 물속에 담가 빙글빙글 돌리며 사금을 골라냈다. 그렇게 몇 번 모래흙을 씻어 내자 접시 바닥에 노란 사금만 남았다.
“오! 저게 사금이군.”
“그렇습니다.”
주민들도 꽤나 놀란 눈치였다.
개척촌 건설이 한창이라, 힘을 쓰는 장정들은 집을 짓거나, 우물을 파고, 농토를 개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금 광산에서 일할 수 있는 이는 대개 여성이나 노인들인데, 그래도 모아 보니 백 명에 가까운 인력을 모을 수 있었다.
현양건은 이들에게 일정액의 월급을 지급함은 물론, 적게나마 전체 생산량의 일부를 균등하게 나눠 주는 조건으로 일을 시키기로 했다. 아울러 금을 캐는 일의 속성상 당연히 감시병도 배치하고, 일을 마칠 때면 사전 동의를 얻어 몸수색하는 조건도 붙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여성 경무관을 채용해 이곳에 배치하게 되었다.
“일이 매우 고될 것 같은데, 괜찮을까 모르겠네?”
현양건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게요. 문제가 생기면 다시 대책을 마련해 봐야죠.”
“알겠네.”
“자! 그럼, 일을 시작합시다.”
공상국 국장이 소리치자, 주민들이 개천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사금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현양건은 채취 과정을 둘러보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첫날이고 모두가 일에 서툰 상황인데도 많은 양의 금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새끼손가락 굵기의 금덩이도 발견됐다. 이곳에서 금을 채취한 적이 없다 보니 일어난 현상이었다.
태건의 예상대로 훈춘강은 황금의 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