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95
95화
여민단의 활약 (1)
용흥강의 제인포 나루터는 이주민들로 북적였다.
얼마나 굶었는지 뼈만 앙상하게 남은 듯한 몰골을 한 이주민 무리가 나룻배에 의지해 강을 건너고 있었다. 뱃사공들은 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측은해 공짜로 배를 태워 주곤 했다.
나루터로 이주민이 모이니, 형편이 되는 주민들이 나와 이들에게 입에 풀칠이라도 할 정도의 식량을 나눠주고 있었다. 영흥 역시 함흥과 마찬가지로 왜군에게 약탈당한 지역이라, 북청만큼 형편이 좋지 못해 작은 도움밖에 줄 수 없었다. 그런데도 상당히 많은 이주민이 이들의 도움에 의지해 제인포에서 노숙하며 기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헉! 의병이다!”
“여민단일세!”
“오호! 드디어 영흥에도?”
“하하하! 잘됐네, 그려. 우리 영흥도 의병 덕을 좀 보겠군.”
영흥 주민들은 이미 여민단의 존재를 알고 있어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들은 여민단 우군장 강경우가 이끄는 의병이었다.
“이보시오! 이제 살았어요. 의병이 왔다고요.”
주민 하나가 이주민들에게 소리쳤다. 이주민들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 이주민은 이쪽으로 와서 줄을 서시오! 잡곡을 좀 나눠드리겠소. 많이는 못 드리고 가구당 한 되만 주겠소. 그걸로 연명하며 일단 정평까지 가시오. 그럼 게서 또 받을 수 있소.”
의병 간부가 소리치자, 이주민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우군장 강경우는 이주민 무리를 살피다, 강 건너 영흥 읍성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영흥은 어떤가?”
“아직 조정에서 임명한 관리들이 남아 있답니다. 그러나 병력이 거의 없다고 하니, 우리가 강을 건너면 도망가지 않겠습니까?”
1대대장을 맡고 있는 선강이 답해 주었다.
현재 여민단은 군 체제를 동해부와 동일하게 꾸렸다. 여민단 간부 모두가 예전에 태건의 경흥부 군과 같이 작전을 펼친 바 있어, 어느 정도 새로운 군 편제에 대해 알고 있었다.
철저히 기밀에 붙이고 있지만, 여민단의 실제 목표는 바로 동해부에 합류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직 운영에 있어 많은 부분에서 동해부 사례를 참조하고 있었다.
“그럼 이주민 구제 일을 마치는 대로 건너가세.”
“예, 장군.”
강경우는 함흥을 떠나 남하하며 정평도 점령했다. 정확히 말해 점유했다.
정평은 백성들이 징병 방침에 크게 반발, 관아에 불을 지른 곳이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관리들 모두가 도주해, 의병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방침에 따라 관아 아전들을 모아 행정을 정상화하고, 구휼소만 세웠을 뿐이다.
그새 여민단은 그 규모가 더 불어나 이제 2천 5백에 이르렀다. 아울러 조직 체계도 더 정교하게 갖춰졌다. 이붕이 단장을 맡았고, 이당이 좌군장, 강경우가 우군장이 되었다.
이에 따라 함흥 감영을 본부로 활용하기로 했고, 단천으로 가서 태건 측과 교섭을 마치고 온 좌군장 이당이 이성과 북청, 홍원을 담당하게 되었다. 강경우는 무려 천오백에 달하는 의병을 이끌고 남하해 정평과 영흥, 고원을 점령한 다음, 이들 세 고을을 우선 안정화하기로 했다.
“장군. 할 말이 있다며 청년들이 찾아왔습니다.”
천 명을 넘는 의병들이 제인포에 잠시 머무르자 그 소식이 그새 주변 마을에 퍼졌고, 이에 원하는 바가 있는 주민들이 벌써 찾아온 것이다.
“장군. 여민단에 가입하고자 찾아왔습니다.”
“지금은 농번긴데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부친이 정정하시고, 동생도 있어 저 하나 정도는 몸을 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예. 장군.”
“우린 언제나 환영이네. 그럼 가입 절차를 진행하시오.”
“고맙습니다요. 장군.”
청년들은 크게 기뻐했다.
“군량이 풍부해지니 가려 받지 않아서 좋군요.”
대대장 선강이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 정말 북쪽은 식량 사정이 좋은 모양이더군.”
“상행 나온 송화상단 사람들한테 들은 적이 있는데, 땅이 그렇게 비옥하답니다. 작년 강외에 정착해 한해 농사를 지어 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말한다네요.”
“나도 들었네. 아직 논을 만들지 못해 벼농사는 못 지었지만, 밭농사만큼은 풍작이었다지.”
“예. 콩은 물론이고, 경흥부에서 나눠 준 옥수수 종자가 한몫 톡톡히 해냈답니다. 밭둑에 심어도 잘 자랄 정도니까 얼마나 편리했겠습니까? 집 짓고, 농토 개간하느라 정신이 없어 그냥 대충 여기저기 심곤 했는데, 그게 효자 노릇을 한 거죠.”
“방울마도 그렇고.”
“예. 방울마는 아직 종자가 부족해 대부분 관에서 걷어 갔다고 들었습니다. 그 대신 조와 귀리, 콩 따위로 바꿔 줬다네요. 그러니 방울마도 효자 노릇을 한 셈이죠.”
“북방의 소식은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군. 기름지고 넓은 땅이 널려 있다니.”
“저도 여민단 일이 마무리되면 강외로 나가서 농사짓고 살까 생각 중입니다.”
“허허! 그게 무슨 말인가? 새 세상에서 벼슬도 하고, 호강하며 살아야지.”
강경우는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대답했다.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손수 오천태를 처단했을 정도로, 강경우는 조선에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그런데 잠시 후, 그와 비슷한 이력을 보유하게 된 이들이 용흥강을 건너왔다. 이들은 나루터에 도착하자마자 강경우를 찾았다.
“대단하오. 윤영을 죽이고 왔다고?”
“하하하! 정말 큰 공을 세웠군요. 앓던 이가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선강도 윤영을 죽였다는 말에 크게 기뻐했다.
“저희를 받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무사, 오혼이 고마움을 표했다. 윤영을 죽인 이들 역시 의병이었던 인사들로 육진 출신 무인들이었다.
오혼은 활 솜씨가 뛰어난 이였다. 하지만 무과에 번번이 낙방하는 바람에 사냥을 업으로 삼다가 의병이 된 인물이다.
그는 윤영으로 인해 동료들이 얼어 죽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 더구나 윤영이 태건을 역적으로 몰았다는 소문을 듣고 크게 분노해 활 솜씨가 뛰어난 의병 동료인 지수정, 최형과 함께 윤영을 죽이기로 결의했다.
세 사람은 학성 산성 부근에서 기거하며 윤영이 산성을 나오기만 기다렸는데,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고대하던 그 일이 일어나 결국 성공에 이른 것이다.
* * *
이미 한양을 탈환했으나, 국왕은 여전히 평안도의 영유현에 머물러 있었다.
기쁜 소식이 전해졌음에도, 국왕과 신료들은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왜군이 성종과 정종의 능인, 선릉과 정릉을 도굴하고 시신까지 훼손했다는 보고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양의 참상도 전해졌다.
도체찰사 류성룡이 전한 한양의 모습은 너무나 처참했다.
‘곳곳에 백골이 쌓여 있고, 성중에 인마가 죽어 있는데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악취가 길에 가득해 사람이 접근할 수 없을 정도이며, 인가 또한 다섯 집 중 한 집에나 겨우 사람이 살고 있을 정도로 텅텅 비어 있습니다.’
류성룡은 또 징비록을 통해 당시 상황을 기록으로 남겼다.
‘밤에 큰비가 내렸다. 백성들이 내 숙소 주변으로 모여 앓는 소리를 내는데, 차마 들어 줄 수 없을 정도로 측은했다. 날이 밝아 나가 보니 굶어 죽은 이들이 숙소 주변에 그득했다.’
나쁜 소식은 또 있었다. 함경도 관찰사 윤영이 그만 자객에게 암살당했다는 점과 여민단의 세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원희의 장계가 도착한 것.
국왕과 대신들은 함경도민을 한참 동안 성토하고 나서 곧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국왕은 병력을 파견하자고 했지만, 당파와 관계없이 모든 신하가 반대하고 나섰다.
“이제 겨우 도성을 되찾았을 뿐입니다. 지금은 오로지 왜적을 물리치는 데 집중할 때입니다. 선왕의 능묘를 훼손한 왜적을 그냥 보내시렵니까? 함경남도에서 난을 일으킨 무리가 철령을 넘어 도성까지 위협하진 못할 겁니다. 그러니 지금처럼 그대로 남병사에게 맡겨주십시오.”
병조판서 이항복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자, 다른 신하들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남병사 원희에 대한 평가만큼은 다소 의견이 갈렸다.
이조판서가 먼저 고했다.
“남병사 원희를 신임 함경도 관찰사로, 정문부를 남병사로 봉하소서. 이들 둘은 함경도 백성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우니, 함경도를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들에게 병력 수백 정도만 보태 주고 안변부와 철령을 튼튼히 지키라 명하시면, 능히 소임을 수행해 낼 겁니다. 그렇게 북도를 수습해 두고 훗날 왜적을 파한 다음, 대군을 보내 도적들을 토멸하옵소서.”
함경도 백성에게 신망이 두텁다는 말은 곧 국왕의 약점을 찌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국왕의 표정을 본 부제학이 곧바로 나섰다.
“역적 태건과 함께 했던 자들입니다. 관직을 파하고 죄를 묻지 못할망정 승진이라니 어불성설입니다.”
“전하! 그럼 누굴 관찰사로 봉하시겠습니까? 방금 의견을 고한 부제학을 관찰사로 봉함이 어떻겠습니까?”
이조판서의 말에 국왕이 부제학을 바라보자, 그는 당황해 말까지 더듬었다.
“저, 저는 아직 그런 중임을 감당할 주, 준비가…….”
함경도에 속한 지방 관직들이 대부분 비어 있지만 이제 더 이상 관리를 임명할 수가 없었다. 임지로 가는 족족 여민단에 의해 죽거나 다쳐서 되돌아온 데다, 관찰사까지 암살당한 상황이라 그 자리를 원하는 관리가 나올 리가 없었다. 임명하면 병을 핑계로 사직했고, 심지어 부임 도중 도주하는 자도 나왔다.
국왕도 그런 현실을 알기에 계속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다.
“그럼 도원수 김명원에게 일러 병사 삼백을 안변부로 보내게 하라. 아울러 원희를 함경도 관찰사로, 정문부를 남병사에 봉하노라.”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병조판서 이항복은 이 조치를 크게 기뻐했다. 가장 합리적인 안이기 때문이다.
이항복은 함경도 백성이나 여민단 무리가 오천태를 제외한, 북병영 출신 관리들만큼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았다. 이들이 태건과 같이 움직이는 동안 나름 합리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이 함경도 민심을 안정시키는 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 판단하고 이를 물밑에서 추진해 왔다.
조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병조참판이 불만을 토로했다.
“이치에 맞는 조치이긴 하나, 그렇게 되면 역적 태건에게 이롭지 않겠습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오?”
“예?”
“지금 조정이 태건에게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잡아올 수나 있소?”
“그건… 어렵게 됐지요.”
“함경도 백성들을 화나게 할수록 태건에게 이롭지 않을까요?”
“음, 그렇군요.”
“역으로 조금이라도 백성에게 이로운 결정을 하면 그만큼 태건에게 손해가 되겠지.”
“알겠습니다. 대감의 말씀이 참으로 타당하다 느껴집니다.”
“타당하긴 하지. 문제는 너무 늦었다는 점이오. 이치야 그렇지만, 조정을 몹시 혐오하는 함경도 백성들한테 과연 유화책을 내놓은들 통하겠소?”
“그렇네요.”
“함경도만 문제가 아니지. 굶어 죽지 않으려면 함경도로 가야 한다는 소문이 경기도와 충청도, 황해도, 강원도 일대에 빠르게 퍼지고 있소. 여민단이 구휼에 나섰기 때문이지. 우리가 역도라 규정한 여민단은 백성을 구하는데, 우리 조정은 대체 백성을 위해 뭘 하고 있지요?”
“휴! 그게 문제군요. 조정은 조명 연합군의 군량 대기도 벅찬 지경이니.”
“그래서 다들 함경도로 사람이 몰리는 걸 눈감아 주고 있는 거요. 그것마저 막으면 아마…….”
“음, 알겠습니다.”
이항복은 함경도로 이주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위의 이유에서 이를 공론화하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