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98
98화
수도 건설 (2)
차치량이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납셨습니까?”
“태 도독님의 근황을 전하러 왔소. 얼마 전에 건가퇴 평원을 점령하고 그곳에 광명현을 설치한답니다.”
“오! 그렇습니까?”
지리학 교수이다 보니 차치량은 이 지역 지리를 환하게 꿰고 있었다.
“엄청나게 넓은 옥토를 얻었군요.”
“허허허!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니마차의 뇨후트 암반 군을 격파하다니. 아마 동해부 사람 중에서 니마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겁니다.”
“니마차가 그 정도로 세력이 크다면 후환을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허허! 그들이 걱정해야 하지 않겠소? 태 도독님이 언제 창끝을 북쪽으로 돌릴지 모르니.”
“그러게요. 처음 조선통신사 사행단에서 만났을 때부터 범상치 않으셨죠. 그런데 그 건가퇴 일로?”
“아니오. 포로 문제를 상의하려고. 이번에 잡은 니마차 포로가 자그마치 이천 오백이랍니다.”
“으헉! 이천 오백이요? 그 많은 포로를 어떻게 하시려고.”
“그래서 묻는 말이오. 여기에 필요하면 배정해 주겠다고 해서.”
“하하하! 좋습니다. 그럼 오백 정도만 더 받기로 하겠습니다. 훈춘강이 못내 신경 쓰여서 말이지요.”
“훈춘강이? 어떤 점이…….”
“범람 문제요.”
“아, 그렇지. 그게 문제이긴 하지.”
“그래서 그들을 동원해서 제대로 물줄기 좀 바로 잡을까 합니다. 둑을 보강하고, 바닥도 좀 준설하고 해서……. 아, 그리고 하남동과 연결하는 돌다리도 놔야 합니다. 모름지기 수도인데 목교를 놓을 순 없지요. 석장들이 그렇게 권하더라고요.”
석장은 돌을 다루는 장인을 말한다.
“잘됐네요. 석교가 놓인다니.”
“그런데 일 끝날 때가 되지 않았나요?”
다오가 사감이 물었다.
“예. 안 그래도 끝낼 참이었습니다.”
“그럼 화평동에 가서 식사나 할까요? 첨터허 현령님이 차 교수를 대접하고 싶답니다.”
“좋~습니다.”
차치량은 여전히 교수 소리를 들었다. 관상감 재직 시절의 직위였으나 앞으로 대학교란 고등교육기관을 세울 예정인데, 거기서 교수로 일하게 될 테니 계속 교수란 직함을 간직하라고 태건이 권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모두가 그를 교수라 불렀다. 현재 그는 학부의 관리로 재직 중이었다.
세 사람은 말에 올라 동쪽으로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훈춘현과 하다현을 구분 짓는 작은 개울을 건너자, 화평동 마을이 나타났다. 공터였던 곳인데, 동해부 정부 청사 건설에 투입된 인력들이 기거하는 숙소가 들어섬에 따라 단기간에 큰 마을로 성장했다.
조선인 개척촌은 하다천이란 하천 건너편 기슭에 자리했고, 하다천 중상류 계곡이 와르카인의 거주지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화평동은 와르카인과 조선인이 만나 거래하는 시장 역할도 담당하게 되었다.
첨터허는 이곳을 매우 좋아했다. 활기 넘치는 분위기가 좋았고, 조선인과 와르카인이 만나 물건을 흥정하고 사고파는 모습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고려상단도 이곳에 자리를 잡고 농기구와 옷감, 방울마, 옥수수 종자 등 필수품을 팔았다. 와르카 주민들도 남는 곡식이나 인삼과 같은 약초, 모피 등을 들고나와 이들 상품과 교환해 갔다.
아울러 사람이 모이기 시작하자 음식을 잘하는 조선인 아낙네들이 주막을 크게 열어 조선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도 더해 주었다. 첨터허 역시 이곳 덕분에 조선 음식을 만끽할 수 있었다. 물론 그가 다스리는 훈춘현의 피오성 동쪽에도 이런 기능을 하는 시장이 생겨났지만, 이곳만큼 흥청거리지는 않았다.
주막에 자리를 잡은 세 사람은 음식과 술을 시킨 다음, 이 시장의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허허! 말이 통하지 않는데도 저렇게 거래하는 걸 보면 신기할 따름입니다.”
첨터허가 웃으며 말했다.
“근데 와르카 주민들도 조선어를 좀 쓰네요?”
“벌써 익혔나 보오.”
“정말 이곳 화평동을 올 때마다 느끼는 점인데, 이런 마을을 곳곳에 조성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차치량의 의견에 첨터허가 크게 반색했다.
“오호! 그러니까 동해인과 조선인 거주지 중간에 이런 시장 거리를 만들자?”
“예. 그래서 나중에 그곳에 학교도 세워, 동해인과 조선인 아이들이 같이 어울려 공부하게 만들어야죠.”
“좋군요. 그럼 그곳은 국유지에 조성해야 할 것 같은데.”
“맞습니다. 그럼 그 땅도 국유지로서 제 소임을 다하는 셈이죠.”
이주민 마을과 동해인 마을 사이에 빈 땅이 많았고, 그곳은 소유주는 당연히 동해부 정부였다.
“그 계획, 정말 마음에 드는군. 그런 곳이 자꾸 많이 늘어나야 상업도 활성화되지 않겠소? 태 도독님이 상공업의 진흥에 관심이 크더이다. 농업보다 상공업이 백성을 더 풍요롭게 한다며. 물론 농업이 기반이 되어야겠지만.”
“농업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두만강을 넘어와 보니 이제 더 이상 식량 문제를 걱정할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해인들은 그간 논농사를 짓지 못해 하천 부근의 땅을 다 놀렸지만, 조선인의 눈으로 보면 저 하천에 접한 땅이야말로 옥토 중의 옥토입니다. 그 광활한 땅이 또 퇴비가 필요 없을 정도로 비옥하지요. 더구나 이제 광명벌까지 얻었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이제 농업 생산력이 든든히 받쳐 줄 테니, 앞으로 상업을 활성화해 그런 소산들이 잘 돌게 해야죠.”
“허허! 알겠소. 내 조만간 경흥으로 넘어가 부도독님을 뵙고 그 시장 얘길 전달해 보겠소.”
첨터허는 현재 내정을 담당하고 있는 이하륜을 만나 이 구상을 빨리 전달하기로 마음먹었다.
* * *
허균은 잠깐 시간을 내어 관보국으로 왔다.
그가 관보를 통해 새로 벌여놓은 일로 인해 관보국은 몹시 바빠졌다. 그래서 일을 벌인 당사자인 허균이 직접 거들게 된 것이다.
주민들이 응모한 글은 대부분 황지에 깨알같이 글이 채워진 상태로 들어왔다. 거친 황지라 해도 품귀 현상으로 인해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오호! 이건 연애 소설이군. 온윤이라고? 음, 작자가 여자인가?”
“아까 맹랑하게 생긴 여자애가 갖고 왔습니다. 아비랑 같이 왔는데, 그 아비가 딸을 아주 자랑스러워하던데요?”
관보국 직원이 웃으며 답했다. 깊은 인상을 받은 덕분에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음, 괜찮군.”
“예? 남녀상열지사인데 어찌…….”
“그런 편견을 버리게. 남녀가 연애하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감정이 어디에 있겠나? 이 소설을 잘 살펴보게. 글이 유려한데다, 한글의 느낌을 잘 살렸으니. 괜찮은 부분을 골라 조선어 교재에 수록해도 되겠어.”
“아, 예.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경흥부에서 발탁된 관리들은 여전히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 태건의 영향으로, 또 교육도 받은 덕분에 머리는 오히려 자유로운데 가슴은 그렇지 못했다. 몸에 익은 관습 탓이었다.
“장관 나리. 누가 찾습니다.”
관아 경비를 맡은 갑사가 와서 고했다.
“누구…….”
허균은 고개를 돌려 밖을 보더니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혀, 형님!”
형 허성이었다.
“아우, 잘 있었나?”
“형님…….”
허균의 눈에서 이내 눈물이 흘러나왔다.
허성의 몰골 때문이었다.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보기도 괴로울 정도로 삐쩍 마른데다, 누더기를 걸친 채 나타났기 때문이다. 허균은 재빨리 밖으로 나가 허성의 손을 붙잡았다.
“어쩌다… 아, 그보다 가족은?”
“바깥에 있네. 다 데려왔지.”
허균은 재빨리 뒤를 보고 얘기했다.
“나, 먼저 들어가겠네.”
“예, 나리.”
허균은 관아를 나와 형의 가족과 인사하고, 이들을 집으로 데려갔다. 허균은 이들에게 식사부터 내줬다.
그렇게 허겁지겁 식사하고, 목욕까지 마친 다음, 허성은 그간의 일을 허균에게 말했다.
“휴! 결국 저 때문이군요.”
“아니야. 태 북병사, 아니 도독 때문인 셈이지.”
“그럼 형님도 도독과 뜻을 함께하려고 온 겁니까?”
허성은 고개를 저었다.
“창피하네만 목숨 부지하려고 왔네. 식구도 건사해야 하고.”
“그렇군요.”
“태 도독 진영에서 난 눈에 띄면 안 되는 사람이네. 내 존재가 알려지면 그로 인해 다칠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지. 당장 서애 대감이 그렇고.”
허성은 남인 당파의 중요 인물이기 때문에 함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죽었거나 은거했다고 알려지는 게 가장 좋았다.
“이해합니다. 그래도 형님이 살아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목숨 하나 부지하는 것도 힘든 세상이지. 세상이 온통 미쳐 돌아가고 있으니.”
“왕이 미쳤으니까요. 그자 하나로 인해 얼마나 많은 백성이 죽거나 고초를 당하고 있습니까? 형님이 겪은 고통도 결국 그자 때문입니다.”
허균은 이를 갈며 국왕을 욕했다. 그럼에도 허성은 그를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
“휴! 다 맞는 말이다. 태 도독이 왜 이런 구상을 했는지 너무나 잘 이해가 될 정도로. 우리 조선에 내일이나 과연 있는지 모르겠어. 황해도와 경기도, 강원도를 쭉 거쳐 오는 동안 본 참상을 떠올릴 때마다 아우처럼 주상을 욕하게 되더라고. 그 때문에 악몽도 꾸고 있고.”
허성은 순순히 인정했다.
“형님. 앞으로 계속 여기서 지내시지요.”
“그럴 생각이다. 출사하지 않고 농사나 지으며 그저 필부로 늙을 작정으로 온 거지. 이주민에게 땅을 준다고 했으니.”
“그것도 좋은 생각이오. 하지만 형님이 가진 재주가 아깝소. 내가 사람을 붙여 줄 테니, 우리 동해부 곳곳을 돌아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글로 써 주시오. 되도록 한글로요.”
“지리지를 쓰란 말인가?”
“지리지도 좋고, 유람기도 좋아요. 제가 학부를 맡고 있다 보니, 그런 견문록이 꼭 필요하단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입니다. 형님만큼 글을 잘 쓰는 분이 세상이 몇이나 있겠어요? 그러니 앞으로 이름도 바꾸시고, 유람 삼아 각지를 돌아다니며 글을 많이 써 주오. 형님 가족은 내가 책임질 테니.”
허성은 그의 아버지 허엽, 이복동생인 허봉, 허난설헌, 허균과 함께 허씨 5문장으로 불릴 정도로 이름난 문장가였다. 거기에다 성리학에도 조예가 깊었고, 명필이기도 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금속활자로 만들 한글 글씨도 써 주세요. 관보에 쓴 활자 글씨체가 영 마음에 안 들어서.”
“음, 그럴까?”
허성은 허균의 제안을 몹시 마음에 들어 했다. 관리가 되지 않고도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고, 가족도 건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해부 혹은 새로 건국될 나라가 강국으로 성장하려면 문화부터 융성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하던 태건의 지론을 허균은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다. 태건이 허균 자신에게 학부를 맡긴 이유이기도 했다.
가치관의 혼란을 크게 겪고 있는 시기인데다, 여러 여진 부족을 융합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에, 모든 구성원이 정체성을 공유하고 자부심을 가질 정도로 뛰어난 문물을 꽃피워야 한다.
앞으로 조선과 치러야 하는 여러 부문의 체제 경쟁에서 이겨, 조선인의 마음을 얻어야 진정한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태건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허균에게 얘기해 왔다. 그런데 이제 한 분야를 책임질 뛰어난 적임자가 나타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