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1
1화 서(序). 근원(根源)
‘……대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 삶을 바꾸고 싶다!’
30대 초반의 청년이 품는 생각으로는 너무 비관적일지 몰라도, 그는 근래 들어 삶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선우, 32세. 역사학 석사. 현재 박사 과정. 주 전공은 한국 근대 외교사.
그러나 현재 신분은 공노비나 다름없는 프로젝트의 최말단이었다.
“이 선생, 외무성 문서 몇 년도까지 됐어?”
“아, 그게……. 1884년…….”
“아니, 왜 이렇게 느려? 봐야 할 게 산더미인데. 이번 프로젝트에서 청일 전쟁까지는 가야 한단 말이야. 좀 바짝 조여서 빨리하자고. 할 수 있지?”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선우는 한숨을 쉬면서 다시 사료 더미 속에 파묻혔다.
‘젠장, 맨날 바짝 조이래. 더 조이면 걸레처럼 쥐어짜지겠다.’
프로젝트의 취지는 좋았다.
개항기에서 대한 제국기까지, 한반도와 관련된 열강들의 외교 문서를 모두 수집, 정리하여 번역하는 작업이었다.
전공과 밀접한 주제이니 지도 교수의 권유를 받아 이 프로젝트에 끼어든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국가 지원 사업이라 연구비도 빵빵하게 나왔고, 연구 위원으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외교사 관련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좋은 기회였다.
‘내가 막내 실무자만 아니면 말이지, 으흐흐!’
외국어도 여럿 할 줄 알고, 행정병 출신이라 문서 작업 능력도 뛰어난 이선우는 이 작업에 최적화된 인재였다.
그리고 그야말로 공노비가 되어 가고 있었다.
‘젠장, 그만 좀 떠맡겨라. 기한은 언제까지인데 분량은 산처럼 쌓아 주면 나더러 어쩌라고?’
이선우는 산더미처럼 쌓인 사료 더미를 보며 절망에 빠졌다.
조선을 둘러싼 각국의 외교 문서 1차 사료를 보는 건 박사 논문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긴 했지만,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과중한 업무는 이제 사료라면 정나미까지 떨어지게 하고 있었다.
박사 과정에 진학한 이래 온갖 일에 투입되면서, 실제 공부나 논문에 대한 진척은 거의 없었다.
돈이라도 받으면 좋은데, 최저 임금도 안 되는 급료에 고강도 업무를 강요받는 처지였다.
이선우는 진지하게 때려치울까 고민 중이었다.
아니, 애초에 학자의 길로 들어온 것 자체를 후회하고 있었다.
그래도 자신이 하는 공부가 즐겁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여 지금까지 억지로 참고 버티는 중이었다.
왜 하필 역사를, 근대 외교사를 공부했을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
조선의 멸망과 식민지화에 대한 분노와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이선우는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해 보고 싶었다. 조선을 둘러싼 주변 열강의 상황을 정확히 보고 싶었고, 그래서 택한 외교사였다.
공부는 즐거웠지만, 사료를 보면 볼수록 울분이 쌓여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홍장, 원세개(위안스카이),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카오루, 야마가타 아리토모, 기타 등등. 이 자식들 만날 수만 있다면 드라마처럼 뺨이라도 때리고 싶다.’
조선을 마치 자기 것처럼 여기며 침략 정책을 추구하는 열강 정치인들의 행보를 보면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더욱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조선 당국의 무능이지. 이 시대 위정자 놈들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 봐도 낙제야. 위기의식이라곤 전혀 없고, 책임감은 더 없는 무리들.’
때는 제국주의 시대였고, 약육강식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였다.
하지만 조선 정부는 좋게 말하면 순진하고, 나쁘게 말하면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쁜 선택만을 내렸고, 원래 열강도 아니었던 일본에 식민 지배를 당하는 근대 최악의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정녕 이 길밖에 없었던 거냐? 식민 지배, 분단, 군사 독재, 강압적 근대화. 이런 길밖에 없었던 거냐고.’
하지만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 엄밀성을 다루는 학문이라면 더 그렇다. 어찌 됐건 학계에 소속되어 있는 그로선 가정은 더욱 상상으로 끝나고 말아야 할 일이었다.
마침내 이선우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이 선생! 아직도 외무성 작업 안 끝났어?”
“예, 아직……. 좀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아니, 내가 시킨 게 대체 언제냐고. 왜 아직도 못해?”
이선우도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 업계에 몸담은 지 몇 년, 부당한 요구에 익숙해졌다지만 정도가 있었다.
“저도 최선을 다해 봤는데 워낙 일이 많아서요.”
“국가에서 나랏돈 줘가면서 시키면 놀라고 주는 게 아니잖아? 돈을 받았으면 최선이 아니라 최고의 결과를 내놓아야지!”
교수는 이선우에게 삿대질했다. 그 순간 이선우는 마침내 이성의 끈을 놓치고야 말았다.
“시바, 그럼 돈이라도 많이 주든가. 최저 시급에도 못 미치는 돈 주고 굴리면서 뭔 최고의 결과를 바라나?”
워낙 좁은 판에서 미움 사서 좋을 일 하나 없으므로 그동안 참고 또 참았지만, 이제는 더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
“뭐, 뭐? 지금 뭐라 그랬어?”
“투자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회식비로 펑펑 나가는 돈, 연구원들에게 더 나눠 주면 좋은 결과 나오지 않겠냐고요. 까놓고 말해서 받은 만큼 일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일반적인 회사라면 이미 근로기준법 위반이에요, 이거.”
교수는 입이 딱 벌어졌다. 지금까지 고분고분했던 이선우의 반항에 어이가 없었다.
“이봐, 이선우! 우리 때는 말이야, 국가에서 시키면 그냥 일했어. 거기에 대가가 어딨어? 공짜로라도 일한 거야. 나뿐만 아니라 다 그렇게 해왔어! 하여튼 요즘 젊은이들은 나약해 가지고, 조금만 힘들면 불평불만이야!”
“아, 무슨 그런 케케묵은 봉건 시대 논리를 강요하세요. 그건 석사만 졸업해도 교수 임용되던 좋았던 옛날이고요. 우리처럼 미래가 불안정한 세대에게는 당장 내일도 걱정이란 말입니다. 아무튼, 난 할 만큼 했으니까, 뒷일은 알아서 하십쇼. 내가 뭐 여기 아니면 일할 곳 없는 줄 아나?”
이선우는 이왕 막 나가는 김에 끝까지 하기로 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연구실 문을 박차고,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렸다.
당연하게도, 이선우의 행동은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동료들이야 입을 열지 못해서 그렇지 모두 불만을 느끼고 있었기에 이선우의 행위를 쾌거로 받아들였지만, 교수급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지도 교수가 중재를 해 준 덕에, 이선우는 더 이상 얼굴 붉히고 싶지 않아 형식적인 사과만 하고 연구원에서 물러났다. 그동안의 보수는 받긴 했지만, 일한 대가에 비하면 형편없이 적었다.
‘그리고 남은 건 또라이라는 평판뿐이군. 그동안 대체 뭘 위해 한 거냐?’
이선우는 피로감을 느꼈다.
‘역시 대학원은 들어오는 게 아니었어. 진작 취직했으면 못해도 대리는 됐을 텐데. 나이만 먹고 학비랍시고 돈만 썼지 모아둔 재산은 하나도 없고.’
오직 학문에 대한 애정과 흥미로 버텨왔지만, 누적된 피로감에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다.
‘이 시점에선 취직도 글렀지. 아는 건 많다지만 현장에서는 아무 쓸모없는 지식이고. 내 인생은 뭐냐?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과거사를 따지던 이선우는 결국 본질적인 문제로 회귀했다.
‘이게 다 사람을 사람대접하지 않는 헬조선 문화 때문이다. 근데 그게 현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지. 그 근본적인 원인은 병영 국가와 식민 통치, 아니 더 올라가서 조선말에 있는 거야. 그때 위정자가 좀 똑바로 했으면……!’
이선우의 말은 대책 없는 환원주의였지만, 될 대로 되라는 기분이었다.
대학으로 복귀한 이선우는 학과 연구실과 도서관을 오가며 쥐 죽은 듯이 있었다.
지금까지 공부한 게 아까워서라도, 어떻게든 논문은 써볼 생각이었다.
집중은 안 되지만 책이나 들여 보던 어느 날, 학과장의 호출을 받았다.
정기 답사로 서울 근교, 서오릉(西五陵)과 서삼릉(西三陵)을 묶어서 가자는 제안이었다. 학과장은 이선우에게 인솔을 부탁했다.
이선우는 솔직히 귀찮았다. 보통 박사 과정에게는 시키지 않는 일이었다. 이미 석사 때 답사 뒤치다꺼리를 몇 번 했는데, 그걸 또 하란 소리였다.
그래도 향후 논문 심사를 맡을 학과장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답사 인솔을 수락했다.
답사 당일.
이선우는 학과장을 모시고 새내기들과 답사에 나섰다.
특히 서삼릉은 비공개 묘역에 있는데, 학술적인 목적으로 사전에 신청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들이 있다. 문화재청에 연락 돌려서 개방 허가받고 인솔해서 가는 것도 모두 이선우의 일이었다.
“여기는 회묘(懷墓), 즉 폐비 윤 씨 묘역으로, 여러분도 잘 아는 연산군의 어머니 무덤입니다.”
팔자에도 없는 문화 해설사 노릇까지 하고 있는 이선우였다.
하지만 대개 신입생인 학생들은 이선우의 말은 귓등으로 듣고, 관심을 보이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어차피 답사는 전공필수라 온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여긴 왕자·왕녀 묘역으로, 대개 10세 미만에 어린 나이에 죽은 왕자 왕녀들을 모신 곳입니다.”
그래도 사학과라고, 개중에는 이선우를 따라다니며 해설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불쌍하다.”
여학생들 사이에서 동정의 말이 나왔다.
“여기는 후궁 묘역으로, 숙의와 빈, 귀인들을 모신 곳입니다. 이곳에 있는 후궁들은…….”
후궁 묘역을 끝으로 모든 설명이 끝난 이선우는, 학생들에게 잠시 자유 시간을 주고 자신도 잠깐의 자유를 만끽했다.
“쌤, 쌤.”
남학생 하나가 이선우에게 말을 걸어왔다. 신입생들인지, 그도 낯이 익지 않았다.
‘형이나 선배도 아니고 쌤? 나도 이제 쌤이라 불릴 나이인가?’
“여기 이건 누구 묘에요? 왕자라고 쓰여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후궁 같지 않은데.”
신입생은 이선우를 누군가의 묘역 앞으로 이끌고 갔다.
“어디 보자.”
이선우는 비석에 쓰여 있는 한자를 읽었다.
有明朝鮮國 王子 領宗正卿府事 完和君 贈諡孝憲公墓.
“유명조선국 왕자 영종정경부사 완화군 증시효헌공묘.”
“그럼 왕자 맞네요?”
“그러게, 왜 이 사람만 후궁 묘역에 있지?”
“완화군이 누군데요?”
“완화군……. 고종의 큰아들이지. 순종의 형이고. 흥선 대원군의 총애를 받았지만, 어린 나이에 일찍 죽었어.”
이선우는 완화군이 누구인지는 알았지만, 워낙 존재감이 없는 흐릿한 왕자라 역사 전공자 입장에서도 많이 아는 건 없었다.
“왜 이렇게 일찍 죽은 왕자가 많아요? 진짜 불쌍하네요.”
“글쎄, 이 왕자는 어찌 보면 일찍 죽은 게 행운 아닐까? 적어도 나라가 망하고 식민지로 전락하는 건 안 봐도 됐잖아.”
이선우는 남이 듣기엔 굉장히 냉정한 어투로 말했다.
‘그 아비가 정치를 좀 제대로 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기회가 굴러들어 와도 차 버리는 경우가 많았으니…….’
이선우는 어쩌니 저쩌니 해도 조선 망국의 가장 큰 책임은, 최고 권력자인 고종에게 있다는 생각이었다.
‘만약 내가 미래 지식을 알고 그 시대 통치자가 된다면, 좀 나을까? 헬조선이 아닌 헤븐조선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이선우가 그런 의미 없는 상상을 하는 순간.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이선우는 순간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신입생은 다른 곳으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지금 누가 말했지?”
“일찍 죽은 게 행운이라고? 그렇지 않아. 나도 내 나라를 위해서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고.”
이선우는 목소리를 찾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상하게도, 주위에는 그 말고도 아무도 없었다.
‘뭐야, 내가 갑자기 미치기라도 했나? 왜 환청이 들리는 거지?’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는 건 무덤과 비석뿐이었다. 목소리의 출처는 대체 어디란 말인가.
“나 대신 네가 내 꿈을 이뤄 줄 수 있겠어?”
이선우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순간 정신을 잃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