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103
– 103화에 계속 –
103화 청불 전쟁(淸佛戰爭)
1884년, 갑신년 여름.
동양 정세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전쟁이 시작되었다. 포성은 인도차이나, 베트남에서 터져 나왔다.
1883년, 프랑스는 오랫동안 식민지화에 공들여 왔던 베트남의 수도 후에를 점령했다. 프랑스는 베트남에 후에 조약을 강요하고, 베트남은 프랑스의 보호국으로 전락했다.
베트남의 독립파는 종주국인 청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다. 청의 대외 강경파는 프랑스와 일전불사를 외쳤으나, 외교를 이끄는 공친왕과 이홍장은 외교적 해결을 선호했다.
“해군 건설과 해방(海防)이 완성되기 전에 서양 열강과 싸우는 일은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대청은 안남에서 프랑스를 축출할 힘도, 협정을 폐기할 능력도 없습니다. 큰 화를 초래할 전쟁을 경솔히 운운해서는 안 됩니다. 프랑스와 교전해서 국지적인 승리를 거두더라도, 프랑스의 전의를 더 강화하여 결국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입니다. 협상해야 합니다.”
공친왕은 열강과 전쟁을 피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으므로, 이홍장에게 외교 전권을 맡겨 프랑스와 협상하게 했다.
1884년 4월, 결국 이홍장과 프랑스 특사 푸르니에 간에 타협이 이루어져 간명 조약이 체결되었다.
청은 베트남이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었음을 인정하고, 베트남에 주둔하던 청군을 철수시키는 대신, 프랑스는 중국을 침략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베트남에서 중국의 위엄과 명망을 해치지 않는다는 합의였다.
6월, 프랑스는 베트남에 후에 조약의 비준을 강요했고, 베트남은 공식적으로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었다. 이것으로 전쟁 위기는 끝나는 듯했다.
협정 체결이 알려지자, 공친왕과 이홍장을 향한 비난이 격렬하게 쏟아졌다.
청류당(淸流黨)을 자처하는, 강경한 배외주의자들이 호전적인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법국은 이미 쇠약해진 국가입니다. 이미 덕국에 참패하고 몰락하고 있습니다. 오직 전쟁만이 중화의 영예와 조공국을 수호할 수 있으며, 지나친 관용은 필연적으로 욕심이 끝없는 적에게 더 많은 요구를 제기하도록 용인하게 될 것입니다!”
“중국이 안남 문제를 단호히 처리한다면, 아라사가 만주에서, 영국이 버마에서, 일본이 조선에서 모험적 행동을 벌이지 못할 것입니다!”
“어째서 이중당은 전쟁하면 패배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중당은 서양보다 무기가 부족함을 걱정합니다. 하지만 전쟁의 승부는 사람의 담력 및 용기와 도덕적 자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무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법국의 간계는 부녀자와 애들조차도 알고 있는데, 오직 이중당만 전혀 모릅니다. 이중당은 법국에게 우롱당하고 있으며, 조정은 이중당에게 우롱당하고 있습니다!”
청류당은 이홍장을 탄핵하는 상소를 무려 47건이나 쏟아냈다. 그중에는 이홍장을 남송의 악명 높은 간신 진회(秦檜)에 비유하며, 주화파는 매국노라는 극언까지 있었다.
이홍장은 입으로만 떠들어대는 청류파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지만, 곧 정치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공친왕은 나라를 대체 어찌 이렇게 이끌고 있는가? 군기처와 총리아문의 직위를 즉각 해임한다.”
수렴청정 중인 자희태후, 즉 서태후가 청류파의 편을 들어 공친왕을 실각시켰다.
서태후와 공친왕은 1861년의 신유정변 이래 20년째 정치적 동맹 관계였다. 하지만 청나라 역사상 가장 권력욕이 강한 여인, 서태후의 야심은 황태후로 끝나지 않았다. 친자식인 동치제가 죽고 조카인 재첨을 광서제로 올린 이후에도, 수렴청정의 지위는 놓지 않고 있었다.
서태후는 명목상 더 높은 자안태후, 즉 동태후가 1881년에 사망하자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시켜 왔다. 서태후는 실질적으로 조정을 이끌고 있는 공친왕보다 자신이 더 위에 있다는 걸 분명히 보여주고 싶어 했고, 프랑스에 대한 ‘굴욕외교’를 명분으로 삼아 공친왕을 실각시킨 것이다.
공친왕이 실각하자, 조정은 서태후파와 청류파가 득세했다. 이홍장은 난처하기 짝이 없었다. 서태후가 이홍장에게는 신임을 표하면서 북양대신 직에서 유임시켰지만, 타협은 물 건너가게 된 것이다.
프랑스 역시 어정쩡한 타협이 아니라, 청나라와 일전을 벌여 베트남의 지배권을 확실하게 받아내겠다는 강경파가 득세했다.
철군 명령을 받지 못한 베트남의 청군과 프랑스군 간에 소규모 교전이 벌어졌고, 프랑스군 병사 몇 명이 전사했다. 프랑스는 이를 명분으로 삼았다.
“이는 명백한 간명 조약 위반이오! 조약 위반의 대가로 청국은 배상금 2억 5천만 프랑을 지불하고, 즉각 조약을 이행하시오.”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에 청류파가 폭발했다.
“저 무도한 서양 오랑캐를 무찌르지 않고선 결코 물러서선 아니 됩니다!”
서태후는 전쟁을 결심했다. 청류파 지도자인 장지동을 양광 총독으로, 장패륜을 복건 순무로 임명하여 남부 해안 방어를 맡겼다.
8월 중순, 청과 프랑스 간에 협상이 결렬되었다. 베트남 북부에서의 국지전에서 프랑스 동양함대가 본격적으로 남중국해에 진출하여 공격함을 감행함에 따라 본격적인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8월 23일.
프랑스 동양함대 사령관 쿠르베 제독이 이끄는 12척의 프랑스 군함은, 청 남양 수사의 거점인 복주 마미(馬尾) 항을 기습 공격했다.
“전함, 포격 개시!”
쾅! 콰앙!
프랑스 함대는 단 1시간 만에 11척을 격침, 청 최초의 근대적 해군이었던 복건함대를 궤멸시켰다.
복주 해전은 전투라고도 할 수 없는, 일방적인 학살로 끝났다.
1866년 최초의 서양식 조선소로 설립한 복주선정국은 양무운동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단 하루 만에 철저하게 박살 난 것이다.
좌종당이 복주선정국을 세울 때 도와준 나라가 바로 프랑스였으니, 역설도 이런 역설이 없었다.
하지만 정작 청 조정에서는 마미 해전이 승리로 끝난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산꼭대기에서 지켜보다 제일 먼저 도주한 장패륜의 보고문은 화려한 문장으로 점철되어 있어 승리인지 패배인지 도통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청 조정은 이겼다고 정신승리를 하고 있었다.
며칠 후, 마침내 진실이 밝혀졌다. 서태후는 격분하여 장패륜을 체포하여 변방으로 유배 보내라 하고, 프랑스에 정식으로 선전포고했다.
“법국 오랑캐를 중화에서 완전히 몰아내기 전까지 결코 타협이란 없을 것이다!”
서태후는 북양 수사를 이끄는 이홍장과 정여창에게 출동 명령을 내렸다.
“흥, 언제나 사고는 자기들이 치고 책임은 나더러 지라고 하지. 내가 무슨 뒷간 청소부냐? 똥은 너희가 싸지르고, 치우는 건 내 몫이게?”
이홍장은 극히 냉소적이었다. 이홍장이 그토록 경고했던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자, 냉철했던 이홍장도 평정심을 잃었다.
복주선정국의 파괴와 복건함대의 소멸은, 근대적 해군을 창설하여 적극적인 해방(海防)을 추진하던 이홍장과 양무파로서는 참으로 뼈아픈 일격이었다.
이홍장은 북양 수사를 근대적 함대, 동아시아 최강의 함대로 키우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홍장은 북양 수사를 전장으로 내보내길 꺼려, 이홍장의 소극적 태도를 비난하는 청류파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런데도 이홍장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법국과의 전쟁을 틈타, 일본이나 아라사가 준동할지 모릅니다. 이를 경계하려면 북양 수사는 북쪽 해안을 방비해야 합니다. 남방의 일은 남양 수사에 맡기십시오.”
“전쟁과 외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무리들이 경솔하게 망언만을 거듭하고 있소! 이자들이 외교든 군사든 실무 경험이 있는 자들이오? 국사를 경솔하게 비평하고 인물을 평가하는데, 기껏해야 능멸하는 말뿐이오.”
이홍장은 상무위원으로 천진에 파견되어 있는 김윤식을 만나는 자리에서 조정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이홍장은 조선 사절 앞에서 오히려 거리낌이 없었다.
“중당의 고심이 크시겠습니다.”
“말하나 마나. 내가 그토록 서양 열강과 전쟁을 벌이면 안 된다고 말려왔는데. 이제 북양 수사까지 말아먹으려고 하는 모양이오. 그럴 수야 있나. 아무튼, 김 공은 어인 일로 오셨소?”
김윤식은 이선의 말을 전달하기 위해 이홍장을 찾아왔음을 밝혔다.
“조선이 얼마 전에 법국과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한 것은, 원래 예정된 일이었으니 양해를 부탁드린다는 외무독판 완화군 대감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이홍장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거야 뭐, 괜찮소. 내가 걱정하는 건, 이 전쟁을 틈타 법국 함대가 북상하여 귀국의 연해까지 위협하는 상황이었소. 수호조약 체결로 그럴 가능성이 사라졌으니 다행이라 생각하오.”
“법국이 그렇게 북쪽까지 올라올 수도 있단 말씀입니까?”
“중국과 조선은 한 집이나 다름없으니, 알려드리리다. 난 최대한 육지의 전선은 안남으로, 해안의 전선은 절강 이남으로 국한하고 싶소. 하지만 법국 함대가 25년 전과 마찬가지로 천진으로 올라와 북경을 위협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지. 그렇기에 난 천진 방위를 위해 최선을 다할 거요.”
전쟁이 북경 근방까지 확전될 수도 있다는 말에 김윤식이 놀라워했다.
“그렇게 심각합니까?”
“복건 수사가 궤멸했으니 연해 방위가 위태롭소. 남양 수사든 북양 수사든 법국 함대에 대적할 수준이 못 되지. 하지만 천진의 요새화는 25년 전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니, 법국 함대도 쉽게 노리진 못하겠지. 육지에서 일격을 가하고 법국을 협상으로 끌어내는 수밖에.”
이홍장은 혀를 찼다.
“쯧, 하지만 천진을 피해서 산동이나 요동을 공격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 이러니 해군 건설이 완료될 때까지 서양과 전쟁을 하면 안 된다는 거요. 귀국에도 똑똑히 알려주시오. 힘을 키우기 전에는 서양과 섣불리 전쟁하면 안 된다는 걸.”
“옳은 말씀이십니다. 조선은 그저 자국을 지킬 힘을 키우고자 할 뿐입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우리의 친구 고든이 조선으로 갈 예정이지. 얼마 전에 상해에 도착했소. 지금 천진으로 오는 길이지. 갑자기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그 친구도 적잖이 당황했을 거요. 아무튼, 고든이 귀국의 군대를 양병하는 데 힘이 되었으면 하는군.”
“감사합니다. 완화군께서 중당께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알려달라 하셨습니다.”
“말이라도 고맙군. 조선이 이 전쟁에서 도울 일은 없고, 나는 전쟁을 틈타 일본이 준동할까 봐 걱정이오. 완화군에게 일본을 경계하라고 전하시오.”
“그리 전하겠습니다.”
이홍장은 대원군과 이선이 주도하는 조선 조정이 친청파이자 양무파와 유사한 국가관을 갖고 있다고 믿었고, 그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표했다.
조선의 군사고문관으로 채용된 고든은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영국을 떠나 중국에 이르렀다. 조선으로 떠나기 전, 이홍장은 고든에게 만나자고 제안했다.
때마침 천진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던 묄렌도르프도 함께 회견에 응했다.
“고든 장군, 묄렌도르프 선생. 나는 이 험난한 시국에 조선으로 가게 된 여러분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조선이 군대를 양성하고, 국가를 개혁해나가길 바라오.”
“저는 예전에 상승군을 이끌던 시절의 고든 대위로 돌아가는 심정입니다. 신생 조선군의 근대화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좋소. 그리고 조선은 대청을 지키는 동쪽 울타리가 되어야겠지. 조선의 군신이 쓸데없는 데 부화뇌동하지 않고, 중국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여겨 할 것이오.”
“그런 방향으로 정책을 이끌어나가겠습니다.”
묄렌도르프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이홍장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여러분이 조선에 있어서 든든하군. 앞으로 잘 부탁합시다.”
이홍장은 고든과 묄렌도르프는 조선의 고문관이지만, 자신과 친분이 두터우니 청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홍장이 간과하는 점이 있었다. 서양인 고문관은 철저한 프로페셔널이고, 결국 급료를 주는 물주와 자신이 속한 국가의 국익을 위해 일한다는 점이었다. 과거 이홍장이 그들을 고용했다거나, 그와의 친분은 고려 밖의 문제였다.
자신을 대영제국의 군인으로 약속과 명예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고든은 물론이고, 묄렌도르프도 다르지 않았다.
묄렌도르프가 여름휴가를 빙자하여 청나라에 왔다가, 은밀히 산동 지부(芝罘)에서 러시아 태평양 함대 사령관 크로운 소장 및 주재무관 시네우르 대령과 밀담을 나눴다는 사실은, 청나라에선 아무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동양에서 청과 프랑스의 전쟁에 시선이 모두 쏠린 사이, 조선은 일대 변혁을 추진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