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104
– 104화에 계속 –
104화 군제 개혁
9월 1일, 고든 소장이 이끄는 군사 고문단이 조선에 입국했다. 고든은 자신을 보좌할 보병, 기병, 포병 보직을 가진 3인의 장교와 함께 제물포항에 들어왔다.
제물포에는 아직 접안 시설이 없었으므로, 기선에서 내려 나룻배로 들어와야 했다. 청나라에서의 경험이 많은 고든이 개의치 않고 육지에 오르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조선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장군.”
“이런, 왕자께서 직접 항구까지 와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이선의 환영에 고든이 거수경례했다.
“멀리 영국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당연히 직접 맞이해야지요. 장군을 조선에서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저야말로 조선에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선과 고든은 힘차게 악수를 했다.
“조선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군제 개혁입니다. 장군을 초빙한 이유이지요. 나는, 아니 국왕 폐하와 조선 정부는, 조선을 지킬 새로운 서양식 군대를 원합니다.”
“현재 조선의 군사 상황에 대해 알 수 있겠습니까? 대략적인 사항은 읽어보기는 했습니다만, 제가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상당한 열의를 보이는 고든에게 이선은 웃으면서 답했다.
“물론입니다. 먼저 국왕 폐하를 알현하고, 정식으로 조선의 관직을 받은 후에 일을 시작하지요.”
한양에 들어온 고든은, 붉은색 영국 군복에 저항감을 느낄 수 있는 조정 신료들을 고려해 청에서 하사한 황마괘를 입었다.
이미 묄렌도르프가 조선의 관복을 입고 다녀서, 이상할 것도 없었다. 당상관 관복을 입고 다니는 서양인 ‘목 참판’의 존재는 조선에서도 유명했다.
“허어, 서양인이 황마괘를 입다니, 흔치 않은 일이로고.”
고든은 영국군 소장이지만, 동시에 청의 종2품 제독이기도 했다. 서양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는 보수파 신료들도, 고든이 청 황제로부터 친히 황마괘를 하사받았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황금빛 관복은 특별한 공을 세운 이만 입을 수 있었다.
“찰스 조지 고든, 즉 과등(戈登) 소장은 영국의 명망 높은 장군으로, 이미 20년 전 장발적(태평천국)을 진압하는 데 큰 공로를 세운 바 있습니다. 뛰어난 지휘관인 동시에 훌륭한 인품으로, 동치제와 황태후를 감복시킨 바 있습니다. 북양대신과도 절친한 관계지요. 청의 상승군과 애급(이집트) 군의 개혁을 이끌었듯이, 조선의 군제 개편을 도울 것입니다.”
이선의 설명에 임금이 감탄을 표했다.
“그렇게 유명한 장군이 조선에 오다니 기쁘구려. 나는 진작 서양의 유능한 장군을 군사 교관으로 데려오길 원했소. 과등 장군은 과인의 뜻을 받들어, 조선군의 정예화를 위해 힘써 주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힘써 일하겠습니다.”
고든이 미리 익혀둔 대로, 동양식으로 읍(揖)하며 예의를 표했다. 그 모습에 임금은 더욱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등을 정2품에 봉하고, 통리군국사무아문(統理軍國事務衙門)의 협판으로 임명하니, 군무사(軍務司)의 일을 총괄하도록 하라.”
즉석에서 고든이 정2품 협판으로 군무를 총괄하는 자리에 임명되자, 일부 신료들은 못마땅한 듯 표정이 굳어졌다. 이선은 일부러 그들에게 들으라는 식으로 말했다.
“역시 성상께서는 영명하십니다. 과등 장군은 이미 20년 전에, 황명으로 대청국의 종2품 제독 직에 임명된 바 있습니다. 하물며 20년이 지난 지금은 영국의 장군이기도 하지요. 정2품으로 임명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 과인 역시 이를 고려하여 임명한 것이니, 경들은 파격으로 생각하지 말라.”
“그러하옵니다. 신등은 오직 성상의 뜻을 따를 뿐이옵니다!”
대원군이 앞장서서 동의를 표하자, 다른 신료들도 일제히 외쳤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대원군의 지지기반이 보수파이니만큼, 외국인을 지나치게 중용한다는 여론을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는 개화파들처럼 급진적인 개혁은 원치 않았다.
“사실상 조선의 군권을 외국인에게 내준 것이나 다름없다. 임진왜란 시기를 제외하면 전례가 없는 일이지. 그만큼 정치적 부담도 크다. 그걸 상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겠지?”
“군권은 계속 조정이 행사할 터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본과 중국에서는 일찌감치 서양인 장교들을 채용하여 군의 정예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과등은 조선에서 데려올 수 있는 인재 중 최고급에 속합니다. 유능함, 경력, 인품, 인간관계, 본국의 신임, 뭐 하나 빠지는 점이 없지요. 분명 조선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음. 믿어보겠다. 사대부들이 떠들어대는 건 내가 어떻게든 무마시켜 볼 터이니, 과등이란 자가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할 것이다.”
“그리될 것입니다.”
보수적 개혁파인 대원군도 서양식으로 강력한 군대를 보유해야 한다는 점만큼은 개화파와 일치했다. 그렇기에 이선의 중점 사업 중 서양인 군사고문관의 채용과 군제 개혁이 가장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은 고든 및 보좌 장교들과 정식으로 3년 계약을 체결했다. 급료는 일본이 1883년 프로이센 장교들을 고문관으로 데려온 조건보다 훨씬 좋았고, 권한도 훨씬 많았다.
‘조선은 무에서부터 유를 창출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고든은 계약 조건에 크게 만족했다. 특히 사사건건 간섭하던 청 조정과 달리, 국왕과 이선이 강한 신뢰감을 보이니 기뻐할 만했다.
고든은 통리군국사무아문(내무아문) 협판으로 임명되자마자, 즉각 일에 착수했다. 보좌 장교들과 함께 조선군의 현황을 총체적으로 살폈다. 편제, 훈련도, 사기, 무기 등 모든 게 점검대상이었다.
시찰을 마친 고든은 이선에게 보고했다.
“총체적으로 부실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뜯어고쳐야 합니다.”
고든의 말은 냉정하기 짝이 없어서, 개화파 관료들조차 반감을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이선은 당연하게 여겼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장군이 보기에, 현재 쓸 만한 병력은 얼마나 됩니까?”
“수도의 군사 상황만 둘러봤고, 나머지는 문서상으로만 살펴봤습니다만. 수도 병력 중 친군 4군영을 제외하면 군대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입니다. 4군영 중에도 외국 군대와 비견될 수 있는 건 그나마 전영(前營)뿐입니다.”
임오군란 이후 한차례 군제 개편이 있었다. 기존의 5군영을 완전히 폐지한 대신, 친군 4군영을 설치해 수도 방위를 맡겼다.
4군영은 서양식 군대를 지향했고, 특히 전영으로 편입된 고려대대가 핵심 병력이었다.
“친군 전영은 내가 러시아에서 모집한 부대입니다. 조선에서 유일하게 서양식으로 훈련 받았습니다. 이들과 같은 군대로 재편할 생각입니다.”
“어쩐지, 의외로 친군의 무기 수준이 높더군요. 특히 개틀링 건을 다수 보유한 게 놀랍습니다. 청군은 물론이고, 일본군도 이 정도 무장은 아닐 겁니다.”
이선이 돈을 퍼부어 노벨로부터 최신식 무기로만 사들였으니 무기의 질은 검증된 셈이었다.
“기관총은 농민도 단기간에 적을 학살하는 정예로 만들어주는 무기니까요. 전영은 변경에서 마적들을 쓸어버린 실전 경험도 있습니다. 일단 조선군은 국토방위 목적이니, 방어용 무기들이 중심이지요.”
‘하지만 개틀링 건으로 부족해. 영국에서 곧 맥심 기관총이 실용화될 시기지? 나중에 고든을 통해 수입해야겠다.’
“그렇군요. 그럼 지방군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문서상으로는 병력이 많습니다만.”
“지방군도 강화의 심영(沁營)과 평양의 서영(西營), 함흥의 북영(北營) 정도를 제외하면 그냥 없다고 생각하는 게 편합니다.”
전통적으로 조선이 중시한 요충지인 강화도와 지방 병력 중 그나마 정예로 평가받는 평양과 함흥 정도만이 일정한 군대 수준을 갖췄다.
“그러면 현재 조선이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은 수도 2000, 지방 3000 정도로군요.”
그 적나라한 수치에, 이선은 한숨이 나왔다. 민씨 척족의 10년 집권 동안 국방은 손을 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원군이 다시 집정하고 국방에 힘을 썼지만, 구식 군대는 본질에서 한계가 있었다.
“당장 운용할 수 있는 군대는 그 정도지요. 그러니 군제 개편이 무엇보다 가장 시급하다는 겁니다.”
고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병력은 앞으로 어떻게 모집할 생각입니까? 징병제입니까, 모병제입니까?”
고든이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장기적으로 프랑스나 프로이센식 징병제를 도입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작금의 조선 상황을 볼 때 징병제를 당장 하는 건 무리입니다. 5년 정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때까지는 영국식 모병제를 운용해야겠지요.”
이선은 국민개병제를 원했지만, 국민개병은 필연적으로 엄청난 사회변동을 수반했다.
‘지금 당장 징병제를 실시하면, 징병제 초기의 일본처럼 농민의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거다. 사대부들이야 일본 사무라이처럼 칼 들고 저항하진 않겠지만, 시끄럽게 짖어대겠지. 준비 기간이 필요해.’
“영국식 모병제라. 조선 인구가 1천만이라고 치면 재정이 허용된다는 전제하에, 최대 10만 정도의 상비군은 운용 가능합니다. 징병제를 시행하면 예비 병력으로 그 몇 배는 운용할 수 있을 것이고.”
영국은 섬나라의 특성상 전통적으로 해군이 막강하고 육군의 수는 많지 않았다.
1880년경 프랑스와 독일은 각 50만 정도의 병력을 보유했지만, 예비군은 100만에서 130만에 달했다. 이에 비하면 영국은 본토에 15만 명, 인도에 20만 명 정도였다. 모병제라 예비 병력은 거의 없었다.
“솔직히 말하지요. 조선의 가상적국 1호는 일본입니다. 일본은 현재 6개 진대, 18개 연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병력은 약 6만. 징병제 특성상 예비군도 있고.”
일본은 1873년부터 징병제를 시행해, 일본 전국을 6개의 진대(鎭臺)로 나누었다. 1884년 현재 18개 연대로, 일본은 향후 10개년 계획으로 병력을 대거 늘릴 예정이었다.
“일본은 조선보다 인구가 3배 정도 많으니까, 앞으로 징병제를 강화하면 병력은 더 늘어날 겁니다. 내가 원하는 건, 향후 우려되는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국토방위를 이뤄내고 자주독립을 이루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건 일본이 아예 공격할 엄두조차 못 내게 하는 거지요.”
이선이 일본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드러내자, 고든은 의문이 들었다. 일본군은 진대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진 중심의 방위체제이고, 대외전쟁을 수행할 능력은 아직 없었다.
“일본은 조선을 침략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영국이 프랑스를 침략할 능력이 없듯이 말입니다. 어찌 그렇게 경계하시는지?”
‘실제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지. 물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만.’
“영국과 프랑스하고는 전혀 경우가 다르지요. 물론 국경을 접하고 있는 청과 러시아도 가상 적국의 범위에 들어가겠지만, 경계 대상은 단연코 일본입니다. 일본은 300년 전에도 통일하고 가장 먼저 취한 선택이 조선 침략이었습니다. 현 일본 정부의 주요 파벌은 대륙 진출을 원합니다. 나 역시 그들이 생각을 바꿨으면 좋겠지만. 그들이 생각을 바꾸게 하려면, 조선이 확고한 국방력을 갖춰야 합니다.”
이선의 단호한 태도에, 고든도 이해한다는 뜻을 비쳤다.
“알겠습니다. 그럼 국토방위를 제1 목적으로, 본격적으로 군제 개편에 돌입하겠습니다.”
“예, 우리 관리들과 함께 힘써 주길 바랍니다.”
고든과 함께 신정희, 홍영식, 박영효, 윤웅렬, 최경석, 서재필 등이 군제 개혁의 실무를 맡았다. 신정희는 어영대장을 지낸 군부 핵심인사였고, 박영효와 윤웅렬은 친영을 지휘한 경험이 있었다. 홍영식과 최경석, 서재필은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군제를 연구하며 서양식 군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들은 착수한 지 2주 만에 새로운 군제 개혁안을 들고 나왔다.
“잡다한 군영은 폐지하고, 궁궐, 수도, 지방 거점 방위를 중점으로 부대를 재편합니다. 친군 4군영은 친위대로 전환하고, 지방의 군영은 진위대로 전환합니다. 기존의 최대 단위가 영이라면, 향후 최대 단위는 연대입니다.”
“친위대부터 시작하여 기존 병력을 서양식으로 훈련하고, 새로운 군대로 개편합니다. 병력 수급은 당분간 모병을 통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지휘관의 수급이 중요합니다. 현재 설치된 조련국(操鍊局)을 사관학교로 전환하고, 무관을 선발해야 합니다.”
“재정 문제도 중요합니다. 지방 군영에서 사용하던 재정을 일원화해서, 단일한 국방 예산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들이 내세운 개편안은 이선도 모두 공감하는 바였다.
“좋습니다. 화급을 다투는 문제이니, 즉시 기무처에서 논의를 시작하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