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121
– 121화에 계속 –
121화 청일 충돌
1884년 11월 하순, 한성은 예기치 못한 일로 떠들썩했다. 일본군과 청군 사이에 충돌이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임오군란 이후 공사관을 호위한다는 목적으로, 최소한의 병력인 헌병 1개 소대 병력의 주둔을 승인받았다.
청군도 조선의 변란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일시 주둔시켰다. 조선의 설득으로 대부분은 철수했으나, 조선의 군사력이 확고히 자립할 때까지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회군 1영(營)을 용산 일대에 주둔시켰다.
일본군은 일본 공사관이 있는 남산에만 머물고, 청군은 용산에 있어 부딪힐 일이 없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일본군과 청군은 같은 날 한강 일대에서 훈련을 하던 중 부딪힌 것이다.
누가 먼저인지는 몰라도, 사소한 말다툼에 이어 야유와 욕설이 쏟아졌다.
“淸國奴(청나라 노예)!”
“倭奴(일본 노예)!”
“殺!”
“殺せ!”
욕설은 폭력으로 이어졌고, 일본군과 청군은 주먹다짐을 벌였다. 싸움의 규모가 점차 커지고, 숫자가 많은 청군이 우세를 점했다. 그러자 일본군은 칼을 뽑아 들어 총에 꽂았다.
“着劍(착검)!”
당장이라도 충돌할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다. 누구라도 먼저 총을 쏘거나 총검을 휘두르면 당장이라도 전투가 일어날 상황이었다.
일촉즉발의 순간, 조선군 친위대 1개 중대가 출동하여 양군의 싸움을 멈추려 했다.
조선군의 중재에도 험악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보고를 받고 달려온 병조참판 홍영식이 중단시켰다.
“그만 멈추시오! 조선 땅에서 무력 다툼은 절대 용인하지 않겠소!”
이윽고 군사고문단을 이끄는 고든까지 영국 군복을 입고 모습을 드러내자, 청군과 일본군은 그제야 무장을 풀고 각자의 군영으로 돌아갔다.
청과 일본 간에 흉흉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가운데에 충돌이 일어나니, 임금 이하 조선인들은 정말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했다.
이에 외무아문에서 다케조에와 진수당에게 이유를 따져 물었다.
“일본군이 먼저 대청을 모욕하였소!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오.”
“누가 할 소리! 청군이 먼저 천황 폐하의 군대를 모욕했소!”
서로에게 비난과 책임 전가가 쏟아지자, 이선이 일본 공사에게 물었다.
“일본군의 군사훈련은 사전에 예정된 게 아니었고, 조선 측에 접수되지 않았습니다. 왜 하필 그때 한강에서 훈련한 겁니까?”
“군사 훈련은 늘 있는 것이며, 지휘관이 시행하는 일입니다. 공사인 나도 사전에 알지 못했습니다.”
“일본군 소대는 어디까지나 공사관을 호위할 목적으로 주둔을 허용됐습니다. 본래 목적을 어기고 다시 문제를 일으킨다면, 조선 조정은 일본군의 주둔을 허용치 않겠습니다.”
“…… 유의하겠습니다.”
이선이 일본에 책임을 묻자, 다케조에는 불편한 표정으로 외아문에서 물러났다. 다케조에의 뒷모습을 보며 진수당은 의기양양했다.
“역시 완화군께서는 도리를 아십니다.”
“애초에 한성에 여러 나라 군대가 주둔하고 있으니 문제가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선의 지적에 진수당을 따라온 회판조선방무 원세개(袁世凱)가 펄쩍 뛰었다.
“아니, 천병(天兵)이야 당연히 조선의 변란에 대비해서 주둔하는 것이지요.”
본래 원세개는 임오군란 이후 조선에 온 회군 사령관 오장경(吳長慶)을 따라온 수행원이었다.
새로운 정권을 승인한 후, 오장경과 청군 대부분은 철수했지만, 원세개는 조선에 남아 진수당의 보좌역을 했다. 원세개의 주된 임무는 조선의 정세를 파악해 이홍장에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실권자 이선은 기묘할 정도로 원세개를 경계하고 싫어했다. 아직 20대에 불과한 원세개가 오만하여 눈에 띄는 행동을 자주 했다지만, 왜 그렇게 경계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위안스카이, 내가 있는 한 네놈이 조선 땅에서 설치는 거 못 본다.’
“호의는 감사하나, 수도를 지키는 조선군의 전력도 재작년과 비교하면 크게 확충되었습니다. 친위대의 전력은 대인도 보지 않았습니까? 이제 조선은 조선 스스로 방어가 가능합니다.”
이선은 예의는 갖췄지만, 냉정한 어조로 말했다.
“일본의 행태를 보고도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대청이 법국과 전쟁을 벌이는 틈을 타, 일본이 언제 조선을 침범할지 모릅니다. 천병이 소수나마 한성에 주둔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일본은 일을 꾸미지 못할 겁니다.”
“일본은 감히 일을 꾸미지 못할 겁니다. 이 문제에 대해선 원 대인이 논할 사안이 아닙니다. 제가 직접 중당께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이선은 원세개를 깔아뭉개고, 진수당에게 말했다.
“진 대인,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일부 청군의 행태에 대해 조선의 여론이 좋지 못합니다. 청국과 조선의 관계가 만대에 이어지려면, 조선에 있는 청인 한 사람이 모두 외교관이라 생각해 주십시오.”
“…… 알겠습니다.”
이선의 단호한 태도에 진수당도 유감을 표하며 물러났다. 원세개는 이선을 매섭게 쳐다보았으나, 이선은 당당하게 눈짓으로 물러갈 것을 요구했다.
개화당은 일본의 행보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로 청과 전쟁을 벌일 생각이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왜 이리 공개적으로 무력시위를 하는 것인지.
일본 공사의 답도 확실히 해명되지는 않았다. 일본을 경계하는 청군 병사의 계엄이 더욱 엄격해지자 조선 조정은 청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일본이 은근히 개화당을 지원할 것처럼 말했으나, 개화당은 그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일본이 청을 먼저 도발한 게 틀림없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오?”
이선의 물음에 김옥균이 단정적으로 말했다.
“청군과 달리 일본군의 군기는 엄정합니다. 그런데도 충돌이 발생했다는 건, 일본이 의도적으로 나섰다고 봐야겠지요.”
과연 그 말대로였다. 일본군은 군기가 엄정했고, 될 수 있는 대로 공사관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조선 백성들과의 접촉도 거의 없었다.
이에 비하면 청군은 군기가 엄정하지 못해 종종 사고를 치곤 했다. 이들은 상국의 군대랍시고 오만하게 굴어 조선인의 분노를 샀다.
조선 백성을 갈취한다든지, 청국 상인과 결탁하여 조선 백성의 상권을 침해하고 적반하장으로 폭행을 행사한다든지, 심지어 청군의 부당행위에 항의하는 조선 관리를 폭행한 적도네 있었다.
실제 역사처럼 청나라가 조선을 압박하며 좌지우지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청상의 진출에 이어 청군의 횡포까지 이어지자 민간 차원에서 반청 감정이 고조되는 것도 당연했다. 반일에 이어 반청 감정도 상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유야 어쨌건 청군의 행동을 더 이상 봐줄 수 없습니다. 이들을 모두 철수시켜야 합니다.”
“일본군 또한 어떤 의도가 있든, 지금 이러한 행태는 위험하게 느껴집니다.”
“흠, 내가 지금까지 왜 그들의 행동을 참고 있었다고 생각하시오?”
이선의 물음에 개화당원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야 청과 일본의 힘이 조선보다 강하니…….”
“명분 쌓기였소. 조선에 왜 외국군이 주둔하면 안 되는지, 조선의 엄정한 중립이 필요한지를 대내외에 똑똑히 보여줄 생각이었소. 이제 청일 주둔군 간에 충돌까지 발생했으니 더할 나위 없지.”
김옥균이 감탄하며 무릎을 쳤다.
“아아, 그렇군요!”
“누가 먼저 사고를 친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 입장에선 고맙군. 서양 외교관들은 확실히 알게 되었을 것이고, 그동안 막연히 청국을 우호적으로 생각하던 조선의 조야도 느낀 바가 있을 것이오.”
이 무렵, 이선이 구상한 조선 중립화 안이 독일 부영사 부들러에 의해 작성되고 있었다. 부들러의 명의로 이뤄지지만, 큰 구상은 이선이 하고 세부사항은 묄렌도르프가 조율하고 있었다.
적절한 때가 되면, 독일의 선창으로 조선 중립화 안이 발표될 것이었다. 주요 열강 중 동양 문제에 가장 초연한 독일이, 이번에도 ‘정직한 중개인’을 맡을 예정이었다.
청국, 천진, 북양대신 관저.
이홍장은 조선에서 온 전보를 받았다. 원세개가 보내온 전문이었다.
원세개가 이중당께 삼가 아룁니다.
근래 조선 왕과 그 신하들이 서양과 일본에 농락돼 망령되이 자주를 주창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향후 수년 이내로 대청을 상대로 도발적인 행위를 할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완화군 이선은 중당의 총애를 내세워 대청의 관리들을 대하는 태도가 불측하기 짝이 없습니다. 개화파를 자처하는 완화군 일파는 서양 및 일본을 추종하는 자들로, 대청을 우습게 여기고 있습니다. 완화군과 개화파가 러시아나 일본과 손을 잡고 변란을 꾸밀 가능성도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이선이 보내온 전보도 있었다.
이선이 이중당께 안부를 묻습니다.
얼마 전, 청군과 일본군 사이에 소소한 충돌이 있었으나, 일본 공사 다케조에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였습니다.
근래 일본이 조선에서 도발적인 행위를 벌이는 건, 법국과의 전쟁을 틈타 조선에서 이익을 추구하려는 행위로 보입니다.
이는 일본 당국의 정책 변화와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중당도 아시다시피, 다케조에는 본래 신중한 인물로, 공공연히 일을 꾸밀 자가 못 됩니다. 일본 또한 대청을 상대로 전쟁을 도발하진 않을 것입니다. 지금의 행위들은 단지 떠보기에 불과하니, 중당께서는 심려하지 마십시오.
누가 뭐라 하든, 중국과 조선은 오랫동안 가족과도 같은 관계였습니다. 근일 간에 조선이 경장을 선포하고 제도를 일신하고 군비를 축적해도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조선은 어디까지나 일본을 경계할 뿐입니다. 조선이 부국강병을 쟁취하여 대청의 동쪽 울타리가 된다면, 감히 일본이 어찌 일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부디 조선의 일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안남의 일이 시급합니다. 대청이 법국을 무찌르고 안남을 해방한다면, 안남뿐만 아니라 천하가 대청을 우러를 것입니다. 섬나라 일본은 감히 맞설 의지조차 보이지 못하리라 감히 예측합니다.
하지만 법국에게 안남을 쉽게 내주면, 일본은 필히 대청을 우습게 여기고 일을 도모하려 들 것입니다. 대청과 안남과 조선의 운명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니, 중당께서는 부디 깊이 사려해 주십시오.
두 개의 전보를 읽은 이홍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원세개가 젊은 탓인지 사사로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구나. 지금의 정세에서 완화군을 배제하면, 대체 누구로 교체할 수 있단 말인가?”
이홍장도 조선 조정의 행보에 의구심을 품지 않는 건 아니었으나, 이선의 말처럼 지금은 안남의 일이 시급했다.
프랑스와의 전쟁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이홍장이었다. 하지만 공친왕이 실각하고 강경파가 득세한 조정과 서태후의 강한 압박을 받게 된 후로는,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을 하기가 어려웠다.
지금은 법국과의 전쟁 문제가 더 시급하다. 하나 조선을 이용하여 일본을 견제해야 한다는 뜻은 변함이 없다. 조선 조정의 행보를 지켜보되, 일본이 불측한 일을 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라.
이홍장은 진수당에게 보내는 전문을 보낸 후, 천진 주재 일본 영사 하라 다카시(原敬)의 예방을 받았다.
의례적인 인사가 오고간 후, 하라가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제가 도쿄를 떠날 때, 이노우에 외무경의 각별한 내유가 있었습니다. 외무경은 말씀하시길, ‘세간에는 청불이 개전하게 되면, 일본은 프랑스와 연합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지만, 내 생각은 애당초부터 그렇지가 않다. 청국과 일본의 교제는 그같이 천박한 것이 아니므로, 만일 청불이 결렬하게 되더라도 프랑스와 연합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 말을 대신께 꼭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이홍장이 기뻐하며 답했다.
“귀국과 아국의 교제는 본시 그러합니다. 우리는 동양의 형제와 같으니, 필경 한 나라와도 같습니다. 귀공이 말하는 ‘나쁜 풍설’은 내 귀에 들어온 지 오래입니다. 지금 귀공의 말을 듣고 보니, 외무경의 생각과 나의 생각은 완전히 일치합니다. 나의 생각도 외무경과 똑같다는 것을 보고 해주길 바랍니다.”
“반드시 그렇게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분명 외무경께서도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일본, 도쿄, 태정관.
태정관은 일본의 최고 통치기관으로, 그중에서도 조슈-사쓰마 번벌 출신 핵심인사들이 정국을 좌지우지했다.
바로 참의 겸 궁내경 이토 히로부미, 참의 겸 외무경 이노우에 가오루, 참의 겸 내무경 야마가타 아리토모, 참의 겸 대장경(재무장관) 마쓰가타 마사요시였다.
이들은 한자리에 모여 조선에서 온 다케조에 공사의 전문을 읽으며 깊이 생각 중이었다.
현재 조선의 정국을 주도하는 대원군과 완화군은 청국이나 러시아, 심지어 독일과 가까운 데 비하여, 일본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본관은 개화당이라 지칭되는 김옥균, 박영효 등과 접촉하여 일본의 새로운 정책에 대해 알리는 데 주력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 우호적이던 김, 박 등의 생각도 예전과 다릅니다. 이들은 완화군의 영향력 아래에 있습니다.
이에 본관은 현시점에서 조선에 대한 정략을 두 가지로 제안하니, 본국의 훈령을 바랍니다.
갑안은 조선의 개화당과 손잡고 적극적으로 정책을 펴는 것입니다. 이들은 어일신(御一新, 메이지유신)과 같은 조선의 급진적 변화를 원합니다. 개화당의 정책적 방향성은 청보다 일본에 가깝습니다. 이들이 정권을 주도해서 개명을 이루도록 도와주면 자연히 일본과 가까워지리라 생각합니다.
을안은 조선을 지금 그대로 방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국력을 소모하는 일은 없겠으나,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청국 혹은 러시아에 모든 주도권을 내줄까 우려가 됩니다.
심사숙고하던 끝에, 이토가 먼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