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134
– 134화에 계속 –
134화 제중원
내무독판 홍영식이 자객에게 피습당했다는 소식이 이선과 개화당에 전해졌다.
이미 늦은 밤이었지만, 이선은 속히 미국 공사관에 사람을 보냈다.
“닥터 알렌을 즉시 재동 홍영식 대감의 저택으로 모셔 오게. 지금 당장!”
“알겠습니다.”
미국 공사관의 공의(公醫) 알렌(Horace Allen)은 현재 한양에서 복잡한 외과수술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의사였다.
이선은 장무영을 대동하고 즉시 재동 홍영식의 저택으로 향했다. 소식을 듣고 박영효, 민영익, 서광범, 서재필 등이 몰려들었다.
“내무독판의 용태는 어떻소?”
이선의 물음에 김옥균이 어두운 표정으로 답했다.
“중상입니다. 상처가 여러 군데고, 피를 많이 흘렸습니다. 일단 지혈은 해두었습니다만…….”
“곧 미국인 의사가 당도할 터이니 그에게 맡기도록 합시다.”
이선은 박영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박영효는 신생 경찰기관, 경무청의 총수였다.
“경무사 대감.”
“예, 군 대감.”
“여긴 우리에게 맡기고 속히 순검을 풀어 자객 일당을 체포하도록 하십시오.
“예! 내무독판을 저리 만든 자들을 절대 놓치지 않겠습니다.”
박영효가 다짐하듯이 홍영식 저택에서 물러나고, 엇갈리듯이 알렌이 보조를 대동하고 들어왔다.
“닥터 알렌! 어서 오십시오. 늦은 밤에 와줘서 고맙습니다.”
“환자가 있으면 와야지요. 군 대감께서 부르시면 더더욱.”
20대 청년 의사 알렌이 흔쾌히 답했다. 안련(安連)이란 조선 이름을 갖고 있는 알렌은 조선어도 제법 할 줄 알았다.
작년 9월에 입국한 알렌은 이선에게 서양 의학을 배울 교육기관과 근대식 병원 창설을 제안했고, 누구보다 그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던 이선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환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어서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김옥균의 안내를 받아 알렌은 홍영식의 상태를 보았다.
“어떻습니까?”
“상처가 많고 깊긴 하지만, 즉시 수술하면 살릴 수 있습니다.”
알렌의 자신감에 좌중이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자, 수술 집도를 이해 다들 방에서 나갑시다.”
“수술 과정을 참관하면 안 되겠습니까?”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처음 보는 서양식 외과 수술을 궁금해했지만, 세균의 존재를 아는 이선은 잡다한 사람들이 수술 장소에 있는 걸 막아야 했다.
세균 감염이란 개념 자체가 1880년대에 최신 이론이었으므로, 아직 수술복 자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의사들은 양복 위에 피가 튀기는 걸 방지하기 위해 앞치마를 입는 정도였다.
“안련 선생이 수술에 집중하도록 다른 사람들은 나가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야 내무독판을 살릴 수있지요.”
이선의 설득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방이 좀 어둡군요. 수술에 실수가 있으면 안 되니, 집 안에 있는 불이란 불은 다 끌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이래서 전등이 필요한데. 민간에 조급히 보급할 이유가 또 늘어났군.’
촛불을 방 곳곳에 켜두었음에도, 알렌은 부족함을 느꼈다.
“제 가까이에서 계속 촛불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럼 내가 하겠습니다.”
이선이 나서자 군무참의 서재필이 자원했다.
“군 대감과 같은 귀한 분께서 그런 일을 어찌하십니까?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피를 많이 봐도 괜찮은 사람이 해주십시오.”
알렌의 말에 서재필이 다시 나섰다. 서재필은 그 누구보다 수술에 강한 관심을 느끼고 있었다.
“저는 군사교육을 받은 군인입니다. 제가 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선은 자신의 신경이 그리 강하지 않다는 걸 인지하고, 서재필에게 맡겼다.
“서 참의, 그럼 일단 옷부터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도록 하시오. 손도 깨끗이 씻고.”
서재필은 세균이란 개념을 아직 몰랐지만, 이선의 말을 순순히 따랐다.
알렌과 수술보조, 서재필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방에서 나갔다. 이들은 초조하게 수술 결과를 기다렸다.
“살릴 수 있을까요?”
기존의 조선 의술로는, 이 정도로 깊은 자상(刺傷)을 입은 이가 살아남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믿어 봅시다. 의술의 힘을.”
이선은 사람들을 다독이면서도, 초조해하는 민영익을 보자 상당한 역설을 느꼈다.
‘실제 역사에선 갑신정변에서 개화당이 휘두른 칼에 민영익이 중상을 입고, 알렌이 민영익을 살려내지.’
알렌은 민영익을 살려낸 대가로 거액의 은사금을 받고, 병원 설립을 허락받았다. 바로 최초의 근대적 병원인 제중원(濟衆院)이었다.
‘그리고 제중원이 설립된 자리는 바로 이 홍영식의 저택이고.’
갑신정변이 실패하고, 역적으로 죽은 홍영식의 가산은 몰수되었다. 임금이 홍영식의 옛집을 제중원 부지로 하사하면서, 최초의 근대 병원이 이 자리에 설립된 것이었다.
‘그런데 알렌이 홍영식을 수술하다니, 참 역사의 변화란 아이러니하군.’
장시간의 수술 후, 알렌이 피곤한 표정으로 방에서 나왔다.
“어찌 되었습니까?”
“고비는 넘겼습니다. 부상이 깊었으니 의식을 찾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할 겁니다. 당분간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알렌의 말에 사람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오오!”
“참으로 하늘이 도우셨습니다.”
“안련 선생이 살려낸 것이지요. 참으로 신이 내린 솜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옆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수술 과정을 지켜보던 서재필이 찬사를 보냈다.
“서 참의도 몇 시간 동안 계속 촛불을 들고 있느라 고생했지요.”
서재필의 손에는 촛농이 가득했다. 혹시나 촛농이 환자에게 떨어질까 봐 전부 손으로 막은 것이었다.
“아닙니다.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서양의학은 참으로 놀랍군요. 이 나라에 필요한 건 역시 개화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됐습니다.”
서재필은 일본에 유학하며 군사학을 배웠으나, 미국에서 의학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노고가 많았습니다, 닥터 알렌. 내무독판이 수술로 살아난다면, 서양 의학의 필요성이 조선 전체에 알려질 것입니다.”
“예, 저도 그리되길 바랍니다.”
하루라도 빨리 근대 의학과 위생의 개념을 보급하고 싶은 이선으로선, 위기가 만들어낸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
알렌의 장담대로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홍영식은 의식을 찾고 요양에 들어갔다.
이선은 김옥균, 박영효와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
“범인은 잡았습니까?”
이선의 물음에 박영효가 고개를 조아렸다.
“송구합니다. 아직 잡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경무청의 순검을 총동원하고 있으니, 반드시 잡아낼 것입니다.”
“쉽게 잡히지 않을 겁니다. 단순히 의뢰를 받은 검계는 아닌 듯합니다. 저를 노렸던 자들도 배후를 밝히느니 죽음을 택했습니다. 마치 충의계처럼 확고한 목표의식이 있는 듯했습니다.”
“맞아. 충의계는 고균이 유사시 정변을 일으킬 목적으로 조직했었지.”
이선의 말에 김옥균이 황망해 했다.
“아, 충의계가 꼭 그런 건 아니고…….”
“아니, 지나간 일을 탓하자는 게 아니오. 저들이 단순한 검계가 아니고 충의계와 같은 조직이라면,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 아니겠소? 하필 내무독판과 탁지독판을 노렸다는 게 상징적이지.”
김옥균과 홍영식은 개화당 정부에서도 핵심인사였고, 탁지부와 내무부가 추진해는 재정개혁과 행정개혁이 기득권을 가진 이들의 원성을 자아내고 있었다.
‘대담한 놈들이군.’
천주교 성소 습격 사건은 기껏해야 향반들의 난동이었지만, 이번엔 정부 대신을 대상으로 한 정치적 테러였다.
“그렇습니다. 수구파들이 소위 오적이라 부르는 이들을 목표로 했군요.”
좌의정 김홍집, 내무독판 홍영식, 탁지독판 김옥균, 농상공독판 어윤중, 경무사 박영효는 수구파들에게 ‘오적’이라 불리며 지탄의 대상이었다.
“시일이 지나면서 계엄이 느슨해졌는데, 당분간 계엄을 강화하면서 경호를 철저히 합시다. 친위대와 경무청이 도성 치안을 확실히 확보해야 할 것입니다.”
친위대장은 이선이고, 경무사는 박영효니 도성의 무력은 모두 이들에게 있었다. 그렇기에 이들은 특히 경호가 엄중했다.
“자객들이 경호가 취약하면서도,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내무독판과 탁지독판을 노렸다는 건, 조정 내부 사정에 대해 알고 있다는 의미라 생각합니다.
“분명히 결탁한 자가 있겠지. 발본색원하여 뿌리 뽑도록 합시다. 경무사에게 맡기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며칠 후, 홍영식의 용태가 좀 나아졌다는 말을 들은 이선은 문병을 갔다.
“내무독판, 환후는 좀 어떻습니까?”
“많이 좋아졌습니다.”
“다행이로군요.”
“꼼짝없이 죽은 줄 알았는데, 안련 선생이 살렸다고 들었습니다. 새삼 서양의학의 수준이 대단하다는 걸 느낍니다.”
“그러니 더욱 앞으로 보급해야지요.”
“내무부로 복직하면 병원부터 늘리도록 해야겠습니다, 하하.”
벌써부터 일 욕심을 내는 홍영식을 보고 이선이 웃었다.
“당분간은 푹 쉬어도 됩니다. 건강이 최우선 아니겠습니까.”
“쉴 틈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루라도 빨리 복직해야지요.”
잠시 후, 하인이 소식을 전했다.
“경무사 대감 오셨습니다.”
“안으로 모시게.”
박영효는 이선과 홍영식에게 인사하고 안부를 전하자마자, 부리나케 말했다.
“배후를 짐작할 단서를 찾았습니다.”
“무엇입니까?”
“탁지독판을 습격한 시체를 조사했는데, 양화진의 청상(淸商)과 관계있는 자들입니다.”
뜻밖의 말에 이선과 홍영식이 놀랐다.
“청상? 그럼 배후에 청이 있단 말인가?”
“저는 원세개가 배후라고 생각합니다. 즉시 조사에 착수하겠습니다.”
박영효가 단정 지어서 말하자, 오히려 홍영식이 몸을 일으키며 말렸다.
“금릉위 대감, 만약 청나라가 얽혀있다면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금석, 원세개와 청의 간섭을 몰아낼 절호의 기회입니다. 어찌 말립니까?”
“확실한 증거도 없이 나서면 역공의 여지가 있습니다. 원세개가 배후라는 걸 인정하겠습니까?”
이선도 홍영식에게 동의를 표했다.
“원세개는 어떻게든 분란을 일으키려고 작정한 작자니, 차라리 지금은 패를 숨기고 있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군 대감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배후가 원세개가 맞다면, 이번 피습은 그저 도발에 불과합니다. 분명 원세개와 결탁하여 나라를 엎으려는 자들이 있을 겁니다. 이들을 은밀히 조사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순간에 밝혀내야 합니다.”
‘이만한 패를 한 번에 소모할 수는 없지.’
이선은 적당한 때가 오면 단숨에 역공할 생각이었다. 그 생각을 박영효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은밀히 조사하여 적당(敵黨)의 무리를 발본색원하겠습니다.”
박영효가 물러난 후, 알렌이 용태를 살피기 위해 왕진을 왔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래도 당분간은 요양에 힘쓰십시오.”
“고맙습니다. 저는 안련 선생과 서양의학에 목숨 빚을 졌습니다. 이에 보은하고 싶습니다.”
이선이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복직해서 내무부에서 의학 보급에 힘쓰면 그게 바로 보은 아니겠습니까.”
“그건 관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제 개인이 보답하고 싶은 바가 있습니다.”
홍영식은 결심한 듯,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새로 설립될 병원과 의학교에 제 재산을 기부하고 싶습니다. 제가 현금은 별로 없으니, 가진 토지와 저택을 모두 드리지요. 병원과 교육 사업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알렌이 놀라워했다.
“치료비로는 너무 과합니다. 그리되면 대감은 어디 가시려고…….”
“부친의 댁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예전처럼 아버님을 모시면서 살면 되지요.”
홍영식의 아버지, 홍순목은 영의정에서 물러나 은퇴하여 북촌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내무독판의 뜻이 그러하다면, 선생도 받아들이도록 하시지요.”
이선의 권유에 알렌도 기쁘게 받아들였다. 홍영식의 재동 저택이라면 넓고 위치도 좋아 병원으로 세우기에 좋았다.
“감사합니다. 대감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저야말로 선생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하여, 조선 최초의 서양식 의원은 국립 병원의 형태로, 홍영식의 자택을 부지로 받았다. 이선은 내무부 예산을 병원에 넉넉히 할애하였다.
중상을 입고 다 죽어가던 홍영식을 살려낸 근대 의학의 힘에, 임금 이하 조정 신료들도 감탄했다.
“참으로 신묘한 의술이다. 많은 백성을 구제할 수 있겠구나. 이에 제중원이라는 이름을 하사한다.”
제중원(濟衆院). 바로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였다.
1885년 4월 5일. 이날은 때마침 기독교의 부활절이었다. 제중원은 부활절을 기해 개소했다.
“제중원은 앞으로 수많은 사람을 구제할, 조선을 대표할 병원이 될 것입니다. 조선의 새로운 의학은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개소식에 참석한 이선은 짤막하게 축사를 했다.
초대 원장으로는 미국 공사관 공의 알렌, 그를 도울 부원장에는 지석영이 임명되었다.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일찌감치 종두법을 보급해 서양의학의 우수성을 주장하던 지석영은 제중원의 설립을 크게 기뻐했다.
“제중원은 병원뿐만 아니라, 앞으로 의학교를 열어 조선인 의사를 육성할 것입니다.”
1885년 가을 학기를 목표로, 의학교 설립 준비도 한창이었다.
제중원 의학교에서는 의학뿐만 아니라,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와 각종 자연과학을 가르칠 예정이었다.
바로 얼마 전에 입국한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Horace Underwood)와 아펜젤러(Henry Appenzeller)가 의학교의 교사를 맡기로 했다.
20대 청년 언더우드는 본래 신학을 공부했지만, 조선 선교를 위하여 일부러 의학을 배울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주님의 뜻을 받들어, 조선 백성을 위해 제 평생을 바치고 싶습니다.”
이선은 종교가 없었지만,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의 진심을 믿고 있었다.
‘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진심으로 조선을 위해 헌신한 이들이지.’
“제중원이라는 이름처럼, 조선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헌신합시다.”
이선은 제중원 간판을 보며 희망이 싹 돋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