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142
– 142화에 계속 –
142화 국경 문제
1886년 여름. 조선의 근대화가 시작되어 한창 진행하는 중에, 미뤄 두었던 조선과 러시아의 육로 통상 조약에 관해 논의를 전개하였다.
러시아는 국경을 맞댄 조선과 이 조약을 서둘러 체결하고 싶어 했지만, 청과 러시아 사이에 국경 분쟁이 지속하면서 미뤄졌다.
1860년 북경이 영불 연합군에 함락되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러시아와 체결한 조약으로 우수리강 동쪽, 즉 연해주가 러시아에 할양되었다. 이로 인해 중국은 태평양에 진출할 길이 막혀버렸다.
청 조정은 이를 두고두고 아쉬워했고, 1880년대 들어 러시아에 두만강 하류로 이어지는 해안 일부를 반환해 달라고 요구했다.
1885년, 청불전쟁이 끝난 후에 청은 본격적으로 러시아에 국경 재조정을 요청했다.
당연히 러시아가 반환에 응할 리가 없으므로, 양국 간에 국경위원회가 열렸지만,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긴장 관계가 지속하였다.
두만강 국경 문제는 조선과 청 사이에도 있었다.
그동안 만주는 청조의 발상지이자 성지로 받들어져, 봉금령(封禁令)으로 만주인 외의 출입을 금지했다. 자연히 그 땅은 오랫동안 황무지로 남아있었다.
러시아의 남하에 위협을 느낀 청조가 1880년에 봉금령이 해제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조선 국경 지대인 소위 ‘간도’에는 중국인이 거의 미치지 않았다.
간도의 황야를 개척하여 점유한 월간민은 조선의 통치를 받길 원했다.
“우리는 조선 사람으로, 조선의 통치를 받길 바랍니다. 청국 마적과 지주의 횡포로부터 우리를 구해 주십시오.”
고려대대의 활약으로 연해주 일대에서 마적은 소멸하였지만, 간도 일대에는 여전히 마적이 횡행하고 있었다. 청조의 행정력 자체가 잘 미치지 못하는 곳이었다.
서북경략사를 지낸 어윤중은 간도 백성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였다.
어윤중은 ‘서쪽은 압록강으로, 동쪽은 토문강으로서 분계선을 삼는다’는 백두산정계비의 구절에 따라 두만강(豆滿江)과 토문강(土門江)은 다르다는 논리를 펼쳤고, 국경 재조정을 요청했다.
천진 조약이 체결된 이후, 1885년부터 국경 문제를 놓고 조청 간에 회담이 시작되었다.
길림 장군과 조선 대표단 어윤중과 이중하는 공동으로 두만강에서 백두산에 이르기까지 현지 시찰에 나섰다.
어윤중은 토문강이 해란강(海蘭江)이며, 간도에 거주하는 조선 월간민은 조선의 관할 하에 두자고 제안했다.
“아니, 그러니까 거긴 조선 영토가 아니란 말이오. 엄연한 대청의 영토지. 토문이 바로 두만이요.”
“토문과 두만은 다릅니다. 조종(祖宗)이 물려주신 우리 영토는 단 한 뼘도 내줄 수 없습니다.”
당연히 청은 반발했고, ‘속방’이 ‘상국’을 상대로 땅을 빼앗으려 든다는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국, 1885년에 진행된 국경 회담은 결렬되었다.
“농상공독판의 말이 맞습니다. 간도를 조선에서 관할해야 합니다.”
김옥균, 박영효 등 급진 개화파는 강경하게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선 역시 간도가 법적으로 누구냐는 차치하더라도, 북방 영토의 확장을 은근히 바라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무력으로 청을 이길 능력이 되지 못하는데, 이 문제로 지나치게 자극할 필요는 없다.’
1886년, 이선은 새로운 제안을 했다.
“두만강 북쪽이 누구의 영토냐는 일단 차치하고, 거기 사는 주민들의 안전을 고려해보지요. 두만강 북쪽에는 3만이 넘는 조선인이 넘어가 개척하여 거주 중입니다. 이들을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이선의 말에 원세개가 냉정하게 말했다.
“어쩌긴 뭐 어쩝니까. 불법으로 넘어갔으니 조선으로 송환해야지.”
“3만이나 되는 백성을 한순간에 다 몰아낼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타협책으로 이건 어떻겠습니까? 일단 국경 문제는 덮어 두고, 조선이 청국에 땅을 빌렸다고 하지요. 월간민을 조선 조정에서 보호하고 관할합니다. 월간민이 조선 조정에 세금을 납부하면, 절반을 길림 당국에 납부하도록 하는 겁니다.”
이선의 주장은 이른바 ‘차지안치론(借地安置論)’이었다. 영토의 법적 지배 대신, 주민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연해주에 살던 2만의 조선인들에게 아라사 황제 폐하께서는 상당한 자치권을 준 바가 있습니다. 바로 내가 그들을 지도했지요. 그 덕택에 아라사의 변경 방위와 발전에도 혁혁한 기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간도에서도 같은 길을 찾아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선이 연해주에서 이뤄진 차지안치론 사례를 언급하자, 원세개가 답했다.
“그 덕택에 완화군께서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요. 그래서 조선과 아라사의 관계가 두터워졌고.”
“바로 그렇습니다.”
“근데 그걸 중국에서 받아들이리라 생각합니까? 대청은 아라사와 다릅니다.”
‘아무래도 외교적 논리로는 안 되겠군. 사대 조공 관계를 따져볼까.’
“백두산에는 성조(聖祖, 강희제) 황제의 성지를 받아 세워진 비석이 있습니다. 바로 그 비석에 동쪽 국경을 토문이라 하였습니다. 성조 황제께옵서 조선을 갸륵하게 여기셨던 걸 잊을 수 없습니다.”
청조에서 가장 위대한 황제로 숭앙하는 강희제를 팔아 논리를 전개하니, 청조의 신하인 원세개가 강희제의 잘못이라고 대응하기가 궁색해졌다.
“중국은 대국입니다. 큰 나라답게 작은 나라를 상대로 은혜를 베풀고, 백성을 구휼하는 큰 뜻을 보이면 그게 바로 성천자(聖天子)의 덕이 아니겠습니까? 만백성이 성덕을 찬양할 것입니다.”
‘명분을 내주고 실리를 취한다. 이게 바로 사대 조공 관계에서 조공국의 유리한 점이지.’
“흠, 흠. 일단 조정에 보고하도록 하지요.”
월간민의 세금을 조선 관리가 대신 징수하여 중국에 넘겨주되, 일체 정령과 사법에 대해서는 조선이 통제합니다. 대신 그 영토는 대청이 관할하는 것입니다. 조선과 그 백성들을 위해 천자의 지극한 황은을 베풀면, 그들은 감복하여 충성할 것입니다.
원세개는 의외로 이선의 제안을 검토할 만하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이홍장은 단호한 답변을 보냈다.
그런 선례를 만들면, 언제 다른 나라도 요구하지 않겠는가? 아라사와의 국경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어찌 빌미를 만들겠는가? 이런 방법은 있을 수가 없다. 재론하지 말라.
기껏 조선에 ‘황은’을 한 번 베풀려고 하다가, 이홍장에게 꾸지람을 받았다고 생각한 원세개는 다시 강경책으로 돌아섰다.
“두만강 이북은 대청의 영토외다. 재론할 일이 아니니, 반박하고 싶으면 국경회담이나 다시 열도록 합시다.”
‘지금까지 청국의 입장을 배려해 러시아와 육로통상조약을 미뤘는데, 그렇게 나온다면 할 수 없지.’
이선은 조속히 육로 통상 조약을 맺자는 러시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원산과 블라디보스토크 간의 해상무역은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고, 실질적인 무역은 두만강 국경에서 육로로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는 국제조약에 맞게 법제화하자고 제안했다.
특히 인구가 희박한 남우수리 국경 지역은 고려인의 이주와 개간, 조선과의 무역으로 식량을 확보하고 있기에, 연해주 당국에는 사활이 걸린 일이었다. 육류를 선호하는 러시아에서 매년 조선에서 수입하는 소가 1만 마리에 달했다. 함경도 우시장은 러시아와 밀착되어 있었다.
양측 대표인 베베르와 이선은 회담에 돌입했다.
“1881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에 따라, 러시아와 청 국경에서 각 50베르스타(약 53킬로)는 관세가 적용되지 않는 자유 무역 지대입니다. 두만강의 자유항행권을 보장하고, 두만강을 따라 남우수리와 함경도 일대에도 같은 지대를 설정하면 어떨까요?”
“조선에서 자유 무역 지대는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청나라도 최혜국 대우를 요구해서, 청상들이 그쪽으로 몰려들 겁니다. 대신 두만강 하류 쪽의 국경도시를 새로운 개항장을 설정할 터이니, 그곳을 육로통상의 거점으로 삼지요.”
청이 같은 요구를 하리라는 건 러시아도 예상이 되는 바라, 베베르가 양보하기로 했다.
“연해주에 거주하는 고려인의 국적 문제는 어찌합니까? 러시아 정부는 이들을 러시아인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조선과 러시아 간에 육로통상조약이 체결되기 이전에 러시아로 이주한 모든 조선인을 러시아인으로 간주합니다.”
지금까지 조선 조정은 공식적으로 이들이 조선 국적이라고 주장했지만, 고려인들이 러시아에서 살기를 원하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선은 그 주장을 철회하기로 했다.
“좋습니다. 조선에 거주하는 러시아 국민과 러시아에 거주하는 조선 국민들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살고 조국으로 귀환할 권리를 가지도록 하지요.”
1886년 7월, 조선과 러시아 간에 육로 통상 조약(朝露陸路通商章程)이 체결되었다.
관세율도 조선의 주장대로 10%가 관철되었고, 두만강에 면한 경흥이 개항지로 설정되었다.
러시아 관리와 상인들은 두만강 국경을 넘어 육로로 한양으로 향할 수 있는 내지 통행권도 얻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연해주에 거주하는 고려인 2만여 명은 러시아 국적으로 인정되었고, 이들 모두에게 러시아 국민과 같은 토지 불하의 혜택을 약속했다.
이후에 러시아로 이주하려는 조선인은 정식으로 여권을 교부받아 최대 2년간의 임시 체류만을 허용하기로 했다.
양측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협상이었다.
“양국 간에 중대한 문제가 해결되어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저 역시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제 양국은 육로로도 결합하게 되었으니, 두 나라의 관계는 더욱 튼튼해질 것입니다.”
‘역시 청국보다 러시아를 상대하는 게 훨씬 편한 일이다.’
육로 통상 조약이 체결되고, 러시아 장교단이 한양으로 가는 길을 살피기 위해 선발대로 두만강을 넘어 경흥에 이르자, 경흥부사 이하 조선 관리들은 이들을 환대했다.
“어서 오십시오, 아라사의 귀빈들이 오신 걸 환영합니다. 조정에서 여러분을 성대히 환대하라 하셨습니다.”
“환대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러시아 장교단은 조선의 환대에 감격했다. 이들은 한양으로 가는 길마다 관리와 민간인들의 계속된 환대를 받았고, 러시아를 경계하는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조선에 대해 우호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역시 이선 공작이 조선을 다스리게 되니, 러시아에 우호적으로 대하는군요.”
“하하, 황제 폐하께서 인재를 바로 보신 거지요. 이선 공작이 조선을 다스리게 되어 참으로 잘된 일입니다.”
육로 통상 조약이 체결되자, 러시아의 기쁨과 달리 원세개는 분노를 표명했다.
“어찌 중국과는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아라사와 육로 통상 장정을 맺었습니까? 중국이 지금 아라사와 국경을 논의하고 있다는 걸 모릅니까?”
“이미 4년 전에 수호 통상 조약 체결 때부터 조속히 통상장정을 맺기로 한 걸, 바로 중국을 배려하여 지금까지 미뤄둔 겁니다. 양국 간의 육로 무역을 법제화하려면, 더 이상 아라사의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중국과는 국경 회담을 결렬시키면서, 아라사와는 조속히 통상장정을 맺다니. 이게 조선의 태도입니까?”
“아니, 국경회담과 통상장정은 엄연히 다르지요. 조선과 중국 간에는 이미 수륙무역장정이 체결되지않았습니까? 같은 걸 아라사와 맺은 겁니다.”
논리로 이선을 이길 수 없자, 원세개는 억지를 부렸다.
“완화군께서는 세간에 떠도는 대로 인아거청을 하려나 봅니다.”
인아거청(引俄拒淸). 러시아를 끌어들여 청을 견제한다. 조선이 대놓고 내세우는 정책은 아니지만, 은밀히 추진하는 정책인 건 맞았다.
‘아니, 그럼 니들도 러시아만큼 좀 대국적으로 나오든가. 대국이면 대국답게 정치도 대국적으로 해야지. 니들이 갈수록 졸렬하게 나오니까 나도 러시아를 끌어들이지 않을 수가 없잖아?’
이선은 굳이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대신 웃으면서 외교적인 언사를 내놓았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조선과 아라사는 외국이지만, 중국과는 한집안과도 같은 사이이거늘. 그러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늘 말만 번지르르하군요. 어디 앞으로도 뜻대로 되는지 봅시다.”
원세개는 이선을 노려보고 외무부를 나갔다. 이선은 그 뒷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매번 이런 식으로 상대하기도 피곤하구만. 아무래도 대책을 세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