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151
– 151화에 계속 –
151화 세 황제의 해
빌헬름이 알렉산드르 3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고 조속히 귀국하려는 데에는, 부황 프리드리히 3세의 병환과 관계가 있었다.
새로 즉위한 황제, 프리드리히 3세는 오랫동안 자신의 통치를 숙원했지만, 이는 이루지 못한 꿈이 되었다. 후두암이 새 황제를 쓰러트린 것이다.
프리드리히 3세의 병마는 회복하기 힘든 단계였고, 황태자 빌헬름의 즉위 가능성이 머지않았다.
이선은 가까운 미래에 강력한 제국의 황제가 될 빌헬름의 초대를 받아들이고, 베를린을 경유해 조선으로 귀국하기로 결정했다.
모처럼 러시아에 온 이선은 공식적인 업무 외에도, 사적인 면담을 했다.
특히 브라노벨의 노벨 남작과 석유 배당금과 무기 수입을 놓고 한참 대화를 나누었다.
공사다망하게 활동하던 이선은, 공사관을 찾아온 뜻밖의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마르가리타 얀코프스카라고 합니다. 혹시 저를 기억하시나요?”
이선은 반갑게 여인을 맞이했다. 4년 만의 재회였다. 4년 전, 소녀티를 벗어나지 못했던 마르가리타는 완연히 아름다운 숙녀로 성장해 있었다.
“물론, 기억하다마다! 정말 반갑네요. 그동안 잘 지냈나요?”
“네, 저야 잘 지냈지요. 공작님 소식은 간간이 신문을 통해서 접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서서 이야기할 게 아니라, 다과라도 하면서 이야기하지요.”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 출현에 공사관도 놀라워했다. 특히 김옥균이 싱글거렸다.
“이토록 아름다운 서양 여인이 군 대감을 기다리고 있었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이선이 정색하며 답했다.
“옛 친구요.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얀코프스키의 사촌 동생이오.”
고려대대의 기병대를 이끌던 미하우 얀코프스키는, 조선에 정식으로 군사고문단이 들어오자 은퇴했다. 이선은 감사의 뜻으로 명예 무관직과 함께 연해주에서 가까운 함경도 경흥에 토지를 하사했고, 얀코프스키는 이곳에 정착하여 목장을 개설했다.
품질 좋은 말과 소를 육성하여 조선 조정에 납품하고, 조선과 연해주를 잇는 무역을 이끌었다. 부와 명예를 모두 갖추게 된 얀코프스키는 조선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그래, 어떻게 지냈어요?”
“저는 예정대로 스몰니 여학원에 진학했고, 작년에 졸업 시험을 보고 대학 입학 자격을 얻었어요. 그리고 여성이 진학할 수 있는 페테르부르크 의대에 입학하게 됐어요.”
귀족 영애들이 다니는 스몰니 여학원을 졸업한 것도 여성으로는 드문 일인데, 대학 진학은 더 희귀한 일이었다.
대학 대부분은 여성의 진학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여환자는 여의사가 봐야 한다는 실용적인 이유로 인해 의대 진학은 개방하고 있었다.
“어린 날의 목표를 달성했네요. 정말로 축하할 일이군요.”
“공작님이야말로 목표를 달성했죠. 희망한 대로 조국의 자주독립과 개혁을 이끌게 됐으니.”
“다행히도 조선에는 새로운 시대가 왔습니다.”
이선의 기억에 마르가리타는 폴란드 독립을 꿈꾸는 애국자였다.
“러시아와 폴란드에는 험난한 시대일지 모르겠으나…….”
“이미 시작됐죠. 새 황제는 훨씬 엄격한 분이에요. 이제는 공적인 자리에서 폴란드어 사용도 금지하기 시작했어요.”
알렉산드르 3세의 반동 정책은 소수 민족에게 더욱 가혹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선제께서 그렇게 돌아가시면 안 되는 거였어요. 혁명은커녕 엄혹한 반동만 불러일으키고 말았으니.”
진보주의자들은 알렉산드르 2세 시절을 그리워했다. 이선은 혹시나 걱정되어 말했다.
“대학은 급진 서클이 많죠. 지금은 정치 활동을 하기에 적당한 시기가 아니에요. 당분간은 학업에만 집중하면 좋겠군요.”
이선의 염려에 마르가리타가 빙긋 웃었다.
“지금으로선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여념이 없어요. 장학생 될 성적은 안 돼서 학비 조달하는 것만으로도 바빠요.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가정교사로 일하고 있어요. 그러니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어디 있겠어요.”
이선은 저도 모르게 돕고 싶다는 감정이 생겼다.
“저런. 학비 부담이 있다면, 내가 좀 도와줄까요?”
“아니에요. 그런 실례를 끼칠 순 없죠.”
“실례랄 것까지야. 브라노벨의 배당금을 조금 쓰면 되는데.”
마르가리타는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거절했다.
“공작님의 호의는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이제 저도 성인인데,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제 손으로 노동과 학업을 해내고 싶어요.”
노동과 학업이라니, 귀족 여성으로는 쉽지 않은 길이었다. 이선은 마르가리타가 정말로 어른스러워졌다고 느껴졌다.
이선과 마르가리타는 한참 동안 환담을 나누었다. 비록 인종과 국적과 신분이 다르고, 4년 만에 만난 사이에 불과하지만, 조국애와 진보주의에 공감하는 두 남녀는 많은 공통점을 갖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한참을 즐겁게 이야기하던 마르가리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을 고했다.
“과외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이만 일어나 봐야겠네요. 이야기 정말로 즐거웠어요.”
“하하, 나야말로. 근데 이렇게 헤어지자니 아쉽군요. 나는 곧 페테르부르크를 떠나야 하는데.”
마르가리타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언젠가 또 재회의 기회가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믿고 싶네요.”
“그래요.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합시다. 그러다 보면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요.”
이선과 마르가리타는 재회를 약속하며 작별했다. 이선은 아쉬운 듯 떠나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았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지는데, 김옥균이 침묵을 깼다.
“왜 군 대감께서 스물이 넘었는데도 여태 결혼을 미루고 계시는지 알겠습니다.”
이선이 눈초리를 흘기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아니, 사내와 여인이 연모하는 게 어찌 쓸데없는 소리입니까? 조선에서야 어렵겠지만, 서양에서는 할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특히 프랑스는 남녀상열지사가 자유롭더군요. 저도 파리에 와서…….”
풍류남아 김옥균이 파리에서 어떤 프랑스 여인과 연분이 났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하지만 유부남과 유부녀의 일시적인 유희에 불과했다.
“그런 게 아니라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이선은 연애건 결혼이건 쉽게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결혼 압력이 들어왔지만, 갑신경장 이후 조혼을 금지한 조항을 들어 회피해왔다.
하지만 마침내 스물이 넘자 압력은 더 강해졌다. 마음만 먹으면 조선 최고의 명문가 여식과 결혼할 수 있었지만, 이선은 진심으로 내키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서로에게 비극이야.’
조선에서 가장 자유롭고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이선과, 유교적 부녀자 교육을 받은 19세기 조선 여성과의 결합은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전통적인 ‘내조’는 잘하겠지만, 그뿐이었다.
‘그렇게 결혼을 해서 애 낳고 장식처럼 두는 건 미안한 일이지.’
일단 결혼하고 마음에 드는 여자를 후실로 들이면 된다는 제안도 받았지만, 축첩을 전근대의 악습으로 여기고 폐기하려는 이선이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연애를 하기에는, 왕족이자 고관으로서의 신분이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서양 왕족들처럼 왕가 간의 국제결혼을 추진하기에는, 동양에는 아직 그럴 풍토가 자리 잡지 않았다.
‘나도 어찌할지 모르겠다.’
결국, 이선은 회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이성보다 이상을 다룰 시기였다.
“됐으니까, 일이나 합시다. 할 일이 태산이오. 빨리 유럽의 일을 마무리하고, 귀국할 것이오.”
이선은 김옥균이 아니라, 자신에게 다그치듯이 말했다.
이선과 조선 사절단은 페테르부르크를 떠나 베를린에 도착했다.
4년 전에 왔을 때와 달리, 베를린은 무거운 분위기였다.
빌헬름 1세의 서거에 이어, 프리드리히 3세의 병세도 위중한 탓이었다.
프리드리히 3세는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재위 99일만인 6월 15일에 서거했다. ‘독일 자유주의의 희망’이라 불리는 황제의 안타까울 정도로 빠른 죽음이었다.
1888년에 두 명의 황제가 잇달아 서거하고 세 번째 황제가 즉위하게 되니, 독일에서는 이 해를 이른바 ‘세 황제의 해(Dreikaiserjahr)’로 불리게 되었다.
이선과 조선 사절단은 예정에 없었던 프리드리히 3세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황제 폐하의 붕어에 마음에서 우러나온 깊은 조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이선은 황태자 빌헬름, 아니 곧 즉위할 카이저 빌헬름에게 조의를 표했다.
“고맙소. 머나먼 조선에서 왕자께서 이리 와주시니, 돌아가신 황제 폐하께서도 기뻐하실 것이오.”
빌헬름은 침착했다. 추측하기는 어렵지만, 어쩌면 별다른 애정이 없었던 아버지를 잃은 슬픔보다도,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는 기쁨이 더 클지도 몰랐다.
“당분간은 내가 좀 바빠서 왕자를 따로 응대할 시간이 없소. 베를린에서 잠시 머무르며 시찰을 권유하리다. 일이 마무리되면 내가 왕자를 부르겠소.”
“비통한 일을 겪어 경황이 없으신데도 이렇게 후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선이 베를린에 온 목적은 단순히 빌헬름과의 친분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다. 1890년으로 예정된 국민개병과 국민교육 시행을 참고하기 위함이었다.
이선을 따라온 김옥균은 그동안 조사해온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사례를 비교 분석하여 보고했다.
“프랑스의 국민교육과 국민개병은 대혁명의 유산입니다. 프로이센 또한 나폴레옹 전쟁의 유산이지요. 둘 다 프랑스가 원조이지만, 군주제 국가인 조선에서는 현실적으로 프로이센 사례가 좀 더 참조할만 합니다.”
김옥균은 진심으로 ‘아시아의 프랑스’를 열망했지만, 군주제를 타도하고 혁명으로 탄생한 프랑스 공화국을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었다.
“동의하오. 조선은 모병제에서 징병제로 전환할 예정이니, 나도 새 군사고문단은 독일에서 데려오고 싶소.”
1887년 말, 고든과 영국 군사고문단의 계약이 만료되었다.
이선은 재계약을 제의했으나, 고든은 정중히 고사했다. 영국 정부가 조선의 중립을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군사고문단의 철수를 명했기 때문이었다.
‘말은 그래도, 내가 통상조약 재협정을 반대하고 거문도 점령도 막았으니 마음에 안 든다 이거지.’
이윽고 고든은 중장으로 진급하고, 런던의 육군부로 발령이 났다.
이선은 근대적 군대의 기틀을 마련한 고든에게 감사를 표하고, 종1품의 명예직과 은사금을 내렸다.
“감사하오나 저는 조선군의 근대화에 이바지했다는 명예만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고든은 명예직만 받아들이고, 은사금은 조선의 군비에 보태라고 고사했다.
고든 본인은 모르는 일이지만, 그 자신에게도 조선행은 영예로운 일이었다. 역사대로라면 그는 이미 수단에서 죽었어야 할 운명이었다.
청국, 이집트에 이어 조선군의 근대화에 기여한 고든은 조선을 떠나 귀국길에 올랐다.
이선은 임시로 연무공원 교장 메릿에게 군사고문단의 역할을 맡겼지만, 독일에서 군사고문단을 초빙하겠다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
모병제에서 징병제로의 전환을 구상하는 이선에게, 영미식보다는 독일식 군제가 필요했다.
비스마르크는 여전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이선은 카이저에게 직접 접근하기로 했다.
1888년 7월, 포츠담 신궁전. 새 황제 빌헬름 2세의 초대를 받은 이선은 포츠담으로 향했다.
“조선국 왕자 이선이 삼가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근위대 대령의 제복을 입은 빌헬름이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시오. 짐이 불러놓고선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아닙니다. 덕분에 차분히 독일의 군제와 교육을 살필 수 있었습니다.”
“그래, 직접 살펴보니 어떻소?”
“독일군의 강력함은 듣던 대로 천하제일이요, 교육 또한 따라올 나라가 없습니다. 세기의 발전은 모두 독일에서 비롯되고, 독일이 세계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그리 봐주니 기쁘구려.”
“그 어떤 나라가 독일에 비견되겠습니까? 영국? 프랑스? 러시아? 어디도 비견될 수 없습니다. 저는 폐하께서 다스리는 나라가 진심으로 부럽습니다.”
이선의 찬사에 빌헬름은 유쾌했다. 강한 자부심과 함께 영국에 대한 묘한 열등감을 갖고있는 빌헬름에게, 이선의 말은 간지러운 곳만 긁어주었다.
“조선은 진심으로 독일을 본받고 싶습니다. 폐하께서 그 길을 일러주신다면, 조선은 따르겠습니다.”
겸손하면서도 거듭 찬탄을 표하는 이선의 연기였다. 빌헬름은 진정 만족스러웠다. 빌헬름은 한껏 허세를 부리며 말했다.
“독일의 강력함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군대로부터 비롯되오. 조선에 가장 화급한 일은 강력한 군대를 양성하는 것이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독일군을 모범으로 삼아 프로이센식 사관학교와 참모본부를 개설하고, 독일식 국민개병제를 시행하고 싶습니다.”
“좋은 생각이오. 내가 알기로 일본도 그렇게 하고 있소. 역시 왕자는 식견이 뛰어나군.”
“조선은 일본에 뒤질 수 없습니다. 하온데 독일에서는 일본에 군사고문단은 파견하면서도, 조선에는 보내길 꺼리고 있습니다.”
“아니, 어째서?”
“비스마르크 재상께서 답변하시길, 독일은 조선의 중립을 제안한 당사국이니, 군사고문단을 파견하는 건 주변국에서 이해관계가 상충한다고 지적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빌헬름이 순간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대체 그게 무슨 상관인가? 왜 독일이 그런 것까지 눈치를 봐야 한단 말인가? 재상께서는 정말 너무 염려가 많으시군.”
패기 넘치는 빌헬름은 비스마르크의 조심스러운 정책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조선에 군사고문단을 파견하는 사소한 일조차도 주변국의 눈치를 본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짐은 개의치 않소. 왕자가 말했다시피 일본에 군사고문단을 파견해서 성과를 거뒀는데, 조선에 못 보낼 이유가 없소. 참모본부에 명해 전문가를 물색해 보라 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