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159
– 159화에 계속 –
159화 암살 기도
방문 사흘 차, 경운궁 근처 근위대 훈련장에서 대대적인 관병식(觀兵式)이 열렸다. 임금과 세자, 이선과 조선 관료들, 러시아 황태자와 대표단, 각국 외교관, 군사고문관 힌덴부르크 이하 독일 장교단이 참관했다.
펑! 펑!
21문의 예포가 발포되는 것을 시작으로 근위 1연대 1대대가 분열식을 거행하였다.
조선군 최정예인 근위대의 보무당당한 행진에, 이선은 공공연히 만족감을 표했다.
“부대의 숙련도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황태자 또한 동의를 표했다.
“음, 규모는 작지만 좋은 군대군요. 정예라고 할 수 있소.”
이윽고, 특별한 여흥거리가 준비되었다. 조선의 전통 무술을 선보이는 자리가 있었다.
“조선은 본래 활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많은 신궁을 배출했습니다.”
특별히 선발된 근위대원들이 철릭을 입고 말을 타며 활을 쏘는데 백발백중으로 명중했다.
“명중이오!”
“이야, 이거 대단하구먼.”
황태자 이하 서양인들은 조선의 궁술에 감탄했다.
과거의 조선군과 달리 신식 군대는 이제 더 궁술을 중시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활 솜씨를 높이 평가하는 문화는 남아 있었다. 특히 말을 달리며 쏘는 기사(騎射)는 가장 어려운 기술이었다.
하지만 근대식 군제로 변화한 현재, 전통적인 무술은 이제 의전용으로 쓰였다. 대포와 기관총 앞에서, 창과 활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방포!”
타다다다당!
근위대원들이 기관총을 발사했다. 놀라울 정도의 연사력에 좌중이 놀라워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개틀링 건이 아니라, 영국에서 개발된 맥심(Maxim) 기관총이었다. 처음 개발된 시기가 1884년이고, 영국군에 처음 납품된 때가 1886년이었다. 아시아에 처음 등장한 건 불과 1889년의 일이니, 조선은 가장 빠르게 도입한 나라 중 하나였다. 군무독판 이선이 신속히 맥심과 도입 계약을 체결한 덕이었다.
“허어, 앞으로 전쟁의 양상이 바뀌겠구만.”
맥심 기관총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서양인들도 놀라워하는데, 처음 보는 청국이나 일본 무관들은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본은 기관총 수입을 검토하는 단계였고, 청국은 도입 계획 자체가 없었다.
‘만약 조선을 침공하면, 무수히 많은 시체의 산을 쌓아야 한다는 걸 똑똑히 보여주지.’
조선은 청국이나 일본과 전면전을 치를 능력은 없었지만, 국토방위에 있어서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만약 청이나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다면, 무수히 많은 희생과 출혈을 강요할 계획이었다.
관병식은 이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이선은 조선이 러시아와 친밀하다는 것만 강조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조선 자체의 무력이었다.
“관병식은 잘 봤네. 좋은 군대야. 특히 무기의 질은 서양 군대와 비견할 만한데. 양성하느라 고생 좀 했겠군.”
관병식이 끝나고, 황태자의 말에 이선이 쓴웃음을 지었다.
“바로 봤어. 들어가는 노력과 비용이 엄청나다네. 국방비에 쏟는 돈이 엄청나지.”
“그렇게까지 하면서 군대를 양성하는 이유가 뭔가? 당장 전쟁이 날 우려도 없는데. 조선은 중립을 보장받았고, 주변국이 모두 동의하지 않나.”
“무력이 없는 비무장 중립은 이름뿐이라는 걸 알고 있네. 조선을 속국으로 여기는 청국이나, 조선을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여기는 일본을 생각하면 대비하지 않을 수가 없네.”
“일본이 조선을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여긴다고? 그럼 그다음은 어디란 말인가?”
“만주, 더 나아가 극동 러시아지.”
니콜라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일본 따위가 감히 러시아 제국에 맞선다고! 자네, 일본을 싫어하는 건 알지만 과장이 너무 심하군.”
하지만 이선은 진지했다.
“과장이 아닐세. 일본은 조선과 만주를 노리고, 청국과 러시아를 가상적국으로 겨냥해 군비를 증대하고 있는 걸세. 물론 일본 전부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아니야. 일본은 대륙 침략을 추구하는 파벌이 있어. 군부의 대표이자 현 총리인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조슈 파벌이 바로 그렇지.”
이선은 일본 정세에 대해 한참 설명했다. 니콜라이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자네 조언은 고맙네.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 우려할 일은 아닌 것 같군.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완공되면, 유럽과 아시아가 빠르게 연결되지. 일본은 감히 러시아에 맞설 생각조차 하지 못할 걸세.”
“바로 그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일본이 두려워하네. 일본 내에서는 횡단철도 부설이 완료되면, 만주와 조선이 러시아의 지배하에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있어. 그다음은 일본이라는 거지.”
“그럴 리가 있나? 내가 바로 시베리아 횡단철도 부설 위원장일세. 철도의 목적은 주변국을 침략하기 위함이 아니야. 유럽과 시베리아,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게 목표지.”
“일본은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지. 일본은 공로증(恐露症)이라고 부를 정도로 러시아에 대한 공포가 상당해. 그리고 공포는 증오를 만들지. 횡단철도 부설이 완료되기 전에 러시아를 쳐야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네.”
“가소롭군! 일본이 만약 그런 망상을 품고 있다면, 러시아의 힘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거야. 이번에 내가 그걸 보여 주지.”
니콜라이는 자신만만했다. 애초에 대제국의 후계자인 그에게, 동쪽 끝에 있는 섬나라 일본은 진지한 경쟁자가 아니었다.
관병식 이후, 니콜라이는 베베르와 조선 문제에 관해 논했다. 결론은 현상 유지였다. 니콜라이는 현지에 오래 머물고 있는 베베르의 판단을 존중했다.
러시아 황태자의 조선 방문 일정은 5일 만에 공식 종료되었다. 일본 국빈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임금은 경운궁에서 다시 성대한 환송연을 열어 황태자 일행을 극진히 대우했다.
이선은 경인선 특별열차를 타고 인천까지 동행했다. 아니, 일본까지 함께할 예정으로 탑승했다.
“황태자 전하, 본인도 일본 방문에 동행할 수 있겠습니까?”
황태자가 떠나기 전날 밤, 이선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니콜라이가 유쾌하게 받았다.
“나야 환영이네만, 국무를 맡고 있는데 괜찮겠나?”
“그동안 휴양이 없었으니, 이번 기회에 잠시 쉬었으면 해서 말이야.”
“하하! 하긴, 자네는 어릴 적부터 너무 일만 해 왔어. 쉴 때가 되었지. 우리랑 같이 가세. 일본에서도 엄청난 환대를 받을 수 있을 거야.”
“고맙네. 오래간만에 즐거운 여행이 되겠군.”
이선은 한 달간의 휴가를 내고, 러시아 황태자 일행과 함께 일본에 갔다.
말은 휴양이라지만, 조정 관료들은 내심 이선이 일본 정세를 시찰하고 작금의 조일 관계를 극복하기 위한 물밑 교섭을 위해 가는 거로 생각했다.
그들의 예상은 반만 맞았다. 이선이 러시아 황태자 일행에 합류한 건 또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 그 이유는 밝힐 수가 없었다.
1891년 4월 22일. 6척의 러시아 군함이 나가사키(長崎) 항에 입항했다. 겨울철 바다가 얼어붙는 블라디보스토크를 모항으로 둔 러시아 태평양 함대가 매년 겨울마다 나가사키 항에 입항했지만, 이번 방문은 특별했다.
러시아 군함에는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가 타고 있었다. 일본은 최상의 예우를 준비 중이었다.
황태자가 나가사키 항에 상륙하자마자, 성대한 환영 인파가 쏟아졌다.
“황태자 전하, 일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삼가 천황 폐하의 명을 받들어 전하를 모시겠습니다.”
“하하,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영국 유학파이자 알렉산드르 3세의 즉위식에 참석한 바 있는 아리스가와노미야 다케히토 친왕이 직접 황태자를 맞이했다. 다케히토는 황태자 일행에 낯익은 인물이 있는 걸 보고 놀랐다.
“아니, 조선의 완화군이 아니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친왕 전하.”
이선과 다케히토는 차르 즉위식에서 안면을 튼 바가 있었다.
“아, 알다시피 일본에 오기 전에 조선에 들렀지요. 내 오랜 벗인 이선 공에게 동행을 청했습니다. 식객이 하나 늘어났지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하하.”
니콜라이의 말에 다케히토가 정중히 화답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전하의 벗이라면 누구든 환영이지요.”
근래 조일 관계가 냉각기라고는 하지만, 외교는 달랐다. 이선도 국빈으로 예우되었다.
니콜라이 황태자 일행은 나가사키와 가고시마(鹿兒島, 사쓰마)를 방문한 후, 고베(神戶)에 상륙해 교토(京都)로 향했다.
일본은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황태자를 극진히 접대했다. 황족에서 일개 백성에 이르기까지 문자 그대로 거국적인 행사였다. 일본 일각의 공로 의식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러시아 만세! 황태자 전하 만세!”
20대의 젊은 황태자는 시암이나 조선과는 사뭇 다른 일본의 환대에 도취했다. 어딜 가나 일본인들은 황태자를 향해 만세를 외쳤고, 다케히토 친왕와 모든 관리들이 정중히 떠받들었다.
고급 요정에서 일본식으로 거나하게 접대를 받아, 술에 얼큰하게 취한 황태자는 흥에 겨워 말했다.
“선, 자네는 일본을 경계하라고 했지. 하지만 보게나. 저 일본인들에게 어디서 경계할 만한 점이 있나?”
역사를 아는 이선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
“전하, 바로 이런 점을 경계해야 합니다. 일본인들은 강자에게는 복종의 뜻을 밝히나, 약자라고 여기는 자에게는 한없이 가혹합니다. 그리고 복종하는 척하며 강자의 허실을 밝히는 데 능숙하지요.”
“흠, 너무 가혹한 말이 아닌가? 내 눈에 일본인들은 모두 선량해 보이는데.”
“일본에 대해서는 수천 년을 이웃으로 지낸 조선이 잘 압니다.”
“그래, 그렇다고 치지 뭐. 술이나 마시세!”
니콜라이와 그를 수행하는 젊은 귀족들은 생애 처음 하는 동양 여행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합류한 주일 러시아 공사 셰비치(D.E. Schevich)와 외교관들은 이선의 우려에 어느 정도 공감했다.
“일본의 여론 일각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상당합니다. 황태자 전하께옵서는 이를 고려하셔야 합니다.”
셰비치는 이를 몸소 경험한 바 있었다.
1890년 11월, 제국의회 개원 첫날. 개원식에 참석한 메이지 천황의 마차를 러시아 공사의 부인이 높은 대(臺) 위에서 내려다본 것에 비난이 쏟아졌다.
“감히 천황 폐하를 내려다보다니! 이렇게 불경한 행동이 어디 있는가!”
“러시아 공사는 사죄하라!”
격분한 우익들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몰려가 돌을 던졌고, 러시아 공사관도 기와를 깨서 응수했다. 공사관에서 투석전이 벌어진 것이다.
이유야 어쨌건, 외교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할 공사관이 공격당한 건 충격적인 일이었다. 러시아 공사의 항의에도, 체포된 자들은 가벼운 벌금형만 받고 풀려났다.
공사는 이를 단순한 사고로 여기지 않았다. 러시아를 적으로 여기는 일본 일각의 여론이 드러난 것으로 생각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부설이 시작되자, 러시아에 대한 일본 일각의 공포는 병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셰비치는 일본 외무대신 아오키 슈조에게 방일예정인 니콜라이 황태자의 철저한 안전을 요구했다. 만약 황태자에게 위해가 발생할 시 강력한 대응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였다.
“흠, 공사의 우려는 알겠소. 그럼 어찌하잔 말이오?”
“도쿄에서 천황이 기다리는데, 전하께서 유흥만 즐긴다는 일각의 비난이 있습니다. 도쿄로 가서 먼저 천황을 만난 후에…….”
“아니, 그건 미리 일본 정부의 양해를 구한 바잖소. 내가 여기 언제 또 올 기회가 있겠소? 나는 일정대로 수행할 거요.”
셰비치의 우려에도, 니콜라이는 일본 관광을 멈추지 않았다. 일본은 황태자의 여정에 마지막이니만큼, 그의 긴장은 한껏 풀려있었다.
일본인들의 환대도 극진했다. 제철도 아닌데도, 황태자를 환영하기 위해 교토 명물인 큰 대(大)자 태우기 축제도 열렸다.
황태자 일행은 교토 인근의 비와호(琵琶湖)를 당일치기로 여행했다. 느긋하기 짝이 없는 황태자 일행과 달리, 이선의 신경은 곤두서 있었다.
1891년 4월 29일 오후. 니콜라이 황태자 일행을 태운 인력거가 시가현(滋賀縣) 오쓰정(大津町)을 지났다.
“여기가 어딥니까?”
“오쓰정입니다.”
오쓰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이선의 신경은 최고조에 도달했다.
황태자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백성들이 도로 양쪽에 서 있었다. 만약에 있을 테러 위협에 대비하여 경찰들이 일정 간격으로 도열해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황태자 일행을 보고 있기에 군중을 볼 수는 없었다.
“황태자 전하 만세!”
일본인들의 열렬한 환영에 니콜라이는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오쓰의 도로는 좁았다. 인력거의 특성상, 한 인력거에 한 사람씩 타 있었다. 평범한 양복에 중산모를 쓴 니콜라이는 행렬의 다섯 번째였다. 이선은 바로 그 앞이었다. 그다음에는 요르요스 왕자, 다케히토 친왕이 뒤따랐다.
바로 그때였다. 행렬에 서 있던 순사 하나가 갑자기 경찰용 사브르(Sabre)를 뽑아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황태자에 집중해있어, 아무도 그의 돌발 행동을 인지하지 못했다.
“으랴아아아앗!”
순사는 칼을 치켜들고 괴성과 함께 황태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니콜라이는 본능적으로 피하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경악하여 반응조차 제대로 못하는 순간, 한 사람이 기민하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