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166
– 166화에 계속 –
166화 왕실 회합
운현궁에서 나온 이선은, 대원군의 말을 곱씹었다.
‘가장 좋은 건 부자간에 불화가 없는 거지. 왕실에 불화가 생기면 국가의 문제가 될 것이다.’
이선은 대원군의 조언을 계속 염두에 두며 경복궁 집무실로 향했다.
이선은 임금과 정기적으로 다과회를 했다. 주로 서양 외교관이나 고문관, 선교사 등과 함께 하며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임금은 서양에 대해 우호적이었고, 서양인들을 친근하게 여겼다. 서양인들도 임금의 우호적인 환대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전하, 황공하오나 다음 다과회에는 왕실 일원끼리 모이면 어떨지요?”
임금은 뜻밖이라는 듯 말했다.
“왕실 일원이라면 누구를 말하는가?”
“중전마마, 세자 저하, 의화군, 대군, 공주, 그리고 숙원을 모시면 어떨지요. 모처럼 왕실의 우의를 나눌 자리가 될 것입니다.”
“하긴, 그런 자리가 없기는 했구나. 좋다. 머지않아 동지이니 모처럼 회포를 푸는 것도 좋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통적 명절인 동지(冬至)를 맞이하여 군신 간의 의례를 치른 후, 그날 저녁 경운궁 함녕전에서 왕실 가족의 다과회가 있었다.
임금과 중전, 숙원 이씨와 장남 완화군 이선, 차남 왕세자 이척과 세자빈, 삼남 의화군 이강, 중전 소생의 사남 이영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고명딸인 막내 공주는 아직 어려 곤히 잠들었다.
“어서 오세요. 그간 두루 평안하셨습니까?”
모처럼 궁궐에 들어온 숙원 이씨를 중전이 웃으며 환대했다. 숙원과 중전은 나이만 보면 모녀지간에 가까웠지만, 숙원은 내명부의 수장인 중전에게 정중히 예를 표했다.
“곤전(坤殿)께서 배려해 주신 덕에 더없이 평안하옵니다.”
“그대도 많이 늙었군. 세월이 무심한 일이네.”
임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25년 전, 어린 임금의 첫사랑이었던 숙원 이씨는 어느덧 나이 50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첩의 나이 이제 오십이요, 전하께서는 즉위하신 지 어언 삼십 년이 다 되어 갑니다. 늙는 건 어쩔 수가 없지요.”
“늙음을 피할 수 없으니 슬픈 일일세.”
그렇게 말하는 임금도 불혹의 나이를 넘겼다. 두 사람은 한동안 회한에 잠겨 말을 하지 못했다.
어색한 침묵을 중전이 깨고, 화제를 돌렸다.
“의화군은 어떠합니까? 두루 평안합니까?”
“성상과 곤전의 은혜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의화군(義和君) 이강은 15세로, 완화군처럼 궁에서 독립해 살았다. 어린 나이에 모친 장씨를 잃은 의화군을, 계모인 중전과 이복형인 이선이 살뜰히 돌봐주었다.
“강아, 근래 공부는 어떠하냐?”
“형님의 배려로 많은 걸 익히고 있습니다.”
준수한 용모에 총명한 의화군 이강은, 이선의 특별한 기대를 받고 있었다. 이선은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를 이강의 개인 교사로 초빙했다. 어릴 적부터 서양 학문을 익힌 이강은 자연히 왕실 내에서 가장 열렬한 개화 지지자가 되었다.
“내후년에 미국에서 만국박람회가 있다. 의화군, 너를 단장으로 삼아 사절단을 미국으로 보낼 생각이다. 박람회가 끝나도 너는 계속 미국에 남아 공부하도록 하여라. 많은 것을 느끼고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임금의 말에 이강은 기쁘게 답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내 나이 열여섯에 처음 미국으로 갔지. 네가 갈 때도 비슷한 나이겠구나. 미국은 조선과 매우 다르다. 네 삶에 있어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이선의 격려에 이강이 화답했다.
“미국에서 많은 걸 배워 국가에 보답하겠습니다.”
“저도 의화군 형님 따라 가고 싶어요!”
어린 왕자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중전의 소생인 이영은 다섯 살이었다. 나이가 어려 정식으로 대군으로 책봉되지는 않았지만, 왕실에서는 모처럼 태어난 대군을 기쁘게 받들었다.
“네가 미국이 어디인질 아느냐?”
임금의 물음에 이영이 의젓한 자세로 답했다.
“바다 건너 있사옵니다!”
“호오, 그걸 어찌 알았느냐?”
“완화군 형님이 주신 세계지도로 공부했습니다.”
이선이 웃으면서 말했다.
“대군께서 어린 나이에도 이토록 총명하시니 나라와 왕실의 홍복입니다.”
이선은 스무 살 가까이 어린 동생을 귀엽게 생각하여 만날 때마다 이런저런 선물을 주었고, 이영도 이선을 곧잘 따랐다.
세자는 말이 없었지만, 부럽다는 표정으로 이강을 쳐다보았다. 세계를 돌아다니는 형 이선과 외국 유학을 떠날 예정인 아우 이강과 달리, 세자는 동궁에만 머무르는 신세였다.
모친인 중전 민씨의 폐비와 실종 이후 10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세자의 성격이 지극히 무색무취했기에 드러나지 않을 뿐, 속내는 매우 우울했다. 그나마 어진 성격의 중전 김씨가 친아들처럼 대해준 덕에 평안히 지내고 있었다.
“저하, 저하께옵서는 이 나라의 대통을 이을 분이십니다. 외국을 돌아다니는 건 저희의 몫이옵니다. 대신 외국 문물이 조선으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저하께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선이 세자의 마음을 눈치채고 위로하듯 말했다.
“그, 그렇지요. 형님 덕에 많은 걸 보고 배웁니다.”
이선은 세자를 정중히 대했지만, 세자는 이선을 어려워했다.
단순히 맏형이라서가 아니었다. 세간에서는 여전히 세자가 곧 교체되리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선은 여러 번 세자를 존숭하는 의사를 표명했으나, 세자는 폐세자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세자의 두려움은 이영의 탄생과도 관계가 있었다.
모친의 폐비 이후에도 세자 자리를 고수할 수 있었던 건 적자는 오직 이척 뿐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전 소생의 적자가 태어난 이상, 대군이 장성하면 세자가 교체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임금도, 중전도, 이선도 이영을 총애했다. 세자는 더욱 고립감을 느꼈고, 그럴수록 더욱 처신을 조심했으나 우울함을 느꼈다.
“차라리 세자 위에서 내려와, 동궁전을 벗어나 자유롭게 살면 좋겠소. 처남이 있다는 영국으로 가면 어떨까?”
세자는 오직 속내를 세자빈 민씨에게만 말했다. 세자빈은 실각한 민태호의 딸이자 민영익의 여동생이었다.
이선의 계획대로 함께 원세개를 실각시킨 후, 민영익은 미국으로 도주했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민영익은, 이선의 약속대로 곧 사면되었다. 청국의 보복을 우려해 당장 조선으로 돌아오진 않고, 주영 공사로 임명되어 런던에 체류했다.
“어찌 그런 황망한 말씀을…….”
“물론 불가능한 일이겠지. 하지만 이 궁궐이 답답하기 짝이 없구려.”
세자는 차라리 의화군 이강이나 이영이 부러웠다. 권리는 없고 의무만 많은 세자 자리를,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이에게 양보하고 싶었다.
“숙원, 어찌하여 완화군은 그토록 혼례 치르기를 꺼리는 것입니까? 완화군의 나이 이제 스물다섯인데, 혼례를 하지 않으니 기이한 일입니다.”
중전의 물음에 숙원도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저도 끊임없이 말했지만, 이제는 포기했습니다.”
조선에서, 더군다나 왕실에서 20대 중반이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는 건 중전의 말처럼 이상한 일이었다.
“혼례를 치러 후계를 이을 자식을 얻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하물며 왕실의 일원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요. 맏형인 완화군이 혼례를 치르지 않으면, 어찌 아우인 의화군이 혼례를 올릴 수 있겠습니까?”
중전의 지적에 이강이 손사래를 쳤다.
“저, 저는 그러기엔 아직 너무 어립니다.”
“군도 당장 하라는 건 아니지만, 스물이 되면 혼례를 치러야지요.”
이선이 웃으면서 말했다.
“왕실이 이토록 번영하고 있는데, 저 한 사람 당장 결혼하지 않는다고 큰일이겠습니까.”
“아니지요. 군은 성상의 장자가 아닙니까. 혼례를 함이 효도가 될 것입니다.”
“황공하오나 국무가 시급하오니, 혼례를 치를 여유가 없습니다.”
이선은 확실히 정신없이 바빠 보였다. 근래 그의 얼굴은 늘 피로에 찌들어 보였다.
“좀 쉬어가면서 하십시오. 국정을 완화군 한 사람만 책임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중전의 말은 묘하게 중의적으로 들렸다. 이선의 과로를 염려해 휴식을 권하면서도, 이선의 국정 독점을 은근히 비판하는 것처럼 들렸다.
‘중전은 그럴 분이 아닌데, 내 과민반응이겠지.’
“금년부터 시행된 국민개병과 군제개혁으로 인해, 군무독판으로서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때가 되면 쉬고자 하니, 부디 이해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금껏 침묵을 지키던 임금이 말했다.
“실로 너의 공로가 크다. 하지만 아비로서 자식이 힘들어하는 걸 보자니 마음이 안타깝구나.”
“성은에 보답하기 위함입니다. 신은 오직 위로는 성상을 위해, 아래로는 만백성을 위해 분골쇄신하여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할 뿐입니다.”
이선은 결코 ‘다른 뜻’이 없음을 강조했다. 임금도 화답했다.
“내 어찌 너의 충심을 모르겠는가? 세간에 군신과 부자간의 의리를 훼손하려고 악의적으로 떠드는 무리들이 있다는 걸 나 역시 안다. 너는 너무 괘념치 말라.”
임금의 신뢰 표명에 이선이 고개를 조아렸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더는 완화군의 혼례를 미룰 수 없습니다. 전국의 명문가 규수들을 대상으로, 간택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중전의 말이 옳소. 그리하는 게 좋겠소.”
‘…… 이건 좀 귀찮군. 답을 줘야겠다.’
중전, 임금, 숙원이 한마음이 되어 이선의 혼례를 강권했다.
“양전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신이 어찌 거역하겠습니까?”
“오, 생각을 바꾸었군요. 참 잘하였습니다.”
“다만, 다급히 정할 필요는 없다고 여겨집니다. 당장은 정무가 시급하오니, 일단 내년으로 미뤄두었으면 합니다.”
이선은 일단 시간을 벌었다.
“그리하지요. 내가 특별히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중궁전의 은혜에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중전과 숙원은 마침내 목표를 달성했다는 듯, 서로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모처럼 화기애애했던 왕실 다과회를 마치자, 이선도 기분이 좋았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부왕이, 신뢰 표명을 한 것만으로 이번 다과회는 성공적인가.’
어디까지가 임금의 본심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왕실 가족들 앞에서는 이선에 대한 신뢰를 보인 것이었다.
‘가끔 이런 자리도 나쁘지 않구나. 왕실에 모여서 가족의 정을 느끼고…….’
이선도 사람인데, 인간적인 감정이 없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이 아닌 이선은 가족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품기가 힘들었다.
지금은 확실히 19세기 이선의 정체성으로 남았지만, 여전히 21세기 이선우의 기억이 그대로 있었다. 이선에게 왕실 일원은 완전한 가족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이선은 자신의 사명처럼 여기는 조선 근대화와 자주독립에만 온 열정을 쏟아붓고 있었다. 오히려 인간적인 신뢰는 최측근인 김옥균과 더 가까웠다. 김옥균과는 유사한 이상을 공유했고, 당대 인물로는 드물게 진보적인 김옥균과는 통하는 바가 많기 때문이었다.
가끔 밤마다, 정체를 감추고 김옥균과 종로의 새로운 번화가를 누비는 게 이선의 취미 생활이었다.
“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내 할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 아닐까.”
‘그게 나를 부른 완화군의 영혼에 보답하는 길이겠지. 아니, 근데 그 완화군은 나잖아?’
이선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늦은 밤이지만, 쉴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그는 워크홀릭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일에 애정을 가졌다.
‘근래 눈에 보이는 성과가 많은데,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잘 되는 일이 많은데, 쉴 틈이 어디 있나.’
그러니 이선은 쉴 수가 없는 것이었다. 확고하게 자주독립과 근대화의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이선은 휴식을 취할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이제 1891년도 다 끝나고, 1892년 임진년이었다.
조선 건국 500주년, 임진왜란 300주년이 되는 해였다. 500주년에 맞춰 신년부터 태양력을 쓰기로 결정되어 있었다.
그 자체로는 특별한 의미가 없었지만, 그가 우려하는 1894년 갑오년까지는 불과 만 2년 앞이었다.
기대와 불안, 희망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북쪽에서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그건 미처 예상치 못한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