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168
– 168화에 계속 –
168화 임진년 위기
1890년, 조선군은 독일 군사고문단의 조언을 받아 프로이센을 모델로 대대적인 군제 개편을 감행한 바 있었다.
새로이 원수부(元帥府)가 창설되어 대군주 직속의 군통수기관으로 확립되었다.
명목상 군통수권자인 대군주는 원수로서 모든 군기(軍機)를 총괄하고 육해군을 통령(統領)했다.
군의 계급은 정(正)-부(副)-참(參), 장성-영관-위관으로 이어지는 구조로 일원화되었다. 대군주부터 초임장교에 이르기까지, 원수-대장-부장-참장-정령-부령-참령-정위-부위-참위로 계급이 확립됐다.
영관과 위관급 장교들은 기존의 무관과 사관학교 출신들로 충당되었지만, 건군 초기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장성급 인사들은 대개 왕족과 고위 관료로 채워졌다.
왕세자는 명목상 육군 대장으로 육군을 통솔했고, 이선은 육군 부장 계급을 받았다. 군무독판이자 원수부 군무국(軍務局)의 총장을 겸임한 이선은 군부의 실권을 쥐고 있었다.
조선군의 군복으로 프로이센 육군의 군복을 도입함에 따라 이선은 육군 부장의 견장과 자수가 담긴 군복을 입고 있었다.
상무위원 마건상은 군복 차림의 이선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지만, 칙서를 전달했다.
“삼가 대청국 황제 폐하의 칙명을 받들어, 조선국에 전하는 바입니다. 조선국 군무독판 이선은 칙명을 받으시오.”
‘칙명’이라 한다면 신하의 예를 표하고 받아야 했지만, 이선은 뻣뻣한 자세로 받아들였다.
“이 무슨 무례요!”
“형식에 집착할 필요 없이, 빨리 용건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니 양해 바랍니다.”
이선은 청국의 통첩문을 읽었다. 조선에 대한 격렬한 비난에 이어 요구사항이 이어졌다.
1. 조선은 소위 ‘간도’라고 부르는 연길 지역이 대청국의 영토임을 인정하고, 다시는 영토 문제를 제기하지 말 것.
2. 연길 지역의 조선인을 퇴거시키거나, 대청의 지배를 받아들이도록 할 것.
3. 연길 지역에서 조선군의 즉각 철병.
4. 조선군의 불법 침임으로 발생한 대청국의 피해를 보상할 것.
5. 불법 월경 책임자를 처벌할 것. 종성 진위대장 참령 이범윤, 5연대장 부령 권동수(權東壽), 함경북도 관찰사 이중하.
6. 조선 국왕은 사죄사를 북경에 파견할 것.
7. 군무독판 이선은 책임을 지고 사임하며, 직접 사죄사를 이끌고 북경에 올 것.
대청 광서 19년
이선은 피식 웃으면서 반문했다.
“이 사태의 원인이, 길림장군이 조선 백성들을 탄압한 데 있다는 걸 황상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모르십니다.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이는 대청 영토에서 정당하게 공무를 수행한 일인데, 조선이 왜 함부로 개입하여 이런 참담한 일을 벌인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황상께 다시 고해 주십시오. 황상은 어지신 분인데, 길림장군이 백성들을 학살한 걸 용인하시겠습니까?”
“애초에 길림 일대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을 대청의 행정체계에 편입시키라고 한 것 자체가 황명이었소!”
“황상께서 중국인들이 극히 희박하게 사는 지역까지 관심이 많으십니까? 황명을 빙자한 간신들의 명이 아닙니까?”
마건상이 발끈하여 외쳤다.
“뭐요! 감히 황상을 모욕하는 거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상황을 명확히 하자는 것이지요. 내가 보기에 공을 세우는 데 눈이 먼 길림장군의 독단행위 같습니다만. 우리 쪽에서도 책임자를 문책하겠으니, 청국도 길림장군을 문책하십시오.”
“그 무슨 궤변이오! 조선이 정녕 대청국과 일전을 벌여 보겠다. 이거요?”
“아닙니다. 조선은 열국의 공인을 받은 중립국인데, 일전을 벌일 리가요.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지겠습니다만, 7개 항목이나 되는 부당한 요구는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좋소. 정녕 이렇게 나온다면, 대청도 가만히 있을 수 없소. 대국의 인내가 무한하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마건상은 격분한 채로 군무부를 빠져나왔다.
이선은 즉각 대비책을 세웠다. 외교고문관 르장드르(Charles Le Gendre)가 이선의 자문에 응했다.
전임 외교고문관 묄렌도르프는 ‘친러반청파’로 찍혀 이홍장이 해임을 요구했고, 묄렌도르프 자신도 부담을 느껴 계약 종료 후 조선을 떠났다.
후임 고문관으로 온 프랑스계 미국인 르장드르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프랑스 출신으로 미국 남북전쟁에 참전, 미국 시민권이자 명예 준장이 되었다.
전역한 르장드르는 청국 개항장 샤먼 주재 미국 영사가 된 이후 쭉 동양에만 머무르며, 동아시아 전문가가 되었다.
르장드르는 1870년대 초에 일본에 외교고문관으로 초빙되었다. 류큐 합병, 대만 출병과 조선 개항을 권고했다. 즉 메이지 초기의 대외팽창을 정당화한 인물이었다.
일본과의 계약이 종료된 이후 르장드르는 조선에 관심을 보였다. 르장드르는 주조선 공사 푸트에게 조선 근대화의 전망을 담은 ‘조선부국책’을 전달했고, 이는 조선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르장드르가 청국과 일본 정세에 밝다는 것도 합격점이었다.
1890년 르장드르는 묄렌도르프의 후임 외교고문관으로 부임했다. 과거 일본의 고문관이었던 르장드르는 조선 국익의 충실한 전도사가 되었다. 이선득(李善得)이라는 조선 이름까지 받은 르장드르는, 조선의 부국강병과 자주독립을 여러 방면에서 강구했다.
“강하게 나가십시오. 물러서면 안 됩니다.”
1871년 청일 수호 조약과 74년 일본의 대만 원정을 막후에서 후원한 르장드르는, 청국의 약점을 속속이 꿰고 있었다.
“간도가 국제법상 조선 영토라고 주장하고, 거주하던 조선인들을 청군이 먼저 공격한 걸 문제 삼아야 합니다.”
르장드르는 독일 국제법학자의 저서로 이 시기 국제법 관련 서적으로 가장 많이 읽힌 『공법회통(公法會通)』을 인용해서 국제공법상 토문강을 경계라고 주장했다.
“청이 군대를 동원해 확전에 나서지 않을까요?”
“조선이 강하게 나가면 청국은 반발하겠지만, 결코 전면전까지 나가지 못합니다. 청은 조선을 우습게 여기지만, 러시아는 두려워합니다. 저들은 러시아와 일본의 그림자를 신경 쓸 겁니다.”
“혹시 영국이 러시아를 빌미 삼아 청국과 결탁할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영국은 현상 유지를 원하니, 구태여 확전까지 가는 걸 원치 않을 겁니다.”
이선과 르장드르의 정세 분석은 거의 일치했다.
“알겠습니다. 조언을 감사히 받아들이지요.”
한편, 간도 연길 일대에서는 2차 교전이 벌어졌다. 길림장군은 장춘(長春)의 팔기군 병력 3천을 동원해 종성 진위대가 지키는 조선인 정착촌을 공격했다.
“감히 황은을 거역하고, 반역을 꾀한 조선놈들을 몰아내자!”
“죽여라!”
그 사이, 조선군 역시 병력 보강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5연대장 권동수가 신속히 경성의 2대대 병력을 이끌고 도강했고, 회령의 변계경무서(邊界警務署) 소속 기마 순검들도 도달했다. 간도의 의용군까지 합해 조선군 병력도 족히 2천을 넘겼다.
“방포!”
“쏴라!”
퍼엉! 콰앙! 타다다다당!
화력을 중시하는 조선군은 시작부터 크루프 야포와 맥심 기관총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청군의 정예군인 회군이나 상군과 달리, 지방 팔기군의 질적 저하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만주는 만주족의 본향이지만, 오랫동안 전투가 없었던 후방 만주의 팔기군 수준은 형편없었다. 근래 들어 러시아의 위협에 대비한다고 보강에 들어갔지만, 그나마 쓸 만한 병력은 흑룡강이나 우수리와 같은 청·러 국경지대에 배치되어 있었다.
“퇴각! 퇴각하라!”
전투는 서전(緖戰) 한 번으로 끝이 났다. 길림 팔기군은 변변찮은 전투조차 벌이지 못한 채, 조선군의 포격에 놀라 추태를 보이며 퇴각했다. 조선군은 피해조차 거의 없었다. 일방적인 승리였다.
간도에서의 두 번째 전투도 승리를 거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선의 조야가 들끓었다.
“제5연대, 조선 백성을 억압하던 만청(滿淸) 침략자를 격퇴하다!”
“군제 개혁의 힘! 국민개병의 힘!”
“승리를 거둔 5연대 장교들은 사관학교에서 신식 군제를 익혀왔으며, 병사들은 함경도의 용맹한 포수들로 맹렬히 훈련을 익혀왔으며…….”
“대조선 만세! 대군주 만세! 제5연대 만세!”
서구식 군제 개혁과 국민개병제의 우월함을 홍보하고 싶었던 군부 인사들은 재빨리 여론몰이에 나섰다. 농촌에서는 징병제를 반발하는 여론이 상당했는데, 승전 소식은 불만을 잠재울 수 있었다.
“조선을 종속국으로 취급하며, 상국으로 거드름을 피우던 만청에 회심의 반격을 성공하다!”
“아아, 간도라고 일컫는 곳은, 본래 고구려와 발해의 땅으로, 우리 조상의 영토였으니…….”
“만청은 조선의 상국이 아니다! 삼전도의 치욕을 씻자!”
“북진하여 오랜 원한을 갚고, 조종(祖宗)의 영토를 되찾을 수 있다면, 이 어찌 통쾌하지 않겠는가?”
막 태동하기 시작한 조선의 언론도, 전통적인 만주족에 대한 반감과 근래 들어 확산되고 있는 근대적 민족주의를 자극했다.
일부 언론은 일본의 사례를 참조해서, 메이지 정부가 우키요에(浮世繪)로 묘사한 프로파간다를 따라 했다. 서구식 제복을 입은 우월한 체격의 조선군이, 변발하고 호복을 입은 추레한 용모의 청군을 대파하는 그림들이었다.
아직 문해율이 높지 않은 조선에서, 그림이 주는 시각적 효과는 확실했다. 조선 백성들은 신문을 돌려보며 기뻐했다.
“우리 조선군이 이토록 강하단 말인가?”
“되놈들, 그렇게 거들먹거리더니 별거 없었군!”
“조선이 청국과 싸워서 이겨본 적이 있었나? 없었지? 병자호란 이래 이번이 처음인가?”
“이래서 그렇게 군대를 강화한 것이었군. 서양인을 조언자로 데려오고, 서양 무기를 들여오고, 징병제를 실시한 게 이제야 비로소 이해가 되네.”
“암, 역시 조정이 선견지명이 있었어.”
‘…… 비판여론을 잠재우고 애국심이 고양된 건 좋은데,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어.’
이선도 승전 소식과 여론의 반응이 반가웠지만, 지나치게 과열되는 건 막고자 했다.
“군제 개혁과 국민개병을 실시한 지 얼마 안 됐소. 냉정하게 말해서 우리 조선군은 아직 2류 군대에 불과하오. 단지 길림의 팔기군이 3류 군대, 아니 군대라고 부를 수 없는 수준이기에 승리할 수 있었소.”
이선은 단호히 북벌 운운하는 일각의 주장을 일축했다. 조선군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정도였다.
‘군제 개혁의 성과를 확실히 보여줬고, 청의 지방군이 생각 이상으로 약체라는 걸 확인하는 계기가 됐으니 충분하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
조선이 황제의 칙명을 거부하고, 잇달아 길림에서 청군이 또다시 패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북경의 조정은 격분했다. 특히 황제 주위의 ‘제당’은 조선보다 이홍장을 향해 분노의 화살을 돌렸다.
“그동안 조선 문제를 전담한 북양대신 이홍장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일이 이렇게 된 건 이홍장의 책임이다! 이홍장이 그동안 완화군에게 뇌물을 받아먹고 눈감아 줬기에,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홍장은 결자해지하라! 동양 최강이라는 북양함대는 두었다가 무얼 할 생각인가? 당장 저 무엄한 조선을 징벌하라!”
북경으로부터 정치적 공세를 받게 된 천진의 이홍장은 심한 불쾌감을 느꼈다.
“내가 호랑이를 키웠군. 완화군이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어. 원세개의 예측이 맞았군. 대청을 지키는 동쪽 울타리가 된다더니, 우환거리가 되었구나! 일본의 위협이 사라지자마자 대청의 권위를 능멸해?”
이홍장은 이선과 조선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조선에 개항을 권유하고, 개화 정책을 지지했었다. 하지만 지방군의 우발적인 공격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청을 향해 총칼을 들이민 것이다.
이홍장도 마음만 같아선 당장이라도 회군과 북양함대를 출동시켜 한양을 포격하고 싶었다.
“내가 조선이 두려워서 그러는 줄 아나? 조선은 틀림없이 아라사를 믿고 저러는 것이렸다! 만약 조선을 치면 아라사와 일전을 각오해야 할걸!”
러시아가 조선을 위해 청과 전쟁까지 벌이진 않겠지만, 청군이 조선을 침공하는 일이 벌어지면 러시아가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이선과 러시아 황실의 돈독한 개인적 관계는 차치하더라도, 러시아는 조선이 청이나 일본에 장악되는 걸 원치 않았다.
“아라사뿐인가? 분명 일본도 천진 조약 위반을 운운하며 개입하려고 들 것이다. 그럴 수야 있나?”
이홍장은 러시아나 일본, 혹은 그 두 나라 모두와 상대하는 상황을 두려워했다.
“그런데도 조선을 정벌하라고? 분명 내 정치적 기반을 갉아먹으려는 제당 애송이들의 흉책이렸다.”
이홍장은 분명 청나라 최고의 관료였지만, 회군과 북양함대의 영수이기도 했다. 이홍장의 정치적 기반은 바로 회군과 북양함대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었다. 그는 전쟁으로 자신의 기반을 날려 먹길 원치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오히려 중당에 대한 북경의 공세는 계속 강화할 겁니다.”
북양함대의 지휘관, 통령수사제독 정여창이 이홍장에게 권했다.
“나 역시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네. 조선의 오만방자함은 한번 꺾고 넘어가야 해. 정 통령, 그대가 북양함대를 이끌고 조선 연안을 항해하게. 전쟁은 피해야 하지만, 무력시위를 확실히 해서 북양함대의 힘을 보여 주도록.”
“중당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홍장은 북양함대에 황해를 항행하라 한 뒤, 요동에 주둔하는 3만 병력을 조선 국경에 집결하도록 명했다.
1892년, 개국기원 501년. 공교롭게도 임진년에 조선에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