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169
– 169화에 계속 –
169화 삼국간섭
북양함대가 조선을 향해 출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서해안 일대에 즉각 비상경계가 걸렸다.
조선의 해군은 아직 변변찮았다. 대신 인천과 강화도 해역에 해안포를 곳곳에 배치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므로 한강으로 이어지는 수로는 특히 철통 방어를 준비했다.
동양 최대의 전함 정원과 진원은 섣불리 좁은 해역에 진입하지 않았다. 대신, 인천 앞바다에 떠 있으며 무언의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이들은 훈련을 빙자해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인천에 입항하는 기선들은 북양함대의 위용에 기가 죽었다.
“저기 앞바다에 청국 군함 떠 있는 거 봤나?”
“봤네. 덩치가 엄청나던데.”
“어후, 저런 거대한 포에서 인천으로 포탄이 쏟아지면…….”
“그럴 일 없어. 인천에 들어오는 외국 기선이 어디 한 둘인가? 그들 모두를 적으로 돌리지 않고서야.”
“하필 올해가 임진년인데, 왜란이 아니라 호란이 일어날 분위기구먼.”
“그럴 일 없다니까. 조정을 믿어 보세.”
군부와 조정의 의견은 양분되었다.
“허장성세에 불과합니다! 단호하게 맞서면 저들은 물러설 겁니다.”
“이쯤에서 멈춰야 하오. 만약 전면전이 일어난다면 청의 대군을 어찌 막을 것이오?”
“5연대의 승리에서 보다시피, 청군은 덩치만 큰 오합지졸에 지나지 않습니다.”
‘…… 후방의 팔기군 이겼다고 너무 고양됐군. 상대를 우습게 보면 반드시 필패하는 법.’
“회군과 북양함대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만약 청국이 작정하고 전쟁을 벌이려 한다면, 경장 8년의 성과가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선은 현실론을 펼쳤다.
“물론 저들은 전쟁하지 않을 겁니다. 청국 내부의 정치적 갈등 때문이오, 대외적으로도 러시아나 일본과 갈등에 이홍장이 휘말리길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제3국에 중재를 맡겨 분쟁을 종료시킵시다.”
조선의 독립과 중립을 열강이 보장했다고는 하지만, 조선이 공식적으로 동맹을 맺은 나라는 없었다.
‘만약 전면전이 발생한다면, 조선 단독으로는 청과 싸우기 어렵다. 하지만 청과 일전을 각오하고 조선을 도울 나라가 몇이나 되겠나?’
이선의 명을 받은 외무독판 김옥균과 외교고문관 르장드르가 러시아 및 프랑스에 접촉을 시작했다.
1891년, 노불 동맹(露佛同盟)이 체결됐다. 전제군주국 러시아와 자유주의 공화국 프랑스가 손을 잡은 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념적으로 상반됐지만, 떠오르는 강국 독일의 존재라는 현실적 이유가 동맹을 정당화시켰다.
비스마르크 체제 아래에서 프랑스는 고립되어있었으나, 비스마르크를 경질하고 친정을 시작한 빌헬름 2세는 공격적인 대외정책을 펼쳤다. 때맞춰 독일-러시아 재보장 조약이 종료되고, 프랑스는 러시아에 대대적인 투자와 차관을 제공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부설은 프랑스 차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급속도로 가까워진 러시아와 프랑스는 정치 협정을 체결했고, 1892년에는 군사협정 초안이 교환되어 군사동맹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러시아와 프랑스는 대외정책에도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극동 정책도 보조를 맞추었다.
이에 따라 조선도 노불동맹의 수혜자가 되었다. 러시아는 조선에 특수한 이해관계를 지녔기에, 프랑스도 러시아의 극동 정책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대외투자에 적극적이었고, 프랑스 공사를 지낸 김옥균은 프랑스의 투자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조선은 근대화를 진행하는 데 큰 비용이 필요했다. 무역이 발전하며 급증하는 해관세, 양전 이후 확립된 토지세 그리고 해외투자 덕에 재정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선과 김옥균, 그리고 르장드르는, 러시아 공사 베베르, 프랑스 공사 플랑시와 잇달아 비밀 회견을 했다.
“청국과의 국경분쟁이 과열되고 있습니다. 이는 동양 평화에 바람직하지 못한 일입니다. 귀국이 중재해줄 수 있겠습니까?”
베베르가 답했다.
“러시아 제국은 조선을 위해 언제든지 중재에 나설 용의가 있습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청국이 조선의 중립과 자주독립을 침해하는 걸 원치 않습니다.”
러시아는 일방적으로 조선의 편을 들었다. 이선이 알렉산드르 2세와 니콜라이 황태자의 목숨을 구해 황실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된 점을 차치하더라도, 러시아는 독립국 조선의 존재를 지지했다.
러시아는 청이 조선의 자주권을 인정하는 이유는, 그동안 봉금령으로 만주가 비어 있었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봉금령 해제 이후 만주의 인구는 증대했고, 러시아는 청이 연해주 할양으로 상실한 태평양에 진출하기 위해, 머지않은 미래에 조선의 동해안을 침탈할까 우려했다.
간도 분쟁이 심화하자, 알렉산드르 3세는 주청 공사와 베베르, 태평양 함대에 비밀 전문을 보냈다.
청국이 조선으로 파병하지 못하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청국을 억제하라. 만약 청국이 조선에서 확고한 지위를 확립하려 할 경우, 러시아 태평양 함대를 동중국해로 파견하여, 러시아가 조선의 독립을 지지한다는 걸 보여 줘야 한다.
베베르가 러시아의 뜻을 전하자 이선은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러시아 제국과 황제 폐하의 호의를 잊지 않겠습니다.”
프랑스 공사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는 베베르 못지않은 친조선 인사였다. 동양학자이기도 한 플랑시는 조선 문화를 애호했고, 조선어도 유창해 조선 민중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그의 조선에 대한 애호는, 한 조선 여인에 대한 사랑과도 관계가 있었다.
어느 날, 플랑시는 조선 궁정의 연회에 초대받았다. 그 연회에서, 30대의 젊은 플랑시는 빼어나게 아름다운 무희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하지만 궁중 무희는 신분상 왕의 여자였기에, 플랑시가 그녀에게 청혼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랑에 빠져 고민하던 플랑시는 외무독판 김옥균에게 털어놓았다. 프랑스 공사를 지낸 김옥균은 프랑스에 대해 우호적이라, 연배도 비슷한 두 사람은 금방 절친한 관계가 되었다.
“사실 내가 조선 여인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검은 눈을 생각하면 잠도 못 이룰 지경입니다.”
풍류남아 김옥균은 껄껄 웃으며 답했다.
“그럼 그 사랑을 이루면 될 일 아닙니까?”
“신분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안될 게 무엇입니까? 예전이라면 모를까, 이제 서양인에 대한 편견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이미 미국인이 조선 여인과 결혼한 사례도 있습니다.”
“…… 그녀는 궁중 무희입니다.”
어지간한 김옥균도 그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 음, 궁중의 여인은 모두 대군주의 여인입니다. 결코, 외부인과 결혼할 수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한숨만 쉬는 것이지요.”
플랑시는 정말로 한숨만 푹푹 쉬었다. 김옥균은 딱하게 여겼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김옥균은 술자리에서 이선에게 이야기를 흘렸다. 아무리 고루한 관습을 싫어하는 이선이라지만, 이는 군주의 권위와 관련된 일이라 나서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한번 이야기나 해 보지요.”
이선과 김옥균은 플랑시와 함께 프랑스와 차관 협약을 성사시킨 일을 임금에게 아뢰면서 공사의 공을 전했다.
“차관이 성사된 데에는 법국 공사의 공이 큽니다.”
“기쁜 일이다. 공사에게 상을 내리고 싶다.”
플랑시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저는 조선 여인과 사랑에 빠져 그녀와 혼인하고 싶습니다.”
“호오, 그래요? 안 될 것도 없지. 그게 누구요?”
“…… 아뢰옵기 황공한 일이나, 궁중 무희 이심이라는 여인입니다.”
순간 임금의 용안에 당혹감이 어렸다. 임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의외로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과인은 이미 궁중에 있던 내관들을 대부분 내보내어 새로운 삶을 살게 하였소. 궁녀라고 안 될 게 뭐가 있겠소? 그 여인을 법국 공사관으로 보낼 터이니, 일단 공사관의 시종으로 쓰도록 하시오.”
뜻밖에 흔쾌히 허락하는 임금에게, 플랑시는 동양식으로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를 표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대군주 폐하!”
이는 다분히 정치적 계산이었다. 임금은 궁녀 한 사람보다 프랑스 공사의 호의를 얻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플랑시는 열망하던 대로 조선 여인 이심과 사랑을 이룰 수 있었다. 여인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라워했지만, 궁중의 억압된 신분에서 벗어난 걸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그녀는 플랑시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아들였다.
연인의 존재로 인해 플랑시의 조선에 대한 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프랑스 외교관이라는 자신의 본분을 잊어버린 건 아니었지만, 프랑스와 조선의 이익이 일치하는 한 조선을 힘껏 도울 용의가 있었다.
“프랑스 공화국은 조선의 중립과 자주독립을 승인하고 지지한 바 있습니다. 청국이 이를 침해하려 한다면, 명백한 조약 위반입니다. 다만 청국은 조선이 먼저 국경을 넘어 전투를 벌였다고 주장하니…….”
“간도는 프랑스의 알자스와 같은 곳입니다. 단지 지금은 조선의 힘이 약해 청국의 영유를 받아들이는 것뿐, 언젠가 반드시 수복하고자 하는 곳이지요.”
프랑스 출신인 르장드르는 간도를 프랑스의 알자스에 비유했다. 1871년 독일에게 빼앗긴 알자스는 프랑스가 반드시 되찾고자 열망하는 곳이었다.
‘간도와 알자스가 실제로 비슷한지는 차치하고, 프랑스인에게 이보다 더 설득력 있는 말은 없겠군.’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본국에 보고하고 훈령을 기다리겠습니다.”
“잘 부탁하겠습니다.”
플랑시의 보고를 받은 프랑스 정부는 조선을 지지하기로 했다. 물론, 프랑스 공사가 조선 여인과 결혼한 일이 영향력을 미친 건 아니었다.
프랑스는 1884년에 청나라와 전쟁까지 벌인 바 있었고, 베트남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청불전쟁이 역사와 다르게 무승부로 끝남에 따라, 1885년의 조약에서 여전히 베트남은 명목상 청을 종주국으로 섬기고 있었다.
청국이 종주국이라는 명목으로 조선의 독립을 침해하려 한다면, 베트남 문제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나쁜 선례를 만들면 안 된다. 러시아와 협력하여 청국의 조선 간섭을 막도록 하라.
프랑스 정부의 훈이 전해지자, 러시아와 프랑스 공사는 공동으로 조선을 지지할 뜻을 밝혔다.
여기에 이선이 염두에 두지 않던 제3의 국가도 개입 의사를 보였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나라였다.
“짐이 조선에 군사고문관을 보냈다. 독일식으로 훈련을 받은 군대가 중국을 격파했다니 기쁠 따름이다. 힌덴부르크 소령 이하 조선에 주재하는 고문단 장교들을 1계급 특진시키고, 조선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도록 하라.”
“폐, 폐하! 청국은 독일로부터 막대한 군수 물자를 수입하고 있습니다. 당장 북양함대의 전함과 대포들이 독일에서 수입한 것인데…….”
외무부의 반대에 부딪히자, 즉흥적인 성격의 소유자 카이저 빌헬름 2세는 물러서지 않았다.
“짐은 예전부터 중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중국이 강해지면, 장기적으로 볼 때 서양의 비극이다. 4억이나 되는 그 엄청난 인구가 서양을 몰아내고, 힘을 뽐내려 할 것이다. 중국의 힘을 꺾어야 한다.”
카이저는 장차 동양이 서양 문명을 위협하리라는 황화론(黃禍論)을 믿었고, 이를 실천할 나라로 엄청난 인구를 자랑하는 청나라를 지목했다.
“더욱이 러시아가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으니, 그들의 관심을 유럽이 아닌 극동으로 돌려야 한다. 짐은 러시아의 극동 정책을 지지할 것이다.”
카이저도 노불 동맹을 뼈아프게 여겼고, 러시아의 관심을 최대한 동양으로 돌려서 유럽에 신경 안 쓰기를 희망했다. 이를 위해선 러시아의 극동 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할 의사가 있었다.
이리하여, 러시아-독일-프랑스라는 뜻밖의 삼각 동맹이 동아시아에서 형성되었다. 견원지간인 프랑스와 독일이 한목소리를 내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삼국이 공동으로 청의 군사개입을 막을 의사를 보이자, 이선도 놀랐다.
‘이거 완전 실제 역사의 삼국간섭과 동일한 구도잖아? 대상이 일본에서 청나라로 바뀌었을 뿐이군.’
비록 역사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삼국이 바라보는 동양 정세관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실제 역사에서 삼국이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요동 점령을 막은 건, 일본에 의해 극동의 세력균형이 깨지는 걸 우려해서였다. 이번에도 청국에 의해 세력균형이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주 청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3국 공사가 공동으로 ‘중재’의 뜻을 청국에 전달했다.
청은 영국의 지지를 요청했지만, 현상 유지를 원하는 영국도 원만하게 타협으로 해결하라는 뜻을 보였다.
삼국과 별개로, 일본도 외무성 성명을 발표해 협상을 권고했다.
“일본, 청국, 조선은 모두 천진 조약의 당사자이다. 문제는 평화롭게 해결하길 바란다.”
청 조정의 강경파들은 격분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저들을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소. 협상으로 해결하도록 합시다.”
조선이 못마땅한 건 이홍장도 마찬가지였으나, 그 자신은 내심 전쟁으로 발전하지 않아 만족했다.
‘제당 애송이놈들의 자존심 싸움에 군비 한 푼, 군사 한 명도 소모할 생각 없다.’
삼국의 중재 하에, 조선과 청은 협상에 돌입했다. 조선도 더는 강경하게 나가지 않고, 양보 안을 내놓았다.
1. 청국은 조선의 중립과 자주를 존중한다.
2. 조선은 길림 동부, 소위 ‘간도’가 청국의 영토임을 인정한다.
3. 다만 ‘간도’ 지역의 인구 대다수가 조선인임을 감안하여, 청국은 이들에 대하여 무리한 동화정책을 쓰지 않는다. 청국에서 조선 주민을 관리하되, 국적 선택 여부는 개인의 자유에 맡긴다.
4. 조선과 청국은 국경분쟁에 있는 책임자를 소환하여 처벌한다.
5. 조청 국경의 최종적 확인은 양국에서 전문가를 파견하여, 3년 이내로 국경조약을 체결한다.
6. 조선은 대청 황제께 예년과 같이 사은사를 파견한다.
7.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 프랑스 공화국은 동양 각국의 평화와 독립, 영토를 보장한다.
서력 1892년, 대청 광서 18년 4월 17일, 조선 개국기원 501년 5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