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174
– 174화에 계속 –
174화 갑오년(甲午年)
1894년, 개국기원 503년, 갑오년.
새해를 맞이한 이선의 마음은 특별했다. 예년과 별다를 게 없는 신년이지만, ‘갑오년’이라는 게 크게 신경 쓰였다.
실제 역사에서는 이 해에 동학 농민전쟁, 일본의 경복궁 점령, 갑오개혁, 청일전쟁, 2차 농민봉기가 잇달아 벌어진다. 그야말로 동아시아의 역사를 바꾼 분수령이었다.
‘물론 역사가 크게 바뀌었으니, 그대로 진행될 리 없지. 그런데도 왜 이리 신경 쓰이는 걸까?’
조선은 이제 농민들이 견디다 못해 봉기를 일으킬 정도로 학정을 하는 나라도 아니다. 게다가 자국의 농민 반란을 진압하지 못해 외세에 출병을 요청할 정도로 허약한 나라가 아니었다.
‘내부 요인은 충분히 해결되었다. 문제는 외부 요인이지.’
전통적 제국을 유지하려는 청나라와 새로운 제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일본.
두 국가가 벌이는 동양 패권 경쟁이 조선을 둘러싼 정세를 예측 불허로 몰아넣었다.
시간을 돌려, 1893년 여름. 청나라와 조선을 찾아온 방문객이 있었다.
일본군 참모차장 가와카미 소로쿠 중장과 일본 군사시찰단이었다.
가와카미는 일본 육군의 핵심이자 대외 강경파로, 그런 자가 참모본부의 장교들을 이끌고 두 나라를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일본 장교단은 지부, 북경, 천진 등을 방문해 총리아문 경친왕과 직례총독 이홍장과 회견했고, 상해, 남경, 구강, 한구 등 강남 지역을 방문했다.
청나라는 가와카미의 의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군사시설의 방문을 허용했다. 일본 장교단은 천진 무비학당, 북양함대 사령부, 각 지역의 군수공장과 조선소, 신식 포대 등을 방문했다.
청나라는 자국의 막강한 위용을 일본에 보여줄 생각이었을지 모르나 오히려 가와카미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청국은 겉만 그럴싸한 속 빈 강정이다.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
청나라 시찰을 마친 일본 장교단은, 상해를 떠나 인천으로 입국했다.
조선 측에서도 전년에 군사시찰단을 보내 일본의 군제를 연구한 바 있었다. 1892년에 일본군은 대대적인 육·해군 합동군사훈련이 있었는데, 그때 조선군에서 시찰단을 보내 참관했었다.
그러니 일본 장교단의 입국과 시찰을 막을 명분이 없었다. 이선이 직접 영접을 맡았다.
“왕자께서 영접을 맡아주시니 영광입니다.”
“조선에 계시는 동안, 최상의 예우를 드리기 위함이지요.”
말은 정중했지만, 이선은 일본 장교단의 일거수일투족을 은밀히 감시했다.
일본 장교단은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한성으로 들어와 임금을 알현하고, 조선군 근위 연대의 훈련을 참관했다.
“조선군도 독일식 편제를 받아들였지요? 친근감이 느껴지는군요.”
“여러모로 노력 중입니다.”
독일 유학파인 가와카미는 독일 군제를 일본에 이식했다. 역시 독일 군제를 받아들인 조선군은, 일본군과 흡사한 점이 많아 보였다.
가와카미와 주조선 공사 오토리는 비밀 회동을 했다. 오토리는 구 막부군 출신으로, 막부의 군제개혁을 이끌며 유신 정부에 끝까지 저항한 군인이었다. 사면을 받은 후에는 외교관이 되었으나, 자신의 정체성을 군인으로 여기고 있었다. 가와카미와 오토리는 조선 정세에 대해 한참 토의했다.
이선은 군부의 주요 인사들과 함께 공사관 만찬에 초대를 받았다. 한동안 환담을 진행하던 중 가와카미가 통역도 거치지 않고 영어로 물었다.
“조선국은 열강으로부터 공인받은 명백한 자주독립국인데, 청국은 여전히 케케묵은 논리로 조선의 독립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떨쳐나갈 생각이 없으십니까?”
외교적인 언사도 없이 바로 치고 들어오는 말이었다.
‘흠, 네가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 안다.’
이선은 가와카미 소로쿠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일찌감치 1880년대부터 청과의 전쟁을 상정했고, 청을 꺾고 동양의 패자로 올라서는 것만이 일본이 나아갈 길이라고 믿는 팽창론자였다.
‘실제 역사에서 경복궁 점령을 명령하고, 동학농민군에 대한 학살을 명령한 자이기도 하지. 상대하는 것 자체가 역겨운 일이나 역사가 바뀌었으니…….’
오쓰 사건으로 육군의 대부 야마가타는 실각했지만, 그로 인해 역설적으로 실무자인 가와카미의 영향력은 더 강해졌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가와카미는 확고한 정한론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가와카미의 목표는 조선을 정복하는 게 아니라, 군사적으로 청을 꺾는 것이었다.
“이는 조선국의 사정으로, 귀국이 관여할 사항이 아닙니다.”
이선의 냉정한 말에, 가와카미가 씩 웃었다.
“일본국은 천진 조약 당사자이니, 전혀 관련 없다고 할 수는 없지요. 만약 조선이 진정한 독립을 원한다면, 일본은 협조를 제공할 의사가 있습니다.”
“호오, 어떻게 말입니까?”
“진보를 향해 나아가는 두 나라가 연대하여 낡은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지요.”
은유적인 표현이었지만,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직설적인 의미였다.
“장군,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해주니 고맙군요. 말 나온 김에 내 분명히 말씀드릴 게 있는데.”
“말씀하시지요.”
“일본 군부가 청국과 근시일 내로 일전을 벌이려는 계획, 나도 짐작하고 있습니다. 장군과 참모장교들이 청국을 방문한 목적이 전쟁에 있다는 것도 짐작합니다.”
정확한 분석이었으나, 가와카미는 그다지 놀라워하지도 않았다.
“대담한 짐작이시군요. 추측에 지나지 않으나, 만에 하나 그리된다면, 조선은 어찌할 생각입니까?”
일본 참모본부는 해군으로 황해의 제해권을 확보하고, 육군으로 중국 본토를 곧바로 칠 계획을 짰다. 그러기 위해선 조선을 끌어들이거나, 최소한 우호적 중립을 지켜줘야 했다.
“전쟁은 귀국의 자유니 말리지 않겠습니다. 청국에 알릴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전쟁 명분으로 조선의 독립을 운운하여, 괜히 조선을 전쟁에 휘말리게 할 생각은 마십시오. 조선은 대외중립을 세계에 선포하고 승인받은 나라입니다. 양국 중 어떤 나라에도 군사적 지원을 제공할 의사가 없습니다.”
“전쟁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조선이 그토록 군비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선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만약 조선이 전쟁한다면, 어디까지나 침략에 맞선 방위 전쟁만이 있을 뿐입니다. 일본의 대외 팽창이 남쪽으로 향한다면, 조선은 개의치 않습니다. 하지만 조선을 향해 칼날을 돌린다면, 그때는 사생결단을 내야 할 겁니다. 귀국 정부에 우리의 뜻을 제대로 전해 주십시오.”
가와카미는 이선을 더 이상 설득하지 않았다. 일본 장교단은 별다른 움직임 없이 공사관에서 개최한 환송 만찬을 끝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이선의 단호한 의사가 일본 정부와 군부에 어떤 영향력을 주었을지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일본군의 육군 확장과 해군 건함 5개년 계획이 완성되는 1894년이 밝았다.
1894년 2월. 역사대로라면 동학 농민전쟁이 발발해야 했지만, 내정개혁으로 아무런 일이 없었다. 조선은 극히 평온했다.
원래대로라면 농민전쟁의 지도자가 되어야 할 전봉준은 1893년 중추원 의관 선거에 뽑혀, 중추원 농민 대표로 입성했다.
“중추원 의관 여러분. 농사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라 하였습니다. 비록 경장 이후 식산흥업 정책으로 조선의 상공업이 발전하였다고는 하나, 인구의 절대다수가 농민인 이 나라에서, 농업의 중요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농민의 희생 위에서, 우리는 개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농민을 위한 정책으로 보답해야 할 때입니다. 수많은 농민이 토지개혁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체제 내의 개혁을 선택했다. 중추원의 권한은 정책 심의에 불과했지만, 전봉준은 탁월한 언변과 카리스마로 단숨에 전국 농민의 대표자로 떠올랐다.
전봉준을 중심으로 ‘농민당’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조선 최초의 야당이라 할 만했다. 전봉준이 외치는 농민의 목소리는 처음으로 개화당 정부에 닿기 시작했다.
1894년, 관제 개편이 있었다. 의정부의 명칭이 내각으로 바뀌고, 수장인 영의정은 총리대신으로 직함이 변경되었다.
내무부, 외무부, 탁지부, 법무부, 군무부, 학무부, 농상공부, 궁내부 등 중앙부처의 일신이 있었다. 각 부처 수장의 직함도 독판에서 대신으로 변경되었다. 홍문관과 사간원 등 구 관제는 폐지되었다.
초대 내각총리대신으로 김홍집이, 부총리 겸 내무대신으로 홍영식이 선임되었다. 한동안 공식적인 직함을 맡지 않고 있던 이선은 군무대신으로 취임했다.
관료의 임용 방식이 바뀌면서 관료들은 점차 시무에 밝은 근대적 인재로 채워졌다. 근대적 관료제가 확립되어 가고 있었다.
“문관의 임용 방식은 오직 고등 문관 시험과 특별 추천으로만 이뤄질 수 있다. 무관의 임용 방식은 오직 무관학교 졸업과 특별 추천으로만 이뤄질 수 있다. 개국 503년을 끝으로, 과거제는 폐지한다.”
갑신경장 이후에도 과거제는 남아 있었다. 과거 합격자는 여전히 청요직(淸要職)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과거 합격자는 실질적인 권한은 없었다. 단지 당장 과거를 폐지할 경우 유생의 반발을 고려해 일시적으로 유지한 것이었다.
문무관 단발령과 양복 착용이 실시된 이후 과거제 응시자는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이는 더욱 과거제의 존속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10년의 유보 기간을 거치고, 관제 개편이 이뤄지는 김에 마침내 과거제도 폐지되었다.
“유학의 나라를 자처했던 조선에서, 성현의 가르침은 아무런 쓸모조차 없단 말인가!”
“양이의 방식만을 고수하면서, 성현의 도는 헌신짝처럼 내버리기만 하는가!”
“어찌 강상의 도리가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이 더러운 오랑캐의 조정에 어찌 종사하겠는가? 차라리 산골에 들어가 살지언정!”
예상대로 유생들의 반발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정부는 이미 유생들의 반발을 예상했기에 아무런 동요조차 없었다. 유생들의 불평불만은 갑신경장 이후 늘 있는 일이었다.
새로운 시대 분위기에 적응한 지식인들은 재빨리 새 관료제에 올라탔고, 출세의 사다리를 탔다. 신 관료 계급이 정부와 개화에 충성하는 건 말하나 마나였다.
“정부와 내각은 민의에 기초해야 한다. 조선도 서양의 선례를 따라, 군민공치(君民共治)의 이상이 담긴 헌법을 제정하고, 의회를 개설하고자 한다. 중추원을 개편해 상원으로, 새로이 개설할 의회를 하원으로 삼고자 한다. 헌법 반포와 의회 개설은 개국 509년(1900)을 목표로 한다.”
물론 개화당 정부는, 전 국민에게 참정권을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독일이나 일본처럼, 정부 주도하에 제한적인 의회를 설립할 생각이었다. 참정권, 특히 피선거권은 정부를 지지하는 계층에게만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헌법 반포와 의회 개설 선언만으로 획기적인 조치였다. 서구식 자유주의 사상을 받아들인 신 지식 계층은 환호했다.
“이제 진정 군주와 백성이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군민공치의 이상을 이룰 때가 왔도다!”
“우리 백성은 국민교육과 국민개병으로 그 의무를 다하니 정치의 권리를 누릴 자격도 있다. 진정 국민국가로 나아가려면, 참정권이 있어야 한다.”
“의회 개설과 헌법 반포로, 대조선국은 진정한 국민국가로 나아갈 것이다.”
초대 내각총리대신 김홍집과 정부 핵심인사들은 헌법 제정과 의회 개설 계획을 임금에게 보고했다. 임금이 문건을 읽으며 물었다.
“헌법 반포는 무엇이며, 의회 개설은 무엇인가?”
“이는 서양의 방식을 따른 것입니다. 민의를 대표하는 건 세계적 대세이니, 헌법과 의회가 있음으로 개화는 완성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군민공치를 달성하기 위해…….”
“군민공치? 그 무슨 같잖은 소리인가! 어찌 임금이 백성과 정치를 같이 한단 말인가?”
임금의 분노에 대신들이 당황했다.
“대, 대군주 폐하!”
임금은 역정을 냈다.
“애초에 이 나라를 군주가 다스리고 있기는 한가? 경들이 군주의 권위를 내세워 다스리고 있지 않은가! 대군주 폐하라고? 이름만 그럴싸해졌을 뿐, 대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경들이 가져오는 문서에 도장을 찍는 것 말고 하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임금은 그동안 참고 있던 불만을 터뜨렸다.
“나도 헌법과 의회라는 걸 안다. 헌법은 법국이나 미국 같은 민주 공화제 국가에서 만들어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의회는 영국처럼 하겠다는 것이겠지. 국왕은 허수아비로 두고, 각료와 의회가 멋대로 다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대체 군주를 어디까지 능멸할 생각인가?”
“그렇지 않사옵니다! 헌법과 의회는 이웃 나라인 일본에서도 실천하는 일입니다. 또한, 헌법과 의회가 있다고 하여 어찌 군주를 능멸하는 일이 되겠습니까? 군주국에서는 모두 군주를 존숭합니다. 신등(臣等) 또한, 대군주 폐하를 지극히 존숭하는 마음에서…….”
임금은 총리 김홍집에게 화살을 돌렸다.
“경이 소위 총리가 된 것도 모자라 이제 내 자리까지 노리는 것인가? 다른 대신들이 그렇게 권유하던가?”
“폐하! 그 어찌 망극한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오직 폐하를 위해 충정을 다할 뿐입니다. 폐하께서 신의 충정을 의심한다면, 즉시 사임하고 물러나겠나이다!”
김홍집은 자신을 진정 왕조와 군주의 충신이라고 생각했고, 그 충심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시대의 흐름을 빠르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개화당과 뜻을 같이할 뿐이었다.
“듣기 싫소! 이 일은 절대 승인하지 않겠소. 경들은 모두 물러나시오!”
임금의 전례 없는 분노에 대신들은 모두 편전에서 물러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