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176
– 176화에 계속 –
176화 대립
“직례총독 겸 북양통상대신 이홍장은 삼가 칙명을 받들라!”
황제의 칙사로 예부상서 이홍조가 천진에 왔다. 이홍장과 이홍조는 이름이 비슷해 일족으로 오해를 받지만,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양무파이자 ‘후당’인 이홍장과 청류파이자 ‘제당’인 이홍조는 정적이었다.
“태종 황제 이래 이백오십여 년, 조선은 우리 대청의 충실한 신하였다. 그러나 근래 들어 양이에 물들어 사대의 예의를 잃고, 자주독립이란 망상에 빠져 천조에 맞서니…….”
이홍조는 ‘조선의 무례’를 한참 동안 읊더니, 마침내 본론을 꺼냈다.
“북양함대와 회군은 칙명을 받들어 하늘을 거스른 조선을 정벌하라!”
칙명의 낭독이 끝나자 무릎을 꿇고 있던 이홍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조선을 정벌하라니 그 무슨 말씀입니까?”
“문자 그대로, 황상께서는 조선의 무례를 징벌하길 원하십니다.”
“군사적 정벌을 의미합니까? 그렇다면 정벌을 하는 건 불가합니다.”
이홍조가 벌컥 화를 내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중당은 어찌 황명을 거역하려 하십니까? 이는 지엄한 황상의 뜻이십니다! 애당초 중당이 조선 문제의 책임자로서 상황을 똑바로 관리했다면, 이 지경에 이르는 일이 없었을 것 아닙니까!”
“조선이 근래 들어 무례하기 짝이 없다는 황상의 지적은 실로 통렬하며 북양대신으로서 책임이 무겁습니다. 하오나 정벌은 불가합니다. 조선이 중국의 제후국이기는 하나, 국제조약에 의해 자주국임을 승인받았습니다. 조선을 정벌하면, 필시 외교적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황명보다 양이와의 조약이 더 중요하단 말입니까?”
이홍장이 헛웃음을 흘렸다.
“대청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면 조약을 무시해도 됩니다. 하지만 조선의 배후에는 북방의 아라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군비를 강화해 호시탐탐 대국을 노리고 있습니다. 아라사와 일본이 반드시 개입하려 들 것입니다.”
“천명을 거역하고 사대 조공 질서를 어지럽히는 제후국의 반역조차 제압하지 못한다면, 대체 그동안 북양군은 무엇을 위해 양성했단 말입니까?”
“북양함대와 회군으로 조선을 정벌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나, 그다음이 문제입니다. 안남 문제를 놓고 법국과 전쟁을 벌였듯 아라사나 일본과 일전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아라사와 일본은 숙적인데 둘이 연합할 리가 없습니다. 아라사와 일본이 개입하기 전에 조선을 정벌하면 됩니다.”
이홍장은 답답함을 느끼고 책임 소재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군기처와 총리아문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군기처는 군사 담당이오, 총리아문은 외교 담당이었다. 대외정벌과도 큰일이 있으려면 군기처와 총리아문의 논의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군기처의 예친왕과 총리아문의 경친왕은 서태후 파였다.
“황명이 지엄한데 그들이 어찌 반대하겠습니까?”
“군기처와 총리아문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저는 조선 정벌을 계획할 수 없습니다.”
“정녕 황명을 거역하겠다는 말씀입니까? 중당이 거느리는 그 군대의 충성대상이 어느 분임을 잊으셨습니까?”
“황상께는 직접 복주하도록 하겠습니다. 황상은 총명하시니, 늙은 신하의 고언을 외면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홍장은 끝내 황명을 따르지 않았다. 군함 한 척, 군사 한 명도 아까운 이홍장은 조선 정벌에 병력을 낭비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후 북경과 천진에서는 신경전이 오고 갔다.
“이홍장이 조선 정벌을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북양함대와 회군을 아끼기 위함이다. 어찌하여 천병이 이홍장의 사병이 되었단 말인가!”
황제는 이홍장의 ‘불측한 저의’를 확신했고, 개탄해 마지않았다.
아무리 이홍장이 조정 최대의 실력자라고는 하지만, 곳곳에 정적이 있었다. 청류파들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만주 왕공귀족들도 이홍장을 질시했다.
“대청이 천명을 계승한 이래, 열성조께서는 한족 관료에게 지나치게 많은 군권을 주는 것을 피해 왔습니다. 그 전례를 증국번이 처음 깼으나, 증국번은 신하의 분수를 알았기에 반란이 진압되자 스스로 군권을 반납했습니다. 하오나 이홍장에 이르러서는 조정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황명을 거역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끝내 이홍장이 황명을 따르지 않는다면, 다른 마음을 품은 게 틀림없습니다. 군권을 박탈하소서!”
예친왕과 경친왕은 분명 서태후 파였지만, 보수적이고 완고한 만주 왕공귀족을 대표했다. 이들은 이홍장의 독주를 경계하고 질시했다.
황제뿐만 아니라 이화원의 서태후에게도 만주 왕공귀족들의 외침이 들어갔다.
황실의 실력자, 서태후는 지금껏 이홍장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보였다. 서태후는 이홍장의 충심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홍장이 이화원에 정기적으로 바치는 거액의 뇌물은 충심의 표시였다.
마침 나이가 환갑이 되는 해라 전쟁 같은 일은 피하고 싶었지만, 만주 황실의 존엄함에 집착하는 건 서태후도 마찬가지였다.
“제후국의 무례를 징벌하지 않는다면, 천조의 권위는 무엇이 되겠는가? 이홍장은 황명을 따르도록 하라.”
황제에 이어 실력자인 태후의 명령까지 떨어지자, 이제 이홍장은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홍장은 대책을 세웠다. 전통적인 사대 조공 질서와 근대적인 국제법의 틈새 사이에서 해결책을 골몰했다.
고민 끝에 이홍장은 이선을 천진으로 초대했다. 청과 조선 사이에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직접 만나 허심탄회하게 논해 보자는 것이었다.
조선, 한양.
군무대신 이선과 외무대신 김옥균을 천진에 초청한다는 이홍장의 전문이 도달했다.
“중당께서 이 사람을 천진에서 보길 원하신단 말입니까?”
“예, 중국과 조선은 한 가족과 같은 사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동안 너무 오해가 쌓여 남만도 못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중당께서는 이를 크게 개탄하시고, 직접 완화군을 만나서 문제를 해결하길 원합니다. 예전에 완화군께서 직접 천진에 올 때마다 문제가 해결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 말처럼, 예전의 이선은 정기적으로 천진을 방문해 이홍장과 여러 가지 사안을 논의하고 해결했다.
하지만 근래 냉랭했던 관계를 반영하듯, 이선이 천진에 안 간 지도 오래되었다. 갑작스러운 초대는 오히려 뜬금없는 일이었다.
“중당과 나는 양국의 중대한 책무를 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초대는 공식적인 외교방문이 될 것입니다. 이는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니, 답을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이선은 내각의 각료들과 이홍장의 초대를 토의했다.
“이홍장이 나와 외무대신을 천진으로 초대했습니다. 양국 간의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더군요.”
“양국 간에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좋은 일입니다만…….”
김홍집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김옥균은 단호한 어조로 반대했다.
“근래 청국의 정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청국에서 들어오는 정보에 따르면, 황제와 북경의 조정이 이홍장에게 조선 정벌을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뭐, 뭣이!”
각료 대부분이 깜짝 놀랐다. 정보를 파악하고 있던 이선과 김옥균은 냉철함을 유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군 대감을 천진으로 초대하다니, 수상하지 않습니까? 필시 나쁜 뜻이 있을 겁니다.”
이선이 웃으면서 말했다.
“전쟁 위기가 고조된다고 하니 전쟁을 막기 위해 내가 가야 한다면 천진이 아니라 북경으로도 갈 수 있습니다.”
“안 됩니다! 저들이 군 대감을 잡으려 든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때로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미 국익을 위해 전 세계를 떠돌았던 사람입니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면, 청국이라고 못 갈 게 없습니다. 내 안위보다 조선의 안위가 더 중요합니다.”
“예전과는 상황이 다릅니다. 대감의 안위가 곧 조선의 안위나 다름없습니다. 절대 가서는 아니 됩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가시면 안 됩니다!”
어찌 보면 지나친 말이었으나,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겠다는 이선의 비장한 태도에 각료들은 이미 감탄한 터였다.
“군 대감께서 나서실 이유가 없습니다. 제가 외무대신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고 천진에 가겠습니다.”
김옥균이 비장한 어조로 나섰다.
“아니오, 내 생각에는 외무대신 역시 갈 이유가 없습니다. 황제와 조정이 이홍장을 압박하는 상황이라면, 아쉬운 건 저쪽이지 우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역사와 달라졌다곤 하지만, 이홍장은 임오군란 때 대원군의 납치를 지시한 사람이다. 만약 이번에 같은 해결책을 택한다면?’
상황을 짐작하고 있는 이선으로선 처음부터 천진에 갈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선이 직접 가겠다고 나섬으로써, 임금이나 다른 각료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완화군이 가야 한다는 말이 나올 여지 자체를 차단했다.
“역으로, 이홍장을 인천에 초대하지요. 그들이 초대에 응하느냐, 안 응하느냐는 진심과 거짓을 밝히는 초석이 될 겁니다.”
“오, 묘안입니다. 이홍장이 초대에 응한다면 진정 문제 해결을 원하는 것이겠으나 거절한다면 나쁜 속내가 있음을 자인하는 셈이 되겠군요.”
조선은 총리대신 김홍집의 명의로, 정중한 문체로 답을 보냈다.
조선도 청국과 진정한 대화를 원한다. 하지만 군무대신 이선은 국내의 일이 너무 바빠서 천진으로의 초대는 응할 수가 없다. 만약 회담을 원한다면 인천에서 하자고 역제안을 했다.
역으로 초대를 받은 이홍장은 막료들을 소집했다.
“천진에 오지 않는다니. 완화군은 정말 신중하군. 혹여 저들이 우리의 계획을 눈치채진 않았을까?”
이선의 예측대로, 이홍장은 이선이 천진에 도착하면 억류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조약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황명대로 조선의 무례를 징벌하려면 꼭 군사적 수단을 따라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얼마 전, 해결책을 골몰하는 이홍장에게 북양수사통령 정여창이 건의했다.
“무슨 방법이 있겠나?”
“아시다시피, 조선 조정을 주도하는 건 완화군입니다. 몇 명 더 언급하자면 김홍집, 김옥균 정도지요. 이들이 황상께서 봉한 국왕을 뒷전으로 놓고 멋대로 정국을 농단한다는 죄로, 조선 조정에서 몰아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근래 한성에서 들려오는 정보에 따르면, 국왕이 정치적 소외에 불만이 많다고 합니다.”
“명분은 좋은데, 군사적 수단을 제외하고 어찌 그들을 몰아내겠는가? 인제 와서 조선이 황명에 응하겠나?”
회군통령 오장경이 옛일을 상기시켰다.
“중당께서는 12년 전, 임오년을 기억하십니까?”
“조선에 군란이 일어나 대원군이 집정한 것 말인가?”
“돌이켜보면 그때 일을 너무 허술하게 처리했습니다. 본래 계획대로 대원군을 납치해 천진으로 압송하고 조선국왕에게 정권을 돌려주었다면, 조선은 완벽한 영향력 아래에 둘 수 있었을 겁니다.”
실제 역사에서 진행된 일이나, 이선의 등장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던 대원군 피랍사건. 이홍장은 이선의 설득으로 대원군 정권을 승인했지만, 결과적으로 호랑이를 키운 셈이 되어버렸다.
“완화군을 납치하잔 말인가?”
“피 흘리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건,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국왕에게 전권을 돌려준다고 명분을 내세우면 됩니다. 완화군과 개화당의 우두머리 김옥균 정도만 잡으면, 감히 맞서려 하지 않을 겁니다.”
이홍장이 솔깃해하며 물었다.
“조선은 완화군만 잡으면 충분하네. 구체적인 방법은 어찌할까?”
“완화군을 천진으로 초대한 후에 황명을 내세워 북경으로 호송하지요. 대청 황제와 조선 국왕에게 반역한 혐의를 내세워, 황상께 판결을 맡기면 됩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12년 전과 다른 점이 있지. 조선과 조약을 맺은 서양이나 일본이 가만히 있지 않을 터인데?”
“아니면, 유화책으로 황상께서 관직을 내리는 방법도 있겠지요. 실제로 서양인들도 중국의 관직을 받는데, 조선이라고 안 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일단 황상을 알현하게 하고, 북경에 억류하게만 하지요.”
“그거 괜찮군. 좋아, 추진해 보세.”
하지만 이선이 초대에 응하지 않고 역으로 이홍장을 초대했으니, 대안을 세워야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못 갈 것도 없네. 내가 인천으로 가지. 조선 땅도 구경해볼 겸.”
이홍장의 승낙에 오장경이 반대했다.
“안 됩니다! 조선을 어찌 믿고 중당께서 직접 간단 말씀입니까?”
“내가 먼저 회담을 제안해 놓고선 초대를 거절한다면,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자인하는 셈이 아닌가?”
“그러시다면, 전함 정원과 진원을 인천으로 보내 중당을 호위하겠습니다.”
정여창의 제안에 이홍장이 씩 웃었다.
“저들과 달리 우리에겐 강력한 무기가 있지. 북양함대 말이야.”
이홍장은 좌중을 둘러보았다.
“인천에서 회담해서, 완화군과 조선 조정이 내 말을 잘 알아들으면 그건 좋은 일일세. 굳이 군대를 소모할 일도 없고.”
“만약 잘되지 않는다면 어찌합니까?”
“황상께서 조선 정벌을 명하셨는데, 빈손으로 돌아올 수야 있나. 황상께서 만족하실 만한 선물을 들고 가야지.”
“그 말씀은 곧…….”
“완화군은 서양 무기에 관심이 많다지? 그래서 조선이 육군은 꽤 많이 양성했고. 다만 재정 부족으로 해군을 키우지 못한 게 아쉬울 거야. 내가 그 심정을 잘 알지. 그래서 훗날의 해군양성을 위해, 북양함대의 위용을 직접 구경시켜주고 싶네.”
이홍장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