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180
– 180화에 계속 –
180화 공수동맹
1894년 8월 하순. 일본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와 참모차장 가와카미 소로쿠 중장, 연합함대 사령장관 이토 스케유키(伊東祐亨) 중장은 극비리에 조선을 방문했다. 주일공사 김가진이 이들과 동행했다.
나가사키에서 부산을 경유해 인천으로 오는 정기선 일등석에 탄 양복 차림의 손님이, 정부 최고위 인사임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정기선이 인천에 입항하자 무쓰와 가와카미는 부두의 경계가 삼엄함을 인지했다. 해안포가 바다를 노려보고 있었고,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도 인천 진위대는 항구에 삼엄한 경계를 서는 중이었다.
“청국의 침입을 대비하는 봅니다.”
“조선의 각오가 상당해 보이는군요.”
인천에선 주조선 공사 오토리 게이스케와 서기관 스기무라 후카시가 대기하고 있었다.
“완화군이 인천에서 외무대신을 기다립니다.”
“협상을 바로 시작하잔 말이군요. 조선도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나 봅니다.”
일본 사절단은 김가진의 안내를 받아 인천감리서의 회의장에 도착했다. 얼마 전, 이선이 이홍장과 회담했던 바로 그곳이었다.
회의장에서 군무대신 겸 외무대신 서리 이선, 내무대신 서리 박영효, 원수부 군무국장 윤웅렬이 사절단을 맞이했다.
“날도 궂은데 먼 길 고생하셨습니다. 조선국 군무대신 겸 외무대신 서리 이선입니다. 협상의 전권위원을 맡게 되었습니다.”
“공의 높은 명성은 익히 들어왔습니다. 일본국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입니다. 역시 협상의 전권위원을 맡게 되었습니다.”
‘무쓰 무네미쓰, 청일전쟁을 실질적으로 결정한 장본인. 가와카미 소로쿠, 경복궁 점령을 감행하고, 동학 농민군에 대한 강경 진압을 명령한 장본인. 실제 역사만 보면 정나미가 떨어지는 위인들이지만…….’
하지만 이미 역사는 바뀌었다. 무쓰는 제국주의자이지만, 동시에 서구식 합리주의자였다. 조선과 일본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동안은 손을 잡을 여지가 충분했다. ‘적의 적은 아군’이었다.
의례적인 인사가 오간 후, 회의는 바로 시작되었다. 미국 공사를 지낸 무쓰는 영어가 유창했다. 회의 언어는 조선어와 일본어 통역을 사용하지만, 정확성이 필요할 때는 영어로도 확인하기로 했다.
“각설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일본은 조선에, 청국에 맞서 공수동맹(攻守同盟)을 제안했습니다. 조선 정부는 숙고 끝에,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귀국의 현명한 판단에 경의를 표합니다. 두 나라가 힘을 합치면, 청국도 감히 맞서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동맹 조약에 관해 구체적인 논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초안을 준비해왔습니다.”
이선과 조선 대표단은 초안을 읽었다. 양국 우호와 조선 독립, 동양 평화를 희망한다는 의례적인 서문은 넘기고 실질적인 안을 검토했다.
첫째, 공수동맹의 대상은 청국으로 한정한다. 청국에 맞서, 조선과 일본이 공격과 방어를 함께한다. 일방이 청국과 교전을 개시할 경우, 다른 일방은 즉시 참전하여 함께 한다.
둘째, 동맹 조약은 청국과 평화 조약이 체결되는 날에 폐기한다.
셋째, 양국의 통신을 원활히 하여 군대를 운용함에 있어 일치해야 한다. 군량과 군비 등은 서로 돕도록 하며, 각자 편의를 제공하는 데 있어 아낌이 없어야 한다.
넷째, 주된 전장은 조선과 중국 해안 일대, 황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조선은 일본군의 주둔과 육로통행을 보장한다.
이하는 공개되지 않을 내용. 일본은 황해 제해권을 제패한 후, 남쪽으로는 청국령 대만과 팽호제도(澎湖諸島), 북쪽으로는 요동 반도와 산동 반도를 공격하는 걸 목표로 한다.
“1항과 2항은 조선 측도 똑같이 생각했으므로, 이의가 없습니다. 3항과 4항은 논의할 여지가 있습니다.”
이선은 조선 측 요구를 내밀었다.
조선군과 일본군의 지휘는 별도로 이루어져야 합한다. 단, 서로 연락 기구를 설치해 작전의 원활한 수행에 지장이 없도록 한다.
전쟁에 소요될 군량은 조선에서 넉넉히 제공하겠으나 전비(戰費)는 예산이 훨씬 많은 일본에서 대부분을 부담하길 희망한다.
일본 육군의 조선 주둔과 통행은 허용할 수 없다. 대신, 일본이 원하는 항구 여러 곳의 사용권을 허용한다.
조선이 먼저 요청하기 전에는, 일본군은 조선 영토에 진입하지 않는다.
“모순입니다. 일본군의 조선 주둔과 통행 없이, 어떻게 전쟁을 원활하게 수행한단 말입니까?”
참모차장 가와카미가 반발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원수부 군무국장 윤웅렬이 조선의 작전 계획을 설명했다.
“일본 해군이 북양함대를 물리치고, 황해 제해권만 차지한다면 가능합니다. 일본이 해로로 청국 영토를 공격하면, 조선은 국내의 병력을 정비하여 육로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만주로 진격할 것입니다.”
“요컨대 북양함대를 격파하는 어려운 일은 일본에 맡기고, 조선은 안전장치를 확보한 후에 군대를 움직이겠다는 말입니까?”
연합함대 사령장관 이토 중장이 어림도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만약 전쟁을 개시하면, 청국은 더 쉬운 적으로 여기는 조선을 먼저 공격할 겁니다. 청국의 공세를 받아낼 건 조선입니다. 조선의 육군은 청국에 간신히 대적할만하나, 해군은 불가능합니다. 마땅히 일본 해군이 청의 핵심인 북양함대를 무찔러 줘야지요. 그러기 위해선 건함 정책을 세운 거 아닙니까?”
이선의 반박은 충분한 논리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 측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왜 일본군의 주둔과 통행을 끝내 허용하지 않겠다는 겁니까?”
“이 전쟁의 명분은, 귀국이 말했다시피 조선이 자주독립국을 쟁취하는 데 있습니다. 조선의 영토와 주권은 조선이 지켜야 합니다. 조선은 외국군이 군대를 주둔시키는 전례를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동맹국 군대는 단순히 외국군은 아니지요. 그리고 주둔은 전시에 한정하는 경우 아닙니까?”
“이 일을 전례로 삼아, 러시아나 다른 국가가 조선에 주둔하려 한다면 일본은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이선은 일본이 두려워하는 러시아를 핑계 삼아, 일본군의 주둔을 막으려 했다.
‘일본군이 조선 땅에 대규모로 들어오는 선례를 만들 수는 없다. 이놈들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역사적인 트라우마로 인해 일본군의 진의를 믿기 어려웠다.
일본 장성들은 다시 설득하려고 했지만, 무쓰가 손을 들었다.
“좋습니다. 귀국의 제안을 받아들이지요. 그만큼 일본이 조선의 자주독립을 지지하고, 동맹을 진심으로 맺고자 한다는 걸 알아주십시오.”
“귀국의 호의를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 양국 간 이견은 해소되었으니 잠시 쉰 후, 공수동맹의 구체적인 조항을 마련해 보지요.”
무쓰가 이선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 물론 진심 어린 호의 때문이 아니었다.
이미 무쓰는 각의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여 이토의 승낙을 받았다.
– 조선이 지닌 독립국으로서의 면목을 현저하게 훼손하는 행동, 즉 그 강토를 실제로 약취(略取)하는 것 같은 형적(形跡)은 가능한 피해야 한다. 특히 주의 사항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조선국의 독립을 침해하는 것 같은 행위는 피할 것.
둘째, 조선 정부에 대한 요구는 독립의 체면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한정할 것.
셋째, 군사적으로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대가를 지불하고, 침략의 의심이 없도록 깊이 주의할 것.
조선에 너무 양보하는 거 아니냐는 군부의 불만이 있자 무쓰가 답했다.
“전쟁 명분이 조선의 독립에 있는데 우리는 이를 최대한 존중하는 시늉을 해야 합니다.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침해하려 한다면, 러시아가 절대로 묵과하지 않을 겁니다. 조선 독립의 체면을 보전하고, 더불어 동맹의 결실을 얻는 일이 눈앞의 급선무입니다.”
무쓰의 복안은 다음과 같았다.
“조선을 옭아매던 청국을 무찌르게 되면, 조선은 소원하던 자주독립을 쟁취할 겁니다. 그리고 곧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게 될 겁니다. 특히 만주는 조선인이 다수 거주하고, 조선의 고토라는 인식이 있지 않습니까? 조선을 부추겨 계속 북진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럼 만주를 노리는 러시아와도 갈등을 빚게 되겠지요. 우리는 북쪽의 일은 안심하고, 대만과 남양으로 자유롭게 진출할 수 있을 겁니다. 조선을 완중지대로 삼는 것이지요.”
요컨대 무쓰는 조선을 대륙의 지렛대이자 장기 말로 이용하자는 말이었다.
일본을 지렛대이자 장기 말로 이용하려는 건, 이선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청국을 거꾸러트리고, 동양의 패자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걸 원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하지요. 우리는 청국의 간섭을 몰아내 자주독립을 쟁취하고, 만주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겁니다.”
이선의 복안은 다음과 같았다.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분명 일본은 청국에 과도한 영토 할양과 배상금을 요구할 겁니다. 우린 오히려 중재하는 척하면서 이득을 챙겨야 합니다. 청국은 조선이 아닌 일본에 원한을 품게 될 것이고, 서양 열강은 일본의 야심을 경계하게 될 겁니다. 일본을 이용해 청국을 무찌르고, 이후에는 러시아와 프랑스를 이용해 일본을 견제하는 겁니다.”
서로 품은 생각이 무엇이든 간에, 동맹에 대한 합의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8월 26일, 최종 동맹안이 타결되었다.
대조선 · 대일본 양국 동맹 조약(大朝鮮 · 大日本 兩國同盟條約)
제1조. 이 동맹 조약은 청국의 군사적 위협을 격퇴하고, 조선국의 독립과 자주를 공고히 하며 조선과 일본 두 나라가 누릴 이익을 확대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다.
제2조. 양국은 청나라에 대한 공격과 방어 전쟁을 담당할 것을 승인했으므로, 전비와 군량을 미리 마련하는 등 여러 가지 일에 돕고 편의를 제공하기에 힘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제3조. 이 동맹 조약은 청국과 평화 조약이 체결되는 날에 가서 폐기한다.
대조선 개국 503년, 대일본 메이지 27년 8월 26일 8월 26일
외무대신 겸 특명전권대신 이선
외무대신 겸 특명전권대사 무쓰 무네미쓰
조약에 공개된 내용은 간략했지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은 비공개로 양국에 공유되었다.
그 내용은 극비에 부쳐, 양국 정부 핵심인사만이 회람할 수 있었다.
동맹 조약 체결 직후 일본은 비밀리에 동원령을 내렸다. 조선도 병력의 확대와 편제에 착수했다.
1894년 9월 1일. 조일 공수동맹 조약은 신속히 양국 정부에 의해 비준되고, 외국에 통보되었다.
조일 동맹 체결에 가장 경악하고 격분한 것은 역시 청나라였다.
“끝내 조선이 반역하여 왜인들과 손을 잡았습니다!”
“대청과 황상에 반역할 뜻을 바였으니,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정벌을 개시해야 합니다!”
“즉시 정벌의 명을 내리소서!”
빗발치는 요구에, 광서제는 결단을 내렸다.
“북양대신 겸 직례총독 이홍장은, 즉시 휘하 군대를 동원하여 동정(東征)에 착수하라. 조선의 반역을 제압하고, 그 배후에 있는 왜국의 도발을 잠재우라!”
러시아에 중재를 부탁하던 이홍장도 이제는 더 이상 평화적인 해결책을 강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러시아가 아니라 일본만 나서서 다행이군.”
“조선과 일본만을 상대한다면 해 볼 만한 싸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북양함대와 회군만으로는 부족하지만, 신속히 조선을 제압해서 전의를 꺾는다면, 일본의 명분도 사라질 것이다.”
이홍장이 여전히 두려워하는 건, 러시아가 개입하는 것이었다.
“만약 러시아가 조선을 도와 전쟁을 벌이려 했다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정벌을 감행할 수 없어.”
이홍장은 러시아가 아닌, 영국과 접촉했다. 주청 영국 공사 오코너(Nicholas O’Conor)와 회담했다.
“이제 중국과 조선, 일본이 전쟁을 피할 가능성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귀국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영국은 동양의 평화가 유지되길 희망합니다. 하지만 끝내 부득이하게 전쟁이 일어난다면, 엄정중립을 지킬 것입니다.”
“만약 러시아나 프랑스가 조선의 편에 들어 전쟁에 개입하려 한다면, 동양의 세력균형이 무너지게 됩니다. 영국은 어찌 대처할 것입니까?”
오코너는 단호하게 답했다.
“러시아 혹은 프랑스가 극동 전쟁에 개입하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입니다. 이는 영국의 국익에 심히 어긋나는 일입니다. 대영제국의 명예를 걸고,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겠습니다.”
“귀국의 고견은 잘 알겠습니다.”
사실상 영국이 러시아의 전쟁 개입을 막겠다고 나서자 이홍장은 자신을 얻었다.
“이제 걱정은 덜었네. 영국이 우리 편을 든 이상, 서양 열강이 개입할 우려는 없네. 아라사나 법국이 개입하는 건 영국이 막으려 들겠지. 우리가 신속히 조선을 제압한다면, 섬나라 일본은 감히 혼자서 대국에 맞서지 못할 것이다.”
북양군은 전쟁 준비에 착수했다. 이들은 조선을 얕잡아 보고 있었고, 일본도 대단치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모르고 있는 점이 있었다.
이미 일본은 영국과 항해 통상 조약을 개정하고, 전쟁이 장강과 남중국 일대로 확대되지 않는 선에서 끝낸다면, 영국은 일본의 청국 공격을 묵인한다는 밀약을 맺었다.
영국은 지금껏 중국 무역을 독점해 왔기에 현상 유지를 원했지만, 조일 동맹의 승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청국이 이보다 더 간과하고 있는 점은, 조선의 능력과 전쟁 의지였다.
1894년 가을. 동아시아 전쟁의 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